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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음악의 힘‘인디즈’

일본 대중음악의 힘‘인디즈’

2002년 일본 대중음악계에 깜짝 놀랄 사건 하나가 터졌다. ‘몽골 800(Mogol 800)’이라는 펑크 밴드가 혜성처럼 등장해 음반 200만 장을 팔았다. 밀리언셀러가 허다한 일본에서 200만 장은 사실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놀랐을까? ‘몸파치(モンパチ)’라는 애칭을 가진 이 그룹은 대형 음반사를 통해 데뷔한 뒤 방송을 기반으로 인기를 얻어가는 기존 관행을 완전히 파괴했다. 몸파치는 음반이 그렇게 많이 팔릴 때까지 TV 출연 한번 하지 않았다. 더구나 활동 기반은 도쿄가 아닌 오키나와 촌구석이었다. 지방에서 라이브 콘서트만 하면서 저예산으로 만들어낸 음반이 입소문으로만 퍼져 나가 일본 전역에서 200만 장이 넘는 판매액을 올렸다. 인디즈란 거대 음반사나 기획사를 통해 생산되는 소위 ‘메이저’ 음악의 상대적 개념이다. 저예산으로 음반을 제작하고 독립적인 유통망을 통해 배포하는 음악 생산 체계이자 거기서 생성되는 음악문화 내지 음악철학을 통칭한다. 우리나라에도 90년대 중반 이후 홍익대 주변 클럽들을 중심으로 같은 문화가 태동했다(한국은 인디 혹은 인디 음악이라는 용어를 쓰고 일본에서는 인디즈라 부른다). 거대 시스템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자유분방한 실험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홍보나 마케팅에 대규모 비용을 들이는 메이저와 달리 제작비가 아주 적게 든다는 특징이 있다. “몽골800의 성공은 기적이었다”고 FM오키나와 DJ 니시무카이 고조는 말했다. “사람들이 몸파치를 좋아하긴 했지만 200만 장까지 팔릴 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 사실 인디즈 밴드의 성공은 몸파치가 처음은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하이 스탠더드(High Standard)’라는 그룹이 20여만 장의 앨범 판매액을 올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몸파치의 대성공은 이후 인디즈 음악인들에게 결정적인 자신감을 심어주고 대중에게 참신한 인디즈 음악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몸파치 이후로 ‘아, 인디즈도 하면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퍼졌다”고 도쿄 시모기타자와의 유키 테쓰야 모나레코드 대표는 말했다. 이런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지난해 인디즈 계열의 레게 듀오 데프 테크(Def Tech)는 18주 이상 오리콘 차트에 오르며 또다시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다. 지금 일본에서는 인디즈가 음악시장의 대안으로 떠오른다. 대중들은 몸파치나 데프 데크 같은 인디즈 음악을 들으며 기성 가수들과 다른 새로운 감수성을 체험한다. 인디즈 음악이 저렴한 제작비로 엄청난 인기와 수익을 거두자 소니 BMG, 도시바 EMI, 빅터, 유니버설, 포니 캐니언, 워너 등 메이저 음반사들이 자사 산하에 작은 규모의 인디즈 레이블을 운영하며 인디즈의 유통망을 적극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싱글 CD 한 장에 300만 엔, 앨범 CD 한 장에 2000만 엔 정도의 제작비가 투여되지만, 수익이 불투명한 현실에서 인디즈의 높은 경제성은 메이저의 관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HMV나 타워레코드에 마련돼 있는 인디즈 코너에 가면 메이저 음반사들의 산하에 있는 인디즈 레이블들이 출시한 인디즈 앨범을 여럿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메이저가 운영하는 가짜 인디즈가 등장한 셈”이라고 유키 테쓰야 모나레코드 대표는 말했다. 한편 인디즈 성공은 다이키 사운드 하라악기 같은 인디즈만의 탄탄한 유통 체계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수많은 길거리 밴드와 라이브 하우스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 1970년대에 아이돌 그룹들이 대거 탄생하면서 일본 대중음악계는 과학적 산업화의 길에 들어섰다. 인기와 수익을 목적으로 정확히 계산된 음악을 생산하는 아이돌 음악은 대중음악의 산업화를 일구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에서도 90년대에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후 15년 가까이 아이돌 댄스음악으로 편중된 현상을 보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록과 재즈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음악이 탄생했다. 여기에는 한국에서도 인기였던 엑스재팬을 시작으로 80년대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한 밴드 붐이 크게 한몫했다. 이때 미스터 칠드런, 글레이, 라르크 앙시엘, 루나시 등 록밴드뿐만 아니라 플리퍼스, 기타, 피치카토, 파이브, 코넬리우스 등 시부야케이로 대표되는 일본 특유의 새로운 음악이 태동했다. 이들을 키운 것도 바로 길거리와 라이브 하우스였다. 요요기 공원, 우에노 공원, 신주쿠와 시부야 역 근처에 가면 지금도 수많은 길거리 밴드가 연주를 한다. 40∼50명 정도의 관객이 마룻바닥에 앉아 공연을 보는 시모기타자와의 작은 클럽에서부터, 1000명까지 수용 가능한 거대한 시부야의 라이브 클럽까지 다양한 라이브 클럽이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 퍼져 있다. 