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다”
Iraqi Mission Accomplished
헤이데르 다파르(33)는 아직도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의 야간 프런트 담당 직원이다. 하지만 그는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이라크에서 제작된 첫 번째 다큐멘터리의 감독이기도 하다. 그 작품은 현재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각종 영화제에 출품된 ‘참새의 꿈’(The Dreams of Sparrows)이다.
작품 속에서 다파르는 택시기사, 초등학교 여학생, 정신병원 입원 환자 등에게 지극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외세 점령 하의 생활이 후세인 치하에서보다 나은가’라는 질문이다. 로레인 알리 기자가 그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들에 관해 다파르와 대화를 했다.
영화학교를 4년간 다녔지만 동영상 카메라는 사용해 본 적이 없었는데.
교사들에게 “촬영 장비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그들은 “(국제적인) 경제 제재 때문에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후세인이 미사일·폭탄·전쟁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에 투숙한 외국 기자들이 많은 장비를 기증한 덕분에 영화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한 스웨덴 기자는 내게 스틸 카메라를 줬다. 이탈리아 기자에게 동영상 카메라를 이틀간 빌린 적도 있다. 알자지라 방송사 소속의 한 미국인 프로듀서도 내게 카메라를 빌려줬다. 그들 모두 내게 필름을 그냥 줬다. 그런 후 애런 래스킨이라는 미국인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그가 내게 준 카메라 석 대로 ‘참새…’ 촬영을 시작했다.
이 작품을 친구이자 제작 동료인 사드 파케르에게 바쳤는데. 그는 ‘참새…’ 촬영 과정에서 오인 사격을 받아 사망했다. 총탄 구멍으로 가득한 그의 자동차를 찍은 장면은 정말 끔찍했다.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라크인을 위한 게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매일 무슨 일을 겪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일은?
사람들이 나를 웃게 만들었을 때다. 왜냐하면 현재 이라크에서는 만사가 너무 힘들고 슬프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취객 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는 술병을 손에 든 채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조지 W 부시 덕분에 나는 이제 자유인이 됐다.”
매우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정신병자·어린이·노숙자·택시기사·바보들을 보여 주려 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나라에나 있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전쟁의 결과를 보여 주고 싶었다. 물론 미사일이 떨어진 곳이나 죽은 사람들을 보여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작품이 보편적이길 원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처럼 말이다. 나는 이라크인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사랑한다. 그것은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왜냐고? 그가 단순히 콜롬비아인에 관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 관해 얘기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이라크인은 카메라 앞에 서기를 꺼렸을 것 같다. 자신이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루자에서의 촬영은 매우 힘들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스파이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친구가 나를 자신의 오토바이에 태워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에게 소개시켜 줬다. 정말로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바그다드에서는 사람들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취지를 듣더니 “우리 생활과 처지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니 대환영이다.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 관객의 반응은 어떤가?
그들은 “이라크의 보통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면서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여성은 내게 10달러를 내밀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라크인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해 달라. 그게 전부다”고 말해줬다.
늘 영화를 사랑했는가?
그렇다. 매주 영화관에 가곤 했다. ‘대부’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학교 수업을 빼먹기도 했다. 나중에는 ‘브레이브 하트’를 좋아했다. 자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 속의 왕은 적뿐이 아니라 자신의 병사들도 공격했다. 자신의 신민을 죽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런 왕을 증오했다. 그것은 이라크의 상황과 비슷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봉기하면서 자유를 얻게 됐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집념은 결코 새로운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웃음). 내가 검은 의상을 입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는 꿈도 꾸곤 했다.
턱시도를 말하는가.
그렇다. 작은 넥타이도 매고.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맞아, 나비 넥타이. 그리고 이 작은 조각상, 오스카상을 거머쥐는 거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미국인이 내 영화를 보고는 “축하한다.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아카데미상을 받는 것도 이제는 기적이 아니다.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저 그 검은 의상이 필요하다. 미국인이 턱시도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헤이데르 다파르(33)는 아직도 바그다드 팔레스타인 호텔의 야간 프런트 담당 직원이다. 하지만 그는 사담 후세인 몰락 이후 이라크에서 제작된 첫 번째 다큐멘터리의 감독이기도 하다. 그 작품은 현재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각종 영화제에 출품된 ‘참새의 꿈’(The Dreams of Sparrows)이다.
