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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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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 라이엇 출신 ‘글로벌 퍼블리싱 전문가’ 오진호 영입

IT 일반

크래프톤이 세계 시장에서의 사업 확대와 신규 지식재산권(IP) 발굴을 강화하기 위해 게임업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퍼블리싱 인재를 영입했다.크래프톤은 오진호 씨를 CGPO(Chief Global Publishing Officer, 최고 글로벌 퍼블리싱 책임자)로 선임했다. 오 CGPO는 코넬대학교 졸업 후 라이엇게임즈의 본사 사업총괄 대표, 가레나의 CEO,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MD(Managing Director)를 역임했다. 글로벌 게임 회사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주요 IP의 성공적인 출시와 글로벌 서비스를 주도하며 국제적인 경험과 통찰력을 쌓았다. 오 CGPO는 올해 9월부터 크래프톤에 합류해 해외 사업 전반을 총괄할 예정이다.크래프톤은 이번 영입을 통해 새로운 IP의 발굴과 서비스 강화, 퍼블리싱 확대 등 국제 사업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계획이다. 또한, 최근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다양한 IP를 확보 중인 상황에서 오 CGPO의 리더십이 이러한 사업 확장을 효과적으로 이끌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오진호 크래프톤 CGPO는 “글로벌 영향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크래프톤에 합류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며, “오랫동안 게임산업에서 쌓은 사업 역량과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이용자와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크래프톤은 최근 글로벌 퍼블리셔로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세계적 수준의 인재를 연속적으로 영입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애플 본사의 글로벌 신사업 총괄이자 애플코리아의 대표를 역임한 윤상훈 박사를 글로벌 전략 및 운영 총괄 VP(Vice President, 이하 VP)로 영입했다. 또한, 올해 5월에는 삼성전자의 삼성페이 글로벌 GM(General Manager)과 에픽게임즈 본사의 플랫폼 사업을 이끌었던 토마스 고를 크래프톤의 퍼블리싱 플랫폼 VP로 임명했다.

2024.08.06 14:21

2분 소요
‘지원사격’ 정의선, 현대차 기술력 전 세계에 알렸다

자동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전 세계 고성능차가 모인 영국 굿우드에서 한국의 자동차 기술력을 뽐냈다. 그룹의 모든 역량이 집중된 현대차 최초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을 통해서다.현대차는 13일(현지시간) 영국 웨스트서식스주에서 열린 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에서 ‘아이오닉 5 N’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굿우드 페스티벌 오브 스피드’는 1993년 시작된 영국 최대 규모의 자동차 축제다. 고성능 스 포츠카부터 럭셔리카, 클래식카 등 다양한 차량이 한 자리에 모인다.이날 공개된 아이오닉 5 N은 현대차 고성능 서브 브랜드 N의 첫 번째 순수 전기차다. 현대차 N은 메르세데스-AMG, BMW M, 아우디 RS, 폭스바겐 R과 같은 독일차 제조사의 고성능 브랜드와 같은 개념이다.또한 아이오닉 5 N은 현대차가 지난 달 20일 2023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새롭게 밝힌 미래 전동화 전략인 ‘현대 모터 웨이’의 실행을 알리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현대차는 2030년 전기차 200만대 판매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현대차 아이오닉 5 N은 고출력, 고토크 모터를 기반으로 최대출력 650마력(478kW)의 힘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제로백)은 3.4초, 최고속도는 260km/h다. 국내에서 가장 빠른 전기차로 불리는 기아 EV6 GT(최고출력 585마력, 제로백 3.5초, 최고속도 260km/h)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정 회장도 아이오닉 5 N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인텔 아일랜드 캠퍼스를 방문해 반도체 생산 공정을 둘러본 정 회장은 이날 굿우드 페스트벌에 참석해 지원사격에 나섰다. 정 회장이 신차 행사를 직접 챙긴 것은 부회장 시절인 2018년 엔씨노(코나 중국형 모델)가 마지막이다. 2020년 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직접 챙긴 신차가 아이오닉 5 N인 것이다. N 브랜드는 정 회장이 부회장 시절부터 애착을 갖고 육성해온 것으로 알려졌다.현대차 N 프로젝트는 2012년 정 회장(당시 부회장)의 주도 하에 추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해 현대차 남양연구소에 고성능 차량 개발을 위한 신규 연구팀을 꾸린 것이 시작이다. 이들의 목표는 새로운 종류의 퍼포먼스카를 N 모델이라는 형태로 현실화시키는 것이었다.같은 해 현대차는 파리모터쇼에서 i20 WRC 콘셉트를 공개하고, 월드랠리챔피언십 제조사 부문 참가 계획을 발표했다. 연말에는 유럽에 현대모터스포츠법인(HMSG)를 설립했으며, 이듬해 봄 제네바모터쇼에서 i20 WRC 레이스카를 공개했다.N 로고가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2013년 12월이다. 2014 월드랠리챔피언십 참여용 모델 i20 WRC에 N 로고가 처음 달렸다. N 로고를 달고 출전한 2014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이후 독일 랠리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며 한국의 자동차 기술력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WRC 제조사 부문 2연패(2019~2020년)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현재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물론 이 같은 성과는 적극적인 인재 영입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2012년 12월 현대차는 시험·고성능차량 담당 부사장으로 BMW 고성능 차량 개발 담당 출신 알버트 비어만(Albert Biermann)을 영입했다. 2015년에는 메르세데스-AMG 기술자 출신 클라우스 코스터(Klaus Köster)를 현대자동차 유럽기술연구소(HMETC) 고성능차량개발실 이사로 영입했다. 2018년에는 토마스 쉬미에라(Thomas Schemera)가 팀에 합류하기도 했다.업계 관계자는 “고성능차 사업은 수요가 많지 않고, 자본과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면서 “그럼에도 글로벌 메이커들은 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브랜드의 상징적 의미도 있고, 제조사의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2023.07.13 22:06

3분 소요
셀트리온헬스케어, 美 법인 최고사업책임자 영입…“직판 준비 막바지”

바이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암젠과 화이자 등을 거친 바이오 산업 전문가 토마스 누스비켈(사진)을 미국 법인의 최고사업책임자(CCO)로 영입했다고 7일 밝혔다. 미국에서 직접판매 체계를 본격화하기 위한 막바지 채비에 나섰다는 설명이다.누스비켈 CCO는 30년 이상 바이오 제약 업계에서 영업과 마케팅, 마켓 엑세스(market access), 대관 업무 등을 수행했다. 미국 플로리다 에커드 컬리지 생물학과를 졸업한 이후 페퍼다인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이자의 ‘레타크리트’를 비롯해 글로벌 제약사에서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도 했다.셀트리온헬스케어는 누스비켈 CCO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사업이 빠르게 확장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2016년 램시마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지난해 8월에는 미국 내 유통권리를 보유한 셀트리온USA를 인수하며 직판 전환의 토대를 마렸했다. 누스비켈 CCO는 직판 초기인 만큼 미국 시장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고 의료계 및 유통 관계망을 강화해 베그젤마, 유플라이마 등 후속 제품의 점유율을 키우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셀트리온헬스케어는 미국 사업을 끌어갈 인재를 영입하고 올해 예정된 제품을 출시하기 위한 영업 마케팅 등 조직도 확장하고 있다. 누스비켈 CCO는 “베그젤마와 유플라이마를 시작으로 매년 1개 이상의 제품을 미국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분명한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셀트리온헬스케어 관계자는 “현지 판매 경험과 전문성을 지닌 인재를 영입하고 후속 제품을 연달아 출시해 미국 시장을 공략해 나갈 계획”이라며 “COO를 비롯해 현지 전문 인력을 확충해 미국 시장에 직판 체계를 안착시키고 매출 등에서도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2023.02.0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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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광약품 자회사 콘테라파마, 새로운 연구소서 개소식 열어

