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판 씨받이’ 대리모가 는다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사는 외과 간호사 제니퍼 캔터(34)는 임신을 좋아한다. 아이를 더 갖고 싶어서가 아니다(캔터는 달리아라는 이름의 여덟 살짜리 딸이 있으며, 아이를 더 가질 계획은 없다). 자신의 심장 바로 밑 뱃속에서 한 인간을 키우는 체험을 좋아할 뿐이다. 어린 시절에도 그런 생각만 하면 마냥 즐거웠다. 11세 땐 두 주간의 방학 기간 내내 셔츠 속에 베개를 넣고 임신부를 흉내 내며 살다시피 했다. 캔터의 체격은 임신하기에 완벽하다. 183㎝의 키에 건강하고 날씬하면서도 골반은 넓다. 3주 전 캔터는 헌츠빌의 병원 분만실에 있었다. 임신 8개월째인 그녀의 배는 남자 쌍둥이들(각각 2.7kg) 때문에 크게 불러 있었다. 분만실에는 케리 스미스와 그의 아내 리사도 있었다. 리사는 캔터의 팽팽해진 복부 속으로 만져지는 작은 생명체를 쓰다듬었다. “그건 팔꿈치예요.” 자신의 자궁 속에서 아기들이 어떻게 누워있는지를 아는 캔터가 말했다. “발은 여기 있네.” 리사는 남편을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기야 리사는 그 쌍둥이들의 엄마다. 대리 출산은 이처럼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랑의 행위지만 금전적 거래 행위이기도 하다. 리사는 20세에 자궁 적출 수술을 받은 뒤로 임신을 못한다. 케리와 리사가 대리모 출산으로 얻은 이득은 확실하다. 지난 3월 20일 이들 부부는 캔터의 제왕절개 수술로 약 3㎏의 건강한 사내아이 이선과 조너선 둘을 얻었다. 캔터는 무엇을 얻었을까? 물론 돈이다. 스미스 부부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대체로 미국의 대리모들은 임신과 출산을 대신해 주는 대가로 2만~2만5000달러를 받는다. 캔터는 자신의 임신에 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짓궂은 설명을 하며 재미있어 했다. “아, 이 쌍둥이는 내 아이들이 아니에요.” 그러면 늘 이어지는 질문이 있다. “그 애들 아버지하고 섹스를 했나요?”(리사의 난자는 시험관에서 케리의 정자와 수정된 지 5일 뒤 캔터의 자궁 속에 이식됐다.) 하지만 그토록 오랫동안 고생하며 자기 몸 안에서 키워온 아이를 분만하자마자 남에게 넘겨주는 여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리모 출산은 모성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기본 인식을 뒤흔들 만하다. 또 어머니와 자식 간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감은 임신 과정에서 나온다는 기존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많은 보수적 기독교인은 대리 출산이 생명의 경이로움을 훼손한다고 성토한다. 극좌 여권운동가들은 자기 몸을 파는 행위로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대리모들을 매춘부에 비유한다. 일부 의료 윤리학자는 대리모 알선 행위를 “아기 중개업”으로 규정한다. 지나치게 외모를 중시하는 천박한 뉴요커들이 복부에 임신선이 생기는 것을 피하려고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는다는 소문도 있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는 대리 출산을 금지한다. 미국에서는 뉴욕·뉴저지·미시간을 포함한 12개 주가 대리 출산 계약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텍사스·일리노이·유타·플로리다 등 4개 주가 대리 출산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네소타주는 합법화 문제를 검토 중이다. 펜실베이니아와 매사추세츠, 특히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10여 개 주는 대리 출산을 허용한다. 불임 부부를 위해 아이를 낳아주는 대리모들은 더 느는 추세다. 대리 출산을 용인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과학기술이 발달한 덕분이다. 본 기사를 준비하는 동안 취재진은 대리모의 상당수가 군인을 남편으로 둔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여성들은 가계소득을 늘리려고 대리모 활동에 나선다. 일부는 남편이 해외 근무 중이다. 몇몇 대리모 알선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 이후 대리모로 나선 군인 아내 수가 늘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국에서 약 1000건의 대리 출산이 있었던 것으로 추산한다. 대리 출산 현황을 추적하는 유일한 단체인 생식보조기술협회(SART)는 2006년에 약 260건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3년 새 30%가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실제로는 훨씬 더 많다. 뉴스위크가 취재한 알선업체 중 5개 업소에서만 2007년에 400건의 대리 출산을 알선했다. 