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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가진 희망의 힘을 발견하다

문화가 가진 희망의 힘을 발견하다

몽골의 민속악기 마두금(馬頭琴)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임금에게 빼앗겼던 하얀 말이 도망쳐 주인에게 돌아왔는데 그 말이 화살을 맞고 죽어 가죽과 뼈와 힘줄을 뽑아 ‘말머리 가야금’을 만들었더니 그 소리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더라는 얘기다. 몽골의 낙타들은 마두금 소리를 들으면 새끼 낙타인 줄 알고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마두금 소리를 들으면 가축과 함께 살아왔던 유목민들의 문화가 흠씬 느껴진다. 지난 9월 15일 세종문화회관의 세계문화오픈(WCO) 공연에서 객석에 앉은 수백명의 한국인들도 초원에 울려 퍼지던 마두금 소리의 슬프고 경쾌한 향연을 맛보았다. 몽골의 마두금 현악단은 WCO 시상식에서 전통소리 분야 ‘조화상’을 수상했다.

9월 8일 뉴욕에서 시작된 ‘WCO 2004’가 15일 오후 6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폐회식을 갖고 막을 내렸다. 뉴욕 공연을 시발로 9월 11일 서울 대회로 이어졌던 문화 올림픽 WCO는 서울·경기도 일원에서 8일 동안 이어졌다. 세계 문화예술인들이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진 지구촌을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통해 ‘건강한 삶과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자는 취지로 열린 이 대회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와 함께 2년 뒤의 만남을 기약하게 됐다. 폐막식에서 백낙청 공동대회장은 “이 대회를 계기로 인류는 다양하면서도 공통된 문화라는 강한 유대로 이어진, 지구촌의 한가족이라는 사실을 더욱 잊지 말고, 각자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를 향해 최선을 다하자”고 역설했다.

올해 본대회가 열린 WCO는 서울 대회를 계기로 명실공히 세계적인 문화 교류의 장으로서 자리매김했다. 70여개국에서 예선과 추천을 거쳐 3백54개 단체가 참여했고, 서울·경기도 대회에서만 30만명의 관객이 몰렸다. 참가팀은 전통문화와 건강문화·사회문화 등 세 부문에서 각기 경연을 벌였다. 노래와 춤, 무예와 심신수련, 사진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안 등 몸과 마음은 물론 개인·사회를 포괄하는 주제와 분야를 내세워 전세계 문화예술인들을 끌어들였다.

WCO 공연을 찾은 한국인들에게 이 대회는 지구촌의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계기였다. 참가팀에는 자국의 문화와 전통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장이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김평호와 창원 시립무용단’, 몽골의 ‘마두금 현악단’, 브라질의 전통무예팀 ‘카포에라’ 등 총 32개 팀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상일 심사위원장은 “국내외 인사 2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각각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에 점수를 매기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에 모두 동의했다”며 “각 단체의 우열을 가리기보다는 문화 교류를 통해 건강한 미래를 만든다는 취지에 가장 걸맞은 단체를 수상팀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회문화 부문에서는 미국 ‘국제어린이예술협회’가 좋은 제안상을 받았고, 한국의 ‘샬롬의 집’이 노력상, 케냐의 ‘더 누 비트/액션 인 포커스’와 한국의 ‘어제 생긴 예술’이 인기상을 받았다. 전통문화 부문에서는 호주 ‘민속문화단’이 전통무용 분야 평화상, 전통소리 분야에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오파린 앙상블’이 상생상, 중국 쓰촨(四川)성 ‘민족가무단’이 특별상을 수상했다. 수상팀 중 하나인 마두금 현악단의 지휘자 첸딘 바츨룬은 “몽골의 민속악기 마두금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관심의 초점이 됐던 평양 대회는 대회 사흘을 앞두고 취소돼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WCO 2004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대규모 문화행사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던 북한의 국제민간문화교류협회가 9월 13일 WCO 조직위에 “시기가 임박하여 나타난 국내외의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평양 행사를 진행하지 못함에 양해를 구한다”는 전문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당초 WCO 조직위는 지난 3월 15일 베이징에서 이번 대회의 남북 공동 개최를 합의했고, 8월 10일에도 재차 구체적 일정과 행사 계획을 합의한 바 있다. 이 합의에 따라 WCO 조직위는 15일 서울 대회를 끝내고 16일부터 19일까지 평양 대회를 열 계획이었다.

서울 대회에서 수상한 팀들을 모아 평양에서 결선 무대를 선보인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남북 공동 개최 계획은 최근 무산 위기에 놓인 6자회담 등 경색된 남북 관계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채진선 WCO 조직위 사무국장은 “남북 공동 개최가 성사되지 못했지만 남북 통일과 세계 평화를 염원했던 이번 대회의 정신을 세계 곳곳에 알린 의미는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홍석현 WCO 조직위원장은 폐막 선언에서 “이번 대회를 통해 문화가 가진 희망의 힘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문화의 힘은 아직 남북의 장벽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번 대회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문화인과 관객들은 이 말을 실감했을 것이다. 토속의상을 입고 불을 뿜으며 공연을 펼치는 탄자니아 팀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문화적 장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WCO는 2년에 한번씩 열리며 다음 대회에는 중국이 개최 의사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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