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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자들이 말하는 문제점 “직장에선 왕따 당하고 은행은 금치산자 취급 "

신불자들이 말하는 문제점 “직장에선 왕따 당하고 은행은 금치산자 취급 "

다음달 28일부터 ‘신용불량자’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라진다. 신용불량자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4월 28일 발효되기 때문이다. 이 법이 발효되면 한때 신불자였던 사람도 금융사별로 정한 기준을 충족할 경우 금융거래를 할 수 있고 취업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는 일이 법률상으로는 사라진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금융 거래에서 ‘열외’취급받아 왔던 신불자들이 금융 거래 제약의 굴레를 벗고 정상인(?)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대답은 회의적이다. 금융기관들이 여전히 3개월 이상, 30만원 이상 연체 정보를 공유하는 데다 위험관리 차원에서 기존 신불자에 대해 관대해지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불자라는 용어는 사라지지만 ‘보이지 않는 꼬리표’가 여전히 따라다닌다는 얘기다. 이 같은 현상은 신용회복 제도를 통해 신불자 딱지를 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명확해진다. 한결같이 워크아웃을 통해 신불자 신세는 면했지만 빚을 다 갚기 전까지는 신불자라는 꼬리표가 금융 거래 때마다 ‘주홍글씨’처럼 붙어 다닌다고 지적한다.

금융 거래에 붙는 ‘주홍글씨’ 2002년 12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개인 워크아웃을 승인받고 2년 넘게 성실히 빚을 갚아왔던 박아리(39·여·가명)씨. 박씨는 꼬박꼬박 변제금을 상환한 덕택에 지금은 소폭이지만 금리도 낮아졌다. 그는 워크아웃이 통과되면서 신용불량자란 멍에를 벗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없이 시달리던 빚 독촉에서만 자유로워졌을 뿐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자신을 신불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조그만 유치원을 운영하는 그는 사업자금이 부족해 근로복지공단에서 나오는 창업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하지만 신불자에게는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들었다. 워크아웃 대상자는 신불자가 아니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박씨는 청와대에 민원을 넣고서야 어렵사리 창업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중국 관련 육가공 사업을 하던 자영업자 김태영(40·가명)씨 역시 마찬가지 항변을 했다. 김씨는 2002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개인 워크아웃을 승인받아 2년 넘게 성실히 변제해 오고 있다. 하지만 김씨가 하는 금융 거래라고는 입출금이 고작이다. 조그만 분식점이라도 차려보고 싶지만 워크아웃 중이기 때문에 대출이 될 턱이 없다. 신불자라는 딱지만 사라졌지 금융거래에서 ‘금치산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용회복 제도, ‘문턱’이 높다 직장을 다니는 신불자 역시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신용회복위원회가 최근 신불자로 등록된 사람 중 구직 희망자 318명을 대상으로 회사 내 부당 대우 등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직장을 다니는 신불자 열 명 중 네 명이 회사에서 ‘퇴사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이 중 한 명은 ‘왕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76.4%가 회사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부당한 대우 중 50.3%가 ‘퇴사 권고’라고 답했다. 신불자나 워크아웃 중인 사람들이 직장 내 부당 대우로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이들은 빚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탈출구’마저 봉쇄당하게 되는 셈이다. 신불자들이 얘기하는 현행 신용회복 지원 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먼저 개별 금융기관들이 채권 회수를 위해 구제책을 내놓고 있지만 신청률은 저조한 상태다. 또 배드뱅크가 출범할 당시 신청자가 1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난 1월 말 현재 배드뱅크 대상자가 당초 예상 인원의 10% 수준인 18만4000명에 그쳤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 조건 역시 벅차다는 지적이 많다. 박수리씨와 김태영씨 역시 2년 넘게 성실히 워크아웃 상환금을 변제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신불자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푸념했다. 워크아웃을 신청할 당시 해당 채권 금융기관들이 쉽사리 동의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월 소득액과 변제액·변제기간 등을 무리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성실 변제자에 대한 혜택이 부족한 점도 개선돼야 될 사항으로 꼽혔다. 지난해 개별 금융기관을 통한 채무조정과 배드뱅크,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신용불량 구제자 수는 101만 명으로 추산됐지만 여전히 300만 명이 넘는 신불자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들을 신용회복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기존에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 중 성실히 빚을 갚아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자 감면이나 원금 일부 탕감 등의 ‘당근’을 제시, 더 많은 신불자가 신용 회복의 문을 두드리도록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워크아웃’ 김태영씨의 하루
 




‘스리잡’ 가져야 빚 갚고 생활비 벌어

김씨의 하루 일과는 오전 4시30분 기상으로 시작된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일어난 그는 세수할 겨를도 없이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는 우유배달에 나선다. 하루 200여 곳이 넘는 가정에 두 시간가량 허겁지겁 우유를 배달하고 나면 본격적인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그가 몸 담고 있는 직장은 아파트 관리사무소. 아파트 관리직도 신불자라는 딱지 때문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보증보험에서 신원보증 서류를 떼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3월부터 서울보증보험이 개인신용회복정책의 일환으로 신불자에게도 신원보증보험을 발급해 주면서 어렵사리 얻은 직장이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아파트 관리 업무를 끝낸 그는 두 번째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향한다.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그는 식당에서 접시 닦는 일을 하고 있다. 접시 닦이로 버는 돈은 월 60만원 남짓.

최근 과로로 건강이 악화돼 잠시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나마 접시 닦이를 하지 않으면 한 달에 85만원씩 들어가는 워크아웃 변제금과 생활비·공과금을 감당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다닌다. 귀가 시간은 오전 2시쯤. 두어 시간 새우잠을 자고 나면 다시 우유 배달에 나가야 한다.

그가 이처럼 악착같이 사는 데는 나름대로 신조가 있어서다. 한 번 신불자가 됐지만 두 번 다시 신불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과 철저한 자기 관리만이 현재의 상황을 이겨 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칫 조금의 틈이라도 벌어지면 가뜩이나 하루하루 어렵게 버텨 나가고 있는 삶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다.

김씨 부부는 올해 딱 한 가지 신년 계획을 세웠다. 그 동안 “자식에게 빚을 물려 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2세 계획을 늦췄지만 워크아웃 변제금을 절반 이상 갚고 나니 희미하나마 터널의 끝이 보여 아기를 가질 계획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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