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컬럼] ‘弱肉’ 난세서 살아남기
[김병주 컬럼] ‘弱肉’ 난세서 살아남기
우리말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이 있다면, 아프리카 스와힐리 말에는 ‘코끼리가 다툴 때도, 사랑을 나눌 때도 풀은 짓밟힌다’는 속담이 있다. 큰 이웃과 함께 사는 작은 존재들의 서러움을 일깨운다. 스와힐리 속담이 간과한 것은 양자 간의 서로 주고 받는 관계다. 코끼리의 배설물은 풀에 비료가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어떠한 존재인가. 만일 한반도를 옮겨 아프리카 대륙과 연결한다면, 고래나 코끼리는 아니더라도 돌고래나 코뿔소쯤으로 자리 굳힘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있어서 한국은 수세기 동안 중국 대륙 세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중국 ·일본 ·러시아가 벌인 각축전 끝에 일본의 지배하에 떨어졌다.
광복 이후 지난 59년간은 태평양 건너 날아온 독수리(미국) 위세 덕에 반도 반쪽이나마 인접 3대 강국의 힘이 중화되는 틈새에서 힘을 길러 경제규모나 대외 교역규모에 있어서 세계 12, 13위의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다시 말해 세계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주변의 대국을 제압해 주었던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150여 년 전 내우외환 때문에 상실했던 전통적 위치를 점진적으로 회복하고 동아시아의 맹주로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미 중국은 군사대국이며, 13억 인구가 제공하는 풍부한 노동력을 밑천으로 경제규모 면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대국으로 떠오를 기세다. 일본도 역시 경제 ·군사 대국이다.
이래서 21세기 초엽은 한국에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1세기 전 주변 강대국들이 힘을 겨루던 시나리오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다. 인간세계가 문명의 베일을 쓰고 있지만, 국제경쟁에 있어서는 사실상 밀림과 초원에서 양육강식하는 동물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존재들에게는 악어와 악어새 간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때로는 사활을 좌우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날의 고도성장 덕분에 한국인의 자부심이 신장한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것이 지나쳐 중국 등 주변국을 ‘대국’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 과대망상증에 빠져들었고, 장기간의 휴전, 군사정부에 대한 반감, 햇볕정책으로 안보의 긴장감이 풀릴 대로 풀렸다는 데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성장의 중요성과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분배지상주의와 자주국방을 부르짖고 있고, 정부는 이를 여과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마치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에덴의 동산쯤으로 착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그릇된 인식을 그대로 추종하기보다 잘못을 깨우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세렝게티 초원의 누 영양, 비비 원숭이 등은 코끼리처럼 덩치가 크지도 않고 사자처럼 용맹하지도 않지만, 영민한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 무리를 지어 움직이며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갈 줄 안다. 주변 상황을 판단해 무리의 위치와 움직임을 잘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때로는 무리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 중서부 대초원 지대에 사는 들쥐들은 두목을 앞세워 한 줄로 행진하다가 앞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뒤에서 그대로 따라 떨어진다고 한다. 선두자리가 이만큼 중요하다.
선두가 노련하고 지혜로운 자라면 갈 길을 잘못 들어 떼죽음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만일 노련함과 지혜로움을 부패 ·타락 ·우유부단으로 지탄하고 무경험과 만용을 참신과 과감으로 칭송하는 졸개들에게 영합하는 리더십이라면 무리 전체의 생존을 기약할 수 없다.
자연세계를 멀리서 보면 평화롭지만 가까이 보면 끊임없는 다툼이 있다. 자기 종족이 갖는 힘의 상대적 우열과 장단점을 잘 터득하고, 먹을 물과 먹이가 있는 서식지를 선점하고, 힘센 종족과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살아남는 기본 전략이다.