이처럼 수치가 들쭉날쭉한 이유는 대리 출산 병원(미국 전역에 수십 군데가 있다)의 최소한 15%가 시술 건수를 SART에 통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알선업체를 거치지 않고 개인적 합의로 이뤄진 대리 출산은 통계에 안 잡힌다. 또 대리 출산 의뢰인이 난자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예컨대 의뢰인 부부가 남성 동성애자들인 경우)의 임신도 계산에 넣지 않는다. 한편 의료비와 법률 비용을 포함해 의뢰인 부부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4만~12만 달러나 된다. 그래도 유자격 대리모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훨씬 초과한다. 대리모 출산이 느는 또 다른 이유는 기술 발달로 안전성과 성공률이 높아진 점이다. 버지니아주의 제네틱스 & IVF 인스티튜트 같은 병원은 현재 70~90%의 임신 성공률을 자랑한다. 약 10년 전만 해도 성공률은 40%였다. 이 병원은 캔터와 스미스 부부가 시험관 수정(IVF) 절차를 밟았던 곳이다. 과거엔 배양 접시 속에 난자 한 개와 정자 수천 개를 집어넣고 수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요즘의 발생학자들은 정자 한 개를 직접 난자 속에 주입한다. 또 대다수의 시술병원은 수정된 배아를 대리모 자궁 속에 이식하기 전에 배아의 유전질환 여부를 검사한다. 시험관 아기 시술 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한 것이다. 샌디에이고 소재 라호야 IVF 병원의 실험실장인 릭 로스는 이런 기술 발전 덕분에 “IVF 실패율이 85%나 줄었다”고 말했다. IVF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였다. 그러나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위해 임신과 출산을 대신한다는 개념은 인류 문명만큼이나 오래됐다. 대리 출산 개념은 기원전 1800년께의 함무라비 법전에 등장했고 구약성서에도 여러 번 나타난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불임 여성인 사라가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남편 아브라함과 동침시켜 자신들의 후계자를 낳게 한다. 또 야곱은 자신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의 하녀들을 통해 자식들을 얻고 두 아내는 그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키운다. 예수의 탄생도 일종의 대리 출산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선 변호사 대신 천사가 중개인이었고, 대리모(마리아)가 의뢰인(성령)의 아이를 직접 키웠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가장 주목 받았던 대리 출산이 법률적,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른바 ‘베이비 M’ 사건이다. 1986년 29세였던 메리 베스 화이트헤드는 어느 불임 부부와 대리모 계약을 맺고 딸을 낳았다. 그러나 그 아이의 생물학적 어머니이기도 했던 화이트헤드는 출산 후 태도를 바꿔 자신이 아이를 키우겠다고 주장했다. 2년에 걸친 양육권 소송이 벌어졌다. 재판 결과 화이트헤드는 양육권을 얻지 못했고 대신 방문권만 인정 받았다. 그 사건 이후 대리모 계약에선 대리모가 난자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하는 게 일반화됐다. 오늘날 대리 출산을 ‘제리 스프링어 쇼’에서나 볼 수 있는 엉뚱한 행동으로 보는 시각은 줄어드는 추세다. 오히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불임 부부가 자식을 얻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렇다 해도 미국 문화에는 여전히 대리모를 어수룩한 시골뜨기 혹은 돈밖에 모르는 부도덕한 기회주의자로 보는 고정관념이 남아 있다. 심지어 대중문화에서도 대리모를 풍자적인 시각으로 묘사한다. 곧 개봉될 영화 ‘베이비 마마(Baby Mama)’에서 티나 페이가 연기한 독신의 여성 기업인은 의사로부터 불임 판정을 받는다. 그녀는 노동자 계층 여성인 에이미 포엘러를 대리모로 고용한다. 페이는 건강식품 연쇄점의 중역으로 세상 물정에 밝고 영리하며 돈이 많다. 포엘러는 사기성이 있고 손쉬운 돈벌이를 찾는 실업자다. 페이가 자신의 대리모를 “백인 쓰레기”라고 언급하는 대목은 관객의 웃음을 유도하기 위한 부분이다. 이 영화에 영향을 미친 고정관념에 대해 대리모인 지나 스캔런(40)은 “왜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스캔런은 세 아이를 둔 기혼여성으로 피츠버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또 미술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18개월 전 뉴저지주의 남성 동성애자 커플에게 쌍둥이 딸들을 낳아줬다. 이 커플(한 명은 대학교수, 또 한 명은 공인회계사)이 스캔런을 대리모로 선택한 이유는 그녀가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한 남성의 아내로서 “정서적으로 안정됐기 때문”이었다. 