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자들이 말하는 문제점 “직장에선 왕따 당하고 은행은 금치산자 취급 "
신불자들이 말하는 문제점 “직장에선 왕따 당하고 은행은 금치산자 취급 "
금융 거래에 붙는 ‘주홍글씨’ 2002년 12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개인 워크아웃을 승인받고 2년 넘게 성실히 빚을 갚아왔던 박아리(39·여·가명)씨. 박씨는 꼬박꼬박 변제금을 상환한 덕택에 지금은 소폭이지만 금리도 낮아졌다. 그는 워크아웃이 통과되면서 신용불량자란 멍에를 벗은 줄만 알았다. 하지만 곧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없이 시달리던 빚 독촉에서만 자유로워졌을 뿐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자신을 신불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조그만 유치원을 운영하는 그는 사업자금이 부족해 근로복지공단에서 나오는 창업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하지만 신불자에게는 대출이 불가능하다는 대답만 들었다. 워크아웃 대상자는 신불자가 아니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박씨는 청와대에 민원을 넣고서야 어렵사리 창업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중국 관련 육가공 사업을 하던 자영업자 김태영(40·가명)씨 역시 마찬가지 항변을 했다. 김씨는 2002년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개인 워크아웃을 승인받아 2년 넘게 성실히 변제해 오고 있다. 하지만 김씨가 하는 금융 거래라고는 입출금이 고작이다. 조그만 분식점이라도 차려보고 싶지만 워크아웃 중이기 때문에 대출이 될 턱이 없다. 신불자라는 딱지만 사라졌지 금융거래에서 ‘금치산자’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용회복 제도, ‘문턱’이 높다 직장을 다니는 신불자 역시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신용회복위원회가 최근 신불자로 등록된 사람 중 구직 희망자 318명을 대상으로 회사 내 부당 대우 등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직장을 다니는 신불자 열 명 중 네 명이 회사에서 ‘퇴사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이 중 한 명은 ‘왕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76.4%가 회사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고, 부당한 대우 중 50.3%가 ‘퇴사 권고’라고 답했다. 신불자나 워크아웃 중인 사람들이 직장 내 부당 대우로 일자리를 잃게 될 경우 이들은 빚의 멍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탈출구’마저 봉쇄당하게 되는 셈이다. 신불자들이 얘기하는 현행 신용회복 지원 제도의 또 다른 문제점은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먼저 개별 금융기관들이 채권 회수를 위해 구제책을 내놓고 있지만 신청률은 저조한 상태다. 또 배드뱅크가 출범할 당시 신청자가 1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난 1월 말 현재 배드뱅크 대상자가 당초 예상 인원의 10% 수준인 18만4000명에 그쳤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 조건 역시 벅차다는 지적이 많다. 박수리씨와 김태영씨 역시 2년 넘게 성실히 워크아웃 상환금을 변제하고 있지만 언제 다시 신불자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푸념했다. 워크아웃을 신청할 당시 해당 채권 금융기관들이 쉽사리 동의하지 않을 것을 우려해 월 소득액과 변제액·변제기간 등을 무리하게 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성실 변제자에 대한 혜택이 부족한 점도 개선돼야 될 사항으로 꼽혔다. 지난해 개별 금융기관을 통한 채무조정과 배드뱅크,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한 신용불량 구제자 수는 101만 명으로 추산됐지만 여전히 300만 명이 넘는 신불자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들을 신용회복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기존에 채무조정을 받은 사람 중 성실히 빚을 갚아 나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자 감면이나 원금 일부 탕감 등의 ‘당근’을 제시, 더 많은 신불자가 신용 회복의 문을 두드리도록 끌어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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