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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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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투스, 2분기 영업익 14억원…흑자전환

IT 일반

컴투스는 9일 실적 공시를 통해 2024년 2분기 연결 기준 매출 1730억 원, 영업이익 14억 원으로 2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동안 별도 기준 매출 1545억 원, 영업이익 93억 원을 기록했다.출시 10주년을 맞은 글로벌 대표작 ‘서머너즈 워: 천공의 아레나(이하 서머너즈 워)’는 대규모 프로모션 등으로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거뒀으며, 야구게임 라인업 역시 국내외 프로야구 인기에 부응하며 전년 대비 40% 이상 성장을 기록했다. 여기에 전사적인 경영 효율화 효과가 더해지며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연결 기준 흑자 전환했고, 별도 기준 또한 77% 증가했다.게임사업의 글로벌 매출 비중은 해외가 66.6%를 기록하고 있으며, 북미 28.3%, 아시아 22.1%, 유럽 14% 등으로 세계 전역에서의 고른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컴투스는 탄탄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주력 게임 라인업의 장기적 성과를 극대화하고, 신작 라인업의 글로벌 출시 및 신규 퍼블리싱 확대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간다는 계획이다.명실상부한 글로벌 히트작으로 인정받는 ‘서머너즈 워’는 변함없는 흥행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7월 말 진행한 애니메이션 IP ‘주술회전’과의 컬래버레이션 업데이트 직후 세계 전역의 앱마켓 매출 차트를 역주행했으며, 실제로 업데이트 당일 일매출은 역대 최고 기록에 육박하며 10년의 시간에도 식지 않는 열기를 보여주고 있다.또한, 야구게임 라인업 역시 상반기 높은 상승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하반기 한국과 미국의 프로야구 리그의 뜨거운 열기에 발맞춘 업데이트 뿐 아니라, 각 리그의 포스트시즌에 맞춘 프로모션도 준비하며 역대 최대 연간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5년 일본 시장 공략을 위한 신작도 선보일 예정으로, 야구게임의 명가라는 수식어를 MLB와 KBO를 넘어 NPB에서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외에 지난 7일 글로벌 출시를 진행한 ‘BTS 쿠킹온: 타이니탄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스타시드: 아스니아 트리거’, ‘프로스트펑크: 비욘드 더 아이스’, ‘GODS & DEMONS(가칭)’를 하반기 글로벌 게임팬들에게 선보인다. 이후 서머너즈 워 IP를 활용한 ‘서머너즈 워: 레기온’을 비롯해 ‘레전드 서머너(가칭)’, ‘더 스타라이트’, ‘프로젝트 M(가칭)’, ‘프로젝트 SIREN(가칭)’ 등 다양한 장르의 기대작을 통해 세계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한편, 컴투스는 오는 2025년 1분기까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해 공개할 예정임을 별도의 공시를 통해 밝히며,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주주 정책을 기반으로 주주 가치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024.08.09 10:59

2분 소요
“유치한 분쟁 그만” 외친 민희진, 하이브 주가 하락도 멈출까?

증권 일반

-민희진 반격에 하이브 주가 20만원선 '배수의 진' 복귀를 앞둔 뉴진스의 소속사이자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와 폭로전을 이어가고 있는 하이브가 26일, 장 초반 5%대 약세를 보이더니, 결국 20만원선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하이브는 오전 10시 5분 전 거래일보다 3.77% 내린 20만500원에 거래되고 있는데 앞서 하이브의 주가는 지난 22일 회사가 민 대표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인다는 소식에 7.81%, 다음 날 1.18% 하락했었다.하이브가 폭로한 민 대표의 무속인 '주술 경영' 의혹과 기자간담회의 갈등 여파가 계속되는 지금,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어 주가가 반등하기는 단기간에는 어렵다는 평가다.하지만 26일 방송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민 대표가 게스트로 출연하여 “이유는 모르지만 서로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저도 계속 당하다가 한 번 쳤다”며 “유치하니까 그만하자”는 말과 함께 “왜 우리의 시시비비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론 심판을 받아야 하나. 진실은 당사자들만 아는 거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쟁은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덧붙이며 뉴진스 복귀 전 사태진화를 시도하는 모양새다.하이브는 지난 25일 어도어 경영진에 대한 중간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민 대표의 어도어 경영권 탈취 계획, 외부 투자자 접촉 사실이 담긴 정보를 취합하여 서울 용산경찰서에 제출하며 고발한 상황이라 추후 하이브의 주가가 어떻게 반등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2024.04.26 10:27

1분 소요
[Management] 김환영의 아포리즘 경영학 (22) 매직 - 마법 같은 제품은 마법사 같은 사고에서

산업 일반

영어 단어 ‘magic(매직)’은 우리말로 마법·마술·주술이다. 근대는 매직이 푸대접 받는 시대였다. 과학과 합리성이 매직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영국의 철학자·정치가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이렇게 말했다. “배움이 없는 사람들은 기예와 자연의 허다한 비밀이 마술 같다고 생각한다(Many secrets of art and nature are thought by the unlearned to be magical).” 독일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근대를 표상하는 합리성(rationality)이 마법을 탈피하는 데서 나왔다는 결론을 내렸다.근대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탈근대다. 매직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화려하게 컴백했다. 우리는 매직과 과학기술이 서로의 경계를 잠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발전할 만큼 발전한 기술은 매직과 구별이 안 된다(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영국 과학소설 작가 아서 클라크(1917~2008)가 한 말이다. “누군가에게 ‘매직’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엔지니어링이다. ‘초자연적’이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One man’s ‘magic’ is another man’s engineering. ‘Supernatural’ is a null word).” 미국 과학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1907~1988)이 한 말이다. 초자연과 자연이 만나는 곳에서는 과학기술과 매직도 조우한다.과학기술과 마법 사이에 경계는 없다과학기술인이나 마법사만 매직이라는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게 아니다.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모든 우두머리는 매지션(magician·마법사)이 돼야 한다. 인생 경영이든 기업 경영이든 경영에는 마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상품에서 즉시발복(卽時發福), 즉시효과가 구현되는 매직을 바라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참을성이 없다. 명품 제품과 마법의 공통점은 즉시성(卽時性· spontaneity)에 있다. 매직을 바라는 소비자를 만족시키려면 생산자 자신이 마법적 사고를 해야 한다.매지션으로서 지도자가 하는 일은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無)에서 유(有)가 나올 때 놀라기도 하지만 ‘평범한 유’에서 ‘신기한 유’가 나올 때 놀라기도 한다. “마법사는 흔한 것을 놀라운 것으로 만든다(The magician takes the ordinary something and makes it do something extraordinary).” 영국 과학소설 작가 크리스토퍼 프리스트가 한 말이다.창의경영보다도 지식경영보다도 중요한 게 매직경영이다. 천재성이 수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다. 천재 중에서도 최고의 천재는 마법사형 천재다. 미국 수학자 마크 카츠(1914~1984)는 이렇게 말했다. “과학분야를 포함해 인간 활동 분야에는 두 종류의 천재가 있다. ‘보통 천재’와 ‘마법사 같은 천재’다(In science, as well as in other fields of human endeavor, there are two kinds of geniuses: ‘the ordinary’ and ‘the magicians.’)”매직을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미국 작가 톰 로빈스는 “매직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스크루드라이버로 쇠고기 구이를 자르는 것과 같다(Using words to describe magic is like using a screwdriver to cut roast beef).”고 말했다. 로빈스의 체념과 달리 매직을 그런대로 그럴듯하게 설명하자면, ‘매직은 말이다’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 단어 ‘spell(스펠)’은 우리말로 주문(呪文)·주술·마력(魔力)·마법이다. 매직을 구사하는 것은 말을 주문(呪文)처럼 구사하는 것이다.아무리 훌륭한 지도자의 비전도 주문처럼 되지 않으면 공염불이다.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되려면 팔로어(follower)들이 지도자의 주문에 홀린 것처럼 돼야 한다. 매직경영은 신바람경영이다. 신바람 속에는 고통이 없다. 창의나 혁신이나 변화나 모두 고통스러움이 따른다. 매직은 고통을 못 느끼게 한다.지도자는 언어의 마술사가 돼야 한다. “나는 말이 머금고 있는 마술과 권위를 믿는다(I believe in the magic and authority of words).” 프랑스 시인 르네 샤르(1907~1988)가 한 말이다. 지도자의 말은 경청의 대상이 돼야 한다. 영국 만화작가인 닐 게이먼은 이렇게 말했다. “매직은 우주가 무시할 수 없는 말로 우주에게 말하는 방법이다(Magic is a method of talking to the universe in words that it cannot ignore).”매직의 언어는 독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미국 소설가 스티븐 킹은 이렇게 말했다. “책은 들고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마법이다(Books are a uniquely portable magic).” 매직의 언어는 실천을 통해 가다듬을 수 있다. “사랑과 매직에는 공통점이 많다. 둘 다 영혼을 살찌우고 마음을 즐겁게 하며 실습이 필요하다(Love and magic have a great deal in common. They enrich the soul, delight the heart, and they both take practice).” 미국 로맨스 소설 작가, 노라 로버츠가 한 말이다.배짱과 끈기에 마법 같은 효과가 담겼다매직의 본질도 즉시성이요 매직의 실습에 필요한 것도 즉시성이다. 즉시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과감함이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1749~1832)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미래에 했으면 좋겠다고 꿈꾸는 것은 당장 시작하라. 과감함에 담긴 것은 천재성과 힘과 마법이다(Whatever you can do, or dream you can, begin it. Boldness has genius, power and magic in it).”매직을 이해하는 게 힘들다면 매직과 비슷한 것을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매직의 형제는 배짱이다. 미국의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1767~1848)은 이렇게 말했다. “배짱과 끈기에는 마법과 같은 신비한 힘이 있다. 그 어떤 어려움이나 훼방도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게 배짱과 끈기다(Courage and perseverance have a magical talisman, before which difficulties disappear and obstacles vanish into air).”어쩌면 최고의 매직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마술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 여러분이 발견하는 것은 여러분이 변화시킨 것은 오로지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이다(People think magic’s a way of transforming reality?but in the end, you find that all that you’ve changed is yourself).” 영국 코믹북 작가 앤디 디글이 한 말이다.