바이오

부광약품의 자회사 콘테라파마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DTU 사이언스 파크 내 연구소에서 개소식을 열었다고 19일 밝혔다. 앞서 콘테라파마는 이달 초 바이오 기업들이 모여 있는 DTU 사이언스 파크로 본사와 연구소를 이전했다. 회사는 개소식에 참석한 부광약품, OCI 등 기업 관계자와 룬드벡, 로슈 등 글로벌 기업의 임직원 50여 명에게 사업 방향성과 연구개발(R&D) 시설, 파이프라인 역량 등을 소개했다. 콘테라파마는 중추신경계 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인 바이오 기업이다. 파킨슨병으로 인한 이상운동증 치료제 후보물질 ‘JM-010’를 포함해 여러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에서 일한 화학자 존 본도 한센과 미카엘 톰슨이 2010년 콘테라파마를 창업했다. 부광약품은 2014년 콘테라파마를 인수했다. 이후 룬드벡의 부사장이었던 토마스 세이거 박사와 룬드벡의 사업개발 담당 임원 앤더스엘방 박사, 프랑스 세르비에에서 연구이사로 일한 케네스 크리스텐슨 박사 등이 콘테라파마에 합류했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크리스텐슨 박사는 파킨슨병을 포함한 여러 신경계 질환의 치료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라며 “다국적 제약사를 경험한 신경 질환 분야의 R&D 인재들을 영입해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고 상장을 준비해왔다”고 했다. 콘테라파마는 최근 약물 발굴 플랫폼인 ‘노바(NOVA)’를 개발해 파이프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회사는 노바를 활용해 새로운 프로그램 5개를 도출했고, 난치성 질환을 중심으로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새로운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R&D를 본격적으로 추진할만한 인력과 설비를 갖추게 됐다”며 “독자적인 R&D를 실행할 수 있게 된 만큼 빠르게 성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선모은 기자 suns@edaily.co.kr

2022.12.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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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팔자” 현대차·기아 유럽 법인장에 ‘영업통’ 전면 배치

산업 일반

판매량 기준 4위. 유럽시장에서 질주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이 유럽 법인 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차는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 등 유럽 주요 3개국 법인장을 교체하고 기아는 유럽권역본부를 새롭게 재편, 유럽 완성차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섰다. 18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현대차는 11일 신왕철 전 프랑스 법인장을 독일 법인장으로 올리고 프랑스 법인장에 리오넬 프렌치 키오 전 프랑스 법인 운용총괄(COO)를 임명했다. 네덜란드 법인은 COO로 탈링 홀란더 전 닛산자동차 네덜란드 법인장을 영입했다. 기아는 유럽권역본부에 스테판 코스트 전 독일법인 COO를 부사장으로 이동시키고, 토마스 쥬렌 전 유럽 세일즈 디렉터를 독일 신임 CCO로 임명했다. 기아는 또 에밀리오 에라라 전 유럽본부 COO를 기아 이베리아(스페인) 법인장으로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인사를 통해 최근 두드러진 유럽시장 판매 증가를 가속화하고 나섰다는 분석이다. 이번 인사의 핵심 키워드가 영업통이기 때문이다. 기아가 독일 법인 COO로 임명한 토마스 쥬렌을 포함 대부분 법인장이 20여년 경력의 영업통으로 파악됐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유럽시장에서 발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5월 유럽시장에 전년 동기 대비 104.9% 증가한 4만3865대, 기아는 110.2% 증가한 4만4306대의 차량을 각각 판매했다. 누적 점유율 역시 전년 동기 대비 0.3%p 증가한 7.5%를 나타냈다. 올해 전기차 출시를 확대하고 나선 것도 영업통 중심 인사의 배경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유럽에서 잇따라 전기차를 출시한다. 현대차는 올해 초 유럽에서 전기차 아이오닉 5를 출시했고, 기아는 연내 EV6를 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유럽 시장 경영진 교체를 통해 고객 중심의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을 강화할 것”이라며 “특히 유럽권역본부 부사장으로 이동한 스테판 코스트 부사장은 2026년까지 전기차 11종의 출시를 총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2021.06.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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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클라우드 전쟁, 한국은 제자리걸음?] 인프라 부족과 규제 탓에 고전했지만…

IT 일반

금융 분야 올해부터 전면 개방 호재 … 데이터 주권 확보, 해외 공략 탄력 받을지 관심 클라우드(Cloud)는 데이터를 인터넷과 연결된 중앙 컴퓨터에 저장해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하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서비스다. 세간에서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의 선봉장으로도 꼽힌다.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자동차, 사물인터넷(IoT) 같은 주요 4차 산업혁명 분야들을 좌지우지하는 역할을 해서다. 예컨대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개발 중인 AI 자율주행차는 움직이면서 초당 수GB(기가바이트)의 방대한 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분석, 주행에 실시간 반영한다. IoT 기반 스마트홈이나 스마트시티 등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ICT 기업들이 지금의 먹거리이자 차세대 먹거리로 클라우드 사업을 집중 육성하고,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 구도를 형성한 이유다.클라우드의 이 같은 중요성을 빠르게 인식하고 시장 선점에 성공한 기업이 아마존웹서비스(AWS)다. AWS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인 미국 아마존이 2006년 설립한 자회사다. 클라우드 인프라를 일찌감치 구축해 주로 기업 간 거래(B2B)로 사세를 키우면서 급성장했다. 현재도 넷플릭스와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요 고객으로서 AWS를 이용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가 2015년 보고서에서 “AWS는 주요 경쟁사 14곳을 합한 것의 10배 규모 데이터 센터 인프라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을 만큼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 다른 시장조사업체인 시너지리서치그룹에 따르면 AWS는 지난해 4분기 기준 34%의 클라우드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 퍼스트 무버 AWS, 점유율 1위 마이크로소프트가 15%의 점유율로 ‘퍼스트 무버’ 아마존의 뒤를 이은 ‘패스트 팔로어’로서 입지를 굳힌 상태다. 2010년부터 보안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 ‘애저(Azure)’라는 클라우드 플랫폼을 서비스해 AWS를 추격 중이다. 구글과 IBM이 각각 7%의 점유율로 그 뒤를 쫓고 있다. 구글은 지난해 11월 주요 경쟁사 중 하나인 오라클 출신의 토마스 쿠리안(전 오라클 재품개발총괄 사장)을 클라우드 부문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할 만큼 사세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IBM도 자사 클라우드에서만 쓸 수 있었던 기업용 AI ‘왓슨(Watson)’을 AWS 등 다른 경쟁사 클라우드에서도 쓸 수 있게 하는 개방형 전략으로 최근 선회하면서 공격적인 점유율 확보에 나섰다. 이런 미국 기업들 외에 중국의 알리바바, 일본의 후지쯔도 글로벌 클라우드 점유율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만큼 기술력과 인프라를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와 달리 자타공인(自他共認) ‘ICT 강국’ 한국은 아직까지 이런 경쟁에서 소외돼 있다. 글로벌 전체 발생 매출만 약 90조원(804억 달러, 지난해 기준,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 집계) 규모에 달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클라우드에 제대로 접근조차 못한 채 고전 중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클라우드 인프라 확충에 뒤처져서다. 한국클라우드산업협회 관계자는 “10만대 이상 서버를 운영하는 초대형 데이터 센터가 전 세계에 400개가량 있는데 국내엔 한 곳도 없다”며 “정부와 민간에서 클라우드 산업 육성의 중요성을 인식해 (예전보다) 노력 중이지만 갈 길이 멀다”고 토로했다. 클라우드 분야에서 AWS는 물론 알리바바나 후지쯔에 견줄 만한 국내 기업도 없다.ICT 산업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막강한 하드웨어 경쟁력을 갖췄음에도 소프트웨어, 특히 데이터 분야에선 취약한 것으로 평가되던 국내 실정이 클라우드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러다 보니 국내 산업계나 소비시장의 해외 클라우드 의존도는 ICT 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리만치 높다. AWS 등 해외 클라우드 기업이 국내에서 70%가량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민간뿐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대부분이 해외 클라우드에 의존 중이다. 이 때문에 “데이터 주권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 데이터는 어떤 상황에서든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최대한 지킬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한 예로 지난해 11월 22일 국내 AWS 서버 장애로 쿠팡·우아한형제들·업비트·이스타항공 등 AWS를 이용하는 국내 기업 수 곳이 피해를 입은 일이 있었다. 웹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이 접속 장애를 일으키면서 소비자들 불만이 각 기업으로 폭주했다. 이들은 보안상 문제나 데이터 손실이 있을까 발만 동동 구르면서 AWS의 대응 속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별 탈 없이 해결됐지만 국내 클라우드 인프라의 열악함과 개선점만 재차 확인한 해프닝으로 남았다. 더구나 아마존 측이 사고 직후 피해 보상책을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면서 데이터 주권 논란이 재점화됐다. 최민식 상명대 지적재산권학과 교수는 “자국의 통제 없이는 해외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된 디지털 자산에서 피해가 발생해도 구제할 방도가 없다”고 지적했다. AWS 등의 데이터 센터는 국내에 있더라도 이와 관련한 의사결정이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 KT·네이버·삼성SDS 등 국내외 투자 늘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선 법적인 보완도 물론 필요하지만, 고강도의 국내 클라우드 산업 육성이 급선무라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에선 KT·네이버·NHN엔터테인먼트·삼성SDS 등 일부 ICT 기업들이 클라우드 사업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투자 규모와 서비스 성숙도 면에서 해외 클라우드 기업들 대비 열세로 평가된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희망적인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삼성SDS 관계자는 “지난해 클라우드 부문에서 전년 대비 31% 매출이 성장해 고무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경기도 용인에 국내 최대 규모의 신규 데이터 센터를 건립 중이다. NHN엔터는 상반기 중 선진 시장인 일본에 데이터 센터를 마련, 현지 공략을 가속화하면서 3년 안에 이곳에서 1000억원가량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KT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클라우드 기반 블록체인 서비스형 플랫폼(BaaS)을 최근 개발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정부가 클라우드 관련 각종 규제를 풀고 있는 것도 산업계엔 호재다. 정부는 클라우드 서비스로 소비자의 ‘비(非)중요 정보’만 다룰 수 있게 했던 기존의 전자금융감독 규정을 개정해 지난 1월부터 적용했다. 금융사들이 소비자의 개인정보도 민간 클라우드를 활용해 다룰 수 있게 된 것으로, 사실상 국내 금융 분야가 클라우드 시장에 전면 개방된 셈이다. 금융권이 클라우드 업계의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기업들도 그만큼 더 많은 사업 확장의 기회를 갖게 될 전망이다. 실제 네이버는 코스콤, NHN엔터테인먼트는 KB금융지주와 제휴해 금융 특화 클라우드 사업 진행에 힘을 얻게 됐다. 이와 함께 공공 부문도 일부 개방되고 있다. 남은 것은 해외 공략까지 가능해질 만큼 기업들이 성장하는 일이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19.03.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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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의 승부수, 실적 부진 타개할까] 자율주행·수소차·디자인으로 체질 개선 나서

