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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은 정상, 가격은 절반

품질은 정상, 가격은 절반

일러스트 : 김회룡
지난 2분기 민간 소비는 지난해 대비 1.2% 감소했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다면 민간소비가 5%가량 줄어든 것이다. 물건값은 올랐는데 씀씀이는 오히려 준 셈. 이는 IMF 다음해였던 1998년 4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그만큼 경기침체의 골이 깊다. 7월20일 끝난 백화점 여름 세일 매출도 작년에 비해 5% 정도 감소했다. 세일 품목이 대폭 늘었고 할인율이 커졌는데도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빅3’의 여름 세일 매출은 작년 세일 때보다 5.1∼5.8%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소비부진이 계속되면서 기존에 보지 못했거나 각광을 받지 못했던 유통형태나 마케팅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기발한 방법으로 불황을 돌파하고 있다.

▶반품숍=그동안 폐기되거나 ‘땡처리업자’에게 넘겨지기 일쑤였던 반품이 최근 온라인에서 빛을 보고 있다. 현재 옥션(www.auction.co.kr)·유니즈(www.uniz.co.kr)·반품닷컴(www.vanpum.com) ·SK디투디(www.skdtod.com)·TG랜드(www.tgland.co.kr)·트레이디포(www.tradepot.com) 등 종합 인터넷 쇼핑몰과 이월재고품 거래사이트인 하프클럽(www.halfclub.com)도 반품 판매 행사를 실시하는 등 온라인 쇼핑몰의 반품 판매가 확산하는 추세다. 반품의 경우 대개 제품에 하자가 없는 대신 가격은 신제품의 70∼80%에 해당해 알뜰 소비족들에게 인기가 좋다. 반품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업체들은 정식 유통 경로를 통해 물건을 되팔 수 있어 좋고 소비자들은 질 좋은 제품을 싸게 살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TV 홈쇼핑·인터넷 쇼핑몰·카탈로그 판매업체 등의 경우 전체 판매 상품 대비 반품률은 10∼30%에 달한다. 특히 홈쇼핑·인터넷 쇼핑몰 등 온라인 유통이 늘어나면서 구매자들이 제품상의 하자 외에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품을 하고 있어 반품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업계는 10조원을 넘는 국내 온라인 유통시장을 고려할 때 반품 시장은 약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성능 결함이나 외형상 흠집 등 반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이 줄어들었다. 제품에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제품 색상이 사진과 다르다’거나 ‘생각했던 물건이 아니다’는 등 단순히 마음이 바뀐 게 반품의 중요한 사유가 되고 있다. 따라서 반품된 물건이라고 해도 하자가 있는 제품은 많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인터넷 쇼핑몰과 TV 홈쇼핑 업체에 따르면 반품된 상품의 50%는 포장도 뜯지 않고 반품한 ‘단순 변심’에 의한 것, 30%는 포장을 뜯어 상품을 확인한 뒤 반품시키는 경우, 나머지 20%는 의류처럼 몇 번 입어보거나 단기간 사용한 뒤 반품 처리된 사례다. 한 홈쇼핑 관계자는 “반품된 제품 중 하자가 있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공식적인 유통 경로만 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상제품 못지않은 반품 상품을 살 수 있다. 현재 반품 제도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정착된 상거래 방식으로 온라인 쇼핑몰뿐 아니라 월마트 등 대형 오프라인 업체에도 ‘반품 코너’가 따로 마련돼 있어 이런 상품만 찾아다니는 ‘반품 매니어’가 생겨날 정도다. 반품 전문 쇼핑몰인 반품닷컴(www.vanpum.com)은 지난 4월 문을 연 뒤 불과 3개월 만에 회원이 5만명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사이트는 2천∼3천 가지의 반품을 시중가보다 10∼70% 싸게 팔고 있다. 물품을 지정해 반품이 나오면 사겠다고 미리 구매 예약한 회원이 3천명가량 대기하고 있는 상태다. 품목별로 구매예약을 한 사람은 1만5천명에 달한다. 현재 ‘반품닷컴에 물건을 팔수 없겠느냐’고 상담신청을 한 회사만 1백 군데가 넘는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반품닷컴의 이원용 사장은 “현재 하루 매출액이 8천만원 정도인데 금액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연말에는 월매출이 1백억원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사장은 “앞으로 자동차·서적 등 취급 물품을 더욱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근 옥션의 컴퓨터 카테고리 내 인기 검색어 순위에는 ‘반품’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등장했다. 이 단어는 최근 옥션이 반품 행사를 한 뒤 일주일 만에 검색어 순위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입찰 경쟁도 치열하다. 옥션의 천원 경매의 경우 일반 신상품의 경쟁률이 평균 20∼30건인데 비해 반품 행사의 평균 입찰 경쟁률은 45건 정도다.

