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남미는 빈부 격차 줄어든다
경제적 불평등 극심했지만 브라질 필두로 칠레·멕시코 등 효율적 복지제도 운용 성공 1970년대 브라질 경제는 통제불능처럼 보였다.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에는 경멸적인 별명이 붙었다. ‘벨린디아’(Belindia: Belgium+ India)였다. 브라질 사회는 양극의 두 집단으로 나뉘었다는 말이다. 벨기에처럼 부유한 극소수 계층과, 인도처럼 가난한 절대다수 계층이다. 경제평론가들은 그 원인을 분석하느라 다년간 노력해 왔다. 그러나 그런 현상의 근본적인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국가 경제는 성장했지만, 극소수 엘리트만 그 혜택을 입었다는 얘기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상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동시에 가장 불평등한 국가 중 하나가 됐다. 이제 브라질에는 새로운 별명이 필요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극심했던 빈부격차가 마침내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중남미 전체의 변화를 예고하는지 모른다. 브라질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국민이 1992년의 약 36%에서 지난해 약 19%로 줄었다. 그런 결과를 낳은 경제적 요인은 복합적이다. 만성적으로 높았던 인플레이션[때론 초(超)인플레이션]과 금리 폭락 추세가 종식됐고, 초등학교 입학률이 급격히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엔, 현금으로 지급되는 복지수당이 낭비적인 관료제도를 우회해 극빈 가정에 직접 전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심각했던 무산자와 유산자의 격차 역시 지니계수로 보면 좁혀지기 시작했다. 2001년의 0.59에서 2006년 0.56으로 약 5% 떨어졌다. 멕시코의 경우도 지난 10년간 0.543에서 0.509로 떨어졌고, 칠레는 0.563에서 0.562로 낮아졌다. 두 나라 모두 브라질 같은 빈곤 퇴치 전략이 성공한 덕분이다. 이런 극적인 상황 반전 덕분에 브라질은 이제 몇몇 경제분석가 사이에서 전 세계 빈곤 퇴치 정책의 모범으로 칭송 받게 됐다. 브라질의 비즈니스 스쿨 중 하나인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의 경제전문가 마르셀루 네리는 “90년대는 경제 안정화의 시대였고, 21세기 초의 10년은 불평등 해소의 시대로 기억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또다시 경제 분석가들은 그 요인을 찾아 나섰다. 우선 다른 나라들에서 성공한 정책을 본받으려는 노력이 어느 정도 주효했다. 중남미의 민중은 ‘신자유주의’를 성토할지 모르나, 오랜 세월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혀 온 견고한 사회질서를 깨부순 힘은 바로 자유시장 개혁이었다. 국가재정 운용의 책임의식 증대는 정부의 강박관념적인 차관 도입을 억제했다. 정부는 또 금리를 인하해 금융기관들이 저소득 소비자들(오랫동안 융자 대상에서 제외됐었다)에게도 신용을 제공하도록 했다. 만성적으로 높아가던 인플레이션은 90년대 중반에 사실상 사라졌다. 덕분에 빈민층에 치명적이던 세금 부담도 실질적으로 줄어들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물가상승률보다 약간 높은 이자를 지불하며 국채를 발행해 재정 자금을 보충했다. 또 근로자들은 현금으로 받은 월급이 치솟는 물가 때문에 물거품처럼 사라져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했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서반구 담당 책임자인 아누프 싱은 “그러나 요즘은 거시경제적 안정을 도모하고 인플레이션율을 낮게 유지하려는 정치권의 의지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강하다”며 “빈곤과 불평등을 줄이는 데는 희소식”이라고 말했다. 정책결정자들은 또 1990년대에 어린이들을 일터에서 빼내 교실로 돌려보내는 대대적인 운동을 벌였다. 예를 들어 브라질은 이미 10년 전에 학령 아동의 97%를 취학시켰다. 지금 그 학생들은 더 나은 일자리로 보상받는다. 그러나 가장 찬양 받는 정부 정책 중 하나는 극빈층에게 직접 전달되는 신종 복지수당 제도다. 정책 전문용어론 ‘조건부 현금 이전’(CCT)으로 불린다. 매달 10~15달러의 복지 수당을 극빈 가정에 지급하되, 그 조건으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데려가 검진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CCT 제도가 가장 엄격하게 시행되는 곳은 칠레다. 10년 전에 시작된 칠레의 솔리다리오 제도는 2년간 적은 액수의 수당을 빈민층 가정에 지급하며, 수혜 가정은 자녀의 취학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관들에게 보고하고 구직 노력을 해야 한다. 