자동차

수석부회장 취임 후 첫 임원 인사 … 자동차 제조사에서 모빌리티 솔루션사로 전환 채비 -76%. 현대자동차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곤두박질쳤다. 매출은 24조4337억원으로 소폭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2889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에어백 제어기 리콜 등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기 때문이란 게 현대차 측 설명이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현대차의 수익성 악화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불거진 ‘현대차 위기론’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현대차 위기론의 근거는 여러 가지다. 모빌리티 혁명으로 촉발된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변화에 현대차가 뒤처지고 있으며, 미국·중국 등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미·중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교역환경 악화와 경영권 승계가 지체되고 있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을 가늠하는 지표인 주가가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30% 이상 추락한 것도 이런 영향 탓이 크다. 경영혁신이 불가피한 시점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이런 가운데 현대차는 10월 29일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지난 9월 14일 승진한 후 단행한 첫 임원 인사다. 최근 현대차 안팎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전략을 엿볼 수 있다. ━ 현대차 실적·주가 곤두박질 이번 인사는 변신을 위한 연구·개발(R&D) 역량의 강화로 정리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들어오는 점은 인공지능(AI)을 전담하는 ‘AIR랩(Artificial Intelligence Research Lab)’을 신설한 점이다. AIR랩은 정 수석부회장 직속 기구 전략기술본부 산하다. AIR랩의 ‘6대 AI 전략과제’는 ▶생산 효율화 ▶프로세스 효율화 ▶고객경험 혁신 ▶미래 차량 개발 ▶모빌리티 서비스 ▶서비스 비즈니스 등이다. 자율주행차 기술은 현대모비스 주도로 개발 중인데, 이를 효율적으로 생산·공급·확산·운영하는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것이다. AIR랩 총괄은 최근 영입한 김정희(45) 전 네이버랩스 인텔리전스그룹 리더(이사)가 맡는다.현재 자율주행차 기술은 우버·구글 등 미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이 앞서나가고, 제너럴모터스(GM)·포드·도요타 등 기존 완성차 제조사들이 뒤쫓고 있다. 현대차도 이 흐름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셈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9월 인도에서 열린 ‘무브(MOVE)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업체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GM 등은 이미 2015년부터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섰고 미국에서 내년부터 무인택시를 도입하는 등 현대차의 참전이 뒤늦은 감은 있다. 그러나 글로벌 모빌리티 얼라이언스가 공고화되고 있어 현대차도 체제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또 연구개발본부 산하에 연료전지사업부를 신설했다. 수소차 기술 개발을 전담하는 사업부다. 수소차 기술의 고도화와 신사업 창출 등의 업무를 추진한다. 사업부장에는 김세훈 연료전지개발실장 상무가 앉았다. 김 상무는 투싼ix·넥쏘 등 현대차의 수소차 개발을 주도해온 인물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앞으로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이어 수소차로 재편될 전망인 가운데 수소차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수소차 사업은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 파리에서 10월 14일(현지시간) 넥쏘를 시승한 후 더욱 탄력을 받은 모습이다. 10월 30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현대차 아이디어페스티벌’에서도 수소차에서 배출된 물을 재활용하거나 상황에 맞게 자동차 시트를 비우고 채울 수 있는 등 모빌리티에 적합한 기술이 대거 출품되기도 했다.더불어 정 수석부회장은 ‘디자인 경영’도 한층 강화하는 한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디자인센터장(부사장)을 현대차그룹 디자인최고책임자(CDO)로 올렸다. 정 수석부회장이 기아차 사장이던 2005년 삼고초려 끝에 초빙한 피터 슈라이어 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사장)이 9월까지 맡던 자리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푸조·폴크스바겐그룹 등을 거친 전문 디자이너로, 2016년부터 현대차와 제네시스 브랜드의 디자인 개발을 주도했다. 앞으로 현대차그룹 전체의 차세대 디자인 전략을 수립한다. 후임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에는 이상엽 현대차·제네시스 스타일링담당(상무)이 맡았다. 주병철 현대차 프레스티지디자인실장(이사)은 기아차 스타일링담당(상무)이다.전기차는 내연기관과 달리 구동계통의 차별화가 어렵다. 이에 앞으로는 소구력 높은 디자인이 자동차 판매량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란 게 자동차 업계의 전망이다. 현대차도 이런 산업의 변화에 발맞춰 의사결정 과정에서 디자인 부문에 더욱 힘을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더불어 고성능차 영역도 강화한다. 현대차의 브랜드 평판과 이미지를 한층 높이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정 수석부회장은 올 초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마차를 끄는 말도 필요하듯, 잘 달리는 경주마도 있어야 한다”며 “고성능차는 현대차에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고성능사업부장을 맡아온 토마스 쉬미에라 부사장에게 상품전략본부장을 맡긴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이번 인사를 내기 전에도 현대차는 국내외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왔다. 국내의 반현대차 정서를 가라앉히기 위한 ‘H옴부즈맨’ 등이 대표적이다. H옴부즈맨은 현대차의 상품과 서비스·마케팅·공유가치창출(CSV) 등 분야에서 고객 의견을 듣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제도다.이런 가운데 해외 시장에서도 대대적인 재편 작업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는 이번 인사에서 지난해 9월 부임한 이경수 미주판매법 인장을 본사 자문으로 불러들였다. 임기 3년인 해외 법인장을 1년 만에 교체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에서는 신형 싼타페의 판매가 부진하는 등 판매량 방어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9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과 만나 수입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는 미국 정부의 방침에 대해 현대차의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미국과 중국에 집중된 수출 시장을 러시아·인도, 중동 등 신흥국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권역본부를 설립했다. 인도 등지에서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중심으로 판매량을 늘린다는 목표다. ━ 지배구조 개편도 숙제 다만 현대차의 이런 노력들이 단기간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전망이 우세하다. 내년도 자동차 업황의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신흥국 통화의 약세가 예상도 수출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NH투자증권·부국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이 현대차의 목표 주가를 14만~15만원 수준으로 최근 하향 조정했다. 유지웅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가 미국과 기타 신흥국에서 판매 개선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지만 고정비 발생과 미국에서의 엔진화재 리콜 등 우려가 공존한다”며 “4분기 역시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현대차로서는 경영권 승계도 서둘러 매듭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등장으로 지배구조 개편이 늦어지는 가운데 정 부회장은 개별 사업부의 성장성과 비전을 제시해 명분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2018.11.03 08:47

