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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여행과 사람] - 파푸아뉴기니

[조주청의 여행과 사람] - 파푸아뉴기니

800여 부족이 800여 언어를 쓰는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칙이 확실히 적용된다. 정부에서 안정과 통합을 위해 ‘모두 한 핏줄’이라고 외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은 성에 대한 관념도 단순하기 짝이 없다. 배 고프면 음식을 먹고 성욕이 차오르면 사랑을 나눈다.
우리나라의 4배나 되는 섬에 인구는 400만 명이 채 안 되지만 800여 부족이 800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 파푸아뉴기니(Papua Newguinea).
구미의 언어학자들이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면서 몇 년간 이 나라의 언어를 연구해 보지만 너무나 난해해 손을 들고 만다. 심지어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둔 두 부족의 언어가 어떻게 분화됐는지 그 뿌리를 찾아보지만 어순(語順)부터 달라 천길 절벽에 부닥친다. 10여 년 전에도 이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2,000여 명의 부족이 새로이 출현하기도 했다.

요즘도 부족전쟁이 일어나면 칼과 창과 화살이 난무하며 많은 사상자가 생긴다. 부족전쟁에서는 보복 시스템이 이 나라의 법률과 국가 공권력 위에 군림한다. 한 부족이 3명 죽고 다른 부족이 1명 죽었다면, 1명 죽은 부족이 2명 더 죽어 사상자 수가 균형을 이룰 때까지 싸움은 계속된다.

보복은 부족전쟁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줬으면 준 만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이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하나의 언어(One Talk)’ 시스템이다. 말이 통하면 한 형제요, 말이 안 통하면 적이다. 한 부족의 응집력은 강하지만 타 부족에게는 극단적으로 배타적이다. 파푸아뉴기니의 정부에서도 원 토크 시스템이 나라 발전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판단해 ‘우리 모두는 한 핏줄’이란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지만 국민에게는 마이동풍이다.
열대 지방의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이 나라의 아이들도 조숙하다. 여자 아이들은 열두어 살이 되면 벌써 초경을 하고 앞가슴은 오뉴월 애호박 굵어지듯 하루가 다르게 부풀어 오른다. 그 나이의 남자 아이들도 울대가 튀어나오고 씨가 여문다.

눈이 맞은 처녀·총각은 구마 한 자루를 싸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 나뭇가지와 풀을 베어 움막을 짓고 그 속에서 뒹굴다 배고프면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문명사회의 잣대로 치면 미혼의 남녀가 부모 몰래 가출해 동거 생활을 한다는 말인데, 이 나라에서는 이것이 도덕적으로 눈총받는 일이 아니다. 너무나 흔한 일이다. 물론 처녀 집안이 총각 집에 찾아가 내 딸 찾아내라고 아우성치는 법도 없다. 양가의 부모 사이에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처녀 부모 왈, “우리 딸아이는 덩치도 크고 골격도 튼튼하다. 돼지 20마리는 받아야 한다”.
총각 부모 왈, “그건 너무 과한 요구다. 10마리로 하자”.

신부의 기준이 몸매 날씬하고, 얼굴 예쁘고, 마음씨 고운 것은 딴 나라 얘기고 이 나라의 일등 신부는 무조건 덩치가 커야 한다. 일을 잘하는 신부를 선호하게 된 것은 이 나라가 남자는 빈둥거리며 전쟁이나 하고 심심풀이로 사냥이나 하는 데 반해 여자가 밭과 가축의 소유권을 갖고 일용 양식인 고구마겲?타로 같은 작물을 손수 재배하는 모계 사회이기 때문이다.

신부 값으로 돼지가 많으니 적으니 티격태격 하다가 협상이 깨지면 처녀 측 부모는 산 속으로 딸을 찾으러 간다. 며칠을 산 속에서 동거한 처녀(?)와 총각(?)은 협상이 결렬됐음을 통보받고 툭툭 털고 일어나 하산해 각자의 집으로 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 후 헌 처녀는 다른 총각과 또다시 산 속으로 들어간다.
돼지는 이곳에서 독특한 존재다. 큰 목소리는 광 속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는 돼지한테서 난다. 돼지가 유일한 재산이라 돼지를 많이 소유한 사람이 힘을 쓴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돼지고깃값이 쇠고기보다 훨씬 비싸다. 이 나라 산 속에는 멧돼지도 많아 그들은 덫이나 창 또는 활로 멧돼지를 잡는다. 그러나 멧돼지는 집돼지에 비해서 값어치가 뚝 떨어진다. 돼지고기 중에서 비계 부위가 으뜸인데, 멧돼지는 상대적으로 집돼지보다 비계가 적어 쇠고기처럼 천덕꾸러기가 된다. 돼지새끼는 재산의 씨앗이자 애완동물이다.