2012.05.29 10:23

4분 소요
‘명상의 나라’는 과연 있는가

산업 일반

점차 포화되는 중국 시장을 대신해 인도가 주목 받고 있다. 인도는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해 외국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아직 경제성장보다 고요함, 참선, 기인 등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이광수(러시아·인도통상학부)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10월 14일 서울 여의도동 63빌딩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IMI(국제경영원) 3기 CLIG(Creative Leadership Innovation Growth) 최고위과정 강연에서 인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강연은 ‘역사 속에서 CEO의 제왕학을 읽다’는 주제로 열리는 CLIG 최고위과정의 두 번째 시간이다. 이 교수는 인도 델리대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통념을 깨는 인도 전문가로 알려졌다. 다음은 강연 요약. 인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기업인이 책을 보고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면 인도 사람을 도사 같고, 동물과도 대화할 수 있고, 거지 같지만 신비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과연 인도에서 장사를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인도는 정체하지 않았다영국인이 처음 인도에 왔을 때 “당신들은 역사의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문명을 전해주겠다는 얘기다. 처음 인도를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 중 하나인 막스 뮐러는 인도의 고대 문화는 수동적이고 명상적이며 목가적이라고 했다. 그 본질은 항상 진리만 추구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인도의 과거가 수천 년 동안 이런 성향이 바뀌지 않고 유지됐다고 분석했다.역사 기록에는 기록자의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인도에 도착한 유럽인은 인도의 역사 기록을 찾았다. 남아 있는 기록은 카스트의 최고 계층인 브라만이 쓴 것이었다. 브라만은 실제 백성이 사는 모습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브라만이 쓴 기록을 낭만주의와 식민주의에 물든 유럽의 동양학자가 잘못 읽어냈다. 제임스 밀은 인도사를 힌두 문명, 무슬림 문명, 영국 문명의 세 부분으로 나눴다. 밀은 영국이 들어오기 이전의 인도 문화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인도 사회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정체된 사회의 영속성은 전제군주 아래서 계속된 사회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역시 인도의 역사가 정체돼 있다고 봤다. 마르크스 이후 많은 좌파 연구자가 이를 답습했고 결과적으로 영국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한 결과를 가져왔다.사실 무슬림 시대나 무슬림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 통치자인 무슬림은 당시 백성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지 않았다. 무슬림은 카스트가 사회질서 유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브라만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다만 이슬람의 원리에 따라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주민세를 면제해준 정도였다. 하지만 제임스 밀 이후 많은 유럽 역사학자가 이런 사실을 왜곡했다. 그들은 당시 무슬림이 힌두 문명을 파괴하고 힌두교를 탄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 사회는 정체되지 않고 변화해 왔다. 이 변화는 통치자의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인도를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본질을 가진 땅, 시간이 멈춘 곳 등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인도에 관한 정보 가운데 힌두교만큼 잘못 알려진 것도 없다. 힌두교는 신석기시대 신앙에서 시작해 현대에 이른 종교다. 그렇기 때문에 힌두교는 창시자가 있을 수 없다. 가톨릭처럼 통일된 조직도 없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이 발달했지만 물질적이고 기복적이며 주술적 성격도 있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면서 상호모순적이기도 하다. 어떤 생각이나 세계관도 힌두교 안에 포섭될 수 있다. ▎인도인의 모습은 한가지로 규정 짓기 어렵다. 힌두교 안에는 현실세계를 인정하는 쪽과 부정하고 버리는 쪽 두 가지 세계관이 존재한다. 현실세계를 인정하는 사람은 카스트의 전통을 지키며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돈을 벌며 산다. 세상을 버리는 사람은 카스트 전통도, 부모와의 관계도 버리고 세상을 떠돌며 수행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것이 힌두교다.하지만 한국에서 힌두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생각된다. 힌두교는 식민주의자와 힌두 민족주의자에 의해 영적이고 신비로운 종교로 해석됐다. 세상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믿고 따르는 물질적, 기복적, 현실적인 면은 무시하고 명상과 사색, 요가로만 채색됐다. 많은 이가 힌두교의 본질로 알고 있는 비폭력, 살생 금지, 채식주의, 관용, 요가, 명상, 깨달음 추구는 미국 사회에서 확립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미국이 베트남에 패하자 미국에서는 기독교와 서양 물질문명의 대안으로 힌두교를 생각했다. 기존 가치관과 생활양식으로는 작고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동양의 나라에 패한 충격을 치유할 수 없었다. 미국인은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중산층 출신의 대학 교육을 받은 소외된 미국 청년들은 힌두교라는 유토피아를 통해 실재하는 여러 현실정치의 문제에서 도피하고 싶어 했다.힌두교의 여러 모습이렇게 만들어진 힌두교는 인도로 역수입됐다. 이 개념은 독립국가 이후 국가 정체성 확립에 대해 고민하던 인도인에게 해결책이 됐다. 반식민 투쟁을 거치며 국가 건설의 주체로 선 민족주의 엘리트들은 힌두교라는 종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대치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 이데올로기로도 힌두교는 유용했다.인더스 문명의 유적은 파키스탄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종교를 기준으로 나뉜 나라다. 인도 힌두 문명의 근원인 인더스 문명은 파키스탄에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곳이 세계 최고(最古) 문명의 발상지면서 인도 힌두 문명의 젖줄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래 이런 파키스탄의 움직임으로 인도는 곤혹스러웠다.인도의 힌두 민족주의 학자는 이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지금은 말라붙은 인도 영토 내 사라스와티강 유역이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1990년대 인도에서는 힌두 민족주의 광풍이 불었다. 상당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가 사라진 사라스와티강 문명 만들기에 혈안이 됐다. 힌두 광신도는 무슬림을 핍박하며 집단폭력을 일으키고 학살로 이어지는 비극을 만들었다. 다수의 학살은 소수의 보복성 테러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다수의 분노를 유도해 학살로 이어졌다.종교를 함부로 건들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진다. 스스로를 볼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볼 때 한 가지 정체성으로 파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누구는 어디 사람이니까 어떤 사람이다’는 식의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극의 씨앗이다. 종교로 단일 정체성을 만들어버린 인도의 역사 역시 비극의 시작이었다.

2010.10.19 18:57

4분 소요
박지성이 말하는 ‘명장 리더십’

