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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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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AI 업계 ‘맏형’ 제이엘케이, 네이버와 공동전선 이뤄

IT 일반

의료데이터 활용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규제다. 상업적으로 쓸 수 없는 민감 정보라서다. 그런데 규제만큼이나 어려운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병원마다 제각각인 데이터 양식이다. 의료데이터 활용도를 높이자면 데이터 양식부터 표준화해야 한단 지적이 많았다. 의료 인공지능(AI) 기업인 ‘제이엘케이(JLK)’는 업계에서 이 분야 노하우가 가장 뛰어난 곳으로 꼽힌다. 지난 2018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업체가 개발한 AI 진단 솔루션을 의료기기로 허가했다. 국내 업체 중에선 처음이다. 이 업체는 또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37가지 질환 여부를 판단하고, 의사 진단을 보조하는 플랫폼 ‘에이아이허브(AIHuB)’를 개발하기도 했다. 의료 빅데이터사업 확대를 모색해온 네이버클라우드가 JLK와 손잡은 건 이런 역량 때문이다. 두 업체는 지난 14일 업무 협약을 맺고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의료 AI 사업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두 업체가 협력하기로 한 사업 범위는 포괄적이다. JLK의 의료 데이터 활용 노하우와 네이버클라우드의 보안기술을 결합한단 것이 큰 얼개다. 특히 JLK는 클라우드 기반의 데이터 가공부터 인공지능 학습, 그리고 의료서비스 제공을 잇는 자체 플랫폼들을 사업화해본 경험이 있단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존 병원 시스템과 연동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기관에 납품 후 사용료 이익을 거두는 식이다. JLK는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 2019년 의료 AI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코스닥에 기술특례 상장하기도 했다. 파트너사인 네이버클라우드는 세계적 수준의 보안 기술을 바탕으로 국내 최대 규모 공공 클라우드 서비스인 ‘네이버 클라우드 플랫폼’을 운영해왔다. 김동민 JLK 대표는 “여러 플랫폼 기술을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키워가는 것이 목표인 만큼 네이버클라우드와의 이번 협약의 의미가 크다”며 “의료 AI 분야에서 하나의 큰 생태계를 먼저 구축해낼 것”이라고 밝혔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1.09.17 17:58