대개 20대 여성인 난자 기증자들과 달리 건강한 여성은 40세에도 대리모로 활동할 수 있다. 3주 전 스캔런은 새로운 의뢰인들을 위해 배아 이식술을 받고 다시 임신한 상태다. 그녀는 “가난하거나 절박한 여성들은 대리 출산 알선업체들이 요구하는 대리모 자격 요건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리모들이 오로지 돈 때문에 대리 출산을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스캔런은 매일 24시간, 매주 7일씩 뱃속에 아기를 담고 사는 것보다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반박한다. 게다가 대다수 직업에는 몇 주 동안 헛구역질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싶어도 몇 달간 금주해야 하는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 스캔런은 “대리 출산으로 받는 돈을 시간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일 것”이라면서 “그 험담꾼들이 대리모를 만나보기라도 했는지 모르겠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대리모를 만나본들 그런 실상을 어떻게 알겠는가? 사실 대리모의 세계에 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취재팀은 미국 각지에서 대리모로 활동 중이거나 활동했던 여성 수십 명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고정관념과는 다른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캘리포니아주 무리에타의 독신모, 메릴랜드주 글렌 버니의 군인 배우자, 댈러스의 중소기업체 소유자 등 광범한 부류의 여성들이 대리모로 활동한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경이로움과 삶에 대한 긍정부터 가슴이 미어질 듯한 슬픔까지 다양하다. 스캔런 같은 여성은 자신이 대리 출산한 쌍둥이들의 대모로 관계를 유지한다. 어떤 대리모는 자신이 한때 몸속에 지녔던 아이와의 접촉이 끊어져 지금도 속앓이를 한다. 먹고 마시는 문제에 간섭 받는 것을 불쾌하게 여기는 대리모가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친자식 임신 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대리모도 있다. 대리 출산에 나선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중상류층 출신의 한 대리모는 어린 시절에 친척 중 한 명이 불임 문제로 고통 받는 것을 보며 자신이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 아이다호주 노동자 계층 출신의 한 대리모는 예전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들이 대리 출산으로 버는 돈 덕분에 가능해졌다. 예컨대 6000달러를 들여 디즈니 월드로 가족 나들이를 가는 것 따위다. 그러나 동기는 이처럼 다양해도, 모든 대리모가 동의하는 점이 하나 있다. 처음으로 아기 혹은 아기들(IVF에선 쌍둥이들이 많이 태어난다)을 품에 안고 감격하는 의뢰인들의 모습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낀다는 점이다. 사람을 녹초로 만드는 IVF 과정, 입덧, 장기간의 침대 요양, 보기 흉한 임신선 같은 단점들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점들이다. 제니퍼 캔터는 “대리모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나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과 비슷하다”면서 “다만 대리 출산은 내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며 의뢰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런 권능감과 자존감은 대리모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보람에 속한다. 위스콘신주 워소에 사는 앰버 보어스마(30)는 “‘내 인생에 그토록 큰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을 다른 어느 곳에서 찾을 수 있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금발에 사교적인 성격의 보어스마는 현재 임신 6개월째다. 자궁적출술을 받아 아기를 갖지 못하는 동부 해안 지역의 어느 부부를 위해 쌍둥이를 임신 중이다. 남편이 제약회사 직원인 보어스마는 딸(6)과 아들(4)을 둔 전업주부다. 대학 시절에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중요한 분야에서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도 인생을 무의미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뭔가를 하고 싶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돈 문제도 있다. 남편이 군인인 거니샤 마이어스(24)는 샌디에이고 지역의 벼룩신문 을 훑어보며 일감을 찾고 있었다. ‘대리모 구함! 최대 2만 달러 소득!’