오늘날 다수의 국민은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세계의 기존 패권국(미국)은 얕잡아보면서 새로운 패권 도전국들(중국 ·일본 ·러시아)에는 무방비한 안보의식의 혼미, 근면한 노동력과 단순기술로 승부하던 한때의 경제적 비교우위 상실, 성장 및 분배의 원동력인 기업에 대한 불신,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의 집단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리더십의 방향착각, 끊임없는 정치게임 등이 앞날을 어둡게 만든다.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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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에서 어떠한 존재인가. 만일 한반도를 옮겨 아프리카 대륙과 연결한다면, 고래나 코끼리는 아니더라도 돌고래나 코뿔소쯤으로 자리 굳힘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있어서 한국은 수세기 동안 중국 대륙 세력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고,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중국 ·일본 ·러시아가 벌인 각축전 끝에 일본의 지배하에 떨어졌다.
광복 이후 지난 59년간은 태평양 건너 날아온 독수리(미국) 위세 덕에 반도 반쪽이나마 인접 3대 강국의 힘이 중화되는 틈새에서 힘을 길러 경제규모나 대외 교역규모에 있어서 세계 12, 13위의 대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다시 말해 세계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주변의 대국을 제압해 주었던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하면서 150여 년 전 내우외환 때문에 상실했던 전통적 위치를 점진적으로 회복하고 동아시아의 맹주로서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이미 중국은 군사대국이며, 13억 인구가 제공하는 풍부한 노동력을 밑천으로 경제규모 면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대국으로 떠오를 기세다. 일본도 역시 경제 ·군사 대국이다.
이래서 21세기 초엽은 한국에 새로운 도전을 제공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다. 1세기 전 주변 강대국들이 힘을 겨루던 시나리오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증대하고 있다. 인간세계가 문명의 베일을 쓰고 있지만, 국제경쟁에 있어서는 사실상 밀림과 초원에서 양육강식하는 동물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존재들에게는 악어와 악어새 간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때로는 사활을 좌우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난날의 고도성장 덕분에 한국인의 자부심이 신장한 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것이 지나쳐 중국 등 주변국을 ‘대국’으로 여기지 않을 만큼 과대망상증에 빠져들었고, 장기간의 휴전, 군사정부에 대한 반감, 햇볕정책으로 안보의 긴장감이 풀릴 대로 풀렸다는 데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성장의 중요성과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망각한 채 분배지상주의와 자주국방을 부르짖고 있고, 정부는 이를 여과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마치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에덴의 동산쯤으로 착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의 그릇된 인식을 그대로 추종하기보다 잘못을 깨우치는 것이 진정한 리더십이다.
세렝게티 초원의 누 영양, 비비 원숭이 등은 코끼리처럼 덩치가 크지도 않고 사자처럼 용맹하지도 않지만, 영민한 우두머리의 명령에 따라 무리를 지어 움직이며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살아갈 줄 안다. 주변 상황을 판단해 무리의 위치와 움직임을 잘 이끄는 우두머리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때로는 무리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다가 떼죽음을 당하는 사례도 있다. 미국 중서부 대초원 지대에 사는 들쥐들은 두목을 앞세워 한 줄로 행진하다가 앞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져도 뒤에서 그대로 따라 떨어진다고 한다. 선두자리가 이만큼 중요하다.
선두가 노련하고 지혜로운 자라면 갈 길을 잘못 들어 떼죽음으로 몰고 갈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만일 노련함과 지혜로움을 부패 ·타락 ·우유부단으로 지탄하고 무경험과 만용을 참신과 과감으로 칭송하는 졸개들에게 영합하는 리더십이라면 무리 전체의 생존을 기약할 수 없다.
자연세계를 멀리서 보면 평화롭지만 가까이 보면 끊임없는 다툼이 있다. 자기 종족이 갖는 힘의 상대적 우열과 장단점을 잘 터득하고, 먹을 물과 먹이가 있는 서식지를 선점하고, 힘센 종족과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살아남는 기본 전략이다.
오늘날 다수의 국민은 장래를 걱정하고 있다. 세계의 기존 패권국(미국)은 얕잡아보면서 새로운 패권 도전국들(중국 ·일본 ·러시아)에는 무방비한 안보의식의 혼미, 근면한 노동력과 단순기술로 승부하던 한때의 경제적 비교우위 상실, 성장 및 분배의 원동력인 기업에 대한 불신, 대기업과 공기업 노조의 집단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리더십의 방향착각, 끊임없는 정치게임 등이 앞날을 어둡게 만든다.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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