▶중고품 전문점= 중고품 전문점도 불황을 틈타 소비자에게 다가오고 있다. 널찍하고 고급스런 매장에 다양한 제품을 할인점처럼 진열하고 있다. 제품마다 바코드도 붙이고 새로 포장해 마치 새 제품을 파는 것 같다. 지난 6월21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문을 연 중고품 전문점 ‘라이프샵’이 대표적. 제품 계산대는 할인점이나 백화점과 같은 형태로 작동된다. 기존의 재활용품 거래에서 가격 등을 판매자가 자의적으로 결정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2백평 규모의 넓은 매장에는 의류·잡화·유아용품·가전제품 등 5천여점의 중고 생활용품이 깨끗하게 진열돼 있다. 제품 구입 후 6개월 동안은 애프터 서비스도 보장한다. 가격은 제품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지만 대개 신제품의 절반 수준. 문대왕(35) 라이프샵 사장은 “중고품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산정하고 판매장소를 깨끗하고 쾌적하게 해 고객의 신뢰도를 높인 것이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라이프샵 석촌점의 경우 월 매출이 8천만원에 달한다. 현재 석촌점 외에 문정점도 오픈해 영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하드 오프’ 암사점도 최근 인기가 높은 기업형 중고품 매장의 하나다. 악기·시계·전자제품·골프용품 중고품 전문점으로 매니어층의 발길이 잦다. 일본에 3백여개의 매장을 갖고 있는 중고품 전문점 ‘하드오프’의 국내 진출 1호점이다. 고급스런 인테리어와 친절한 서비스도 인기의 요인이다. ‘하드오프’측은 연내 매장을 두개 더 열 예정이다. 문사장은 “불황이 아니더라도 중고품 재활용은 선진국의 보편적인 추세”라며 “마침 경기도 좋지 않아 중고품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YMCA가 운영하는 전국 53개 ‘녹색 가게’에도 올해 들어 방문자가 부쩍 늘고 있다. YMCA 녹색가게 사무국의 김지영 간사는 “지난해 총 90만점 2백억원어치의 중고 생활용품이 거래됐다”며 “올해는 거래액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존 업체들도 변신 중=전통적인 유통업체들도 불황에 대응해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할인점의 야간 영업 연장과 백화점의 PB상품 도입. 여름철 무더위를 피해 심야에 장보러 나서는 이른바 ‘올빼미 쇼핑족’이 크게 늘어나면서 할인점들이 잇따라 연장영업에 나서고 있다. 특히 삼성테스코홈플러스가 지난 16일부터 부산 거제동 아시아드점을 24시간 영업체제로 전환하는 등 하루 종일 문을 여는 할인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도 7∼10월 동안 전국 주요 15개 점포의 영업 마감시간을 매일 저녁 11시에서 자정으로 1시간 연장한다.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등도 여름 기간 동안 1시간씩 연장영업을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연장영업은 여름이라는 계절적 요인도 있지만 최근 매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점도 있다”고 밝혔다. 할인점의 연장영업과 달리 백화점은 각종 PB상품 등 중가의 상품을 들여와 불황 탈출을 노리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일본에서 유행한 ‘무인양품’이라는 PB브랜드를 롯데상사를 통해 수입해 팔기로 했다. 무인양품의 경우 일본 세이유 백화점의 PB상표로 출발해 현재 일본을 비롯, 영국·프랑스·싱가포르 등 각국에 진출한 중가의 자연주의 브랜드다. 무인양품을 수입하는 롯데상사의 김영준 과장은 “질 좋은 중가의 제품을 수입해 불황으로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는 뜻”이라고 했다. 고급화·명품화를 지향하는 것과 달리 중가의 PB상품을 도입해 불황을 타개하겠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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