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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특감’ 정답은 미리 정해져 있었다?

‘카드 특감’ 정답은 미리 정해져 있었다?

한국을 신용불량자의 나라로 만든 신용카드 남발과 감독 부실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진행된 감사원 ‘카드 특감’이 역풍에 휘말렸다. 감사원 역사상 처음으로 감사원장이 피감기관(금융감독원 직원들)으로부터 고소당하는가 하면, 한나라당 등 4개 야당은 감사원의 카드 특감과 카드대란의 본질을 밝힐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야당은 “감사원이 카드 대란의 원인을 속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했고 책임자 규명이 미흡했다”며 “이같은 결과는 사실상 예견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은 “감사 내용은 마치 ‘정답’을 마련한 뒤 이에 맞는 이유를 갖다 붙인 것 같다”며 “이같은 ‘의도’ 때문에 공식 발표 전 감사원이 언론에 감사 내용을 찔끔찔끔 흘려 여론의 동향을 살핀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지난해 11월 감사원장으로 부임한 뒤 야심차게 추진한 카드 특감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전원장이 이같은 공격을 받는데는 이유가 있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원장이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만든 금융감독조직 개편안이 이번 감사원이 내놓은 안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당시 개편안의 핵심 내용은 금감위의 기능을 확대하고 금감원의 기능을 축소하는 것이었다. 또 개편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장관의 개인적 판단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전원장이 입맛에 맞지 않는 대안은 폐기시키거나, 사전 조정해 자신의 입맛에 맞췄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전원장은 2000년 8월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부임한 직후 야심찬 금융감독조직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동방금고 사건(일명 ‘정현준 게이트’)·열린상호신용금고 사건(‘진승현 게이트’) 등 금융 사고가 잇따르자 금융감독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이같은 일을 지시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기획예산처는 윤석헌 한림대 교수를 팀장으로 ‘금융감독조직개혁 작업반’을 구성했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금융 전문가 5명을 팀원으로 초빙했다. 팀원들은 현재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이동걸)·한국산업은행 부총재(이윤우)·한국개발연구원 부원장(전홍택) 등 요직에 올라 있다.

이들은 꼬박 3개월 동안 20여차례, 자정을 넘기면서 회의를 거듭하고 2000년 12월 은행회관에서 공청회까지 개최한 뒤 ‘금융감독조직혁신방안’을 내놓았다. 작업반은 4가지 금융감독조직 개편안 중 중립성·책임성·효율성·미래지향성·시장친화성 등 10가지 기준에 가장 합당한 ‘1안’을 제시했다. 1안의 핵심 내용은 금감위와 금감원을 통합, 민·관 합동 조직으로 두고 금감위 사무국은 폐지하는 것. 당시 작업반 팀원이었던 함준호 연세대 국제대학원(국제통상) 교수는 “금감위는 기업의 이사회처럼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활동하면서 행정권을 행사하고, 금감원은 민간의 전문성을 살려 뛰어난 전문가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첫번째 안으로 내놓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획예산처는 작업반이 내놓은 안을 용도 폐기시켰고 2개월 뒤인 2001년 2월 독자적으로 “금감원의 금융감독 정책 및 시장조사 기능, 그리고 금융기관의 설립·퇴출 등 인·허가 기준을 금감위로 넘기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공무원 조직인 금감위를 확대하고, 민간 조직인 금감원을 축소하자는 내용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요구한 작업반의 한 인사는 “당시 전윤철 장관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작업반 의견이 묵살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조직 개편안에 동원된 전문가들은 사실상 ‘들러리’를 선 셈이었다.

