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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맥’을 캐고 투자하고 판다

‘금맥’을 캐고 투자하고 판다

▶상사맨들은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하늘, 사막, 바다 어디든지 달려간다.

과거 종합상사는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다. 종합상사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1996년 국내 종합상사의 매출액 가운데 수출이 64%를 차지한다. 반면 삼국 간 거래(우리 상사가 다른 나라 간 무역을 연결해 주는 것)와 내수는 2.6%, 3.2%에 불과했다. 또 계열사에 의존해 외형적 거래 규모는 컸지만 독자적으로 판로를 개척할 능력을 기르지 못했다. 97년 주요 종합상사의 그룹 의존도는 현대종합상사 84%, 삼성물산 82%, LG상사 75%였다. 이는 종합상사가 계열사 물건을 파는 역할에 머물렀다는 것을 뜻한다. 종합상사들은 2000년 이후 이런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고 기능을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국내 5대 종합상사는 각자 강점을 파악하고 비교우위 사업 개발에 나섰다. 해외 신규 시장 개척, 중소기업과의 제휴, 해외 자원개발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에 눈을 돌려 종합상사의 부활을 알린 것이다.

대우, 자원개발 적극 나서 대우인터내셔널은 최근 필리핀의 철도사업 계약을 따냈다. 철도사업은 과거에는 종합상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업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지난 6월 1일 필리핀 남부 마카티시에서 필리핀 철도청과 5000만 달러(약 463억원) 규모의 마닐라 남부철도 연결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기공식을 열었다. 철도 건설은 한진중공업이 맡고, 디젤전동차는 ㈜로템이 공급할 예정이다. 강영원 사장은 “남부철도 연장 구간에 대한 2, 3차 사업에도 적극 참여해 수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을 플랜트 수출 사업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 마다가스카르에 있는 암바토비 니켈광 개발사업에서 1억8000만 달러 규모의 열병합발전소를 수주한 데 이어 암모니아 공장 등 5억∼6억 달러 규모의 후속 프로젝트 수주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대우그룹 몰락과 함께 워크아웃에 들어갔던 ㈜대우(현 대우인터내셔널)는 지금 최고의 종합상사로 부활했다.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자원개발이다. 특히 2004년 초 발견된 미얀마 해상 A-1광구의 가스전은 대우인터내셔널 부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가스전은 매년 수천억원의 배당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외에도 대우인터내셔널은 1992년에 참여한 베트남 해상 11-2광구가 2006년 말부터 가스 생산을 개시했으며, 페루 8 원유 생산광구에 대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오만 LNG 플랜트 사업, 러시아 서캄차카 해상광구 탐사사업 등 다양한 단계의 에너지 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여전히 무역 부문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대우인터내셔널은 그동안의 노하우와 인적자원,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원개발 사업에 적극 나서는 등 투자회사로의 변신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삼성물산, 현지공장 다수 운영 국내 최초 종합상사인 삼성물산(상사 부문)은 90년대 중반 카자흐스탄의 구리광산인 카작무스 운영을 시작으로 해외 사업에 눈을 떴다. 영국 여왕보다 부자라는 한국인 차용규씨가 사장으로 있어 더 잘 알려진 카작무스는 원래 삼성물산이 위탁운영에 성공해 오늘날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삼성물산 해외 수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적인 사업이었지만 이후 그룹 구조조정과 삼성물산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 회사를 매각했다. 2000년 이후 한동안 침체기를 걸었던 삼성물산은 최근 해외산업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은 현재 62대 38 수준인 무역(trading)과 사업(operating)의 비중을 2012년에는 50대 50 수준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이러한 사업구조 혁신을 위해 투자 패턴을 기존의 상권 확보를 위한 소규모 지분투자 방식에서 자원개발과 운영사업을 주축으로 하는 투자로 전환하는 등 복합사업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미래의 핵심사업으로 에너지, 자원개발 사업을 선정하고 2012년까지 탐사 및 개발광구 15개, 생산광구 5개 등 총 20개 광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삼성물산은 예멘과 동티모르 등 5개 광구에 지분 참여 형태로 탐사를 진행 중이며 또 다른 3곳에서는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 외에도 금속ㆍ광물자원 확보를 위해 호주·몽골 등 유망지역 개발에도 참여할 예정이며 신재생 에너지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또 세계 각국에 현지 공장을 운영 중이다. 대표적 운영사업인 루마니아 스테인리스 가공공장인 오텔리녹스(Otelinox)를 비롯, 중국 화남지역 성포코일센터의 성공적인 운영을 기반으로 새로이 동관코일센터와 소주코일센터 설립을 추진하는 등 향후 중국·인도·동구 등 전 세계에 총 11개의 코일센터 네트워크를 구축, 운영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해외발전소 건설 운영, 중국 합성수지 가공공장 운영사업, 동남아 석유화학 저장 탱크사업 등 다양한 현지 공장 운영사업을 개발하고 있다. 또 지난해 하반기 1500만 달러를 투자해 GE와 공동으로 첨단 물류보안 사업에 참여하는 등 삼성물산은 보안·교육·문화 등 서비스와 소프트 분야의 트렌드를 조기 포착해 가치 있는 사업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