산업 일반

모든 축구팀은 마술을 부리고 신비한 주술을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칫 냉소적이며 통제가 힘든 스타들을 하나의 동기로 묶어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 축구 감독의 임무다.승리했을 때는 화려한 평가가 쏟아지지만 패배라도 하면 온갖 비난에다 경질까지 감수해야 한다. 감독들은 매주 홈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서 자신이 만든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단지 전술만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최고의 선수를 골라내는 안목과 경기 상황을 꿰뚫고 필살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과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축구 감독은 CEO와 비교되곤 한다.성공한 축구 감독과 CEO들은 자신만의 비법을 지니고 있다. ‘명장 아래 약졸 없다’는 말처럼 명장들이 주문을 외우면 모두가 영웅이 된다. 대한민국의 캡틴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대표적인 경우다.그는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한 현역 최고의 축구 명장 1위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4위 거스 히딩크 터키 감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행운아다. 25년째 맨유를 맡아 우승 전설을 써 온 퍼거슨 감독과 약팀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강팀을 꺾는 히딩크 감독에게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을까. 박지성에게 이들 축구 명장들의 경영론을 직접 들었다.한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박지성에게 ‘어떻게 최고의 무대까지 오를 수 있었는가’라고 물었더니 “최고의 지도자들이 들려준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때로는 짤막한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2002년 1월 북중미 골드컵이 열린 미국. 히딩크 감독은 오른발 아킬레스건을 다쳐 벤치만 달구던 박지성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자네는 정신력이 훌륭해. 그런 정신력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해봐.”특별히 주목 받지 못한 데다 부상까지 겹친 박지성은 당시 ‘과연 월드컵에 뛸 수 있을까’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주전들에게만 신경 쓸 줄 알았던 감독이 직접 다가와 들려준 이 한마디에 그는 한국의 사상 첫 16강을 확정 짓는 포르투갈전 골을 만들어낸다. 맨유에 입단했던 2005년 영국 언론은 박지성의 영입이 아시아 시장을 노린 것이라며 ‘티셔츠를 팔러 온 사나이’라고 연일 비꼬았다.벤치만 달굴 것이라며 ‘벤치성’이라고 약을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퍼거슨 감독은 “언론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다 똑같군. 다들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구먼”이라고 받아넘겼다. 이 말 한마디에 벙어리 냉가슴 앓던 박지성은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었다.위닝 멘털리티 vs 팀 정신박지성에게 “맨유가 왜 세계 최고의 팀이냐”고 물었더니 퍼거슨 감독이 만든 ‘위닝 멘털리티’(winning mentality) 전통을 얘기했다. 그는 “맨유가 최고인 까닭은 스타들이 즐비하기 때문이 아니다”며 “어느 팀보다도 의사 소통이 잘되고 승패를 떠나 다음 단계를 대비하는 정신적인 준비가 잘돼 있다고 자부한다.우리는 이걸 두고 위닝 멘털리티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5월의 일화를 소개했다. 첼시 원정에서 1대2로 패하는 등 어려울 때 맨유는 FC 바르셀로나(스페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있었다. 박지성은 “어느 때보다 긴장이 필요한 때였지만 퍼거슨 감독은 농담하고 장난치면서 오히려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줬다.그는 항상 패배에서 긍정을 찾으라면서 선수들보다 먼저 패배감을 씻어낸다”고 설명했다. ‘위닝 멘털리티’와 비견되는 히딩크 감독의 운영 원칙은 ‘팀’이다. 2002년 초 히딩크 감독은 북중미 골드컵에 이어 남미 원정에서도 연일 패배를 당하며 경질 위기에 직면했다.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지만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았다. 그때 히딩크 감독이 내놓은 처방전이 ‘팀’이었다. 그는 “우리 문제는 단지 슛만이 아니다. 경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모두 복기해야 한다. 팀 전술 속에서 스스로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효율적인지 따져봐야만 골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박지성은 “‘히딩크 매직’이라고 부르는 믿기지 않는 승리에는 ‘팀’이라는 비결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거둔 한국이 그랬듯이 2005년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을 거둔 에인트호번 역시 특급 스타들이 아닌 팀으로 승부를 걸었다. 히딩크 감독이 독일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호주가 그랬고, 유로2008에서 네덜란드를 3대1로 꺾은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에게 감탄하는 것 중 하나는 일흔 가까운 나이에도 컴퓨터를 내장한 듯한 방대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성은 “하프타임 때 드레싱룸에 모인 우리들 앞에 서면 감독님은 항상 ‘몇 년, 몇 월, 며칠 어디서 누구와 붙었던 그 경기 때는 말이지’라는 말로 지시를 시작한다. 당시 상황을 비디오 화면 보듯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후반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와 전술을 일러주신다”고 말했다. 이어 “수시로 상황이 변하는 축구 경기인지라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닐 텐데도 그의 설명에는 사례와 경험이 묻어난다. 그래서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2000여 경기를 모두 복기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고 감탄했다. 퍼거슨 감독이 경기 도중 껌을 씹는 이유는 리듬감이 생겨 경기를 풀어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히딩크 감독은 유머가 넘치고 친화적이다.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박지성이 에인트호번과 암스테르담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나이키 매장에 가서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고를 때였다. 그곳에서 히딩크 감독을 우연히 마주쳤다. 팀 안에서는 쉽게 친한 척 못하던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에게 다가와 “여기 있는 것 다 가져가도 돼. 훔쳐가도 괜찮아”라고 귀엣말을 했다.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할 때 히딩크는 “혹시 맨유에서 잘 안되면 다시 내게 오라”며 애정을 표했다.스타를 휘어잡아라 퍼거슨과 히딩크의 마법은 스타들을 휘어잡을 때 가능했다. 18세 때 운전면허를 딴 라이언 긱스는 퍼거슨 감독의 방을 찾아가 구단에서 후원하는 차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피거슨은 “고작 몇 경기 뛰었다고 이런 요구를 하는 거야. 너란 놈한테는 망할 놈의 자전거 한 대도 못 줘!”라고 불호령을 내리고 그를 쫓아낸 적이 있다. 퍼거슨은 팀플레이에 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베컴과 판 니스텔로이, 로이 킨 등 수많은 스타를 팀에서 가차없이 내쫓았다. ‘퍼거슨의 단두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혹했다.히딩크는 시계 초침까지 맞춰두고 미팅 때마다 정시가 돼서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던 브라질의 특급스타 호마리우를 휘어잡았던 일화가 있다. 자신의 시계를 1분 앞당겨놓은 후 지각한 그를 호되게 나무라고 벌금형을 내렸다. 약이 바짝 오른 호마리우는 부큐레슈티전에 투입되자마자 15분 동안 3골을 뽑아냈다.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아 유로96에 출전할 당시 히딩크는 대회 도중 미디어 앞에서 자신을 욕한 에드가 다비즈를 쫓아냈다. 그는 약을 바짝 올리다 98프랑스월드컵이 다가와서야 복귀시켰다. 팀 규율에 관한 12개 항의 각서에 사인하는 조건이었다. 다비즈는 프랑스월드컵 유고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을 뽑았다.꼼수는 없다, 공평함이 최고 히딩크가 펼치는 마법을 잔머리나 쓰는 꼼수로 봐선 안 된다. 네덜란드 언론인 베벨링과의 인터뷰에서 히딩크는 “절대 속임수를 쓰면 안 된다. 경기를 평가할 때 개인적으로 하든 여러 명 단위로 하든 감독은 능력이 출중한 선수들의 잘못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며 “잘하는 선수들은 대개 영향력이 강하다. 그 힘에 대응하는 상위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퍼거슨은 ‘로테이션 시스템’의 창시자다. 매 시즌 60경기를 뛰는 살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주전과 비주전을 가리지 않고 선수 전원에게 고루 기회를 준다. 그래서 맨유 속에는 두 개의 맨유가 있다는 말이 생겼다.무서운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퍼거슨은 선수들 코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모습이 마치 헤어드라이어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그의 호통을 ‘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박지성은 “내가 지켜본 퍼거슨은 결코 무턱대고 화를 내지 않는다”며 “조직이 방향성을 잃지 않으려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한데 퍼거슨은 화를 내야 할 때와 내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안다. 그래서 선수들은 퍼거슨을 더 무섭게 생각한다”고 말했다.히딩크는 “욕을 해대고 나무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선수들이 ‘이봐 감독! 다 했어. 괜찮다면 우리 하고 싶은 대로 놔두지 그래?’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건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그 팀의 특징에 따라 스스로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8월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3골을 내주는 실수를 범하며 0대5 대패를 안긴 김남일을 중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남일은 “다시 기회를 얻었을 때 목숨 걸고 보답해야겠구나. 모든 걸 바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고했다.퍼거슨은 팀의 연대감을 고취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일에 능하다. 외부의 적에 대항하면서 내부의 잡다한 분쟁을 잊고 적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 똘똘 뭉치도록 집중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포위심리’라고 부른다.애버딘 감독 시절 퍼거슨은 선수들에게 스코틀랜드 축구계 모두가 애버딘의 좌절을 원하고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며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BBC의 축구해설가였던 지미 힐이 맨유 선수의 반칙을 비판하자 퍼거슨은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얼간이 지미 힐 같은 녀석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가치가 없소. BBC는 그저 우리가 패하기를 학수고대할 뿐이오. 고향이 리버풀인 사람들은 몽땅 다 리버풀 머플러를 가슴에 품고 있는 인간들이잖소”라고 응수했다.히딩크 역시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 국내 언론과 심각하게 대립했다. 선수를 모아두고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며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인 바 있다.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히딩크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선수들과 일체감을 만들어냈다. 폴란드전 승리를 거둔 데는 이 같은 심리전이 주효했다”고 회고했다.