5분 소요
[이지윤의 art TALK(3)] 영화의 도시에서 미술의 도시로

산업 일반

이지윤의 아트톡 세 번째 이야기는 로스엔젤레스다. 오랜만에 LA를 찾았다. 요즘 국제 미술계에서 하는 말은 ‘글로벌 노마드 아트씨티즌’일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중요 비엔날레 전시와 크고 작은 아트페어, 더 나가선 장소 특정성 예술작품이 보여지는 대규모 전시들을 따라 끊임없이 이동 중이다. 마치 이러한 물결을 함께하지 않으면, 다소 후퇴하는 것 같은 불필요한 긴장도 하면서 새롭게 변하는 아트의 패러다임을 지켜보고 있다. 세계 미술시장은 2016년 아트바젤의 마켓리포트가 말하듯, 약 60조원(USD 56.6 million)에 달하며 상당한 규모의 산업으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또 2008년부터 중국을 필두로 하여 지난 10년간 아시아가 당당히 글로벌 미술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 시점. 중요한 글로컬 아트존들의 형성은 눈여겨볼 만하다. 그리고 그 지역 중 하나로 눈부시게 두각을 내보이는 장소가 현재 바로 ‘로스엔젤레스’다.이러한 큰 변화의 중심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인 라크마(LACMA_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의 움직임이 매우 중추적 역할을 했다. 지난 20세기를 생각해 볼 때, 1934년 뉴욕 MoMA가 생기면서 세계 미술의 중심지가 되었고, 그 이후 1979년 퐁피두 미술관, 2000년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순서로 미술계의 헤게모니는 미술관과 함께 성장하였다. 그만큼 공공미술관의 역할과 기능은 한 나라의 미술을 넘어서는 글로벌 문화경쟁력을 갖는다. 2006년 라크마는 전격적으로 뉴욕의 디아.비콘(Dia.Beacon) 뮤지엄을 기가 막히게 만들고 성공시킨 마이클 고반(Michael Govan) 관장을 영입했다. 고반 관장은 1988년 토마스 커렌 관장이 구겐하임으로 부임하면서, 25세 청년을 부관장으로 지명하여 미술계를 놀라게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커렌 관장과 함께 빌바오, 베니스, 프랑크프루트 등의 놀라운 글로벌 구겐하임 프로젝트를 함께 성공시켰다. 라크마는 들어가는 입구부터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는 LA 출신 작가들과 커미션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관 광장을 바꾸었다. 크리스 버든은 202개의 빈티지 스트리트 램프를 모아서 ‘어반 라이트’라는 LA 흥취가 물씬 나는 작업을 설치했고, 바바라 크루거는 ‘무제(Untitled)’라는 벽 라이트 작업을, 로버트 어윈은 ‘원초적 팜트리’란 작품으로 미술관의 광장을 멋진 야자수 가든으로 변화시켰다. 거기에 정말 놀라운 규모의 작품은 마이클 하이져 건축가의 ‘부유하는 물질(Levitated Mass)’이라는 작업이다. 100마일이 떨어진 유루파 벨리에서 가져온 340t의 돌이 마치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듯한 작품을 설치했다. 심지어 라크마의 로고는 LA 출신으로 미국의 살아 있는 중요한 작가인 존 발데사리가 만들었다. ━ 한국과 중요하게 연계될 라크마(LACMA) 지난 10년간의 준비는 미래의 라크마를 새로 다지는 초석이 되었다. 본 프로젝트는 LA시민들의 마음을 얻었고, 미술관을 가보고 싶은 장소로 바꾸었다. 관람객이 60만에서 160만으로 변하는 데는 모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거기에, 라크마를 이 LA 변화의 중심에 중요한 기조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세계적 건축가인 피터 줌터를 초청하여 새로운 마스터 플랜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1조원 정도로 추정되는 본 프로젝트에 고반 관장은 3000억 원의 펀드 모금에 성공했다. 이제 2018년 기공하여 2023년 완공될 새로운 라크마는 새로이 시작한다. 이정도 되면, 미술관 관장이 10억원의 연봉을 받는다 해도 사람들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라크마는 앞으로 한국과도 매우 중요한 연계성을 가질 중요한 미국 미술관이다. 우리의 현대 역사와도 긴밀한 관계가 있는 장소이며 LA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해외동포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또한, 2014년부터 10년간의 계약으로 시작된 현대 모터스 미술후원 프로젝트에 따라 2019년 한국의 서예작품으로 대규모 전시도 준비 중이다. 1965년 개관한 이 미술관 하나도 이렇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나갈 수 있기 위해서 지난 10년간의 시간이 필요로 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시사점을 가지고 있다. 매우 빠른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물론 중국은 최근 하루아침에 뮤지엄이 하나씩 탄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형 뮤지엄들이 연일 만들어지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급행열차의 프리미엄 비용도 열심히 내고 있다.즉, 문화나 예술을 담는 일들이 다른 그 어떤 분야들과 다른 점은 ‘절대적 시간’이라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라크마의 경우도 뛰어난 관장의 리더십은 미술관 내부조직과 소통하고, 시민들은 물론 더 나아가 모든 재정을 책임지는 지방정부나 보드멤버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10년이란 아주 적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즘 기획한 UCLA 해머미술관 이런 맥락에서 매우 감동적인 전시를 하나 봤다. UCLA 해머미술관은 1990년에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의 사장을 지낸 아만드 해머가 개관했다. UCLA 해머미술관에서 기획한 ‘비평적 여인: Critical Woman’이라는 전시로, 미술사에서 거의 조명되지 못한 1960년대 이후 라틴 아메리카의 페미니즘에 대한 내용이다. 본 전시는 2명의 큐레이터들이 지난 10년에 걸쳐 연구해 기획했는데, 하나의 역사적인 중요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 10년간을 연구할 수 있는 기관이 있다는 것에 큐레이터의 입장에서 그지없이 부러웠다. 그러한 기관의 장기적 연구에 대한 지원에 다시 한 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장을 함께 동행해준 뮤지엄의 보드멤버 친구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어렵게 구한 작품들과 자료들을 자신들은 본격적으로 뮤지엄 소장으로 구입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전시 오프닝에서 만난 여성 작가들의 감격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도 자신들이 지원하는 뮤지엄의 의미를 더욱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이러한 맥락에서 LA가 공공미술관과 구별되는 기업이 주도하는 또 다른 멋진 필란트로피스트 정신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자선 및 기부와 구별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ie)라는 의미는 개인들의 공적 목적을 가진 기여나 기부, 특히 인문학·예술·자연과학 등의 오랜 기간 지원과 연구가 필요한 부분을 후원하는 정신을 의미한다. 역사가 짧은 미국의 리더십을 대표하는 이러한 필란트로피스트 정신이 LA에도 있다. 중요한 기업가들의 문화적 리더십이 그것이다. 앞서 설명한 해머미술관도 기업인이 설립한 뮤지엄이지만, LA가 이렇게 미술과 문화로 중요한 역할을 한 데에는 게티뮤지엄과 게티 인스티튜트, 2015년에 개관한 엘리 브로드 미술관이 그 이유이다. 각 뮤지엄마다 그 내용과 특징이 모두 전략적으로 다르고 차별화되어 운영된다는 점이 이 LA라는 도시에 서로 다른 시너지를 준다는 점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디렉터, 아니 미술사 연구에 있어서도 게티 장학금은 가장 중요한 장학금이기도 하거니와 아주 단기간 연구를 위한 지원금 또한 효율적으로 운영되기에 미국에 중요한 미술 전문인들을 육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필자가 방문했던 11월 LA는 퍼시픽 스탠다드 타임(Pacific Standard Time) 페스티벌을 통해, LA와 라틴아메리카, 라티노 문화의 경계를 연결하는 대대적인 문화행사를 치러 내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도 약 70개의 국공립, 사립기관들이 참여하는 행사였고, 이 또한 게티의 스폰서로 리드되는 중요한 문화행사였다. ━ 1500억원 들여 지은 더 브로드 뮤지엄, 스위스서 시작한 하우저 & 월스 보통 LA를 할리우드 도시로 생각하게 했다면 이젠 자타가 공인 할 정도로 서부에선 매우 중요한 미술의 도시가 됐다. 그 방점을 또 하나 찍게 한 것이 있다면 2015년 개관한 억만장자 엘리 브로드 부부가 만든 더 브로드(The Broad) 뮤지엄이다. 약 1500억원을 들여 지은 이 건축은 딜로 & 스콜피오가 디자인하였고 그들의 현대미술 콜렉션 2000점 정도를 소장하고 있다. 미국 최고 작가들인 신디 셔먼, 에드 러샤, 제프 쿤스, 앤디 워홀 등의 작품과 더불어 21세기 최고의 블루칩 콜렉션이 있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이 뮤지엄은 바로 옆에 있는 프랑크 게리 건축가가 디자인한 월트 디즈니 음악당과 나란히, LA 다운타운을 매우 중요한 문화적 메카로 자리 잡게 하는 큰 역할을 하였다.뿐만 아니다. 이러한 문화기관이 만들어지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은 역시 시장이다. 지금까지는 로컬 갤러리들의 움직임으로 운영되는 LA 상업 화랑계는 2015년부터 세계적인 메이저 갤러리들이 줄지어 미술관급 화랑을 열었다. 스위스에서 시작하여 미술계의 거물이 된 하우저 & 월스(Hauser & Wirth)갤러리도 2015년 대대적인 오픈을 했다. 특히, LA 다운타운에 위치한 옛 밀가루 제분소 글로브 밀스 콤플렉스를 재개발해 면적이 10만 square feet(약 30㎢)에 달하는 미술관급 화랑을 오픈했다. 이어 2016년 독일의 중요 갤러리인 스프루스 매거스(Sprueth Magers) 갤러리도 베를린, 런던, 쾰른, 홍콩에 이어 LACMA의 맞은편, 미 서부의 전설적인 건축가인 윌리엄 페레이라(William L. Pereira & Associates)가 디자인한 2층 건물에 로스앤젤레스 갤러리를 오픈했다. 이제는 상업화랑을 한다는 것은 거의 메이저 중소기업급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갤러리들도 거의 미술관급 공간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초청 받은 주요 아트페어에 참가하기 위한 큰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즉, 글로벌 작품 가격이 많이 상승하는 데는 이러한 연관된 이유가 있다. 이러한 글로벌 시장의 글로컬화는 그 지역 갤러리들의 성장에도 큰 기여를 했다. 2003년에 설립돼 LA에 거주하고 활동하는 작가들을 발굴했던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들이 발굴한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소개되기 시작했고, 방문기간 전시된 요나스 우드 작가는 국제적 가고시안 갤러리와 함께 소개되면서, 데이비드 호크니 이후를 잇는 중요한 회화작가로 부상하면서, 이젠 회화 작품 하나에 40억 원을 호가하는 두 번째 LA 출신 마크 브래드포드 작가의 전설을 따르고 있다. 이제 샌프란시스코의 급부상과 더불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는 LA의 내일을 기대하며 지켜볼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 이지윤은… 이지윤은 지난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박사/ 미술경영학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큐레이터이다. 2014년 귀국하여 DDP 개관전 을 기획하였고, 지난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첫 운영부장(Managing Director)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 대표로서, 기업 콜렉션 자문 및 아트 엔젤 커미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7.11.29 09:10