2분 소요
[보험, 헬스케어가 미래다①] '보험 가입'에서 '건강관리'로 바뀐 이유

보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해 5월. 보험연구원은 국내 주요 생명·손해보험사의 CEO 3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기회 요인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예상대로 1위는 금융권 전체가 매달리고 있는 '디지털 금융 전환 가속화'였다. 응답률이 48%(19명)에 달했다. 2위는 '헬스케어 등 신사업 확대'(25%·10명)다. '신규 보험수요 창출', '비대면 채널 상승' 등의 응답은 총 3명에 불과했다. 보험사 CEO 4명 중 3명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업계가 집중 추진해야 할 사업으로 디지털과 헬스케어를 강조한 것이다. 헬스케어 사업은 사실상 디지털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헬스케어' 사업이 보험사 CEO들이 생각하는 미래의 먹거리다. 보험사들은 왜 헬스케어를 미래 먹거리로 낙점했을까. ━ 보험산업 역성장…헬스케어가 필요한 이유 헬스케어 서비스는 질병의 예방·관리, 건강관리·증진 서비스 등을 종합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이다. 과거 보험사들은 소비자에게 "나중에 아프면 보험금을 주겠다"는 식으로 '위급한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하라고 마케팅해왔다. 이제는 '위급한 상황' 자체를 오지 않게 보험사들이 관리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이 미래 먹거리로 헬스케어를 선택한 것은 보험업계의 성장지표 중 하나인 신계약 초회보험료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어서다. 보험연구원은 올해 신계약 초회보험료가 전년대비 2.1%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생명보험 보장성보험 초회보험료는 2016년 2조1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30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반 저축성보험 초회보험료도 같은 기간 9조원에서 6조5000억원으로 줄었다. 인구구조 변화와 고령화에 따른 보험수요 감소가 현실화되고 있다. 보험사들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디지털과 헬스케어에 목을 매는 이유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제가 호황이던 90년대 초 수입이 늘어난 가정에서 가장들이 적극적으로 보험에 가입했고 이 세대가 현재 60대 이상 고령층이 됐다"며 "보험에 비교적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고령층을 공략하고 미래 고객인 젊은층까지 흡수하기 위해서는 헬스케어가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보험사야말로 헬스케어 서비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 곳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는 고객의 생애주기 별 이벤트를 파악하고 상품을 만드는 금융사"라며 "특히 고객이 건강할수록 손해율이 개선되고 비용 효율화를 꾀할 수 있는 보험사 입장에서 의료데이터만 확보된다면 헬스케어 분야로 진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해외 보험사들은 이미 각 나라에 맞는 의료환경에 따라 헬스케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며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헬스케어 시장규모는 2015년 790억달러에서 지난해 2060억달러를 돌파했다. 개인 의료비 부담이 큰 미국은 보험사들이 건강보험 사업의 지원 수단으로 헬스케어를 활용한다. 대표적인 회사인 유나이티드헬스그룹은 헬스케어 서비스 전담 자회사 OPTUM을 설립하고, 웰니스 프로그램(운동·수면·만성질환 관리), 케어솔루션(의료비용 및 입내원 일정관리) 등을 제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OPTUM의 매출은 2011년 390억달러에서 2018년 1010억달러로 급상승했다. 헬스케어 사업만으로 호실적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고령자가 많은 일본은 간병서비스가 헬스케어의 핵심이다. 솜포재팬 홀딩스는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요양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예컨대 감지기가 장착된 침대를 요양시설에 설치해 고령자의 수면 활동, 생활 활동 등의 데이터를 확보, 고령층 치매 방지를 위한 분석에 활용하는 식이다. 의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특징을 지닌 중국은 당국이 보험사들의 의료 서비스 제공을 적극 지원하며 헬스케어 산업이 확장된 케이스다. 평안보험사는 이러한 지원 아래 '평안굿닥터'를 설립, 원격의료 서비스나 헬스몰, 건강검진, 질병위험 분석, 사후 모니터링 등의 헬스케어를 제공 중이다. ━ "국내 보험 헬스케어, 차별화 부족" 국내 보험사들도 걸음수에 따른 리워드 혜택, 건강관리 노력에 따른 보험료 할인 등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하지만 헬스케어를 부수적인 서비스나 사업 관점에서 접근하는 형식적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보험사들처럼 개인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식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닌 단순 걸음수 달성 시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등 접근방식이 너무 단조롭다는 지적이다. 홍석철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도입 초기 대부분의 보험사가 단순 마케팅적 측면에서 헬스케어에 접근해 서비스 차별성이 부족한 상태"라며 "물론 이는 규제에 따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보험사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보험소비자들이 유료화된 헬스케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삼정KPMG가 지난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소비자들은 보험사의 '무료 헬스케어 관리 및 서비스'에 대한 사용 의사가 2016년 19%에서 2019년 82%로 증가했다. 하지만 유료화된 헬스케어 서비스 사용 의사는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아직 헬스케어 서비스가 낮선 보험소비자들의 경우 월마다 일정 비용을 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가능성도 있다. 또 '보험사에 건강정보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는 답변 비율은 14.1%에 그쳤다. 보고서는 "보험사가 건강정보를 이용해 고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험사가 헬스케어 서비스를 확장하기 이전, 국내 보험소비자들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수 있다. 한편 해외 보험사들의 헬스케어 산업이 확장되며 국내에서도 그 중요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분위기다. 이달 중순 금융위원회는 관련 TF 회의를 통해 올 하반기 중 제도개선 관련 법령·가이드라인 개정 등을 빠른 속도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 6월부터는 보험사들의 공공의료데이터 활용도 허용되며 유병력자 맞춤형 상품도 만들 수 있게 됐다. 정부가 헬스케어 관련 사업 추진에 공감하며, 향후 보험사들의 헬스케어 사업은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김정훈 기자 kim.junghoon2@joongang.co.kr