LG상사, 해외에 디지털 기기 판매 럭키그룹 수출입을 도맡아 하던 LG상사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미리 위험을 예상하고 작은 요소라도 반드시 기록해 사례와 예방책을 직원 모두가 공유하도록 했다. 90년대 후반부터 추진해 온 플랜트(생산 시설이나 공장)와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오랜 노하우를 통해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역량을 파악하고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해 온 결과다. 올해 초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아다(ADA)광구에서 원유를 발견했고, 다른 3곳 광구의 탐사 운영권도 확보한 상태다. 베트남에서는 지난해 4월 국영석유공사와 2023년까지 생산 가스를 판매하는 가스 판매 계약을 맺었다. 카타르 라스라판 LNG 사업은 2025년까지 안정된 수익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 외 중동의 오만 웨스트 부카에서도 2008년부터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할 계획이다. 자원개발 사업은 탐사 단계에서부터 마케팅·영업·판매까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구성해 수익을 낸다. 탐사에서 자원을 발견하면 관련 설비 사업을 함께 추진해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LG상사의 카타르 정유 플랜트.

LG상사는 90년대부터 플랜트 사업을 진행해 왔다. 17개의 해외 프로젝트에서 투자배당 수익, 공장건설 수익, 판매 수익을 동시에 확보해 다른 플랜트 사업과 차별화시켰다. 김동욱 대리는 “전 세계에 7개 법인과 40개 지사가 있어 자원개발에 유리하다”며 “앞으로도 해외자원 개발과 플랜트를 중심으로 사업을 이끌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캐논 카메라의 국내 유통 노하우를 기반으로 시작한 디지털 기기와 대형 상용차, 헬기 수입 시판 사업은 새로운 수익원이다. 지난해 디지털카메라 멀티브랜드 매장인 픽스딕스(PixDix)를 열었고, 올해 한국HP와 제휴해 솔루션 사업에 진출했다. 2003년 유럽 상용차 업체인 이베코(IVECO)와 손잡아 대형 상용차 영업망을 넓히기도 했다. 90년대 초, 러시아산 헬기를 국내 최초로 도입해 우리나라 정부 기관에 공급한 LG상사는 인도네시아·대만·중국 등 해외 시장에 고객 맞춤형 헬기를 판매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친환경 사업으로 CDM(청정개발체제) 사업에 진출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 대리는 “상사들이 실질적으로 가진 자원은 사람뿐”이라며 “건설사·시공사·구매처를 모두 담당할 수 있는 개발자(Developer)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구본준 LG상사 부회장도 신년사에서 “정보 수집과 금융(Financing), 조직화(Organizing) 능력을 이용해 신규 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SK는 중국에 주유소 진출 SK네트웍스는 에너지 판매를 성장 동력으로 삼아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53년 선경직물로 시작한 SK상사는 SK유통·SK주유소를 합병하고 2003년 SK네트웍스로 CI(Corporate Identity)를 변경했다. 2006년에는 영업이익 3800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올렸다. 특히 지난 4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나 본격 도약을 준비 중이다. SK네트웍스는 한국을 대표하는 통합 마케팅 회사를 미래상으로 삼고 다양한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그 분야는 네트워크, 정보통신 유통, 무역, 에너지 판매, 커스터머 사업으로 다양하지만 ‘고객 중심’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SK네트웍스는 국내 1위의 석유 제품 판매 사업자로 중국 석유제품 시장에 진출해 선양(瀋陽)·단둥(丹東)에 주유소를 세웠다. 