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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주요 축으로 떠오른 NGO

한국 경제의 주요 축으로 떠오른 NGO

미국 존스홉킨스대 시민사회연구소 연구원 이우룡씨는 한 달 전만 해도 광주지방노동청장(3급)이었다. 1980년 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노동부 훈련정책과장, 보험제도 과장, 고용보험심사위원장 등 25년간 노동 행정에 몸담아 왔다. 그런 그가 4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국비 지원으로 1년간의 해외 연수를 시작했다. 노동과 고용 문제에 관한 해법을 비정부기구(NGO) 연구에서 찾아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선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의 절대량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그러나 NGO 영역만은 부침 속에서도 꾸준하게 고용을 늘려 왔다. 이씨는 그 점에서 일자리 창출에 관한 정책적 대안의 가능성을 봤다.

NGO가 미래의 고용을 책임진다고? 지난해 발간된 존스홉킨스대의 ‘비영리 부문 비교 프로젝트’ 중 한국편을 보면 97년 NGO 영역에 고용된 인원은 70만2500여 명(자원봉사자 18만8700명 포함)이다. 이는 한국 경제 활동 인구의 3.2%다. 당시 한국의 최대 그룹이던 삼성의 고용 인원 19만1000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물론 교통 분야 126만 명, 건설 158만 명, 제조업 390만 명보다는 적다. 하지만 선진국의 NGO 고용이 경제 활동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통상 7.5% 선인 점을 감안하면 이 분야의 성장잠재력은 크다.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단체를 지칭하기 위해 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개념은 여러 가지다. NGO에서부터 NPO(비영리단체·Non Profit Organization), 제3섹터(The Third Sector), CSO(Civil Socity Organization), 시민단체 등 다양하게 불린다고 성공회대 박상필 교수는 말했다. 한국에서는 시민들의 권리 혹은 권익을 보호하거나 보장하는 일을 주로 하는 ‘대변’(advocacy)형 NGO와 시민들을 대상으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service)형 NGO로 나뉜다. 성공회대 조희연 교수는 “한국에서의 NGO가 민주화운동 같은 사회운동의 부각과 함께 이뤄졌기 때문에 그 속에 시민·사회운동단체를 지칭하는 특수한 함의가 있다”고 말했다. ‘대변’형 NGO가 한국 NGO 운동을 주도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존스홉킨스대 시민사회연구소의 책임교수 레스터 M 샐러먼은 정부와 기업을 제외한, 공공 목적에 봉사하는 단체 전체를 NGO라고 분류한다. 각종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학교·병원·환경·노동조합·종교단체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연구기관·사교클럽·변호사협회·종교단체·동창회·장학재단은 물론 전경련까지 그런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샐러먼 교수가 제시한 비영리조직 분류체계에 따르면 서비스형 NGO가 주류를 이루는 미국에서는 160만 개의 단체가 활동한다.

한국비영리학회 회장인 박태규(연세대·경제학) 교수는 한국 NGO 경제 규모 연구에선 선구적이다. 존스홉킨스대의 ‘비영리 부문 비교 프로젝트’ 중 한국편은 그와 정구현 삼성경제연구소 소장(당시 연세대 교수)이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이다. 박 교수는 샐러먼 교수의 권유로 98년부터 한국 NGO 현황 연구에 몰입했다. 안식년 휴가를 얻은 그는 그해 8월부터 12월까지 한국은행에서 초빙연구원으로 자원해 근무했다. 국제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샐러먼 교수의 비영리 조직 분류체계인 ICNPO(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Non Profit Organization)에 따라 한국 NGO의 경제 규모를 산출하기 위해서다.

박 교수는 97년 한국은행 국민계정 자료에서 ICNPO에 해당하는 부문만을 따로 뽑아 지출·고용·수입 등 3개 분야 통계를 추산해 냈다. 과거 NGO 경제 규모의 파악은 한국은행에서 공표하는 국민계정의 ‘가계에 봉사하는 비영리 단체의 목적별 최종 소비지출’에 근거했다. 그러나 이 계정은 비영리 조직에 대한 개념적 분류가 명확하지 않은 93년도에 만들어진 기준에 따른 조사다.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NGO의 경제 규모 산출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박 교수는 일일이 발품을 팔아 자료를 취합하고, 손으로 모두 계산해 나갔다.