길거리에서 연주를 시작하고 시모기타자와의 작은 무대를 거쳐 시부야의 대형 무대에 선 후 메이저 음반사에 발탁돼 음반을 출시하고 방송 등 대중매체에서 이름을 알리는 과정은 일본 대중음악계의 하나의 공식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리고 메이저 무대에서 성공한 음악인도 라이브 클럽 무대에 자주 오르며 대중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마련한다. 78년 데뷔해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록밴드 ‘서던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 79년 데뷔한 58년생 동갑내기 포크 듀오 ‘차게 앤 아스카(Chage & Aska)’ 등 20, 30년이 넘도록 방송과 공연 등을 통해 대중을 만나는 노장 음악인이 여럿이다. 여기에 자마이칸 레게의 뿌리인 스카를 무기로 20년 넘게 연주활동을 하며 구미권에도 이름을 알리는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Tokyo Ska Paradise Orchestra)’의 존재를 보면 일본 대중음악의 깊이와 폭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알게 된다. 아사히TV의 ‘뮤직 스테이션’, 후지TV의 ‘뮤직페어 21’ 등 수십년 된 음악방송은 아이돌 음악부터 하드록 힙합 등 모든 장르를 골고루 소개하며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는 또 하나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일본 음악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스타와 인디즈 록밴드가 편견없이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모습을 볼 때, 뮤지션과 엔터테이너가 공존하는 현대 대중음악 문화의 이상적인 조화로움이 느껴진다면 좀 과장일까. 일본의 음악시장의 규모는 1998년 6074억 엔으로 최고를 자랑하다 2004년에는 3774억 엔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90년대 음악계가 일본 경제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음악 거품’이었으며 현재가 적정한 시장규모라는 견해가 많다. 실제로 작사가, 작곡가 등 음악 저작권자의 수입은 1998년 985억 엔에서 2004년 1110억 엔으로 늘어났다. 인디즈 음반 시장은 2002년 264억 엔 규모에서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메이저 레코드 회사들은 좀 힘들어졌을지 모르지만 음악계 전체로 보면 불황은 아닌 셈이다. 세계 2위의 음반시장 일본은 지금 인디즈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월드뮤직으로 사랑받는 오키나와 팝스 오키나와 현도(縣都) 나하(那覇)의 공항에 내려 섬 중부로 한 시간쯤 달리면 차탄이 나온다. 커다란 원형 관람차가 서 있는 유원지 한쪽에 레스토랑 ‘칼라하이’가 있다. 오키나와 전통음악을 월드뮤직으로 재탄생시킨 ‘린켄밴드’의 공연장으로 일본 본토 관광객에게는 꼭 한번 들러야 하는 명소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민요에다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등 서양 악기를 접목시킨 오키나와 팝스가 탄생했다”고 FM오키나와 DJ 니시무카이 코조는 말했다. 오키나와에는 고전음악과 민요, 그리고 현대 대중음악이 활기차게 공존한다. 샤미센과 비슷한 모양의 전통악기 산싱(三線)을 배우는 젊은이가 많은 한편 힙합, 펑크 등 다양한 음악이 라이브 하우스를 채운다. 오키나와민요협회 소속 음악인들은 지금도 새로운 민요를 만들어 음반을 발매한다. 오키나와 출신 유명 음악인으로는 아무로 나미에, SPEED, MAX, DA PUMP 등 아이돌 가수들을 비롯해 록과 힙합을 넘나들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오렌지렌지, 하이 앤드 마이티 컬러, 몽골800, HY, 월드뮤직 밴드 린켄밴드 등이 유명하다. 이들을 통해 오키나와는 예능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아졌다. 무엇보다 오키나와의 전통 음색과 특유의 정서를 담은 ‘시마우타(島唄)’가 2002년 월드컵 주제가로 사용돼 크게 히트하면서 오키나와 사운드에 대한 관심은 일본 밖으로까지 퍼져나갔다. 비주얼 록밴드 맬리스 미제르의 보컬이었던 각트(Gackt)도 시마우타 리메이크 곡을 발표했는데 그 역시 오키나와 출신이다. 오키나와 음악이 인기를 끈 이유는 뭘까? “오키나와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챰푸루(チャンプル)’라는 말이 있다. ‘섞다’ ‘비빈다’는 뜻이다. 미국 록이든 라틴 음악이든 좋으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니시무카이는 말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고향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하다. 스스로 일본 사람이 아니라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말한다. 온 섬을 점령하다시피 미군 기지가 들어선 후 전통문화는 별반 남아있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오키나와는 지금 전통과 현대를 버무린 ‘비빔밥 음악’으로 450년 류큐 왕국의 부활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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