2021.07.27 09:25

4분 소요
'디지털뉴딜' 몸 단 정부, 공공기관은 지지부진

IT 일반

데이터 공개를 통해 신규 일자리(2022년까지 20만7000개)를 창출하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인데, 공공기관이 “데이터 공개 자체가 조심스럽다”고 주장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2년. 약학과 A교수가 연구에 필요한 의료 데이터를 모두 얻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A교수가 만성질환 관련 연구에 발을 내디딘 건 2017년. 국내 한 제약사와 3년 연구계약을 맺고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5년차를 맞는 지금도 뚜렷한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그새 인건비 등 연구비용도 만만치 않게 불어났는데, A교수 연구실이 이를 감당해야 했다. A교수가 5년 동안 결과물을 내지 못한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관련 데이터를 제때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A교수의 연구는 대상자만 수백만명의 5년치 대규모 데이터가 필요했다. 이를 국민 건강 데이터를 다루는 공공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요청했는데, 심평원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가령 “필요한 데이터 크기를 2㎇(기가바이트) 이하로 줄여서 다시 신청하라”는 식이다. 데이터를 보관·전송하는 심평원 내부 서버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A교수는 “심평원이 요구한 데이터 크기에 맞춰 연구를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했다”며 “그렇게 설계를 완료해 다시 요청서를 내더라도 심평원 내부에서 데이터 제공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이 기간만 3개월”이라고 한탄했다. ━ 오프라인 센터 방문해야 데이터 열람 그렇다고 A교수의 사례가 특별한 케이스는 아니다. 공공기관으로부터 건강 관련 데이터를 얻느라 연구 기간을 소모하는 의·약학 연구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공공 의료데이터를 열람하는 데 보통 9개월가량 걸린다”고 입을 모은다. 데이터가 ‘21세기의 원유’로 꼽히는 만큼 의료 관련 데이터 수요는 늘어나지만, 이를 공급하는 공공기관이 민첩하게 대처하질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자들이 정부로부터 의료 데이터를 얻는 프로세스를 보자. 먼저 연구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진료·건강검진 정보)이나 심평원(청구내역·의약품처방 정보)에 계획서를 제출한다. 이를 공공데이터 제공 심의위원회가 검토하고, 개인정보는 익명으로 처리하고 필요한 데이터만 추출한 뒤에 연구자들에게 제공한다. 얼핏 간단한 과정처럼 보이지만, 데이터 제공 건수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지난해 데이터 제공 건수는 874건으로, 2019년(912건)보다 되레 줄었다. 데이터 신청 건수는 2019년 1225건에서 2020년 1562건으로 27.6%나 늘었는데도 그랬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로부터 데이터 제공의 허가를 얻더라도, 연구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전국 11군데 빅데이터 분석센터)이나 심평원(사전 지정한 컴퓨터 240개 계정)을 직접 방문해야만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다. 데이터를 통째로 외부로 들고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공단·심평원 내부 PC에서 데이터를 분석한 뒤에 얻는 간단한 결과표만 반출할 수 있다. 이런 공급 시스템은 연구자들을 곤란한 상황에 빠뜨린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든 논문을 해외저널에 투고했는데, 저널 심사위원으로부터 논문의 수정을 요구받으면 당장 보완할 도리가 없다. 기초가 되는 데이터가 국민건강보험공단·심평원에만 있기 때문이다. A 교수는 “2005년 황우석 전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에서 보듯, 데이터의 투명성이 논문의 생명”이라며 “현재 방법으론 저널 심사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의 소극적인 데이터 공개가 의료연구의 질을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장의 혼란상은 지난해 7월 정부가 발표한 디지털 뉴딜의 청사진과도 괴리가 있다. 