2010.05.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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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고도 사는 것에 익숙해져라

산업 일반

역사는 언제나 1등만을 기록하지만, 사실 1인자보다 강했던 2인자도 적지 않다. MBC TV 드라마 에 나오는 ‘미실’을 통해 2인자의 처세술을 알아봤다. MBC드라마 에서 2인자로 등장하는 미실(고현정 분). 세상 모든 성공론은 1인자를 위한 것이다. 하나같이 ‘최고’가 되는 비법만 제시하고 있다.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최고가 아니면 2등이든 3등이든 꼴등까지도 ‘그 외 나머지’로 간주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며 역사도 2인자는 주목하지 않는다. 타이틀에 ‘부(副)’자를 달고 사는 2인자 중에는 ‘부’자를 떼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는 2인자가 1인자로 등극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조직이 훨씬 더 많다. 절대 권력이 존재하는, 주인이 명확한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2인자 자리를 지키는 것조차 어렵다. 영화 의 태주(한석규 분)와 재떨이(박상면 분)는 2인자(넘버2) 자리를 놓고 싸운다. 이병헌 주연의 영화 이나 송강호의 는 2인자가 끝내 1인자와 사투를 벌이지만, 이들 역시 1인자 자리를 넘본 것은 아니다. 보스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거나 보스의 동생을 죽게 해 2인자 위치가 위태롭게 된 것이다. 가끔 주인공만큼이나 그와 대립하는 2인자가 부각되기도 한다. 지난해 방영된 TV 사극 이 그런 작품이다. 정조를 끊임없이 제거하려는 정순왕후(김여진 분)는 등 기존 사극에 나오는 ‘미인계’ 여성 파워와는 달리 정치에 강한 2인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지만 2인자 권력의 진면목은 요즘 장안에 화제인 MBC 사극 이다. 제목도 주인공도 선덕여왕(이요원 분)이지만, 왕권에 대적하는 2인자 ‘미실(美室겙灼痴·고현정분)’이 더 주목 받는다. 독설을 쏟아내면서도 얼굴에는 미소를 잃지 않는 ‘악녀’ 미실은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은 2인자의 생명력과 처세술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평균 시청률 30%를 웃도는 흥행은 확실히 미실의 공이 크다. 실제 역사에서 그랬는지, 드라마 속에서 창조된 인물인지 알 수 없지만 미실은 틀림없이 권력 다툼의 한복판에서 2인자로 사는 것이 얼마나 치열하고 치밀한 생존 전략을 요구하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도대체 미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2인자로 건재하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지속가능 한’ 2인자의 DNA는 과연 무엇인가. 모든 정보를 독점하라 2인자가 1인자를 견제하기 위해선 아래에서 올라오는 모든 정보를 필터링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정보라도 1인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만큼 2인자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도 백성과 직접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였고, 2인자를 자처하는 중신들이 결사 반대했던 것도 2인자 자리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2인자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정보를 검열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차단해야 한다. 동시에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도 금물이다. 측근이라도 함부로 정보를 공유해선 안 된다. 1인자의 비밀도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1인자를 계속 견제할 수 있으며 토사구팽의 위험도 막을 수 있다. 미실은 특히 이 부분에서 철두철미하다. 이른바 ‘사다함 매화’의 비법은 남편 세종(독고영재 분)은 물론이고 내연남이자 자신의 책사 격인 설원랑(전노민 분)조차 알지 못하게 했다. 궁금했던 둘은 아들들을 시켜 미실을 미행하게 했는데, 미실은 이런 첩보까지 접수할 정도로 대단한 정보력을 보여주었다. 미실은 “비밀을 다 공유하려면 서로의 일을 다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소리쳤다. 세종이 화백회의를 장악하고 통솔하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설원랑이 병부령 대장군이 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이야기해야 되겠느냐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미실은 아예 쐐기를 박았다. “오직 이 미실만이 알고 있습니다. 미실만이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걸 알고자 한다면 바로 미실이 되겠다는 것이며 천하의 미실이 둘일 수 없으니 미실이 되고 싶다면 나를 베면 될 것 아닙니까.” 두 아들은 무릎을 꿇었고 세종과 설원랑도 할 말을 잃었다. 1인자엔 부드럽게, 아래엔 ‘부들’ 떨게 드라마와 영화 속 2인자들. 맨위부터 의 설원랑(전노민 분), 영화 의 태주(한석규 분), TV 드라마 의 정순왕후(김여진 분). 2인자에게 이중적 태도는 필수다. 1인자로부터 더 많은 권한을 위임 받기 위해선 끊임없이 충성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위임 받은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아래를 호령한다. 1인자에게는 한없이 약하게 보이고 아래에겐 1인자보다 더 1인자다운 면모를 과시한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비겁함의 극치라는 비난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2인자가 2인자 자리를 확실하게 굳히며 롱런 하는 처세다. 1인자 중엔 이런 ‘비겁한’ 이중적 2인자를 선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는 데다 무엇보다 자기 대신 악역을 도맡아 조직의 위계질서를 잡아주는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미실은 이 점에서 타고난 2인자다. 표독스런 악녀이면서도 세종과 단둘이 있을 때는 연약한 여인의 표정을 지으며 온갖 교태를 부린다. 남편의 품에 안기며 “제가 얼마나 의지하는지 모르십니까”라고 보호본능마저 자극한다. 하지만 그런 미실은 정적은 말할 것도 없고 백성에게까지 경멸의 대상이다. 백성은 미실을 ‘아이를 잡아먹는 악녀’라고 믿고 있다. 사실 그것은 미실 자신이 낸 소문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실이 덕만과 나눈 대화에서 미실의 독재적 정치관이 잘 드러나 있다. 백성이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다는 덕만의 말에 미실은 “천 년 전에도 그랬고 천 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백성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다. 임금이 백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들의 삶이 윤택해질 것이라는 말엔 “귀를 기울이면 모두 요구뿐이며 선정을 펼친다 해도 인간의 욕심을 채울 수 없는 법”이라고 했다. 올림픽 메달 색을 구별하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금은 금이고 은은 은이다. 금메달리스트가 은메달리스트에게 보내는 “정말로 상대하기 힘든 뛰어난 선수였다”는 평가는 최고의 찬사처럼 들리지만, 은메달리스트에게는 최악의 약올림이다. 1등이 만끽하는 기쁨의 높이는 절대로 2등이 통감하는 설움의 깊이에 빗댈 수 없다. 아예 올려다보지 못할 나무라면 미련도 없겠지만, 1인자보다 한 단계 아래이기에 2인자의 분함은 더 크다. 더구나 1인자에게 충성을 다하고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경우에는 그 배신감은 말할 수 없다.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친 전문경영인이 정작 후계자가 되지 못하고 2세에 밀려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오너의 사소한 홀대에도 분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는 2인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고수라면 그런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2인자는 수모를 감내하며 때를 기다릴 줄 안다. 미실의 아들 보종(백도빈 분)은 가야 출신으로 김유신(엄태웅 분) 가문에 원한을 품은 부하를 사주해 김유신의 아버지를 암살하는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사전에 이를 알게 된 미실의 정부 설원랑이 보종을 꾸짖으며 한 말이 있다. “지고 사는 것에 익숙해지라 그토록 일렀거늘.” 설원랑도 미실만큼이나 2인자로 사는 것이 ‘지고 이기는 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미실은 분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1인자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경거망동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미실의 대사는 관대한 듯하면서도 소름이 돋는다. “사람은 실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람은 그럴 수 없습니다.” 도전하는 자는 반드시 제거하라 2인자는 언제 누가 치고 올라와 1인자의 총애를 받거나 1인자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그래서 아예 그럴 가능성이 있는 후보를 물색해 싹을 자른다. 미실은 후한이 있을 만한 정적에게 “떠나라”, “도망치거라”라고 말한다. “아주 멀리”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미실은 평소 이런 지론을 가지고 있다. “무서움을 이겨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망치거나 분노하거나.” 천명공주(박예진 분)가 어렸을 때도 그런 말로 도망치게 했다. 공주가 복수하기 위해 다시 궁으로 돌아오자 미실은 공주를 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공주님에 대한 연민이 이젠 남아 있지 않습니다.” 미실은 덕만을 통해 ‘도망치지 않으면 더 큰 화를 입을 것’이란 메시지를 천명공주에게 전하라고 한다. 미실은 어떠한 도전도, 도전할 가능성도 용납하지 않는다. 진평이 칙서를 내려 가야 유민을 서라벌 밖으로 내친 것도 미실 때문이다. 1인자를 도울 만한 사람은 모두 내 편으로 만들고, 그러지 못하면 제거하는 것도 미실의 전략이다. 미실은 유신에게 “나의 적이 되지 말고 나의 사람이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천명공주의 오른팔인 유신을 회유한 것이다. 물론 유신은 “세주께서 절 얻으실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줄 안다”며 “절 죽여서 시신을 가지라”고 거절했다. 미실은 유신이 떠난 후 “인물이구나. 날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는 자는 처음”이라며 불길함을 감추지 못했다. 조작과 왜곡의 기술을 익혀라 조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음모는 2인자의 작품이다. 1인자와 구성원을 이간하거나 심지어 1인자의 판단을 흐려 2인자인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분위기를 몰고 가곤 한다. 미실이 ‘월식’ 퍼포먼스를 연출한 것도 그래서다. 수십 년간 준비하고 희생을 치른 역작으로 유신을 천명 곁에서 쫓아내는 동시에 자신의 주술적 힘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꾸민 계략이다. 우선 간단한 과학원리를 이용해 미리 준비해둔 우물에서 ‘인력구(人力口)’라고 쓰여진 돌부처가 솟아오르게 하는 ‘쇼’를 벌였다. 미실은 “인력구(人力口)의 합자인 가(伽)자가 들어간 가야 출신을 쫓아내야 한다는 신의 계시가 내렸는데, 따르지 않으면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미실은 책력(冊曆)을 읽고 개기월식에 맞춰 사람들을 모이게 했다. 월식이 일어나자 흉조로 생각했던 당시 사람들의 미실에 대한 공포감은 더욱 커졌다. 그 결과 미실은 왕권을 누르고 백성을 복종시켰다. 미실은 하늘을 이용하지만, 하늘을 경외하지 않는다. 세상의 비정함을 알지만 세상에 머리 숙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반문한다. “비밀을 알려줄까? 하늘의 뜻은 없다.” 미실의 부드러우면서도 무서움을 잃지 않는 눈빛이 압권이다. ‘사다함 매화’의 정체를 캐려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척 들어온 덕만의 작전을 간파하고도 “네가 천명의 첩자임을 모르리라 생각했느냐”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가서 천명에게 고하거라. 사다함의 매화는 책력이었다고.” 미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허나, 너희가 그것을 안들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09.07.31 15:22

