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엽기적인 주인공 ‘보랏’웃기거나 너무 심하거나
35세 이상은 ‘보랏(Borat)’(국내 개봉: 12월 7일)을 보며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는 악성 루머가 나돈다. 그렇다면 가령 나 같은 영감탱이들의 극찬은 어떻게 설명될까? ‘몬티 파이톤의 삶의 의미(Monty Python’s The Meaning of Life)’에서 세계 최고의 뚱보가 저녁식사 후 디저트로 캔디에 손을 뻗는 장면을 본 이후 영화를 보면서 이처럼 배꼽 잡고 웃어본 적이 없다. 코미디로선 참으로 오랜만에 뜨거운 논란에 휩싸일 운명인 ‘보랏’은 어느 연령대의 관객이라도 불쾌하게 만들 여지가 있다. 동시에 ‘잭애스(Jackass)’쇼와 스티븐 콜버트(코미디언), ‘덤 앤 더머’와 레니 브루스(코미디언), 스리 스투지스(3인조 코미디언)와 몰리에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영계라고 봐주기는 어려운 조앤 리버스는 보랏 역을 맡은 사샤 배런 코언이야말로 “현대 코미디가 갈 길을 간다”고 말했다. “코미디는 건드려서도 또 말해서도 안 되는 그 무엇이 담긴 상자를 부수는 데 존재 의의가 있다. 우리가 직시하고 싶어하지 않는 점을 직시하게 해줘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유머다. 난 심각한 것은 질색이지만 그 때문에 보랏이 나오는 작품을 좋아한다. 다음 장벽을 부숴라! 그것이 코미디의 즐거움이다.” 배런 코언이 만들어낸 극중인물 보랏 사그디예프는 관객을 코미디의 극한상황으로 몰고 간다. HBO의 ‘다 알리 지 쇼(Da Ali G Show)’를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소개하자면, 보랏은 사람들의 경계심을 해체할 정도로 열성적이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반유대적이며, 성차별적이고, 동성애라면 치를 떨며, 호색한이고, 사회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허구의 카자흐스탄 방송기자다(이런 나라가 진짜로 있다. 이 나라 정부는 최근 보랏이 자국의 영예를 더럽혔다며 영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광고를 냈을 정도다). ‘위대한 카자흐스탄 국가를 위한 미국 문화 수업(Cultural Learnings of America for Make Benefit Glorious Nations of Kazakhstan)’(국내 소개시엔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문화 빨아들이기’로 번역됨)이라는 긴 부제가 붙은 이 영화는 대체로 대본 없이 만들었다. 이 가짜 방송기자는 제작자 아자맛(켄 데이비션)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미국으로 떠난다. 두 사람의 신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미국인들과의 실제 인터뷰를 래리 찰스 감독이 카메라에 담는다(덕분에 이 영화는 가짜 다큐멘터리 제작행위를 소재로 한 진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코미디가 됐다). 머지않아 결국 웃기는 주인공은 보랏이 아니라 미국인들이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술 취한 대학생들, 예의바른 인종차별주의자, 보랏이 유대인을 쏴죽이기에 가장 좋은 총이 뭐냐고 묻자 눈 하나 깜작 않고 9㎜나 글록 자동권총을 추천하는 총기상 등을 통해 미국인들 잠재의식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배꼽 잡고 웃느라 미처 깨닫지 못하지만 실은 끔찍한 모습이다. 우리의 “영웅”은 버지니아의 한 로데오 경기장에 들어가 감언이설에 넘어가 국가를 부르게 된다. 한 관계자에게 자기 조국에선 동성애자들을 잡아다가 교수형에 처한다고 말하자 그 관계자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도 그럴 생각”이라고 답한다. 보는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이런 장면은 미국 코미디에서 전례가 없었다. 다만 보랏이 전에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에서 술에 취해 흥이 난 사람들을 부추겨 “유대인들을 우물에 빠뜨리자”는 노래를 부르게 만든 적이 있었다. 이쯤에서 국적이 영국인 배런 코언은 규율을 충실히 지키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혀야겠다. 배런 코언의 게릴라 코미디는 앞에서 거치적거리면 누구라도 처치해버린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분노의 감정이나 따지고 싶은 마음이나 (이 점은 이야기해볼 만하지만) 비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고급 유머와 저급 유머, 욕설, 사회학이 고루 섞인 그의 코미디는 몰래카메라 프로 ‘펑크드(Punk’d)’와 행위예술의 경계, 레니 브루스와 리처드 프라이어의 반사회적 위트와 앤디 카우프먼의 무표정한 장난연기의 경계를 넘나든다. 다만 리얼리티 텔레비전의 세계에 맞게 새로 단장했을 뿐이다. 다른 시대 같았으면 ‘보랏’ 같은 코미디는 탄생하기 어려웠다. 