7분 소요
포브스 첫 100년

산업 일반

포브스가 창간된 1917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시기 중 하나였다. 미국이 오랜 고립주의 정책을 파기하고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10월 혁명으로 러시아를 장악한 근대 최초의 전체주의 정권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격렬하게 뒤흔들었다.세계대전이 한창인 때 잡지를 창간하다니, 어리석은 결정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재단사의 10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B.C. 포브스는 비즈니스 전문기자가 되고, 나중에는 스스로 기업가가 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꿈을 위해 남아공으로 간 그는 신규 창간한 랜드 데일리 메일(Rand Daily Mail)의 에드가 월러스(Edgar Wallace) 편집장 밑에서 일하며 출판업계에 발을 디뎠다. 나중에 영국과 미국에서 소설가로 유명해진 에드가 월러스는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면 B.C.가 편집장을 대신해 사설을 썼다. 그러나 남아공 시장 자체가 너무 작다고 느낀 B.C.는 1904년 더 큰 물에서 놀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뉴욕에 도착해서는 한동안 일자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수 주 동안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편집장에게 제안을 했다. 약속한 기간이 끝나고 월급을 요구했을 때 그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업가 마인드를 가지고 있던 B.C.는 평범한 방법으로는 원하는 걸 쟁취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취직에 성공했고, 의욕이 넘쳤던 그는 필명을 내세워 다른 잡지에서도 비즈니스 전문기자로 일자리를 얻었다. 편집장 두 명이 자기 밑에 있는 기자가 더 낫다고 언쟁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두 직원이 전부 B.C.였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B.C.는 금융 전문기자로 성장하며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기사뿐 아니라 기고문도 쓰고 책도 저술했다. 그러나 그는 기업가를 취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자신이 기업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 수집한 자료를 사용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도 있었다. (요즘 시대를 살았다면 분명 블로거로 활발히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포브스는 자신이 직접 잡지를 출간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잡지의 원래 이름은 두어즈 앤 두잉즈(Doers and Doings)였지만, 결국 자신의 성(姓)을 이름으로 내세웠다. 당시에는 흔한 관행이었다.B.C.는 ‘기업가적 자본주의’로 자리 잡은 개념을 굳게 신봉했다. 그는 기업 경영자의 성취를 연대순으로 기록했다. 기업가의 행보가 과감할수록 좋았다. 그렇다고 기업가를 옹호한 건 아니었다. 직원들을 학대하거나 경영에 무능력한 기업가는 가차 없이 꾸짖었다. 포브스 창간호에서 B.C는 ‘비즈니스는 엄청난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선사하기 위해 시작됐다’고 적었다. 인간은 결국 비인간적 힘의 지배를 받는다는 생각을 거부한 것이다.1920년대는 포브스 잡지의 전성기였다. 오손 웰즈의 고전 영화 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미디어 거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는 1928년 포브스에 인수를 제안했다. 제시 금액은 요즘 기준으로 수천만 달러에 달했다. B.C.는 고고하게 제안을 거절했지만 얼마 안 가 이 결정이 치명적 실수가 아니었을까 큰 후회를 했다. 대공황이 닥친 것이다. 포브스는 큰 타격을 받았다. 1932년까지 광고는 80% 이상 감소했고, 회사는 거의 파산해서 이름만 간신히 유지하는 상태였다. 다행히 허스트 신문에 기고를 계속했던 그는 프리랜서로 번 돈을 급한 데 쓰며 ‘스코틀랜드 주(Scotch week)’를 도입했다. 4번째 주에는 직원에게 주급을 주지 않는 조치였는데, 이는 월급 25% 삭감을 의미했다. 그래도 워낙 힘든 때라 직원들은 그저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 안심했다. B.C. 자신은 수 년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월급 수표를 한 번도 현금으로 바꾸지 않았다. 대공황을 간신히 살아남은 포브스는 비즈니스위크와 포춘에 밀려 1930년대를 근근이 버텼다. 1945년 육군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던 B.C.의 아들 말콤(MSF)이 중상을 입고 제대한 후 포브스에 입사했다. 다른 아들 브루스는 이미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당시 포브스 콘텐트는 대부분 프리랜서 기자의 글로 구성되어 있었다. MSF는 사설 기사의 수준을 대폭 개선하기 위해 편집진을 정규직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전 주 시황을 분석하고 투자 주식을 추천하는 주간지 더 포브스 인베스터(The Forbes Investor)를 창간했다. 연간 구독료는 무려 35달러였다. (포브스 구독료가 4달러 이하였던 시절이다) 출간비용이 포브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는데 구독료는 포브스의 9배에 달했으니 말도 안 되게 비싼 수준이었다. 그러나 더 포브스 인베스터는 출간 즉시 큰 성공을 거두었고, 포브스는 회사 재정비에 필요한 자본을 확충할 수 있었다. 1947년 창간 30주년을 맞이한 포브스는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창간 기념 만찬을 열었던 초기 전통을 되살렸다. 만찬 연설자는 토마스 듀이(Thomas Dewey) 뉴욕 주지사였다. 이후 논설 기사의 수준이 더 올라갔고, 다양한 혁신이 도입되며 구독수 및 광고가 증가했다. 1949년 1월부터 산업·기업별 연간 성적표를 발표한 포브스는 이때부터 통계 노하우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1월은 잡지 광고가 가장 저조한 달이었지만, 포브스 산업·기업별 성적표가 공개되면서 1월은 광고 수익이 가장 좋은 달로 바뀌었다. 1950년대가 시작되자 포브스는 막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뮤추얼펀드 산업에 대해 심층 보도를 시작했다. 상승·하락기별 뮤추얼펀드 장기 실적표를 만들어 매년 공개하는 기사였다. 경기회복 덕분에 대공황 당시 쓰디쓴 기억에서 빠져나온 수백만 명이 금융 투자에 나선 걸 포착한 결정이었다. 제임스 마이클스(James Michaels)가 편집장으로 부임한 60년대부터 포브스는 본격적으로 뛰어난 기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1961~99년) 포브스와 함께 한 마이클스 편집장은 까칠한 성격에 절대 기가 죽지 않는 기개를 가진 유능한 편집장이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포브스 기사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때부터 포브스는 비평가들이 연극을 비평하는 방식으로 혹독하게 기업을 평가하는 직설적 기사로 명성을 쌓았다. 다른 어떤 잡지도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기업 재무제표를 심층 분석하고 파헤쳤기 때문에 포브스 기사에는 진실성과 울림이 있었다. 연금보험사들이 터무니 없이 높은 수수료를 가져 가면서도 가입자에게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음을 폭로한 1998년의 표지 기사가 좋은 예다. 말도 안 되게 높은 수수료 때문에 미 국민 다수가 가입했던 연금보험의 투자 수익이 형편없음을 보도한 기사였다. 1982년 포브스는 미국 400대 부자 순위를 담은 특별판을 발간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MSF가 제안한 기획이었다. (숫자 ‘400’은 뉴욕 사교계 여왕 캐롤라인 애스터(Caroline Astor)가 1892년 사교계 인사 400명을 초대해 열었던 무도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사교계 규칙을 결정했던 워드 맥칼리스터(Ward McAllister)는 ‘더 포 헌드레드’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처음 제안이 나왔을 때 포브스 내부에서는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 순위 산정에 필요한 정보 상당 부분이 비공개인데 대체 그 400명을 어떻게 알아낼 것인가? 