7분 소요
실수를 인정하는 법을 배워라

산업 일반

CEO들은 수많은 결단 속에서 산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 결과로 고객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많은 CEO는 이에 대해 책임 회피나 감추기에 급급해한다. 그러다 일이 커져 CEO가 물러나거나 회사 자체가 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급기야 개인이나 조직을 수렁에 빠뜨리는 것이다. 포브스코리아는 이번 호부터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가 함께 쓰는 ‘사과의 기술’을 연재한다. 이 연재는 ‘사과하는 방법’에 대한 최초의 신경과학적 접근이다. 미국의 광고 전문지인 (Advertising Age)는 2008년 올해의 마케터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선정했다. 마케팅 전문가인 배리 리버트와 릭 포크는 라는 책을 통해 경영자들이 오바마를 벤치마킹 해야 할 점을 분석하기도 했다. 이처럼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전략 등 기업 경영의 다양한 분야에서 오바마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다. 무명의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수많은 어려움을 헤치고 대통령이 되는 과정으로부터 지금의 경제 위기 상황 속에 처한 기업들이 분명히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바마도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다. 지난해 11월 8일 대통령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그는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처럼) 혼을 부르는 의식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라고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언급하는 실수를 했다. 백악관 비서실장 출신이 지은 한 저서에 소개된 ‘낸시 레이건이 점성술사를 데려다 주술적인 행사를 했다’는 대목을 언급한 것이다. 여 기자에게 “스위티(sweetie)”라고 부르는 실수도 했다. 이는 오바마의 버릇이기도 한데 가까운 친구에겐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 쓸 표현은 아니었다. 최근엔 오바마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는 톰 대슐 보건장관 내정자와 백악관 최고성과책임자로 임명한 낸시 킬리퍼 등이 모두 탈세 의혹으로 낙마하자 오바마의 인선 과정이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었다. 우리는 오바마의 실수나 잘못 자체보다는 그가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다. 지금까지 관찰에 의하면 오바마는 자신만의 위기 극복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실수 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과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다. 낸시에게는 기자회견 후 바로 직접 전화해 사과했으며, 전화를 받지 못하는 여 기자에게는 음성 메시지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의 말을 남겼다(대통령이 기자에게 음성 메시지로 사과를 남기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실패한 인선과 관련해서는 “내가 일을 망쳐놓았다(I screwed up)” 그리고 “나는 내 자신과 우리 팀에 대해 좌절감을 느낀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실수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했다. 이는 부시를 비롯한 기존의 미국 정치인은 물론 우리나라 정치인과도 매우 차별화된다. 특히 취임 초기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사과는 즉각적인 위기 극복 전략 역사적으로 보면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대중을 향해 사과하는 것은 최근에 와서야 발견된다. 우리의 경우를 한번 보자. 지금은 흔하게 듣는 ‘대국민 사과’란 표현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흔치 않았다. 중앙일보에서 ‘대국민 사과’를 검색해 보면 2001년 이전 기사에는 연평균 10건이 넘지 않았다. IMF 경제 위기가 터지기 전에는 ‘대국민 사과’란 표현이 아예 검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2002년부터 2008년 사이에는 연평균 200건이 넘는 관련 기사가 검색된다. 특히 2002년은 주목할 만하다. 이 해에는 300건이 넘는 관련 기사가 검색되는데, 대표적으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차남 홍업 씨의 구속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으며, 김각중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대행은 정권이 바뀌자 지난 30여 년간 기업 활동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2002년 말 노무현 대통령 후보 당선이 확실시 되자 정몽준 의원은 선거 막판 혼란 초래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이런 사과의 급증 현상은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사과’ 전문가인 아론 라자르 박사는 ‘사과(apology)’ 혹은 ‘사과하다(apologize)’란 표현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나타난 빈도를 조사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쓰루시마 다쿠오 사장이 2005년 12월 기자회견에서 매도 주문 취소 관련 실수를 사과하고 있다. 그 결과, 1990년에서 94년 사이에는 1193건이던 것이 98년에서 2002년 사이에는 2003건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중앙일보를 검색해 보면 ‘사과하다’ 혹은 ‘공개 사과’란 단어는 90~94년에는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98년부터 2002년에는 ‘공개 사과’로 1200여 건, ‘사과하다’로 무려 9000건 가까이 검색된다. 검색의 정확도가 100%가 아니라고 해도, 엄청나게 증가된 수치임엔 틀림없다. 그렇다면 IMF 이후 사람들이 ‘사과해야 마땅한 일’을 더 많이 저지르게 된 걸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해지면서 예전에 비해 드러나는 죄가 많아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이에 따라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것 같다. 즉 정부나 기업이 저지르는 실수나 잘못의 횟수가 매년 비슷해도, 공개적인 사과는 꾸준히 늘어나게 돼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대에서 리더십을 연구하는 바버라 켈러먼은 2006년 에 기고한 글을 통해 ‘리더의 공개적인 사과가 지금처럼 중요한 이슈가 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학계에서 ‘사과의 중요성’에 관심을 두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라자르 박사는 사회심리학이나 언어심리학 분야에서 사과에 대한 연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에 이르러서라고 말했다. 사과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나 구체적인 방법론은 90년대에 나타났으며, 최근 5~6년 사이에 의학 박사인 라자르나 MIT의 정치학자인 멜리사 노블 교수 등이 저서를 내놓으며 조금씩 본격화 돼 가고 있다. 지금은 비밀 없는 투명 사회 그렇다면 왜 정치나 비즈니스, 학계에서 ‘사과’ 이슈가 점차 중요해지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이로 인한 사회 변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06년 6월 21일 영국의 (Inquirer)에 델(Dell) 노트북 컴퓨터가 일본의 한 회의장에서 폭발해 불타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이 사진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사람들은 델의 배터리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처음에 부인하던 이 회사는 결국 8월에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과한 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배터리를 리콜하게 된다. ‘웹 2.0’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문명은 비밀 없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예전엔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고를 취재했다면, 이제는 누구나 휴대전화에 장착된 카메라로 일상을 ‘취재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덕분에 기업의 실수나 잘못이 쉽게 공론화하고, 이에 따라 사과해야 할 경우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소위 ‘힘의 이동’이 조직에서 개인으로 옮겨가면서 더 이상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과거와 같지 않게 됐다. 삼성의 차명계좌 의혹으로부터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물러나게 된 사건과 현대자동차의 비자금 사건은 모두 내부고발자에 의한 것이었다. 조직의 힘이 ‘빠지면서’ 일반 소비자나 국민의 공개 사과에 대한 압력이 점차 늘어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에 요구하는 책임감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사업에 대한 책임을 넘어선다. 생각해 보라. 지금처럼 기업에 사회적 책임(CSR갅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요구한 때가 있었는가? 소비자에게서 벌어들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책임을 비롯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환경적 책임까지 기업이 짊어져야 할 책임의 종류는 점점 늘어만 간다. 책임의 무게와 사과의 가능성은 비례한다. 즉 더 많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 리더가 나서서 사과해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학자의 지적처럼 사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갈등 조정 수단이다. 최근 들어 사과의 중요성은 점점 증가하고 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위기와 갈등을 ‘조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조장’하는 사과가 자주 목격되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기업은 대부분의 경우 ‘법적인’ 보호를 위해, 혹은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과보다 변명과 합리화에 급급하다. 기껏 한다는 사과 역시 ‘의례적’이란 인상을 주거나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는 등 ‘사과의 기술’ 부족으로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19세기 영국 수상인 벤자민 디즈레일리는 “사과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19세기 미국의 시인인 랠프 에머슨은 “분별 있는 자는 결코 사과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사과에 대한 인식은 오랫동안 부정적이었다.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그렇다면 21세기에도 기업의 리더들은 사과에 대해 19세기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걸까? 하버드대의 켈러먼은 사과에 대한 연구를 종합한 후 ‘실수나 잘못 앞에서 사과를 하는 리더들은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리더들은 전반적으로 사과가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예를 들어 법적 고소의 가능성, 체면의 손상)은 과대평가하고, 긍정적 이득(예를 들어 갈등 해소, 관계 개선, 문제 해결)은 과소평가 한다고 켈러먼은 지적한다.리더의 사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가 최근 오바마에게 주목하는 진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사과의 정치학’이라 부를 만한 그의 차별화한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결과다. 그는 위기 때마다 적극적인 사과를 했으며, 이는 대중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매번 실수나 잘못 이후 비난 여론은 매우 빠르게 감소했다는 점이다.그는 최근 인선 과정에 잘못이 있었음을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임의 시대에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책임감과는 거리가 멀어도 사과에 인색한 우리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모두 인정하듯 오바마는 리더십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는 사과가 패자의 언어가 아닌 리더의 언어란 점을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가 사과의 과학을 연구하는 필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이유다. 신경과학자인 정재승(왼쪽) 박사와 김호 위기관리 컨설턴트는 현재 KAIST에서 ‘효과적인 사과’에 대한 신경과학적 탐구를 하고 있다. 김호 컨설턴트는 위기관리 워크숍 전문회사인 더랩에이치(thelabh.com) 대표이며, 베스트셀러인 트레이너 자격(CMCT)을 갖고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단일 PR컨설팅회사로는 세계 최대인 에델만코리아 사장을 역임하면서 수많은 기업의 위기관리 컨설팅을 했으며,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사과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으로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다. 지도교수인 정재승 박사는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이면서 문화기술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김 대표와 함께 ‘효과적인 사과의 기술’을 신경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2009.03.11 09:51