외설적인 내용도 그러려니와 요즘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만 보면 온갖 폼을 잡는 덕분이다. 몰래 카메라 코미디의 원조격인 ‘캔디드 카메라(Candid Camera)’는 숨겨둔 카메라를 사용했다. 요즘처럼 ‘서바이버(Survivor)’와 연예인 전능 문화에서 누구를 카메라에 담는 일은 촬영자가 낚는 행위가 아니라 피촬영자가 적극적으로 미끼를 무는 행위다. 만인의 마음속에 있는 열 살짜리 악동 기질을 건드려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다. 예를 들면 보랏과 체격이 볼품없는 제작자가 나체로 레슬링을 한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두 벌거숭이는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가 금융 중개인들의 대회장에 난입한다. 군살 없이 표현된 심한 유머의 극치다. 배런 코언의 코미디를 보며 박장대소하는 순간에도 한쪽에선 독특한 불안감이 샘솟는다. 안전그물도 쳐놓지 않고 외줄을 타는 곡예사를 보면서 느끼는 감탄과 두려움이 섞인 바로 그런 긴장이다.아무 생각 없이 보랏이 꾸미는 장난의 희생양이 되는 사람들(몇몇 고약한 예외는 있다)을 보며 걱정하게 되고, 배런 코언을 위해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장난이 심해 사람들에게 맞아 죽기 좋은 경우가 있다. 실제로도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뉴욕 지하철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키스할 땐(급행선 안에 산 닭을 풀어놓는 짓은 말할 나위도 없고) 좋은 반응을 기대할 일이 아니다. 앞서 나온 로데오 쇼에서 국가 가사를 바꿔 카자흐스탄의 영광을 노래할 땐 등 뒤를 조심할 일이다! 이 영화는 웃기는 장면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데도 맥이 빠지는 일이 없다. 모든 장면에 진짜 일반인들이 나오는 영화를 찍으려면 단 한 번의 촬영으로 해치워야 한다. 그 점을 감안할 때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배런 코언이 출연하는 극중인물은 세 가지다. 보랏 외에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백수건달 알리 지, 차기 장편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오스트리아의 패션계 인사이자 게이인 브루노다. 이 세 캐릭터는 모두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을 치유하는 극단적인 해독제로 구상됐다. 학구적으로 나가자는 뜻은 아니지만 그는 권력자에게 불손한 진실을 말했던 궁정 광대의 후손이다. 현대판 ‘실정의 군주(Lord of Misrule)’(중세 크리스마스 연회에서 뽑혀 행사를 지휘한 농민)인 셈이다. 우리의 집단적 ‘이드’(본능)로서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는 모든 언행을 대신 실천한다. 보랏이 대학생들의 우상이자 사회 제약에 도전하는 코미디언들의 영웅이 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매사에 정치적 공정성을 따져야 하는 바보스럽고 제약이 심한 이런 여건에서는 말도 마음대로 못한다. 미국 인디언을 인디언이라고 부르지 못한다. 그런 판에 ‘보랏’ 같은 영화가 나와서 ‘이 또라이 자식들아’ 하고 떠들어대니 얼마나 통쾌한가.” 리버스의 말이다. “우리는 그 정도로 병들고 겁먹은 사회다. 무서워서 어떤 것을 두고 무슨 말을 못한다.” 코미디언들이 지저분한 고전적 농담을 어디까지 해도 되는지 한계를 탐구한 다큐멘터리 ‘귀족들(The Aristocrats)’(국내에는 ‘아리스토캣’으로 소개됨)의 감독 폴 프로벤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샤 배런 코언은 보랏과는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코미디가 된다.” 지저분한 이방인 보랏에게 사람들은 이런 무지한 외국인들이 우리의 위대한 문명사회에 관해 뭘 알겠느냐는 생각에서 한 수쯤 접어준다. 때론 그런 보랏이 지나칠 정도로 오냐 오냐 하는 미국인들 쪽으로 테이블을 돌려 야만적이고 간혹 멍청하며 반드시 공평하지는 않은 미국 문화를 거울처럼 비춰서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가 부정적 미국 문화를 들여다본다고 말하는데 그건 우스운 이야기”라고 혼자서 말로 웃기는 코미디언 케이시 그리핀은 말했다.“생각해 보라. 미국에는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볼 요소가 있다. 그래서 우습다. 긍정적으로 보이는 분야는 우습지 않다.” 코미디란 늘 누군가를 제물로 삼게 마련이다. 장모(丈母)가 그래서 필요하다. 변호사는 말할 나위도 없다. “선을 넘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치민다”고 빌 마허는 말했다. 그는 ABC 방송의 ‘정치적 불공정(Politically Incorrect)’이라는 프로의 진행을 맡았다가 정규 텔레비전 방송을 맡기에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불공정하다는 판단이 내려짐에 따라 물러났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관객은 어느 코미디언이 선을 넘는 순간 이내 알아차린다. 