또 2002년 출범한 멕시코의 오포르투니다데스는 복지수당을 받은 약 500만 가정의 의무 이행 상황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 추적한다. 이 제도는 터키 앙카라부터 미국 뉴욕까지 각국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멕시코를 방문한 뒤인 지난 3월 ‘오퍼튜니티 NYC’ 제도를 출범시켰다. 현재까지 규모가 가장 큰 제도는 브라질의 ‘볼사 파밀리아’(가족 수당)다. 전체 인구 1억8300만 명의 약 25%에 해당하는 1110만 가정에 매달 최고 50달러를 아직 정해지지 않은 기간 동안 지급한다. 브라질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몇몇 복지수당 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런 제도들이 전국적으로 통합되고 확산된 시기는 2003년 이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시절이다. 대체로 경제전문가들은 이처럼 특정 계층에게 직접 복지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를 높게 평가한다. 방만하게 운영되는 복지 관련 관료조직에 예산을 맡기기보다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빈민층의 생활을 개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예산도 훨씬 적게 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이다. 브라질 정부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가까운 5000억 달러 이상을 각종 복지 프로그램에 지출한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가난하지 않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적자투성이의 연금제도다. “그러나 볼사 파밀리아 제도에서는 GDP의 겨우 1%에 상당하는 예산을 가지고도 인구의 25%에게 혜택을 준다. 훨씬 더 효율적인 제도”라고 경제전문가 네리는 지적했다. 볼사 파밀리아는 빈민층에게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브라질의 불평등을 줄이는 문제에서 20% 정도의 적은 비용으로도 방대한 연금제도와 같은 효과를 거둔다고 네리는 말했다. 물론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는다. 잘못된 정부가 들어서면 빈민구호 예산이 구태의연하고 대중영합적인 시혜 수단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예컨대 니카라과의 ‘굶주림 제로’ 프로젝트는 빈민 가정에 소 한 마리와 닭 세 마리를 나눠준다. 빈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이 없는 제도다. 또 브라질의 통치자들은 선거철이 되면 복지 혜택을 늘린다는 점을 각종 연구는 보여준다. 더욱 우려할 만한 사실은 국민이 복지수당 의존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국의 관심이 훨씬 적다는 점이다. 상파울루의 경영대학원인 이브멕의 경제전문가 에두아르두 지아네티는 이렇게 말했다. “5000만 명이나 되는 국민이 복지수당을 받는다는 사실은 뭔가 잘못됐다. 볼사 파밀리아가 긴급 구호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종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우려된다.” 또 회의론자들은 브라질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고 정부의 현금 지급 능력이 약해지면 빈민의 생활이 다시 침체될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사회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발전해 가려면 단순한 현금 지급 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브멕의 교육 전문가 나에르시우 메네제스는 “정말로 불평등을 줄이려면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판자들은 그러지 않을 경우 세계화는‘기회의 격차’를 더욱 벌릴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각국이 경제적으로 더욱 빠르게 성장하고 세계화할수록 전문기술을 갖춘 사람들의 수요도 커진다. 만일 교육제도가 그런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면, 성장과 세계화의 혜택은 소수의 사람에게 돌아가고 불평등이 확대된다”고 IMF의 싱은 말했다. 그러면 벨린디아라는 별명도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 With MONICA CAMPBELL in Mexico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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