아직도 우리나라 70, 80년대처럼 기름만 넣는 중국 주유소에 생활공간을 덧붙여 고객 서비스에 주력했다. 그룹 내에서 ‘중국 개척자’로 불릴 정도로 중국 중심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을 진행 중이다. 올해 말까지 주유소 매장을 30개로 늘리고 동북 3성 지역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 자동차 정비 사업인 스피드메이트는 중국 내 1만여 개 매장을 목표로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에서 운영하고 있다. 네트워크 사업 부문은 경쟁사보다 탁월한 통신 품질로 인정받는다. 전용선망, 전자정부통신망, 인터넷전화 사업자로 선정돼 앞으로 꾸준히 새로운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보통신 유통사업 부문도 국내 1위의 유통망을 기반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고 친환경 플라스틱 소재인 ‘에콜그린’을 개발해 미래 사업도 준비 중이다.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소비자사업 부문은 직접 고객과 대면한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사업이다. 캐주얼 브랜드 아이겐포스트가 중국 진출 1년 만에 30여 개의 백화점에 입점했고, 자체 글로벌 브랜드를 추가로 개발할 예정이다.

현대, 오거나이징 역할에 치중 SK네트웍스의 장세찬 과장은 “유통·주유소 등 내수를 확충하면서 사업은 안정세에 들어섰다”면서 “품목보다는 시장을 늘려 부가가치를 높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나라는 삼성전자·현대자동차 같은 글로벌 제조 기업은 있어도 맥도널드·스타벅스처럼 브랜드 기업이 없다”며 “글로벌 마케팅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종합상사는 국내 최초로 제조업에 진출해 성과를 거뒀다. 2004년 11월 중국 조선소를 인수하고 지난해 6월 청도현대조선을 공식 출범했다. 지난해 9월 3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그리스·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계약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 현대종합상사 권오준 과장은 “지난 30년 동안의 해외 판매 네트워크를 활용할 계획”이라며 “5년 안에 중소형 선박건조 시장에서 연 매출 2400억원 이상을 달성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현대종합상사도 안정된 미래 수익원으로 해외 자원개발을 택했다. 예멘 마리브 유전, 오만 LNG, 카타르 라스라판 LNG 사업에서 연간 200억원 이상의 배당 수익을 얻고 있다. 이곳 개발사업은 앞으로 20년 이상 안정적 고수익을 줄 것으로 기대되며 LG상사·대우인터내셔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권 과장은 “장기적 수익 확보를 위해 종합상사들이 에너지 개발사업을 핵심 전략사업으로 보고 지속적 투자를 해왔다”며 “해외 정보 습득이 빨라 유리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최초 해외 자원개발 사업으로 알려진 호주 드레이톤 탄광개발 사업에서 2005년 256억원의 배당수익을 얻기도 했다. 그 외 러시아 서캄차카 광구와 카자흐스탄 등에 유망광구를 발굴해 앞으로도 자원개발 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종합상사는 삼국 간 거래, 복합 무역 등을 통해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고 있다. 좋은 기술과 우수한 품질이 있음에도 경험이 부족하고 조직이 작은 기업들과 지식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상품을 파는 데 집중하기보다 설계·엔지니어링 등 지식 기반의 상품을 개발하고 전망 있는 시장과 상품을 연결해 주는 오거나이징 역할에 집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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