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퍼스트 레이디
신세대 퍼스트 레이디
일본 총리 부인 아키에, 개방적 언행과 활달한 내조로 인기 미국 백악관은 카리스마적인 퍼스트 레이디들을 자랑해 왔다. 엘리노어 루스벨트나 재클린 케네디를 생각해 보라. 그러나 일본에는 그런 영부인이 없었다. 적어도 지난해 9월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아베 신조(安倍晋三·52)는 총리직에 취임하면서 매력적인 부인 아베 아키에(安倍昭惠·44)를 국민 앞에 내보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의 부인은 늘 상냥한 표정을 짓고, 남편을 공경한다는 뜻으로 세 걸음 뒤에서 따라다니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새로운 일이라고 해봤자 꽃꽂이를 달리 시도해 보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아키에는 다르다. 나름대로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그것을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외국어로, 혹은 품위있는 모국어로 얘기하거나, 또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글을 쓸 때도 그런 자세는 변함이 없다. 최근 뉴스위크와의 독점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특별히 개방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비교적 젊은 총리의 부인이다 보니 언론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그래서 일부 사람이 나를 그런 식으로 보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은 모든 공인(公人)이 민감한 화제를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나라다. 하지만 아키에는 그런 화제에 정면으로 대응한다. 일부 정치평론가는 그런 태도가 남편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명문가 출신의 극우보수파인 아베 총리는 회의적인 국민에게 자신의 개혁 성향을 확신시키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아키에는 일본에서는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공인 스타일을 창조함으로써 지금까지는 남편의 노력에 부응했다. 아키에의 진의나 그녀가 직면한 위험(반발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견해도 있다)이 무엇이든 말이다. 일본·태국·한국·대만 등 아시아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아키에처럼 젊고 매력적이며 솔직한 영부인이 등장한 적이 없었다. 드물게 예외적인 경우로는 역사적으로 영국이나 미국 문화와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었던 국가들이 있다. 예컨대 인도(전 총리 라지브 간디의 아내 소냐 간디는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하다)와 필리핀(악명 높은 이멜다 마르코스의 나라)이다. 아키에가 돋보이는 이유는 일본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인 가문 중 하나에서 유복하게 성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또는 유명 디자이너의 청바지든 세련된 단색 정장이든 어떤 옷을 입어도 어울리는 자신만만한 패션 감각을 지녔기 때문만도 아니다. 그녀는 다가가기가 쉽고 젊음의 매력을 지녔다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고리타분했던 과거의 영부인들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아키에는 일본의 모든 역대 총리 부인보다 최소한 10년은 젊다. 남편 아베 역시 일본 역사상 최연소 총리이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최초의 총리다. 그러니 공식 행사장에 직접 승용차를 몰고오는 아키에의 모습을 목격해도 놀랄 필요는 없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명랑하다. 훌라춤을 추고, 절대 금주주의자인 남편 대신 사교모임에 참석해 ‘음주 임무’를 수행한다. 한때는 한 FM 라디오 방송에서 디스크자키로 일하기도 했다. 인기 여성 주간지 ‘조세이(女性) 세븐’의 한 간부(회사 방침 때문에 익명을 요구했다)는 이렇게 말했다. “아키에 여사는 현대적인 여성이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 과거의 영부인들을 생각하면 대부분 초로의 여성이 떠오른다.” 뉴스위크가 마지막으로 일본 총리 부인을 인터뷰한 때는 10년 전이었다.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의 부인 구미코(久美子) 여사는 공식행사 참석 횟수를 줄이고 싶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임무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쟁점이 되는 사안에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일은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러니 대다수 일본인이 그녀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아키에는 기억할 듯하다. 그녀가 그토록 많은 전형(典型)을 깨뜨렸는데도 언론은 이제까지 놀라울 정도로 우호적이다. 지난해 10월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아키에가 일본인들을 황홀하게 만든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정치평론가들은 아키에의 인기 덕분에 아베의 지지율이 20% 정도 올랐을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조세이 세븐은 “아키에는 국민이 일본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게 만든다”고 격찬했다. 또 지난해 11월 결혼을 권장하는 한 시민단체가 실시한 ‘이상적인 부부’ 설문조사에서 아베 부부는 3위를 차지했다(다른 정치인 부부 중 상위 10위 안에 든 사람은 없었다). 아키에는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만큼 인기가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일본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나라들에서도 그렇다. 지난해 10월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한국말로 능숙하게 시를 낭송해 현지 언론의 탄성을 자아냈다(그녀는 한국어 교습을 받아왔다). 또 같은 순방 일정상의 방문국인 중국에서는 세련된 의상과 자연스러운 언행으로 현지 유력 일간지로부터 “일본의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실 아키에와 완벽하게 비교될 만한 미국 여성은 없다. 