7분 소요
샐러리맨은 그를 보며 꿈꾼다

산업 일반

수출 전선의 세일즈맨에서 연봉 33억원을 받는 샐러리맨의 우상이 됐다.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를 경영하는 오너. 윤윤수 휠라 회장의 이력서다. 성공의 주술에라도 걸린 듯하지만 정작 본인은 살아온 이야기의 절반이 실패담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휠라를 세계 3대 스포츠 브랜드로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 외국 브랜드를 사들여야 합니다. 지금도 시장에 나오는 유명 브랜드가 많아요. 이탈리아 것이면 어떻고 프랑스 거면 어떻습니까? 돈 주고 우리 것으로 만들면 되죠.” 윤윤수 휠라 회장은 “외국의 브랜드를 사들이는 것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그가 인수한 휠라는 이탈리아 브랜드다. 그래서 한국인 소유이지만 국가 대표팀을 지원한다면 이탈리아 대표팀을 후원해야 한다. 회사의 기본 방침이다. 휠라의 정체성이 이탈리아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휠라 제품의 80%는 시장 특성에 맞게 현지화한 것들이다.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지역에 맞게 실행(Thinking globally, acting locally)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이 휠라라고 할 때 떠올리는 제품이 약 20%입니다. 대부분 테니스 용품이죠. 이들 제품이 휠라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역할을 합니다. 나머지는 각국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팔게 하고 본사 차원에서는 조율만 합니다.” 그는 한국 고유의 브랜드에 집착해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한국 기업도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 브랜드를 파는 비즈니스를 해야 돈을 버는 게 냉혹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먹고사는 데 기여하려면 정상급 브랜드를 달고 세계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윤 회장이 휠라라는 외국 브랜드에 편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그가 휠라의 라이선스 사업자로 참여하면서 스포츠 의류 브랜드 휠라는 스포츠화 시장에 진입한다. 제품 포트폴리오에 없던 신발은 지금 의류보다 더 큰 휠라의 비즈니스가 됐다. 무(無)에서 시작한 한국 시장은 윤 회장 덕에 휠라의 효자가 됐다. 휠라코리아는 전 세계 휠라 판매법인 중 가장 많은 이윤을 냈다. 10년 동안 본사에 보낸 로열티만 2억5000만 달러. 그새 그의 연봉은 20억원으로 올랐고, 차도 벤츠600으로 바뀌었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연봉 33억원을 받은 적도 있다. 2005년 윤 회장은 경영자 기업인수(Management Buy-out) 방식으로 휠라코리아 지분을 100% 확보한다. 오너로 변신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왜 한국에서만큼 못 팔까” 아쉬워하던 그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휠라 지주회사의 최대주주인 미국 사모펀드 서버러스가 휠라 본사를 매각하기로 한 것이다. 수익 악화로 경영이 어려워진 탓이었다. 지난해 3월 그는 휠라 본사를 인수했다. 4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 대금 중 4분의 3은 외환은행에서 빌렸다. 이 돈을 빌리기 위해 그는 중국·남미·유럽·일본 등의 판매법인으로부터 브랜드 사용 로열티의 일부를 선불로 받아내기로 했다. 윤 회장의 경영능력과 진실성을 믿은 판매법인들은 그가 휠라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선 로열티를 지급하겠다는 의향서에 서명했다. 이 의향서를 모아서 외환은행을 찾아갔다. 이렇게 해서 인수 자금의 대부분을 은행에서 조달하고 선 로열티를 받아 그 빚을 갚아 나가는 거래 계약이 성사됐다. 이런 방식의 기업 인수는 한국 금융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윤 회장이 본사를 인수할 엄두를 낸 것은 이렇듯 그 나름의 비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과, 자신이 정통한 미국 시장은 직접 커버하고 나머지 시장은 라이선스를 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5년이었던 현지 법인들의 라이선스 계약기간을 장기로 조정해 줬다. “내가 겪어봐서 잘 알지만 라이선스를 받은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계약이 끝나면 라이선스를 회수해 갈까 봐 투자도 과감하게 못해요. 그래서 7%의 로열티 중 3%만 선불로 받는 대신 장기 로열티를 주겠다고 했죠. 안정성과 선 로열티를 맞교환한 거예요. 그렇게 받아낸 돈으로 지난 2월 말 은행 빚을 다 갚았습니다.” 외환은행과 약속한 상환 시한이 지난 6월 말이었는데 넉 달 앞당겨 전액 상환한 것이다. 리처드 웨커 행장이 “이런 기회를 줘서 고맙다”며 외환은행의 광고를 찍자고 해 그는 외환은행의 광고 모델이 되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에게 신용이라는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을 쌓는 데 발판이 된 것이 외국인과의 네트워킹 능력이다. 휠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지만 전 세계 휠라를 움직이는 것은 윤윤수라는 브랜드다. 그가 휠라 본사를 인수할 당시의 일이다. 인수를 지원한 삼성증권 측이 참여 결정을 내리기 전 석 달 동안 그를 따라다녔다. 그러고 나서 내린 결론이 “윤윤수라면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윤 회장은 요즘 휠라코리아 경영을 이기호 사장에게 맡기고 휠라 본사의 경영을 호전시키는 데 몰입하고 있다. 그를 인터뷰한 8월 18일 아침엔 미국 법인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100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린 미국 최대 백화점 콜즈에 들어간 신발이 진열한 지 9일 만에 1만7000족 팔리고 그 후 3만7000족이 더 팔렸다는 것이다. “대성공이에요. 아침에 그 연락 받고 난리 났습니다. 비로소 미국 법인이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기 때문이죠. 우리가 휠라 본사를 인수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휠라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다음 달에 콜즈 매장에 의류를 론칭하는데 미국 법인 정상화의 분수령이 될 겁니다.” 그는 이런 익사이팅한 맛에 사업을 한다고 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겠느냐고 묻자 “그거야 알 수 없지 않으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그는 살아온 이야기의 절반이 실패담이라고 말한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그의 장래 희망은 판검사였다. 유학파 출신의 한학자였던 아버지의 소망이었다. 그 아버지가 고교 2학년 때 폐암으로 별세했다. 병상의 아버지는 그에게 살려달라고 매달리셨다. 충격을 받은 그는 이과로 옮겨 서울대 의대에 지원했다. 2지망으로 치대에 붙었다. 치의예과를 8개월 다니다가 그만뒀다. 치대를 나와서는 아버지 같은 환자를 살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삼수까지 했지만 서울대 의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후기인 한국외국어대 정외과에 진학한 그는 친구 대신 시험을 치르다 적발돼 무기정학을 당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는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외무고시를 준비해 1차에 합격했다. 2차는 포기했다. “나이 서른에 외시에 붙으면 뭐합니까? 취직하기로 마음먹고 해운공사(한진해운의 전신)에 들어갔다가 2년 만에 무역 일을 하기 위해 사표를 던졌죠.”미국 유통업체 JC페니에 들어간 그는 수완을 발휘했고, 서른여섯에 신발제조업체 ㈜화승에 최연소 수출담당 이사로 스카우트된다. 잘나가던 그는 그러나 3년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화승을 떠난다. 영화 ‘ET’가 성공하는 것을 보고 ET 인형을 만들었다가 회사에 60만 달러의 손실을 입히고 난 뒤였다.“저작권에 무지한 탓이었죠. 미국행 배에 인형 10만 개를 선적했는데 결국 한 개도 못 팔았습니다.” 무역회사를 차린 그는 마침내 휠라와 인연을 맺는다. 그가 주문한 신발을 휠라 브랜드로 팔고 신발 사업에 관심이 있던 쌍용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로 신발을 1억 달러어치 이상 팔았다. 당시 종합상사들이 이 비즈니스 모델을 스터디했다고 한다. 휠라 본사 인수 기법과 더불어 윤 회장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실패를 통해서 많은 것을 학습했다고 말했다. “숱한 실패를 겪으면서 프라이드가 땅에 떨어졌지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겸손과 인내심이죠.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다면 어쩌면 한심한 인간이 됐을지도 몰라요.” 젊은 세대에게 그는 “세상이 아무리 암울해도 길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88만원 세대’라고 하는데 통계적으로는 수긍이 가는 분석일지 몰라도 그런 통계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룸이 있게 마련이죠. 끝이다 싶을 때가 있지만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보입니다. 끝이 아니라는 증거죠.” 윤 회장의 경영철학은 정직, 성실, 페어플레이 그리고 정보의 공유다. 정직과 성실은 그에게 신용이라는 보상을 안겨줬다. 선순환이랄까? 비즈니스를 시작할 당시엔 불리한 듯싶었지만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과 일치했다. 경영의 키워드는 속도다. 2001년엔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컨설턴트와 칼럼집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산다』를 공저했다.“내가 보고 들은 것을 짧은 시간에 직원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속도감 있게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매진할 수 있죠. 빠른 속도야말로 성공의 열쇠입니다.” 그가 이탈리아 브랜드 휠라를 사들인 것도 속도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브랜드를 만들어 브랜드 가치를 축적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무엇보다 우리의 문화가 받쳐줘야 한다. 한국 브랜드가 세계적인 것이 되려면 우리 문화가 세계를 리드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 양궁선수들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신기에 가까운 기록을 올린 데는 국산 양궁 브랜드 ‘SAMICK’이 한몫했다. 삼익은 삼익악기 양궁사업부의 후신인 삼익스포츠가 만드는 활로 선수용이다. 매출액은 연간 50억원 규모. 베이징 올림픽에서 삼익의 ‘선전’으로 삼익악기까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다. 국산 브랜드를 세계화하는 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필요하죠. 그런 브랜드를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것도 가치 있는 일입니다. 활을 잘 만든다는 것은 확실히 프라이드를 느낄 만합니다. 그런데 활 팔아서 대한민국 국민이 먹고사는 데 기여할 수 있겠어요? 더욱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시간이 돈인데.” 휠라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그의 기여도는 얼마나 될까? 의류와 신발로 나눌 때 신발 브랜드로서 휠라에 대한 그의 기여도는 90% 정도로 평가된다. 미리 새긴 묘비명은 ‘열심히 일하다 간 사람’ 휠라의 엔리코 프레시 전 회장은 생전에 “휠라는 이탈리아에서 탄생했지만 성장은 한국에서 했다”고 평가했다. 성장을 주도한 사람은 물론 윤 회장이다. 그는 자신의 후계자가 한국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랬듯이 글로벌 브랜드 휠라를 관리하고 글로벌 시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윤 회장은 아침형 인간이다. 오전 5시 반에 일어나 7시15분이면 출근한다. 휠라 본사를 인수할 당시엔 24시간 일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지난 2년 동안 해외 출장만 서른 번가량 다녔다. 그는 오너가 된 후 중압감이 크다고 했다. 윤 회장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삶의 궤적을 쫓으면서 윤 회장은 “나도 가진 것 없이 할 수 있다”고 수없이 되뇌었다. 수출 전선의 세일즈맨에서 국내 최고의 연봉을 받는 전문경영인을 거쳐 세계적인 브랜드를 경영하는 오너로 변신한 윤윤수. 그는 후세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랄까? 묘비명을 미리 새긴다면 어떻게 쓰겠느냐고 물었다. “‘열심히 일하다 간 사람’이라고 써 주면 족하죠. 그 전에 나이키-아디다스에 이어 휠라를 세계 3위의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고 나서 좀 쉬었다 가야죠.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윤윤수 회장이 말하는 ‘하우 투 브랜드’□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라실패와 경험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 나온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패를 회피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돈도 날려봐야 벌 수 있다. □ 자기 희생의 리더십을 발휘하라리더의 자기희생이 구성원 간 공감대를 만들어 낸다. 나는 오너가 되고 나서 연봉을 20억원에서 5억원으로 깎았다. 벤츠를 처분하고 체어맨을 렌트했다. □ 네트워킹 능력을 키워라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특히 외국인과의 비즈니스가 낯설지 않아야 한다. □ 성공의 열쇠는 속도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성공한다. 구성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속도를 당신의 속도에 맞춰라.