항목별 임금 산출 방법만 해도 그렇다. 통계청에서 매년 발행하는 ‘사업체 기초통계 조사 보고서’의 산업별 피고용인 통계에서 NGO 관련 통계를 따로 뽑은 다음, 업계의 평균 임금 자료를 찾아 일일이 곱하는 방식으로 추산했다. 물정 모르는 지인들은 박 교수를 나무랐다. 시민운동을 할 요량도 아니면서 공연한 일에 시간을 버린다는 핀잔이었다. 그러나 재정학을 전공한 박 교수는 이 과제를 피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원래 정부의 영역이었던 공공재 공급 기능이 민간단체로 이관되는 추세는 세계적 현상이었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와 정부의 재정 적자에 따라 정부 업무의 민간 위탁과 민영화 확대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존스홉킨스대의 ‘비영리 부문 비교 프로젝트’ 중 한국편에서 추정한 바에 따르면 97년 NGO의 총지출 규모는 약 22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8%에 이른다(부문별로는 ‘교육·연구’ 분야가 전체의 44.5%로 지배적 위치다. 의료·보건 분야가 전체의 22.6%로 뒤를 이었고 종교 19%, 전문가 단체 4.9% 순이다). 지난해 국방비 총액 19조1288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한국 NGO 경제 규모는 이미 5대 기업 수준이다. 2004년도 대기업 매출액과 비교할 때 NGO는 삼성전자(57조6300억원), 현대자동차(27조4700억원), LG전자(24조6600억원), 한전(23조6000억원)에 이어 5위에 해당한다.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자면 2001년 기준으로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5.36%)에는 못 미치지만 건설업(3.64%)보다는 높다.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비영리연구센터는 지난해 10월 2001년 NGO 경제 규모를 추정했다. 종교 부문을 포함해 NGO 부문의 각 영역에서 활동하는 유급 고용 인원은 2001년 현재 74만3000명으로 97년 51만3800명에 비해 44.6% 증가했다. 97년 당시 비농업 분야 총고용자 수의 3.17%를 차지했던 NGO 유급 고용 인원은 2001년엔 3.83%로 뛰었다. NGO는 절대 규모로도 국민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NGO 규모가 커지자 한국은행도 별도의 계정 작성을 고려 중이라고 한국은행의 안길효 국민소득 팀장은 말했다. 유엔도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에 NGO 계정 국제 지침을 배포하면서 각국의 국민 계정안에 NGO 위성 계정을 만들도록 권고했다.

한국 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 나선 것도 NGO 경제 규모 확대와 궤를 같이한다. 전경련의 2003년 사회 공헌 백서에 따르면 2002년 202개 회원사가 총 1조865억9400만원을 사회 공헌이라는 명목으로 지출했다. 관련 기업 전체 매출액 대비 0.17%에 그치지만 2000년도에 비해서는 47% 증가했다. 국세청이 발표한 ‘국세 통계 연보’에 따르면 2003년 연간 매출액 1조원 이상 대기업 198개사가 2003년 내놓은 기부금은 8504억원으로, 업체당 42억9500만원이었다. 전경련 윤리경영팀의 장대순 부장은 “NGO 단체들이 기업들이 원하는 전략적 마인드에다 기획력을 갖춘다면 협력 기회는 훨씬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ICNPO 기준에 따르면 NGO 단체의 수입원은 크게 ‘민간의 회비와 요금’, ‘공공부문으로부터의 지출’과 ‘민간 기부’ 등 세 가지로 나뉜다. 97년 한국의 NGO가 지출한 22조원 중 76.8%인 16조9000억원은 민간의 회비와 요금에서 거둬들였다. 결국 NGO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요금이나 회원들의 회비 등이 주수입원이라는 얘기다. 19.7%(4조3000억원)는 공공부문으로부터의 지출에서, 3.5%(7700억원)는 민간 기부에서 충당했다. ‘공공부문으로부터의 지출’은 정부가 NGO에 주는 ‘정부 보조’와 공공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NGO에 주는 ‘이전 지출금’, 의료보험과 사회보험과 같은 ‘제3의 공공기관 지출’ 등 세 종류가 있다.