정부는 의료·금융 등 산업 각 분야 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 범위를 넓히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1월 국회는 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이뤄진 ‘데이터3법’을 본회의 통과시키면서 보조를 맞췄다. 특히 3법 중 모법(母法) 격인 개인정보보호법에선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통계 작성, 과학적 연구, 공익적 기록보존’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민간투자 연구도 과학적 연구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사실상 공공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 내년까지 일자리 20만개 만든다는데… 공공기관도 이런 정부 기조에 호응하는 듯 보인다. 예를 들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오는 6월부터 신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할 때 국민건강보험과 심평원의 데이터를 쓸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신약을 내놓는 제약사에서 직접 임상실험 하듯 투약 환자를 모집해서 조사해야 했다. 환자 한 명을 모집하고 관찰하는 데 드는 비용이 30만원으로, 이런 케이스를 많게는 3000건 확보해야 하는 까닭에 제약사의 부담이 적잖았다. 그러나 비용 절감 효과에도 지난해 제약사의 데이터 신청 건수는 미미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밝힌 해당 건수는 10건가량. 공단 관계자는 “업계에서 아직 활용 방안을 못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 주장은 달랐다. 의료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적극 관여한 제약사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제약사가 데이터를 요청하는 경우 여전히 공개되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의약품 상표는 가린 채 성분명만 제공하는 식이다. 상품명을 공개하면 타 제약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시 말해 데이터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사정 때문에 제약사가 학계 연구자에게 사업비를 지원하고 간접적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스폰서 연구’ 관행이 여전히 만연하다”고 덧붙였다. 물론 “공공기관이 데이터를 전면 개방한다고 해서 데이터 사업이 순항을 하는 건 아니다”는 반론도 설득력은 있다. 금융업계가 그 사례다. 신용데이터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지난해 9월 개인의 온라인쇼핑 주문내역 정보까지 공개 범위 내에 묶었다가 홍역을 치렀다. 금융위 말대로라면, 개인이 구매한 옷의 브랜드는 물론, 사이즈와 색상까지 금융위의 허가를 받은 사업자(마이데이터 사업자)가 열람할 수 있었다. 이런 입장에 산업적·상업적 활용이란 명분으로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한다는 반발이 전자상거래 업체 등 산업계 내부에서부터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주문내역 열람을 ‘사생활 침해’로 규정하면서 금융위는 한 발짝 물러섰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 역시 데이터 공개를 주저하는 이유로 개인정보 보호를 말했다. 예컨대 가명정보 처리를 하더라도 희귀 난치성 질환자는 나이·거주지 등 몇 가지 정보만으로 특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 이슈는 의료업계 역시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이슈일 뿐이다. 데이터 공개를 통해 신규 일자리(2022년까지 20만7000개)를 창출하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인데, 공공기관이 “데이터 공개 자체가 조심스럽다”고 주장하면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정부의 목표는 ‘데이터 강국’으로 거듭나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꾀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복잡한 실타래를 풀지 못하면 결국 말뿐인 사업이 된다는 지적이다.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2021.04.15 22:41