후보를 추려낸다 해도 그들의 재무 정보는 어떻게 찾나? 부자 순위를 발표했다가 그 사람들이 납치나 강도 등 강력범죄 대상이 되거나 귀찮은 기부 부탁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기사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실시한 편집부는 MSF에게 그의 생각이 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알겠네.” 포브스 대표였던 MSF가 답했다. “그럼 자네들에게 맡기지 않겠어. 내가 직접 한다고. 외부에서 사람을 고용하고 편집진 일부를 차출해서 팀을 꾸리지.” 결국 편집부는 항복했다. ‘부자 순위’로 명명된 팀에 합류한 편집자와 기자들은 입수가 불가능해 보였던 정보를 입수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찾아냈다. 덕분에 포브스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검색 범위를 넓히고 자료를 입수하는 데이터마이닝 기법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부자 순위를 담은 첫 특별판은 편집 및 재정 면에서 대대적 성공을 거두었고, 부자 순위 콘텐트는 포브스의 든든한 기둥이 됐다. 성공의 핵심은 신뢰성과 혁신이다. 포브스는 ‘브랜딩’을 통해 성공을 지속시켰다. 아름답고 매끄러운 디자인에 집착한 스티브 잡스가 확실히 보여줬듯이, 이전보다 나은 상품을 선보이는 걸로는 충분치 않은 세상이 됐다. 1964년 48세에 암으로 사망한 형 브루스의 뒤를 이어 대표로 취임한 MSF는 포브스라는 이름이 기업가적 업적과 성공, 훌륭한 인생을 연상시키도록 만드는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그는 전통적 CEO가 잘 하지 않는 행동도 했다. 파베르제의 달걀과 미 대통령 서신을 비롯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원고, 기념품, 장난감 보트, 장난감 병정 등을 수집해 대중이 볼 수 있도록 박물관에 전시한 것이다. 박물관은 5번가에 위치한 포브스 사옥에 있다.1967년 포브스는 1929년 대공황 직전 기록했던 광고 수주 고점을 다시 돌파했다. MSF는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뉴저지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열었다.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미국 최고 기업 지도자 500여 명과 그들의 배우자가 파티에 참석했다. 기조연설은 휴버트 험프리(Hubert Humphrey) 부통령이 맡았다. 포브스 70주년 파티도 MSF 뉴저지 저택에서 열렸다. 70명의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안개 자욱한 숲에서 나와 언덕을 내려오던 장관을, 손님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헬리콥터 수십 대가 번갈아 날아와 거물급 기업인을 뉴저지 저택에 내려줬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헬리콥터를 타고 온 사람은 당연히 도널드 트럼프였다. 축하 행사가 항상 환영을 받은 건 아니다. 1989년 8월 MSF는 수 년 전 자신의 70세 생일에 매입한 모로코 탕헤르의 팔레 망두(Palais Mendoub·지금은 이름에 걸맞게 모로코 왕의 재산이 됐다)에서 창간 기념파티를 열었다. MSF가 파티 비용을 다 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일부 미디어는 비난을 쏟아냈다. 다른 사람이 돈을 쓰는 방식에 대해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은 정말 많았다. 외부인들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지나친 호사와 돈 낭비로만 보였는지 모르지만, 실제 파티가 가져온 효과는 대단했다. 파티는 포브스가 수십 년간 글로벌 잡지로서 강력한 이미지를 유지하도록 도왔다. 많은 기업가와 연예인은 포브스 잡지에 얼굴이 실려야 비로소 ‘성공했다’는 인정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브랜딩’이 아닌가! 규모만 보면 포브스 인코퍼레이션(Forbes Inc.)은 타임이나 다우존스, 맥그로힐 등 거대 미디어 그룹을 따라갈 수 없었지만, 더 유명하고 고급스럽고 화려한 건 포브스였다. 재계 영향력 면에서도 경쟁잡지 포춘과 비즈니스위크를 앞질렀다. 미디어 산업은 증기 발전 윤전인쇄기 발명으로 신문 및 잡지 대량 판매가 가능해진 1843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었다. 포브스가 세계대전 이후 눈부신 재기와 발전을 이룬 것도 그 덕분이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는 달랐다. 출판 미디어 산업의 암흑이 시작됐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출판업계는 인쇄 출판물에 넣었던 기사를 그대로 온라인에 올리는 게 온라인 출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부분은 자체 웹사이트 오픈을 망설였다. 힘들게 제작한 콘텐트를 왜 무료로 공개해야 하는가? 당시만 해도 온라인 광고는 시장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포브스는 온라인 콘텐트와 출판 잡지를 완전히 다른 별개의 상품으로 바라보며 포브스닷컴(Forbes.com)을 시작했다. 온라인 부서를 다른 건물에 두고 직원을 따로 뽑았으며, 보고선도 별개로 구축했다. 웹사이트에는 잡지 기사를 그대로 올리지 않고 온라인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트로 채웠다. 다른 레거시 출판업체는 좀처럼 하지 않은 시도였다. 처음 몇 년간 엄청난 손실을 기록하던 포브스닷컴은 이후 수익을 내기 시작했고, 경영진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업부를 통합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로 다른 문화는 격렬히 충돌했고, 이런 양상은 편집부에서 특히 심했다. 오프라인 기자들은 온라인 기자들이 얕고 피상적이며 급 떨어지는 기사만 내놓는다며 이들의 무식과 허세를 욕했다. 반면, 온라인 기자와 편집진은 오프라인쪽 사람들이 게으르고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속물이라고 생각했다. 2010년 루이스 드보르킨(Lewis D’Vorkin)이 최고상품책임자로 합류하면서 대대적 변화가 일어났다. 루이스는 온라인 출판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과감하고 독창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새로 개발한 기고 모델은 현재 관련 분야에서 전문가 1700명을 확보하고 있다. 루이스는 인쇄 출판업계에서 상당한 커리어를 쌓았지만, 독자를 위한 정보 발굴 및 전달에 있어서 레거시 미디어가 독점권을 가져야 한다는 오만은 부리지 않았다. 콘텐트만 좋다면 누가 만들었든 무슨 상관인가? 이 원칙은 광고주가 만든 콘텐트에도 적용됐다. ‘네이티브 광고’ 또한 과감히 도입했다. 루이스의 끊임없는 요구로 그의 밑에서 일하는 팀은 독자를 지원하고 온라인 경험을 개선할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끊임없이 개발했다. 어려움이 닥치면 그 속에서 새로운 기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광고 시장을 확장한 구글과 페이스북, 모바일 기기가 좋은 예다. 변화는 끊임없이 닥치지만, 드보르킨이 이끄는 개발팀 덕분에 포브스는 항상 변화의 선봉에 서 있다. 2010년 마이크 펄리스(Mike Perlis)가 CEO로 취임한 후, 포브스는 흥미로운 변화의 시점에 포브스 미디어로 성공적 진화를 마쳤다. 외부에서 영입된 마이크는 평생을 출판 및 스타트업 쪽에서 일한 만큼 경험이 아주 풍부하다. 3년 전, T.C. 얌(T.C. Yam)이 포브스 과반수 지분을 매입하며 대주주가 됐다. 이후 포브스는 디지털 사업 범위를 다양하게 확대하며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고 있으며, 사설란은 어느 때보다 탄탄한 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앞으로 100년 후는 어떻게 될까? 2117년 사람들은 지금보다 끝없이 부유하고,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생활의 질이 높아진 세상을 살아갈 거다. 포브스 또한 설립자의 정신에 충실하며 또 다른 100주년을 축하하고 있을 것이다.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STEVE FORBES 포브스 편집장