이곳 돼지새끼는 다람쥐처럼 줄무늬가 있어 귀엽다. 사람들은 장에 갈 때, 마실 갈 때마다 돼지새끼를 품에 안고 다닌다. 여자들이 멋을 낼 때도 돼지비계는 없어서는 안 될 화장품이다. 돼지비계를 끓여 그 기름을 번들번들거리게 온몸에 바르기도 하고 때로는 검정을 돼지기름에 섞어 새까맣게 얼굴과 몸에 칠한다.
아직도 깊은 산 속에서는 돌도끼로 나무를 베고, 외딴 바닷가에서는 조개껍데기가 화폐로 통용되며, 오지에서는 식인 풍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나라, 파푸아뉴기니는 도무지 복잡한 것이 없다.

이들의 성에 대한 관념도 단순하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성욕이 차오르면 사랑을 하는 것이다. 수컷들이 그들의 허우대를 암컷들에게 과시하듯 이 나라의 남성들도 성적 과시욕을 본능적으로 드러낸다. 이리안자야의 다니족은 발가벗고 살면서 페니스 케이스(penis case)만은 실제 물건의 몇 배나 되게 큼직하게 하여 덮어씌우고 다닌다. 이들은 용솟음치는 정력을 과시하듯 이것을 위로 솟구쳐 올려 끝에 실을 달아 목에다 건다.
뉴기니 동부 카마노족들의 성인식은 소름이 끼친다. 성인이 되는 소년의 요도 구멍에 가는 풀줄기를 집어넣어 항문 있는 곳까지 들쑤셔 넣게 한다. 이때 비명이라도 지르면 남자로서의 자격 미달이라고 즉석에서 그의 물건을 두 동강 내 버린다.

이 끔찍한 행사로 성인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요도의 상처가 아무는 한 달 후쯤이면 마지막 관문이 기다린다. 날카로운 흑요석 돌칼로 귀두 주변 표피를 잘라내는 할례식이 거행되는 것이다. 피범벅이 된 귀두는 한 달쯤 지나면 완전히 아문다. 그때부터 그에게 씨를 뿌릴 자격이 주어진다.

이 나라에서는 13~14세가 되면 성숙한다. 발가벗고 사는 데다, 칸막이도 없는 원룸(one room) 시스템의 둥근 집에 대가족이 함께 살다 보니 성욕도 식욕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솟구쳐 별의별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고 성이 문란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사건’이니 ‘문란’이니 하는 것은 문명인들의 잣대고, 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이 나라에서 부족 간의 배타적인 적대감이 사라질 때가 있다. 이 나라 공용어인 피진어(영어·독일어·현지 토작어를 혼합해서 알파벳으로 뽑아낸 신생 언어)로 ‘싱싱’이라 불리는 축제 때다.
파푸아뉴기니 사람들은 마시고, 취하고,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 원래 이 나라에 술이란 것은 없었다. 그 대신 ‘부아이’라는 마약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질겅질겅 씹으며 환각상태로 잠도 자지 않고 며칠씩 잔치판을 벌인다.

이 나라 중부의 소읍인 고로카는 적도 바로 아래 자리 잡았지만 산악고원지대라 사시사철 온화하다. 이곳에 50여 부족이 모여 질펀하게 고로카 싱싱판을 벌인다. 이때만큼은 부족끼리 싸움이 없다. 그리고 부족이 다른 처녀총각이 낮이고 밤이고 손을 잡고 남의 눈을 피해 숲 속으로 들어간다. 처녀의 몸값 흥정도 없다. 그저 즐기는 것이다.

▶ 고로카 싱싱에서 모습을 드러낸 머드마스크족.

▶ 마스크는 부족전쟁에서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준다.

▶ 축제에 나온 처녀들.

▶ a.덩치가 큰 처녀가 멋을 내기 위해 온몸에 돼지기름을 바른다. ▶ b.파푸아뉴기니에서 돼지새끼는 애완용이자 재산의 상징이다. ▶ c.성기 과시는 수컷의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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