2008.08.25 14:53

7분 소요
막무가내 돌진으로 ‘무패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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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박유기 노조위원장이 파업집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번에도 현대차 노조의 위력이 다시 한번 전 국민의 가슴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한국 경제와 회사가 망하든 말든 상관할 바 아니라며 파업을 벌인 현대차 노조가 이번만은 혼쭐이 날 것으로 예상됐다. 더구나 도덕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노조위원장이 회사 측으로부터 2억원의 뇌물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럼에도 노조는 끄떡없이 밀린 성과급 50%를 받는 ‘성과’를 올리고 유유히 파업을 풀었다. 이번 파업 사태에서 현대차 노조는 성역이자 권력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누가 이들을 법 위에 군림하는 노동 귀족으로 만들었는가. 표를 의식한 정권의 노동계에 대한 아부와 철학 없는 친노동정책의 산물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한 줄 모르고 집단 주술에 걸린 것처럼 일터를 내팽개치는 현대차 노조를 해부했다. 장면#1 2005년 3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4공장의 포터·스타렉스 생산라인 주간조 근로자 1300여 명은 작업 물량이 없어 2주 이상 쉬었다. 5공장의 테라칸 생산라인도 재고가 넘쳐 주간 6시간만 근무했다. 바로 옆에 있는 울산공장 1공장의 클릭·베르나 생산라인과 2공장의 싼타페·투싼 라인, 3공장의 아반떼XD·투스카니 라인은 주·야간조 2시간 잔업도 부족해 주말 특근까지 해야 했다. 수출이 30%나 늘어나 일손이 달렸기 때문이다. 한 회사 내에서 한쪽은 놀고 있고, 한쪽은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하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졌다. 상식적으로 봐도 4, 5공장 여유 인력을 숨가쁜 1, 2, 3 공장 라인에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지만, 회사는 그런 권한이 없었다. 단체협약상 조합원 전환 배치는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노조는 “해외공장을 설립해 국내 생산 물량이 줄어든 때문”이라며 전환배치를 거부했다. 장면#2 베트남과 동남아시아에 현대차를 수출하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지난해 연말 기자와 만나 분통을 터뜨렸다. 버스와 트럭 등 상용차를 주로 수출하는 그는 “차가 모자라 팔 수 없다”고 했다. 주문을 못 따라갈 정도로 현대차 인기가 높은데 그가 왜 분노를 표출했을까? 사실은 이렇다. 베트남 등 신흥시장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버스, 트럭의 수요가 늘어났고 현대차도 자연스럽게 판로가 늘어나고 있는데 공장에서 제때 공급을 못 해준다는 것이었다. 벌써 6개월치 주문이 밀려 있는데 노조의 반대로 2교대 근무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전주공장은 연간 10만 대 생산 규모지만, 2교대 전환을 하지 못해 연간 5만 대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어렵게 만들어 놓은 고객들이 하나둘씩 도요타 등 일본차 쪽으로 거래처를 돌리고 있다”며 소리를 높였다. 1년 넘게 노사협상을 벌여온 끝에 올 초부터 전주공장은 2교대 근무에 합의했지만 떠난 고객들이 다시 돌아올지는 의문이다. 주문량 폭주해도 “ 증산 불가 ” 장면#3 1998년은 IMF 체제로 환란이 일어난 다음해였고, 대한민국에 있는 직장치고 정리해고를 하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현대차도 경기 침체에 대비해 평소의 154만여 대 생산을 91만 대 정도로 40% 이상 축소시키면서 나름대로는 발 빠르게 비상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작업물량이 줄어들고 생산라인 가동률이 떨어지는 건 당연했다. 1월부터 5월까지의 가동률이 40%를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이쯤 되자 공장 내에서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엄청난 휴무 인원이 발생했다. 당시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에서도 정리해고를 할 수 있도록 합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는 36일간의 파업 끝에 당초 6700여 명의 정리해고 계획을 270명으로 줄였다. 그나마 해고자 중에 생산인력은 200여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식당 종업원과 부대시설 종사자였다. 장면#4 현대차가 야심차게 준비해 온 첫 럭셔리 카인 ‘BH(프로젝트명)’ 의 출시가 늦어졌다. 올해 말에 출시하려던 BH는 내년 상반기로 연기됐는데 여기에도 노조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BH 출시가 늦어진 것은 무엇보다 노조와의 갈등으로 전용공장 설립이 늦어진 탓이 크다. 현대차는 당초 올 5월께 울산5공장 주차장 용지에 새 공장을 건설해 내년 하반기께 BH를 생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주차장이 없어지면 직원들이 불편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노조원들은 다른 주차장을 이용할 경우 멀어서 불편하니 주차빌딩을 설립해 달라고 요구했다. 현대차는 노사 합의를 거쳐 지난해 11월 말에야 1852억원을 투자해 울산5공장 증설에 착수했다. 공장 설립이 예상보다 6개월가량 늦어진 셈이다. 이런 사례를 수집하려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 위에 예로 든 네 가지 사례는 노조의 경영권 침해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노조 자체의 비리나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노조의 비합리적인 행동은 더 많다. 지난해 문제가 된 ‘취업장사’가 대표적이고 올해는 ‘납품업체 비리’도 드러났다. 노조 사상 최고의 성과라고 평가되는 2003년 단체협약을 이끌어낸 이헌구 당시 노조위원장이 회사로부터 2억원의 금품 수수를 한 일도 있다. 일상적으로 각 조립라인의 관리책임자인 부서장보다 힘이 센 대의원들의 ‘횡포’도 문제다. 서중석 현대차 신노동연합 대표는 지난 1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의원들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문제가 없는 작업 라인도 임의로 세운다”고 밝히기도 했다. 1998, 2003년 파업 후 권력화 급기야 이번에는 성과급 문제로 시무식에서 난동을 부려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했다. 현대차 노조가 왜 이렇게 됐을까? 1987년 시작된 현대차 노조 파업의 분수령은 1998년과 2003년으로 볼 수 있다. 1998년 8월, 현대차는 창사 이래 최장기간인 36일간의 파업으로 회사가 만신창이되자 정부와 정치권에서 협상을 중재했었다. 등 떠밀린 사측은 노조와 어정쩡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었고, 5000여 명 이상 계획했던 정리해고는 270명으로 줄면서 노조는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서 승리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노무현 민주당 부총재와 이기호 노동부 장관이 노사 양측에 서 있다. ▶2001년 8월에 대우차 신문광고에 등장한 노무현 민주당 고문(위), 1998년 현대차 파업을 중재한 이기호 노동부 장관(가운데). 외환위기 상황에서도 승리한 노조는 사측과의 대결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DJ정권 출범 초기였던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를 지내던 노무현 대통령은 중재단장의 신분으로 현대자동차와 노조의 협상을 조율했다. 결과는 당초 구조조정 예정이던 인원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백 명만 해고하는 데 그쳤다. 2년 후인 2001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대우차판매의 요청으로 대우차 신문광고 모델로 나서게 된다. 당시 노 고문 측은 “98년 현대차 파업사태 중재 경험과 삼성자동차 문제 해결 과정 개입, 지난 5월 대우차 매각과 관련한 중재 노력 등 노무현 고문이 한국자동차산업 문제 해결의 중재자로 국민에게 인식이 높아 광고모델 요청이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모델 요청 수락 배경을 밝혔다. 하지만 국내외 언론은 당시 노무현 부총재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개입해 일방적으로 노조의 편을 들었다고 진단했다. 공장 폐쇄, 조합원 해고, 전환배치, 차종 이관 등 경영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을 노조와 합의 없이 불가능하게 한 2003년 단체협약에도 정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 당시 단체협상 결과에 대해 중앙일보는 ‘재계에선 현대차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압력 ▶3대 핵심 쟁점에 대한 노동계의 강경 투쟁 의지 ▶파업 장기화에 따른 내수 및 수출 마비 ▶정몽헌 회장 자살 등으로 벼랑끝에 몰린 고육지책을 내놓았다’고 보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달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가 회사 측으로선 5일 협상 타결에 압력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정부로부터 어떠한 메시지도 받은 적이 없다”고 궁색하게 해명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교섭 결렬에 따른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이 노사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킬 수 있는 데다 회사 측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도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였던 당시 정치적 환경은 노조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참여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인 권기홍 장관은 취임 직후 “노동부는 정부 안에서 노동자를 대변해야 하며 그것이 노동편향이라면 편향하겠다”고 소신을 펼쳤다. 또 2003년 3월 두산중공업 파업사태가 악화되자 직접 현장에 달려가 노사 중재를 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펼쳤다. 당시 두산중공업 중재는 지나치게 노조의 편을 들어줬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런 배경하에서 나온 것이 현대차 노조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2003년 단체협약이다. “노조가 회사 경영하는 것 같다 ” 두 번의 결정적인 고비에 정권의 개입이나 묵인하에 현대차 노조는 대한민국 대표노조로 성장했다. 하지만 생산성을 따져보면 현대차 노조가 대한민국 대표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현대차 임금은 총 42.39%(매년 평균 8.4%)의 높은 인상률을 보인 반면, 생산대수는 연평균 1.4% 성장하는 데 그쳤다. 평균 8.4% 임금 인상은 같은 기간 평균 물가상승률 3.34%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이처럼 고임금·저생산 구조의 배경에는 파업에 따른 손실이 크다. 2001~2005년까지 파업으로 인해 33만3870대의 생산 차질이 생겼고,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생산대수(653만7835대)의 5%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자동차 업계의 노동생산성을 비교하는 지표인 차 1대당 제작 소요시간(2004년 기준)을 비교해 보면 닛산이 18.3시간, 도요타가 19.5시간으로 현대차의 33.1시간에 비해 월등히 짧다. 최근 구조조정과 공장 매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GM(23.1시간)이나 포드(24.5시간)도 현대차보다 제작 소요시간이 짧다. 그만큼 현대차의 생산성이 뒤진다는 뜻이다. ‘고임금·저생산성’을 보여주는 지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임금 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성과급 문제로 파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회사 측은 이번에도 조기 타결이라는 미봉책으로 사태를 마무리지었다. 노조가 요구한 성과급도 주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회사가 아니라 노조가 경영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간다면 현대차 노조가 올해도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현대차에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성과급은 경영진이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주는 것이다. 도요타 노조는 임금 인상 요구의 첫 번째 기준을 ‘회사가 처한 환경’이라고 했다. 노사 화합을 기본으로 3년째 1조원대 이익을 내며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을 넘보고 있는 도요타는 지난해 기본급을 월 1000엔 올리는 데 그쳤지만 2006년 보너스로 230만 엔(약 1800만원)을 받았다. 누가 더 현명한 선택을 했는지는 세 살짜리 어린 아이도 알 수 있다.

2007.01.2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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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이 공부하는 미국 경제의 비밀 ③] 세계 지배하는 ‘달러의 힘’