영부인 시절의 힐러리와는 다르게, 아키에는 지금까지 건강보험처럼 딱딱한 정치 현안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직접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문제에는 더욱 무관심하다. 아키에는 로라 부시와 더 닮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영향력과 매력을 이용해 서민들의 교육 문제와 일본 문화의 해외 홍보 같은 사안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도쿄대 우치야마 유 교수(일본정치)는 두 여성이 남편에게 존경심을 표시하면서도 자신들의 입장을 견지한다는 면에서 서로 닮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측면은 아키에가 언론매체로부터 남편을 겨냥한 공격적 질문을 받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로라의 경우도 그랬다). 뉴스위크 인터뷰에서 아키에는 내조를 잘하려고 늘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로라와의 비교를 좋아하는 듯했다. 사실 로라가 남의 말을 경청하려는 태도는 일본 여성 특유의 겸손함과 비슷하다고 아키에는 말했다. 그러나 아키에의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최고 권력자와의 사적인 가정생활을 자세히 말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해 10월에는 남편이 자기 바지를 직접 다리미질한다는 사실을 진지한 태도로 언론에 밝혔다. 남편이 욕조 안에서 휴식을 취할 때 방향(芳香) 촛불을 즐겨 켜놓는다고도 말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불임이 매우 민감한 문제다. 그런데도 아키에는 최근 한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남편에게 유력한 정치인 가문의 후계자를 낳아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심하게 느꼈다고 고백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불임 치료법을 받아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도 했다. “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총리가 된 남자의 아내라는 사실, 그리고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은총은 입지 못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녀는 입양 문제에 관해선 “양자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고 시인했다. 아베 부부는 드러내놓고 애정 표현을 한다는 점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베이징 방문 시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비행기 트랩을 내려왔다. 일본의 금기를 깨부순 행동이었다(아베 부부는 클린턴 부부에게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시인했다). 장사꾼들이 아베 부부에게 영감을 얻어 그들의 형상을 닮은 기념품들을 만들어냈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사생활 누설, 솔직한 고백, 공개적인 애정 표현 같은 언행에는 의도성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언행은 매우 의식적인 전략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우치야마 교수는 아베의 전임자이자 정치적 후견인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집권 자민당의 근본적 개혁을 자신의 중심 목표로 삼았음을 지적한다. 각국 지도자들이 부부 동반으로 참석하는 국제 행사에도 혼자 나타날 정도로 확고한 ‘독신주의자’인 고이즈미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새로운 뭔가를 표출했다. 예컨대 사자머리 스타일이나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 내기 등이다. 이번에는 비교적 엄숙한 아베가 개혁 노선을 밀어붙일 차례다. 아베의 과제는 더욱 보수적인 지지자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점차 다루기 힘들어지는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고이즈미의 개혁 목표를 관철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우치야마는 이렇게 말했다. “아베는 새로운 자민당을 대변하리라 여겨진다. 아베 내각의 존재 이유는 새로움의 추구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그것을 보여주려는 듯하다. 그 점에서는 아키에 역시 종속적이라기보다는 대등한 동반자다.” 우치야마 이렇게 덧붙였다. “아베가 부인과 손을 맞잡고 걷는 행동에는 연극적 요소가 있을지 모른다. 그는 이런 행동을 통해 세대교체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한다.” 또 홍보 전문가인 쓰루노 미쓰시게는 “사실 아베는 가정과 직장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정책적으로 강조해왔다”고 주장했다. 아베는 아내에게 의지해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려할까? 최근 몇 달간 일련의 실수를 저지르면서 아베의 지지율은 지난해 10월의 70%선에서 30%포인트가 떨어졌다. 아키에의 지지율은 아직 조사된 바 없다. 그 자체가 영부인을 중요하지 않게 보는 일본의 전통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부 소식통들은 아베에게는 아키에가 행운의 존재라는 데 동의한다. 쓰루노는 “지금까지 어떤 총리 부인도 아키에만큼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아베는 그런 측면을 좀 더 전략적으로 이용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전략은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아키에가 유례없이 주목받는 이유는 일본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서서히 높아지는 추세와도 관련 있다. 이제 여성 기업인의 존재는 더 이상 이국적이고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여성 정치인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총리의 국가안보 담당 특별고문인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처럼 직설적인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해도 남녀평등 면에서 일본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여타 선진공업국들에 비교하면 훨씬 뒤떨어졌다.