2017.10.25 13:09

9분 소요
[포브스 창간 100주년 기념] 왕조의 흥망과 경장

산업 일반

경장으로 기득권자가 포기해야 할 이익은 명확하다. 반면 새로운 혜택은 불명확하기에 군주는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창업이 진공의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면 경장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역학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힘든 과제이다. 1세기 경장의 시대정신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리더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인간에게 생로병사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듯이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조직의 흥망성쇠도 불가피하다. 유구한 인류역사에서 명멸하였던 수많은 국가, 단체, 기업들이 겪는 흥망성쇠의 전개과정과 지속기간은 각각 다른 운명과 특성을 나타낸다. 탁월한 리더와 일시적 행운이 만나서 들불처럼 일어나지만 뒷심이 부족하여 잠깐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사라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반면 세대를 이어 장기간 번영을 이어간 조직들은 창업자가 건설하고 후계자가 수성한 후 다음 세대가 제도와 시스템을 경장하고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켰던 점에서 공통적이다.시대에 뒤떨어져 생명력을 상실한 기존 체제의 혁파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통상 구체제의 파괴자, 신체제의 건설자와 수성자, 경장자가 세대를 이어가며 성공적으로 역할을 분담해야 이루어진다. 조선 왕조 개창 과정에서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조를 파괴하였고, 태종은 정도전의 구상에 기반하여 신체제를 건설하고 수성하였으며, 세종은 법제도를 정비하고 한글을 창제하며 과학기술을 장려하는 경장을 통해 500년 체제의 기틀을 다졌다. 요즘 표현으로 태조와 태종이 컴퓨터 하드웨어를 장만했다면 세종은 운영체제와 어플리케이션 등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하였다고 비유할 수 있다.일본의 오다 노부나가는 15세기 전란에 휩싸인 전국 시대의 구질서를 파괴하였고, 뒤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비록 임진왜란에서 패배하였으나 창업과 수성의 역할은 수행하고 퇴장하였으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문물을 정비하는 경장을 통해 264년(1603~1867)간의 에도 막부시대를 열었다. 현대 중국에서는 청나라 구체제를 국민당의 장제스가 파괴하고 공산당 마오쩌둥이 수립한 신질서의 바탕 위에 덩샤오핑이 경장을 통해 개방개혁으로 이끌어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업-수성-경장에 이르는 세대 간 성공적인 역할 분담으로 오랜 기간 번영한 사례를 역사와 기업에서 찾아본다. ━ 로마제국과 카이사르의 경장 전승에 따르면 패망한 트로이 왕자의 후손인 로물루스가 기원전 753년 이탈리아반도 중부에서 로마를 건국하였다. 창업자 로물루스가 승천한 이후 숲 속에서 은둔해 있던 누마를 2대 왕으로 추대하였다. 당시 로마는 농사 지을 땅도 없이 떠돌아다니던 유랑민들이 세운 궁핍한 국가로서 도처에서 모인 산적 무리의 집합소에 가까웠다. 로마는 다양한 출신 종족과 문화로 파편화된 백성을 통합하기 위해 거주지를 기존의 혈연이 아니라 직업에 따라 재배치하고 소속시켰다. 목수, 대장장이, 도공 등 직능단체에 대한 귀속감이 강해지면서 혈연 간 대립은 완화되었고, 로마 특유의 개방성이 생겨나는 배경이 되었다. 이후 기원전 509년 공화정으로 전환하고 시민군 체제에 기반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로마는 600년간의 확장을 통해 기원전 2세기에는 이탈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세력권으로 하는 제국으로 성장했다.그러나 도시국가 단계에서 형성된 원로원 중심 공화정 체제의 장점은 거대 제국으로 성장한 로마에서는 오히려 단점이 되었다. 수백 명의 원로원 의원이 모여서 논의하고 결정하는 지배구조는 광대한 권역의 복잡다기한 사안에 신속히 대처해야 하는 제국에는 맞지 않았다. 계층 간 갈등이 극심해지는 혼란 속에 원로원파와 평민파 간 내전이 빈발하는 국가적 위기가 닥쳤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카이사르는 오늘날 프랑스와 서부 독일에 이르는 광대한 갈리아 지방을 정복한 군사적 성취를 기반으로 단일지도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체제개혁을 시도하였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원로원에서 암살되었으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심모원려로 경장 프로그램을 구현하여 로마는 제국에 합당한 정치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이후 팍스로 마나로 불리우는 200여 년간의 서양 역사상 최대의 평화기가 도래한다.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기원전 770년경 주나라가 견융의 공격을 받아 동쪽으로 쫓겨나 동주로 위축되고 150여 개의 나라가 각축을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치열한 전쟁을 통해 약소국은 몰락하고 강한 나라만 살아남아 7대 강국이 병립하는 전국시대를 거쳐 기원전 221년 진나라 시황제가 통일하였다, 그러나 진시황 사망 후 혼란에 빠진 진나라는 불과 15년 만에 패망하고 초나라와 쟁패를 거쳐 한나라가 통일왕조로 성립된다. ━ 한나라는 어떻게 400년 왕조를 만들었나 한고조 유방은 창업동지인 소하를 재상으로 삼아 진나라의 가혹한 법령을 개정하여 민심을 안정시키고 통치의 기반을 닦는다. 말년에 병석에서 소하가 세상을 떠나면서 개국공신 조참을 후임으로 임명하라는 유언을 남겼고 후계자인 혜제는 이를 따른다. 그러나 신임 재상인 조참은 업무는 도외시하고 매일 술 마시고 놀기만 하여 원성이 높아졌다. 혜제가 조참을 친히 불러 나무라자 조참은 대답했다. “고제와 소하가 천하를 평정하였고, 법령도 이미 밝게 정하셨습니다. 폐하께서는 팔짱만 끼고 계시고 저희는 직분을 지키면서 옛 법도를 따르기만 하고 잃지 않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습니까?” 조참의 태만은 나름대로의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혜제는 수성에 성공한 군주가 되었다.혜제를 이은 문제는 전쟁시대를 종식시키고 평화시대의 통치체제를 확립하는 경장에 나선다. 지출을 줄여 재정을 건전하게 만들면서 전란으로 황폐해진 산림과 하천을 개발하고 공업과 상업을 발달시켰다. 이러한 정책으로 소금과 철의 생산이 크게 늘어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조세수입이 증가하여 국가재정도 튼튼해졌다. 문제의 후계자인 경제도 경장정책을 이어받아 문경지치(文景之治)의 태평성대를 열면서 한나라는 400년 왕조의 기틀을 닦았다.GE는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 1878년에 창업한 회사에서 출발한다. 1896년 시작된 미국 다우존스 산업지수에 포함된 12개 기업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100년 이상 글로벌 제조업을 대표하는 초우량 기업이다. 1892년 에디슨 전기회사와 톰슨 휴스턴이 합병되면서 제너럴 일렉트릭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초대 사장으로 찰스 코핀이 취임했다. 그는 30년(1892~1922)을 재임하면서 백열전구와 발전소 중심의 사업구조를 전자전기산업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전기기관차, 선풍기, 전기레인지, 냉장고를 출시하고 진공관을 개발하여 전자산업 발달을 주도하면서 50년 이상 GE의 전성기가 이어졌다. 그러나 1970년대가 되면서 GE는 거대기업의 비효율성이라는 함정에 빠져들었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면서 전략적 방향성이 모호해졌고, 제품 포트폴리오도 지나치게 복잡해졌다. 대규모 조직 특유의 의사결정 과정도 느려지고 내부 갈등도 심해지면서 변화 없이는 생존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1981년 취임한 잭 웰치 사장이 추진한 근본적 변화가 바로 경장의 개념이었다. 확실한 경쟁우위가 없다고 판단되는 400여 개의 사업을 매각하고 11만 명을 정리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하여 사업을 재편하고 효율성을 높이려 했다. 당시 활력이 떨어진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성장사업에 투자하는 전략적 구조조정의 개념도 없던 시절이라 주요 언론과 저명한 경영학자들은 그를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으로 비하하였고 조직 내부의 반발도 극심하였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 학습조직, 식스시그마 등의 단어가 대변하는 혁신, 소위 경장으로 취임 시점에서 250억 달러였던 매출은 20년 후 퇴임시점에서 1300억 달러로 증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잭 월치의 후계자로 2001년 취임한 제프리 이멜트는 디지털 혁명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여 다시 경장의 여정에 나섰다. 그는 재임한 17년 동안 100년 하드웨어 제조기업 GE를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사업모델 혁신에 주력하여 산업용 사물인터넷 시대를 주도하는 첨단 디지털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하였다. 2017년 퇴임하면서 GE를 ‘125년차 스타트업’으로 규정하고 미래의 디지털 산업을 선도해야 한다는 당부를 남겼다.GE가 100년 이상 초우량 기업의 지위를 유지하는 핵심요인은 제도화된 경장시스템이다. 