전장관이 지난해 감사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카드 특감은 금융감독조직의 개편까지 염두에 둔 감사였다. 이번 감사에선 기획예산처가 2000년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한 것과는 달리 감사원의 금융감독조직 개편안과 다른 주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가는 미리 배제했다. 평소 ‘금융감독조직은 공무원보다는 민간인이 맡는 것이 독립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 학계의 한 인사를 자문단 위원으로 초빙해놓고도 고의로 회의에 불참시킨 것이 확인됐다. 자문위원으로 위촉됐으나 실제 활동은 하지 못한 이 인사는 “올 3월 감사원에서 회의가 있다고 나에게 연락했으나 이틀 뒤 회의가 무기한 연기됐다고 하는 바람에 가지 않았다. 그러나 회의는 (나 없이) 그대로 진행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우리 입맛에 맞는 학자들로만 꾸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카드 특감 중 다양한 전문가 12명을 초빙해 심도있는 자문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미 만들어놓은 안을 들고 자문위원들에게 의견을 듣는데 그쳤고, 전문가도 12명이 아닌 7명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이 자문위원들을 구색 맞추기에 이용한 사례는 또 있다. 감사원은 금융감독조직 개편안의 공정성을 갖추기 위해 각 금융기관을 상대로 카드 대란의 책임자로 재경부·금감위·금감원 중 누구를 꼽겠느냐는 요지의 설문지를 돌렸다.

이같은 설문조사는 자칫 한 기관만 불리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었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금감원 직원들을 제일 빈번하게 만나기 때문에 카드 대란의 원인으로 금감원을 지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실제 감사원도 이를 우려해 자문위원들에게 설문 항목을 미리 돌려 코멘트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설문 항목에 대한 자문을 의뢰받았던 한 대학 교수는 “금감원에 지나치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설문 항목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코멘트를 감사원에 전달했으나 이미 감사원이 설문지를 돌리고 난 뒤였다”고 했다. 이는 감사원이 자문위원들을 ‘들러리’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자문위원들의 의견을 감사원이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도 의구심을 사고 있다. 자문위원들은 감독 체계의 단순화 못지 않게 금융감독조직의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문위원은 “카드 부실의 원인은 감독당국이 초기에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는 감독 권한을 행사할 법의 재·개정 권한이 금융당국에 있지 않고, 재경부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2001년 금감위가 제기한 부대업무 비율 제한(현금 대출 비중 축소)에 관련된 법 개정을 재경부가 하지 않아 실효성있는 조치가 늦어졌다”고 말했다(뉴스위크 한국판 2004년 6월 9일자 참조). 이에 따라 자문위원들은 “감독당국에 금융 감독과 관련된 22개 법의 재·개정 권한을 줘야 한다”고 감사원 실무자들에게 강조했다. 그러나 최종 감사원 보고서엔 이같은 내용이 빠졌다.

카드 특감 보고서도 감사원의 입맛에 맞춰 ‘편집’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예컨대 감사원은 카드 대란의 원인 3가지를 꼽으면서 공통적으로 ‘과다한 현금 서비스와 현금 대출’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같은 원인을 초래한 이유, 예컨대 99년 재경부가 현금 서비스 한도를 폐지한 것과 2001년 재경부가 카드사의 현금 대출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금감위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인을 분석해야 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언론 배포용 자료에서 카드 대란의 결과인 2002∼2003년 LG카드 사태의 원인에 대한 분석 내용을 앞쪽에 배치해 카드 대란의 본질을 흐렸다. 한나라당의 이한구 의원은 “감사원 보고서는 카드 활용 정책은 어떤 동기로 시작됐는지, 추진 과정에서 현금 서비스 폐지 등의 물꼬는 누가 텄는지, 카드사 부실 경고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이 없어 부실감사”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카드 특감을 총괄 지휘한 감사원의 하복동 재정금융감사국장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감사를 하기 위해 직접 외국에 직원을 파견해 선진 금융 감독 시스템을 견학했고, 감사 결과를 전문기관에 수차례 의뢰해 자문을 받았다”며 “다시 감사한다고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감사 논란과 카드 대란의 ‘진짜 원인’이 국정조사를 통해 재규명될 수 있을지 관심이다.

4개 야당이 합의한 카드 특감 국정조사는 열린우리당만 동의하면 시작된다 (열린우리당은 아직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야당은 카드 대란의 책임자로 재경부·금감위·금감원이 거론되는 만큼 정무위(금감위)·법사위(감사원)·재경위(재경부) 등 3개 상임위에서 특위를 구성해야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도 진실 규명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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