산업 일반

기업이나 가정에서 부도가 나는 것은 버는 것보다 빚이 많을 때다. 빚이 많아서 이자마저 갚지 못할 경우 개인은 신용불량자가 되고 기업은 부도를 맞는다. 국가라고 다르지 않다. 국민의 씀씀이가 헤퍼져 빚이 늘어나면 해외에 자산을 매각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자금 여유가 있는 나라에서 돈을 구걸해야 한다. 한국도 불과 9년 전 외환위기라는 치욕을 맛보면서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맸고, 많은 자산이 헐값으로 해외자본에 넘어갔다. 1996년 한국은 143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4%를 넘어서자 곧바로 다음해 외환위기에 빠졌다. 이런 상황은 정도의 차이일 뿐 여타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1996년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로 볼 때 태국은 7.9%, 인도네시아는 2.9%를 기록하면서 이들 국가는 한국보다 먼저 외환위기에 빠져 IMF의 가혹한 처방을 받았다. 멕시코·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지역뿐 아니라 스웨덴·핀란드와 같은 선진국들도 해외 빚 때문에 한국과 유사한 외환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예외인 나라가 있다. 미국은 최근 4년 연속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가 4%를 넘었고, IMF 전망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에는 6.5%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위기 당시의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는커녕 오히려 높은 고성장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미국만 예외인가? 왜 미국만 예외인가 경제 논리상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면 자국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그리고 부족한 만큼의 외자를 수혈받아야 한다. 그러나 세계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가장 큰 미국만은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는다. 2005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약 8000억 달러이며 그동안 쌓인 누적 경상수지 적자는 무려 5조3000억 달러다. 이는 2005년 말 기준 GDP 12조5000억 달러의 42%에 이른다. 이 얘기는 미국이 빚을 전부 갚으려면 1년 중 5개월은 생산만 하고 전혀 소비하지 않아야 갚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올해에도 8000억 달러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내년에는 한 해의 절반인 6개월간 생산만 해야 빚을 갚을 수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미국은 엄청난 경상수지 적자에도 끄덕 없는가? 더구나 달러 가치에도 큰 변화가 없다. 바로 이 현상을 규명하는 것이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미래학자인 레스터 서로는 이에 대해 미국이 지나친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세계가 1년에 4% 성장한다면, 미국은 경상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영원히 연 3%만 성장해야 한다. ‘영원히’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여기서 ‘영원히’는 세계 평균보다 매년 1%포인트 적게 성장해도 경상수지 적자를 갚을 수 없다는 의미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미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졌다. 이렇게 경상수지 문제가 치유 불가능의 상태에 돌입하고 있는데 이를 다른 용어로 ‘글로벌 불균형’이라고 한다. 이상한 것은 이런 어려운 상태에서도 달러 가치가 지켜지는데다,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간단한 답은 미국 이외 국가들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메워 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외환위기 당시 한국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해 외환위기에서 탈출했듯이 미국도 끊임없이 해외에서 자금을 흡수해 국제수지 균형을 이루고 있다. 어떻게 자금을 흡수할까? 2004년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 자금 흡수 과정을 ‘신비로운 길’을 통해 이루어지는 ‘공포의 균형’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정말 신비로운 것은 미국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이 별다른 정책이나 미국의 강요가 없는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자진 납세’ 현상 를 보자. 제조업이 약한 미국은 공산품과 원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할 때 그 대가로 달러를 지불한다(기초 자본순환). 수출대금으로 달러를 받은 국가에서는 달러가 쌓일 것이고, 이들 국가는 이런 여유 달러로 미국의 예금이나 국채, 그리고 주식을 매수한다. 중동이나 유럽 국가처럼 미국과의 무역 비중이 작은 국가들도 외환보유액을 미국에 투자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자동으로 해결됨과 동시에 자금까지 풍부해지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한다. 자금이 풍부해진 미국 경제는 과소비를 통해 고성장을 이룬다. 그리고 일부 자금은 다시 미국 이외 국가의 주식·채권이나 원자재 등 다양한 자산에 재투자된다(2차 자본순환). 이것이 바로 ‘신비로운 길’이다. 미국 이외 국가나 개인 간의 상거래에서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다. 경제력보다 더 많이 소비하지만 부족한 자금을 공산품을 수출한 국가가 대신 갚아 주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미국의 입장에서는 정말 신비롭다. 얼마나 경이로운(?) 현상인지 현재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시니어 부시 전 대통령조차 이를 주술(Voodoo) 경제학이라고 평했을 정도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길이 무너지면 세계는 대재앙을 맞을 수밖에 없다.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런 국제자본 흐름의 균형을 ‘공포의 균형’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기업이 부도 위기를 맞을 경우 오히려 은행 등 채권단에 큰소리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빚 독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가 부도가 나면 당신 은행도 안전할 수 없다’고 협박하기도 하고, 때로는 추가로 자금을 빌려주면 자력갱생하겠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렇게 적반하장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우선 부도 위기에 있는 기업이 매우 커야 하며 부채도 엄청나야 한다. 부도가 날 경우 채권단의 타격도 커야 한다. 현재의 미국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올해 말이 되면 누적 경상수지 적자가 6조 달러를 넘긴다는 것은 엄청난 부채공화국이라는 의미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국 등 대미 무역흑자국에는 환율 절상 압력을 넣기도 하고, FTA 협상에서 보여주듯이 농산물이나 영화시장 개방을 강요한다. 묘한 것은 대개 이런 나라들은 달러를 대규모로 보유한 미국의 채권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 앞에서는 고개를 떨군다. 세계 경제 세 가지 장악 비결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도 외환위기를 겪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수지 균형을 이룬 유럽보다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2000년 이후 미국은 연평균 2.6% 성장했지만 선진 유럽연합(EU) 지역은 1.8%, 일본은 1.7% 성장에 그쳤다. 실업률에서도 미국은 4.8%에 불과하지만 독일은 10.6%, 프랑스는 8.9%나 된다. 같은 기간 중 유가는 3배 올랐고, 미국은 9·11테러를 겪었고 이라크 전쟁을 치르고 있다. 왜 부채투성이의 미국은 건재한 것일까? 첫째 이유는 미국이 여타 국가에 비해 너무 강하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미국이 강하기 때문에 달러도 강하다. 물론 미국이 해외에 진 빚, 즉 누적 경상수지 적자 6조 달러를 한꺼번에 갚으라고 한다면 미국은 바로 외환위기에 빠진다. 그러나 지금 달러는 전 세계 공용 화폐다. 달러는 남대문 시장뿐 아니라 북한, 태국의 푸껫, 중국의 오지에서도 자국 화폐와 동일하거나 오히려 높은 대접을 받는다. 이를 기축통화 효과, 일명 세뇨리지(seigniorage) 효과라고 한다.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상거래는 달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금융거래뿐 아니라 원자재 가격이나 많은 통계도 달러 기준으로 작성된다. 이런 현실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달러 가치를 지키는 일을 우선시하게 만든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대부분 대량살상무기(WMD)나 원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라크가 수출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가 아닌 유로화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한 것도 큰 배경이었다.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수행하는 한 달러는 가장 안전한 통화가 된다. 자본시장이 개방된 국가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율은 매우 높다. 한국에서는 불과 8년 만에 상장 시중은행 소유권의 70%가 해외투자가에게 넘어갔다. 일본과 중국도 금융기관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로 해외 자금이 출자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결과 대부분의 나라에서 주식시장 전체의 외국인 지분보다 금융기관의 외국인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 전체의 외국인 지분율은 40%이지만 은행은 70%다. 이런 현상은 금융기관의 세계화 움직임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은행을 매수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미국계 금융기관을 경유해 투자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익숙한 골드먼 삭스, 모건스탠리 등 대형 투자은행뿐 아니라 론스타 등 사모펀드가 바로 은행을 매수하는 해외 자금의 정체다. 그렇다면 이 외국인 투자가들의 국적은 어디일까. 이에 대한 통계는 불분명하지만 이들이 미국과 달러 가치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근거는 있다. 이들 금융기관의 본점 소재지는 미국이다. 모든 회계 처리와 재무제표는 미국의 회계 기준을 따른다. 이 금융기관에 투자한 투자가들은 달러를 기준으로 경영상태를 평가한다. 또한 운용자산도 대부분 기축통화인 달러로 표시된다. 이런 현상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달러 가치의 급변동은 이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단순한 손실이 아니라 경영상 최대 위협이 된다. 또한 글로벌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투자가들도 주식을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미국의 기업이나 개인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런 인과관계 때문에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미국의 영향권에서 달러 방어의 첨병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미국은 전 세계 금융기관을 지배하고 있다. 이것이 둘째 이유다. ▶세계화의 토대이자 매개체인 달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달러가 출렁거리면 세계 경제가 들썩거린다. 셋째는 미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흑자를 기록한 국가들이 풍부한 외환보유액을 미국의 국채 등 달러 자산에 투자한다는 점이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이런 현상이 매우 심한데, 미국과 환율 전쟁 중인 중국의 경우 미국 국채를 6353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2006년 상반기 현재). 또 중동 국가들은 원유 수출대금인 오일머니를 대부분 유럽계 은행에 예금한다. 그러나 유럽계 은행은 유럽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오일머니를 미국의 달러 표시 자산에 투자한다. 지난해 말 기준 7대 원유 수출국의 해외 증권투자는 3431억 달러나 된다. 결과적으로 오일머니는 미국 국채에 투자되어 미국의 외환위기를 막아주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금 흐름에서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탄생한다. 신비로운 길을 통해 중동의 원유 수출 대금이 미국 국채 매수에 사용된 결과, 중동 자금이 미국의 이라크 전비를 일부 대주는 ‘이상한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달러 가치의 하락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자산 가격의 폭락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가 달러를 매개로 미국계 금융기관이라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적 상황을 감안해 미국의 누적 경상수지 적자는 ‘글로벌 유동성’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명칭이 바뀌었다. 미국이 초과 소비한 결과물인 글로벌 유동성이 미국에서 외환위기를 방어하는 셈이다. 中 인민은행 총재의 무례 2005년 2월 22일 일부 언론에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보도가 나가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외환시장은 크게 출렁이면서 달러 가치가 급락했다. 당황한 한국은행은 다음날 급히 이를 부인했고 달러 자산 보유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BOK(한국은행) 쇼크’라고 불린 사건이었다. 같은 시기 일본의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외환보유액의 국가별 통화 비중을 다각화해야 한다”고 언급하자 일본 재무성이 총리의 발언을 즉각 부인하는 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두 해프닝은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강력한 달러의 위상에 뭔가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가 한국은행 관계자의 말 한마디에 가치가 급락했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가 약해진 것은 역시 누적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너무 많고, 부족한 자금을 동아시아 특정 국가들이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 주요 국가의 외환보유액은 2006년 7월 현재 중국 9411억 달러, 일본 8719억 달러, 한국 2257억 달러, 대만 2604억 달러 등 총 2조7192억 달러이고, 4개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는 1조1000억 달러다. 따라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일거에 미국의 국채를 내다 팔면 미국은 바로 공황 상태에 빠질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외환위기를 막아주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수시로 중국에 대해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올해 가질 거의 1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 압박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면 중국은 외환보유액 중 달러 비중을 줄이겠다고 간접적으로 위협한다. 달러 대신 금(金)으로 외환보유액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숨기지 않는다. 이미 중국의 외환보유액 중 달러 자산 비중은 2004년 82%에서 현재는 70%대 초반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지난해 중국의 인민은행 총재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의 통화 절상 압력에 대해 ‘당신들이나 잘하세요’라는 무례한 언사를 했지만 미국은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화 덫에 걸렸나 이런 모순된 상황은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높이고 있다. 조그만 충격에도 달러 가치가 요동친다. 과거에는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 안정 통화인 달러 가치가 상승했지만 지금은 거의 영향이 없거나 때로는 약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유가가 오르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이 결과 미국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달러 약세가 불가피해지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미국이 17회에 걸쳐 정책금리를 인상했지만 미국인들은 해외자산 투자를 늘렸다. 미국의 투자가들은 BRICs 등 이머징 마켓, 10여 년의 구조조정 후 경기 회복세가 뚜렷한 일본이나 독일 등 미국 이외 지역으로 투자처를 늘리고 있다. 반면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했던 동아시아 국가들과 중동의 오일머니만이 미국 투자를 늘렸다. 미국인의 해외 투자가 늘어갈수록 달러 방어는 힘들어진다. 하지만 현명한(?) 미국 투자가들은 달러를 회피하기 시작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약 3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해외 투자자산이 미국으로 회귀할 것인가의 여부가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나 미국 최고의 경제 분석가인 스티븐 로치도 달러 약세에 베팅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국경 없는 자본주의, 다시 말해 자금 흐름의 세계화가 정착되면서 표면적으로 미국이 글로벌 유동성을 조정하고 있지만, 정작 미국 내 투자가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덫’에 걸린 것이다. 달러 가치의 안정 여부는 세계 경제의 최대 과제다. 언젠가는 이 ‘신비로운 길’이 무너질 것이다. 미국은 물론 달러 중심의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은 신비로운 길이 사라질 때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위기는 몇 번의 조짐을 보인 후 일순간에 오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당장 위기가 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이후라는 긴 그림 속에서 보면 전조 증세는 벌써 여러 곳에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 집 사도 괜찮을까 한국뿐 아니라 경제가 발전한 선진국에서도 부동산 시장은 항상 골칫거리다. 너무 오를 경우 물가를 비롯한 경제에 부담을 주고 하락할 경우에는 소비가 급속히 줄어든다. 현재 한국은 개인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83%로 추산된다. 독일이나 네덜란드도 70%를 넘었고, 미국도 60%나 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는 구조에 싸여 있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의 이민자, 베이비붐 세대(1945~1955) 자녀들의 결혼 적령기 진입 같은 인구구조적 특성, 높은 이혼율과 단독 가구의 증가, 그리고 전 세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결과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얻기 위한 수요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주택의 평균 건평은 약 2300평방피트(약 64평)다. 프랑스 주택은 평균 946평방피트(26.4평), 독일 932평방피트(26평), 스페인 917평방피트(25.6평)에 비해 훨씬 크다. 공공 임대주택을 선호하는 유럽에 비해 미국은 자가 주택을 선호해서다. 자가 주택 보유 비율은 미국이 전체 가구의 68%나 되지만 프랑스는 54%, 독일은 43%, 그리고 스위스는 30%에 불과하다. 미국인들은 다양한 주택금융 제도를 이용해 대부분의 주택은 융자로 구입한다. 평균적으로 주택가격에서 융자금의 비율은 70%를 넘는다. 따라서 금리가 올라가면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반대로 금리가 내려가면 주택 수요가 늘어 가격도 상승한다. 21세기 이후 미국 주택 가격 상승 원인 중 저금리 현상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은행 융자로 평수를 넓히고 새로운 집을 짓고 있지만, 개인의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부담은 사상 최고 수준인 130%다. 최근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서 미국 주택 가격 하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장기적으로 달러 약세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주택 가격이 크게 올랐고, 대출금리 또한 오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내년 초까지 미국의 주택경기는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미국에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다면 미국의 소비 감소와 수입 축소로 우리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미국에 집을 사야 할까.

2006.11.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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