5분 소요
[창조경제연구회 ‘세상을 바꾸는 토론’|스마트 헬스케어] 규제에 묶여 ‘헬스케어 갈라파고스’ 전락 우려

산업 일반

의료정보 관련 데이터 수집도 못해… 개인정보보호법 등 법안 개정 서둘러야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과 스마트 기기 확산에 힘입어 의료 서비스에 활용 가능한 개인화 데이터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특히 헬스케어산업에서 개인화 데이터는 인공지능(AI) 기술로 수집·분석해 개인별 질병 진단은 물론 만성질환 관리와 질병 예방에까지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IBM이 뉴욕주 맨해튼에 위치한 암센터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의 의료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발한 ‘왓슨 포 온콜로지’가 대표적인 데이터 활용 스마트 헬스케어 서비스다. 왓슨 포 온콜로지는 각 환자별 의료 기록과 건강·유전정보 데이터를 분석해 암 진단 정확성을 높이고, 환자별 치료 방안을 제공하고 있다.미국·유럽연합(EU)·일본·중국 등 세계 주요 선진국은 이미 정부 차원에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각종 규제와 수가 체계 미비 등의 문제로 산업 발전이 더딘 상태다. 실제 네이버와 카카오가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진단하고 예방하는 사업을 국내 주요 대학병원과 손잡고 추진했지만, 규제에 막혀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데이터 헬스케어의 첫 단추인 데이터 수집에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의료·건강정보를 활용할 때 당사자의 사전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의료정보를 가명 처리한다고 해도 분석은 불가능하다.창조경제연구회(KCEREN)는 이런 상황의 국내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을 주제로 집중 토론을 벌였다. 토론에선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실태와 규제 현황, 활성화 방안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특히 이번 토론은 고(故)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이 지난 8월 3일 향년 66세로 별세하기 일주일 전 진행한 마지막 토론이자, 그가 남긴 마지막 화두로 꼽힌다. 국내 ‘벤처 업계 대부’로 불린 그는 그동안 창조경제연구회 토론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 국가 경쟁력 제고 방안을 꾸준히 제시했다. 고 이민화 이사장이 토론을 진행했고 전진옥 비트컴퓨터 대표, 송승재 라이프시맨틱스 대표, 김현중 뷰노(VUNO) 이사, 신철호 닥프렌즈 대표가 참여했다. ━ “한국 스마트 헬스케어 갈라파고스” 이민화 이사장(이하 이민화): 스마트 헬스케어가 데이터 혁명으로 불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요 산업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이 결합된 다양한 스마트 의료기기의 출현과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의 보급 확대가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병원 의무기록(EMR)과 진료 데이터는 물론 마이 데이터라 불리는 유전체 분석 데이터, 스마트 기기 사용으로 생성된 개인건강기록(PHR) 등이 질병 진단과 치료 서비스 개발에는 물론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 및 질병 예방 서비스 등의 의료 서비스의 혁신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ICT와 의료 데이터 축적에서 세계 최고 수준임에도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의 갈라파고스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진옥 대표(이하 전진옥): 실제 한국은 ICT와 의료 데이터 축적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EMR을 축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에도 스마트 헬스케어에선 뒤처져있다. 오히려 갈라파고스로 전락했다. 지난 2000년대 초 한국은 세계 최초로 당뇨폰을 만들고 전 세계 헬스케어 관련 특허의 절반 이상을 점유했지만, 지금은 스마트 헬스케어와 동떨어진 섬이 됐다. 제도의 문제가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행법은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데이터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와 결합해 개인의 신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데이터도 개인정보로 간주해 본인 동의 없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김현준 이사(이하 김현준): 미래 의료 패러다임인 정밀·예측·예방·개인 맞춤형 의료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개인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많은 나라에서 국가 주도로 의료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은 100만 명의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와 암·질병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영국은 희귀 질환자와 암 환자 및 가족을 포함한 약 7만 명으로부터 게놈 10만개를 분석해 게놈 서열 데이터와 의료 기록, 질병 원인, 치료법 등을 밝혀내는 ‘게노믹스 잉글랜드(Genomics Englan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최근 의료 빅데이터 활용도를 높이고자 의료데이터 중심 병원을 지정해 단일 병원 단위의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표준화되거나 정형화된 데이터가 없고 무엇보다 활용이 어렵다.이민화: 미국의 경우 헬스케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만성병 직접 진료비가 27% 절감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일본은 데이터를 활용한 헬스케어로 40조엔의 의료비 절감을 예상하고 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도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를 통해 당뇨 치료 효과가 30% 이상 향상되고 의료기관 이용 시간과 보호자 동행 비율이 3분의 1 이하로 축소된다는 시범사업 결과를 보고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데이터 활용 스마트 헬스케어 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송승재 대표(이하 송승재):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비롯한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보호법 등 이른바 ‘데이터 3법’이 가명정보 개인 식별 가능성에 막혀 처리되지 않고 있다. 