작품 속에서 다파르는 택시기사, 초등학교 여학생, 정신병원 입원 환자 등에게 지극히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외세 점령 하의 생활이 후세인 치하에서보다 나은가’라는 질문이다. 로레인 알리 기자가 그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면서 극복해야 했던 어려움들에 관해 다파르와 대화를 했다.
영화학교를 4년간 다녔지만 동영상 카메라는 사용해 본 적이 없었는데.
교사들에게 “촬영 장비는 어디 있어요?”라고 묻자 그들은 “(국제적인) 경제 제재 때문에 없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후세인이 미사일·폭탄·전쟁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텔에 투숙한 외국 기자들이 많은 장비를 기증한 덕분에 영화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한 스웨덴 기자는 내게 스틸 카메라를 줬다. 이탈리아 기자에게 동영상 카메라를 이틀간 빌린 적도 있다. 알자지라 방송사 소속의 한 미국인 프로듀서도 내게 카메라를 빌려줬다. 그들 모두 내게 필름을 그냥 줬다. 그런 후 애런 래스킨이라는 미국인 프로듀서를 만났는데, 그가 내게 준 카메라 석 대로 ‘참새…’ 촬영을 시작했다.
이 작품을 친구이자 제작 동료인 사드 파케르에게 바쳤는데. 그는 ‘참새…’ 촬영 과정에서 오인 사격을 받아 사망했다. 총탄 구멍으로 가득한 그의 자동차를 찍은 장면은 정말 끔찍했다.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라크인을 위한 게 아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매일 무슨 일을 겪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놀라웠던 일은?
사람들이 나를 웃게 만들었을 때다. 왜냐하면 현재 이라크에서는 만사가 너무 힘들고 슬프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취객 한 사람을 인터뷰했다. 그는 술병을 손에 든 채 이렇게 말했다. “전에는 거리에서 술을 마실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능하다. 조지 W 부시 덕분에 나는 이제 자유인이 됐다.”
매우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정신병자·어린이·노숙자·택시기사·바보들을 보여 주려 했다. 그것이 바로 어느 나라에나 있는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전쟁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전쟁의 결과를 보여 주고 싶었다. 물론 미사일이 떨어진 곳이나 죽은 사람들을 보여 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작품이 보편적이길 원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처럼 말이다. 나는 이라크인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사랑한다. 그것은 미국인도 마찬가지다. 왜냐고? 그가 단순히 콜롬비아인에 관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 관해 얘기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이라크인은 카메라 앞에 서기를 꺼렸을 것 같다. 자신이나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팔루자에서의 촬영은 매우 힘들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사람들은 나를 스파이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친구가 나를 자신의 오토바이에 태워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에게 소개시켜 줬다. 정말로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바그다드에서는 사람들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취지를 듣더니 “우리 생활과 처지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니 대환영이다.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미국 관객의 반응은 어떤가?
그들은 “이라크의 보통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면서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한 여성은 내게 10달러를 내밀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라크인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해 달라. 그게 전부다”고 말해줬다.
늘 영화를 사랑했는가?
그렇다. 매주 영화관에 가곤 했다. ‘대부’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학교 수업을 빼먹기도 했다. 나중에는 ‘브레이브 하트’를 좋아했다. 자유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영화 속의 왕은 적뿐이 아니라 자신의 병사들도 공격했다. 자신의 신민을 죽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런 왕을 증오했다. 그것은 이라크의 상황과 비슷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봉기하면서 자유를 얻게 됐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집념은 결코 새로운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다(웃음). 내가 검은 의상을 입고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는 꿈도 꾸곤 했다.
턱시도를 말하는가.
그렇다. 작은 넥타이도 매고.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맞아, 나비 넥타이. 그리고 이 작은 조각상, 오스카상을 거머쥐는 거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미국인이 내 영화를 보고는 “축하한다. 매우 훌륭한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아카데미상을 받는 것도 이제는 기적이 아니다.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먼저 그 검은 의상이 필요하다. 미국인이 턱시도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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