일단 CEO 선정을 수 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하면서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변화, 소위 경장을 추진할 리더십을 검증한다. 그리고 일단 CEO로 선임되면 10년 이상을 재임하면서 장기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부여해준다. 실제로 GE의 125년 역사에서 최고경영자는 9명으로 평균 12.5년을 재임하였고,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시대에 맞는 변화와 혁신, 경장을 추진하면서 GE의 성장을 견인했다. ━ IBM, 대를 이은 창업과 수성, 경장의 모범 1911년 천공카드시스템 사업으로 설립된 CTR(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rporation)을 모태로 한다. 1914년 매니저로 채용된 NCR 영업사원 출신 토마스 왓슨이 (Thomas J. Watson) 이듬해 사장에 취임하면서 도약의 전기를 맞는다. 1924년 회사 이름을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변경한 그는 Think라는 슬로건으로 조직원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었고 기술혁신을 추진하였으며 해외시장 개척이 성과를 거두어 흑자로 전환했다. 미국에서 대공황 이후 1935년 사회안전법, 1937년 시간급 임금제도가 도입되면서 기업들이 급료와 근무시간, 잔업수당 등을 기록하기 위해 필요한 IBM의 표작성기와 시간기록용 시계의 매출이 수직 상승했다. 1955년까지 40년 동안 재임하면서 IBM의 실질적 창업자로 역할을 다했다.1955년 은퇴한 부친의 뒤를 이은 토마스 왓슨 주니어는 IBM을 카드천공에서 컴퓨터 시대로 이끌었던 수성과 경장의 리더였다. 1946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을 접하고 가능성을 감지하고, 사운을 걸고 원자폭탄 개발비용을 상회하는 50억 달러의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여 1964년 세계 최초의 메인프레임 컴퓨터인 시스템 360을 출시한다. 이후 IBM은 전 세계 메인프레임 시장을 지배하면서 연간 30% 이상의 성장율을 기록하였으며 1987년에는 시가총액 787억 달러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선다.그러나 다운사이징과 PC,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변화로 인해 1990년대에는수십 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파산 위험성이 거론되는 위기상황에 직면한다. IBM의 재도약을 위한 혁신, 2차 경장을 위하여 역사상 최초로 1993년 외부에서 루 거스너가 CEO로 영입된다. 생사 기로에서 루 거스너는 메인프레임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구조를 비즈니스 솔루션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서비스회사로 개편하는 전략방향을 수립하였다. 미래의 핵심사업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업과 자산을 신속히 처분하고 창사 이래 종신고용이 자부심이었던 IBM에서 명예퇴직제도를 시행하여 구세대 기술인력을 감축하면서 외부의 신기술 우수인력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였다. 취임 전 49억 달러의 적자에서 2년 만에 30억 달러의 흑자로 전환하며 최악의 상황을 일단 극복하고 10년의 재임기간 동안 IBM의 체질개선을 이루어냈다. IBM의 100년 역사는 1세대의 창업, 2세대의 수성과 1차 경장, 외부 영입 3세대의 2차 경쟁의 역사로 요약할 수 있다.1883년 프랑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소녀의 이름 샤넬은 오늘날 전 세계 여성들이 선망하는 패션과 스타일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수녀원에서 성장기를 보낸 가브리엘 샤넬은 20대 초반에 낮에는 재봉사로 일하고 밤에는 음악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살았던 시절의 애칭이 코코 샤넬이었다. 1910년 지인의 도움으로 파리에 작은 모자 가게를 열면서 패션 인생이 시작되었다. 당시 여성들은 몸을 조이는 코르셋을 사용한 불편한 옷을 입고 있었고 샤넬은 이러한 기존 사고방식에 도전하여 단순미와 기능성을 강화한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코르셋과 장식을 없애는 파격과 함께 남성들의 정장과 승마복, 작업복의 소재와 디자인을 적용하여 편리하면서도 우아한 여성미를 유지하는 소위 샤넬 스타일이었다. 나아가 이러한 디자인 개념을 적용한 보석·장신구·향수를 출시하면서 1930년대 전성기를 맞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고급 패션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71년 창업자 코코 샤넬이 87세로 세상을 떠나면서 침체가 시작되었고 과거의 명성만 남은 진부한 브랜드로 치부되기 시작했다.변화와 혁신, 경장이 필요한 시점에서 샤넬 주주들은 1982년 칼 라거펠트를 영입했다. 독일인으로 파리 패션계에서 2류로 취급받는 기성복 디자이너 출신에 대한 정체성과 경력에 대한 의구심과 반발로 가득한 분위기에서 신임 수석 디자이너는 샤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신세대가 선호하는 디자인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이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그는 샤넬을 낡고 노쇠한 브랜드 이미지에서 전 세계의 젊은 세대들이 선망하는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창업자 샤넬과 수성 및 경장자 칼 라거펠트는 기존의 문화적 전통과 사고방식에 도전하여 새로움을 창조하는 포스트 모던적 특성에서 공통적이다. 샤넬은 코르셋이 상징하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여성들의 자유를 추구하였고 칼 라거펠트는 젊은 세대들이 기존의 엄숙함에서 벗어나 가볍고 자유롭게 삶을 즐기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을 패션으로 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 우리나라 기업과 경장의 의미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체제가 형성된 기반에서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이후 2세대에 걸치는 60년 동안 우리나라는 변방의 소규모 원조경제에서 글로벌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활약하며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은 글로벌 1위의 위치에 섰고, 중소·중견기업들도 전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창업세대를 거쳐 현재 2~3세대가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3~4세대가 차세대로 육성되고 있는 단계이다. 기업의 수명이 30년을 넘기기 어려운 현실에서 60년 이상 존속은 일단 수성에 성공하였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60년은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창업세대가 실행했던 과감한 도전과 혁신도 진부하게 만들 수 있는 긴 시간이다. 경제구조와 기술적 기반, 사업모델과 사회적 역학관계도 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의 시대정신은 혁신과 변화, 소위 경장에 있다.현 시대에 기업의 경장이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디지털 혁명의 진행에 따른 산업질서의 변화와 재편이다. 네트워크, 플랫폼, 인공지능이 결합하여 전개되는 미래의 사업모델, 조직형태, 인력구조 등은 전대미문의 변화를 겪을 것이다. 경영학적 용어로 창조적 파괴, 변화와 혁신으로 표현하는 시대정신을 전통적 한자어로 표현하면 바로 경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장은 시대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이며, 기존에 성립된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무너뜨려야 추진 가능한 어려운 과제이다.‘창업보다 수성이 어렵고 수성보다 경장이 어렵다’는 경구와 동일한 맥락의 내용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등장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은 가장 어렵습니다. 구질서로부터 이익을 누리던 사람들은 적대적이나 새로운 질서의 수혜자들은 소극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대세력들은 언제나 전력을 다하여 공격하는 반면 지지세력들은 반신반의하며 행동할 뿐입니다’.요지는 경장으로 인해 기득권자가 포기해야 할 이익은 명확한 반면 새로운 수혜자의 혜택은 불명확하기 때문에 군주는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창업이 진공의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한다면 경장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역학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힘든 과제이다. 21세기 경장의 시대정신을 현실에 구현하려는 리더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부회장

2017.10.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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