한국 정부는 2000년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을 제정해 NGO 단체에 경비를 직접 지원했다. 2005년 6월 30일 현재 이 법에 따라 중앙부처와 시·도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는 5687개에 이른다. 2001년 이맘때 등록단체 3413개보다 66.7% 증가했다. 행정자치부가 이들 단체에 지원해 준 예산은 2003년 150억원이었으나 2004년부터 100억원으로 줄었다. 정치권 일각에서 행자부의 예산이 총선 때 낙선운동에 쓰일 가능성을 경계해 예산을 삭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가 NGO 단체에 직접 지원하는 정부 보조는 행자부가 지원하는 100억원과 환경부·여성부 등 여타 중앙부처가 개별법에 따라 지원하는 800여억원이 전부다. 여기에 이전 지출금과 제3의 공공기관 지출금을 더해도 NGO 수입원의 20%를 넘지 않는다고 추산했다. 주성수 한양대 제3섹터 연구소장은 “NGO 수입원에서 한국 정부나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낮은 편이다. 선진국의 경우 NGO 재정의 50% 이상을 정부가 지원하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절대 지원액에서 뒤진다”고 말했다.

‘기부금품 모집 규제법’도 NGO들을 어렵게 한다. 이 법은 51년 사회적 혼란기에 기부금품 강요로부터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준조세 성격의 기업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이래 여러 차례 개정됐다. 기부금품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행자부 장관이나 시·도 지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의 기부금품 허가 내역을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0년 25건 1916억원, 2001년 30건 1038억원, 2002년 23건 2477억원, 2003년 29건 3101억원, 2004년 47건 2519억원 등에 불과하다. 전체 NGO 단체 중에서 모금을 허가받은 단체는 소수다.

그나마 대부분의 허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나 구세군 등에서 시행하는 불우 이웃 돕기 성금 모금이나 재난 구휼 사업, 국제적 구호 사업 등에 국한돼 있다. NGO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재정을 확보하는 데는 기부금 모집이 필요하다며 허가제를 등록제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정부도 이 같은 여론을 감안,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기부금 모집 규제를 완화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이 법은 9월 초까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기업의 준조세 확대와 정치인 낙선, 당선운동으로의 전용을 우려한 일부의 반대 때문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하승창 사무처장은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NGO 활동가는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내색하지 못하고, 은행대출이나 4대 보험 적용 등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아직도 한국에서는 ‘대변형’ NGO들이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수익모델을 개발하기를 낯설어 하며 또 그럴 경우 공연한 오해도 살 수 있다. NGO 활동가들은 기업가 정신 도입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선뜻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는 셈이다. 기업들을 상대로 한 사회 공헌 활동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엔씨스콤의 양용희 대표(호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말했다. “세계적인 NGO의 90%가 서비스형이다. 우리나라도 점차 기업 경영이 투명해지고 정경 유착이 없어지면 대변적 NGO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다.”

서비스형 NGO라도 문제는 많다. 기본적으로 기금을 형성하고 운용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 법에 따라 기부금품을 모집하면 그 용도에 따라 모두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인이 뭉텅이 돈을 자발적으로 기탁하지 않는 이상 기금화를 통한 자산 관리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개인 혹은 기업 명의의 NGO 재단이 널리 확산된 선진국 NGO의 자산 관리와는 사정이 판이하다. 그래서 전문 경영인 영입을 통한 펀드 운용은 요원하다고 양 대표는 말했다.

NGO의 투명 운영도 난제다. 몇몇 단체는 한 해 모금액이 수백억원을 넘어서고 직원 수도 수백 명에 이르는 등 대기업 못지않다. 따라서 기부자들은 제한된 재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했는지 투명하게 알고 싶어한다. 한국 NGO 경제 규모 추산 작업을 해 온 박태규 교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모순과 비리가 결집된 분야로 사회복지법인·사립학교 등 비영리 조직을 드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 지점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되지 않으면 NGO의 경제력 비중이 증가하는 한국 사회가 건강성을 유지해 나가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박성현 p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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