예를 들어 2006년 유엔 ‘여성 권한 척도(GEM)’에서 일본은 80개국 중 42위를 차지했다. 총리 부인들을 소재로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한 정치평론가 고바야시 기치야는 아키에를 겨냥한 반발이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면서 그녀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50대 중반의 한 기업체 마케팅 담당 간부는 아키에가 멋진 여성이긴 하지만 정치에 간섭하지 말고 ‘오쿠사마’(奧樣)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쿠사마는 남편의 ‘뒤쪽’이나 ‘아래쪽’에 있는 부인을 의미한다. 우치야마에 따르면 아키에를 전면 중앙에 내세우는 전략은 “‘양날의 칼’과 같다. 참신한 접근방식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아베 내각은 곤경에 처할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아베는 보수주의자이고, 그의 지지자들도 보수파다.” 중년층 봉급생활자를 주요 독자층으로 하는 한 잡지는 아베 부부의 ‘손 잡기’ 행동을 경멸하면서 이렇게 반문했다. “독자들은 공개 장소에서 부인과 손을 잡고 걸어다니는가?”(물론 질문에 함축된 답변은 ‘아니오’다). 아키에는 자신이 직면한 위험들을 안다.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거를 직접 치러 영부인 지위에 오르지 않았다. 그런 만큼 나를 향한 비판을 참작해야 한다. 하지만 누군가 약간 비판적인 말을 했다 해서 나의 행동 방식을 바꾸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개방적 언행은 이미 그녀를 곤경에 빠뜨렸다. 아키에는 블로그를 개설한 이후 거기에 사진 몇 장을 올려놓았다. 아베 부부가 성탄절에 유명 가수 한 사람과 약간 사치스러운 식사를 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그 직후 아키에는 엘리트주의에 빠졌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사건은 아키에가 직면해야 하는 또 다른 부담을 상징한다. 바로 그녀의 화려한 가문 배경이다. 더욱더 많은 일본인이 소득 불평등을 걱정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국가 지도층의 지나치게 화려한 생활방식은 서민들의 볼멘 목소리를 촉발할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아키에는 공격받기 쉽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명 제과회사 모리나가(森永)의 사장이었고, 그녀는 사학 명문인 세이신(聖心)여대를 다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쓰(電通)에서 근무했다. 그녀를 아베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바로 덴쓰의 상사였다. 당시 아베는 외상이던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근무했다[아베의 외조부는 1950년대 총리를 지냈던 기시 노부스케(佐藤信介)다]. 아베와 아키에는 2년간의 연애 끝에 1987년 결혼했다. 아키에는 예비 정치인의 아내가 되려고 직장생활도 그만뒀다.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3000명의 하객이 참석했던 결혼식 피로연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가 엄청난 가문으로 결혼해 들어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구체적인 내용들은 아베 부부의 적들에게 많은 실탄을 제공할지도 모른다. 특히 점차 커지는 일본사회의 소득격차가 올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경우는 더욱 그렇다. 아베는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을 지속하겠다는 공약을 지켜야 한다. 동시에 경제회복의 혜택을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국민도 달래줘야 한다(고용주들은 풍성한 기업 실적을 아직 직원들의 봉급 인상으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아키에는 꾸준히 제 갈 길을 갈 듯하다. 영부인 경험이 다소 많은 누군가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조언도 들었다. 바로 로라 부시였다. 최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정상회담 때 로라를 만났던 아키에는 이렇게 말했다. “로라는 내게 말했어요.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당신이 관심을 갖는 일을 하라’고요.” 다시 말해 머지않아 아키에가 남편의 뒤에 처져 걷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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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에가 본받고 싶은 영부인은? 아키에가 일본의 퍼스트 레이디 이미지를 재창조한다. 그런 영감의 원천은 미국인 듯하다. 그녀가 귀감으로 삼는 여성이 정확히 누군지는 관측통들의 견해가 엇갈린다. 그러나 아키에가 바라보는 쪽이 미국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가능성이 높은 후보 네 명을 소개한다. 각자 자신의 이미지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선구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노어는 공적인 지위를 적극 활용한 최초의 영부인에 속했다. 아키에는 이를 본받았다. 그러나 엘리노어는 자기 주장이 훨씬 더 강한 영부인이었다. 재클린 케네디 패션 리더 아키에는 세련된 의상 감각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처럼 시대 유행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재클린 같은 사교계 명사는 아니지만 상류층 출신인 점에서는 비슷하다. 힐러리 클린턴 변호사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는 직접 공직선거에 출마했다. 처음엔 상원의원, 지금은 대통령직이다. 아키에는 아직 그럴 의향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에서 계속 그녀의 인기가 올라간다면? 로라 부시 도서관 사서 아키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의 다소곳한 태도가 일본 여성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로라의 조언을 듣기도 했다. 두 여성 모두 남편을 앞지르지 않으려고 신중히 처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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