웃지 않거나 야유를 보낸다.” 코미디에서는 다른 형식으로는 말하기 곤란한 이야기를 해도 된다. “신랄한 진실의 창(槍)이 관객들의 등을 뚫는 게 느껴지는데도 웃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그런 웃음이 좋다. 관객들은 웃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 정도로 신랄했다. 웃음의 위대한 점은 무의식적 반응이라는 사실”이라고 마허는 말했다. 리버스와 마찬가지로 연예인들을 심하게 몰아세우는 코미디를 한다고 비난받아온 그리핀은 훌륭한 코미디는 자기검열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땐 에이즈 이야기는 곤란하겠다, 암 이야기는 곤란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에이즈 환자와 암 환자들을 만났는데 내게 심한 농담들을 해댔다. 그런 농담으로 첫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무슨 걱정을 했지? 솔직히 말해 사람들 감정을 염려하면 이 일은 못해 먹는다.” 그러나 코미디언들은 선을 긋는다. 어느 선을 넘어도 되는지 잘 판단하는 것이 재주다. 리처드 프라이어와 데이브 채펠의 대본을 써준 폴 무니는 “코미디는 비열하고 쇼킹할 때 가장 우습다. 흑인 코미디를 연구하면 늘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발언투성이다. 검둥이로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늘 정치적으로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맘스 메이블리와 레드 폭스. 그들은 세상에 둘도 없이 비열하고 고약스러웠으며, 또 위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코미디언들은 자신의 안전지대를 찾아내야 한다. “리처드 프라이어가 ‘껌둥이’(nigga)라는 단어를 다시 사용치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본인이 인간으로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 단어의 고통을 이해했다. 한편 나는 항상 ‘껌둥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면의 고통을 안다”고 무니는 말했다. 배런 코언은 과연 골동품 가게에서 물품을 박살내면서, 또는 만찬장에서 어느 여인의 외모를 무자비하게 모욕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까? 그렇다고 래리 찰스 감독은 말했다. “영화를 만들면서 마치 탈무드처럼 스스로 물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어느 선까지 밀어붙일 생각인가? 우리가 넘지 않겠다고 모래에 그어 놓은 선은 어디인가? 우리는 끊임없이 자문했다. 우리는 공정한가? 목적만 좋으면 수단은 아무래도 되는가?” 그래서 어떤 결론을 내렸나? “사회의 약자로 인식되는 사람들을 이용하는 일은 피하려고 애썼다. 귀족들, 엘리트, 교만한 자들, 과대망상증 환자들을 탐구하려고 했다. 그것이 우리가 모래에 그어 놓은 선이었다.” ‘보랏’을 자세히 보면 그 점이 분명해진다. 대체로 그렇다. 진보·보수 관객들 모두를 상대로 로르샤하 검사(정신 진단) 역할을 하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보랏이 복음교회 부흥회에 참석하는 장면을 보자. 그는 미국 텔레비전에서 ‘SOS 해상기동대(Baywatch)’를 처음 본 뒤 패밀라 앤더슨에게 반한다. 상사병에 걸린 봉두난발의 보랏은 앤더슨이 애인 토미 리와 찍은 섹스 비디오를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순결의 여신이 아님을 알게 된다. 크게 상심한 나머지 구원을 찾아 교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속세의 인본주의자들은 발을 구르고 괴성을 지르며 알아듣지 못할 말로 떠드는 그들을 보며 해괴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보랏은 주변의 참 신자들을 자극하거나 모욕하는 짓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들은 그를 동등한 신자로 받아들이고 그의 구원에 진정한 관심을 보인다. 보랏이 매부리코 유대인들의 뿔 초상을 완비한, 카자흐스탄에서 벌어진 ‘유대인들 달리기’라는 행사의 광경을 자랑스레 보여줄 때 우리가 비웃는 대상은 그의 광기 어린 반유대주의 감정이다. 위험천만한 코미디이며, 특정 대상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속을 긁을 게 틀림없다. 그런 사람은 그냥 집에 머무는 편이 좋다. 팬들에게는 경고해둔다. ‘보랏’은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플 지경이다. With SEAN SMITH, ALLISON SAMUELS and JAC CHEBATO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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