특히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의 핵심인 건강정보와 유전정보는 정보 인권 측면에서 민감한 이슈인 게 사실이다. 우선은 민간보험회사, 제약회사, 의료기기회사 등 민간기업이 가명정보라도 내 건강정보·유전정보를 이용한다고 할 때, 개인이 이를 철회할 수 있는 기반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가명정보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이 데이터 규제를 푸는 첫걸음이 돼야 한다.전진옥: 개인정보보호원칙 중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통지 및 동의(notice and consent)의 원칙이 관철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환자들의 무료정보 활용 동의는 진료에 활용해도 좋다는 동의이지, 빅데이터에서 활용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의료정보는 개인정보이자 민감 정보에 해당하는 정보가 많다. 해당 개인정보의 처리에 대해 정보 주체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받고, 민감 정보에 대해서는 별도로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빅데이터 분석을 위한 정보 주체 동의를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신철호 대표(이하 신철호): 블록체인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 관련 데이터는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이고, 높은 수준의 신뢰성과 보안성을 요구한다. 블록체인을 이용해 의료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면 위·변조할 수 없고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실제 블록체인 기술은 의료 혁신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술로 최근 헬스케어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IBM의 왓슨 헬스(Watson Health) 사업부는 2017년 1월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의료 연구 및 기타 목적용으로 환자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기 위해 2년간의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 수가 체계에 막혀 허울뿐인 헬스케어 기술 이민화: 이용 편의의 입증이 스마트 헬스케어 관련 데이터의 활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아이카본엑스(iCarbon-X)가 의료정보·유전정보와 생활정보를 활용한 개인 맞춤 의료를 제공해 설립 6개월 만에 유니콘으로 등극한 것과 같이 이용자의 호응이 있으면 국내도 데이터 활용한 헬스케어산업 확장이 가능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의료 체계는 공급자인 병원 중심에서 소비자인 환자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는 10%의 건강 비중을 갖는 병원 의무기록(EMR) 중심이었으나 4차 산업혁명에서는 30% 비중의 개인 유전자 정보와 60% 비중의 개인생활정보를 바탕으로 한 맞춤 의료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신철호: 개인이 필요에 의해 데이터를 직접 내놓을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개인 관점에서 의료 데이터가 제공 동의가 유용한지 입증하면 현행법에서도 충분히 헬스케어산업이 발전한 수 있다. 예를 들어 링크드인, 리멤버 서비스가 편해서 자신의 신상, 지인 정보를 다 올리는 것처럼, 구글캘린더도 편하니까 매일의 프라이버시 담긴 일정 정보를 기록하는 것처럼, 그 관점을 환자에게 제시하면 환자들은 자기 정보를 어디서든 구해와서 알아서 올릴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심박수를 체크하고 운동량을 체크하는 이용자가 이미 많다. 스마트 헬스케어에선 구글의 헬스케어 자회사 베릴리가 대표적이다. 베릴리는 30만 명의 안구를 스캔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혈관 질환을 진단하는 기술을 내놨고, 베릴리의 사용자가 늘면서 진단 기술 수준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김현준: 우리나라도 대기업과 중소벤처를 포함해 다각도에서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화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와 삼성메디슨은 기존의 영상의학과용 초음파 진단기기(S-Detect)에 딥러닝 기술을 접목해 한번의 클릭으로 유방 병변의 특성과 악성·양성 여부를 제시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약 1만개에 이르는 유방 조직 진단 사례가 수집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용자의 최종 진단을 지원한다. 네오팩트는 중추신경계 질환 환자의 재활을 돕는 솔루션을 개발, 치료사 없이 인공지능이 환자 맞춤형으로 강도를 조정해 재활훈련을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데이터 헬스케어에는 의료 수가(보수로 주는 대가)와 같은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송승재: 우리나라 의료 수가는 행위수가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런데 데이터를 분석해 질병을 진단하고 사전 예방하는 이른바 의료용 소프트웨어에 대한 수가 체계가 없다. 혁신형의료기 기법이 제정됐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판단 기준 자체가 행위수가제이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못하는 실정이다. 다행히 최근 의료용 소프트웨어 수가 체계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다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나 보건복지부는 수가 체계 개편에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이에 국내 수가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해외 진출을 고려하고 있는 헬스케어 기업도 상당하다.이민화: 종합하자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데이터를 활용한 스마트 헬스케어산업이 국가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떠올랐지만, 우리는 법에 막히고 수가 체계라는 갈등에 막혀 인력과 인프라 모든 면에서 뒤처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선 국회에 상정된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이 통과해야 하는 동시에 수가 체계와 관련해 1·2차 의료기관이 신뢰할 만한 보상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2019.08.2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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