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두 아이를 둔 전업주부인 마이어스는 집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방사선 기술자로 일했다)을 그만둔 이래 잃어버렸던 목적의식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이어스는 해군 3등 하사관인 남편 팀을 따라 2004년 애리조나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그때부터 마이어스는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오고 다른 사람을 돕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임신도 하고 싶었다. 아기가 들어 있는 복부를 어루만질 때의 느낌, 그리고 “(임신에 수반하는) 왕성한 호르몬 분비”에서 오는 천연의 도취감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해 가을 남편의 근무지인 32번가 해군기지 부근에 있는 대리모 알선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할머니는 마이어스의 결정을 못마땅해 했다. 마이어스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집안에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삼촌은 심지어 역겹다는 말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에게 그들의 힘만으론 결코 얻을 수 없는 것, 즉 가족을 만들어 주고 있다.” 마이어스처럼 대리모로 활동하는 군인 아내들은 대부분 28세 이전에 가족 구성을 완료한 전업주부들이다.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의 IVF 병원들과 대리모 알선업체들은 고객의 50%가 군인 아내라고 한다. “우리처럼 군대에 속한 사람들은 극단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국가를 위해 싸운다든지, 목숨을 건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제니퍼 핸슨(변호사 보조원·25)은 말했다. 제니퍼와 그녀의 남편 체이스 핸슨 육군 하사는 네브래스카주 링컨에 살며 두 명의 어린아이를 키운다. 체이스는 지난 5년 중 2년을 이라크에 파견돼 근무했다. 제니퍼는 “군인과 결혼해 살다 보니 그런 가치관이 몸에 밴 것 같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나는 모험을 하고 있다. 남편만큼 위험한 일은 아니지만 남을 돕기 위해 내 생명과 몸을 걸었다.” 대리 출산 알선업체들은 그런 여성들을 원한다. 그래서 샌디에이고의 캠프 펜들턴 같은 군사기지 주변에 있는 군인 가족 주택단지의 우편함에 광고지를 넣는다. 밀리터리 타임스와 밀리터리 스파우스 같은 군 간행물에도 광고를 싣는다. 대리모 알선업체들은 요즘엔 오히려 이런 간행물의 영업 책임자들이 광고를 실어 달라고 접촉해 온다고 밝혔다. 대리모로 나선 군인 아내들은 한 차례 임신·출산으로 남편의 연봉 기본급(신병의 경우 1만6080~2만8900달러)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뉴저지주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멜리사 브리스먼은 “군인 아내들은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자주 이사해야 하기 때문에 한 군데 직장에 오래 있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뭔가 긍정적인 일을 하며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대리 임신과 출산에는 1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남편이 전근하기 전까지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던 딜(32)은 해군 장교인 트래비스와 결혼해 메릴랜드주에 정착하기 전까진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친아들 두 명을 둔 전업주부인 딜은 현재 한 유럽인 부부를 위해 쌍둥이를 임신 중이다. 출산은 5월로 예정됐다. 그녀가 대리모로 나선 이유는 유익한 존재가 되고 싶은 소망 외에도 돈 문제가 있다. 자폐증 환자인 큰아들을 위해 치료용 놀이시설을 짓는 데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지하실에 체육시설을 들여놓아 큰아이가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녀는 자식이 자폐아라는 사실이 대리모로서 결격 사유가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지만 다행히 알선업체에선 문제를 삼지 않았다. “업체 측은 나와 쌍둥이들이 유전적으로 서로 무관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의뢰인들도 그 문제를 내게 직접 거론한 적이 없다. 직접 거론하기엔 너무 민감한 문제라 그랬을지 모른다.” 군인의 아내는 트라이케어(군인의료보험) 수혜자이기 때문에 대리모로서 인기가 좋다. 보험이 적용되는 범위도 업계에서 가장 넓은 편에 속한다. 대리 출산 알선업체들도 그 점을 안다. 그래서 별도의 보수(5000달러)를 주면서까지 트라이케어 가입자인 군인 아내들을 대리모로 영입하기도 한다. 지난해 미군 당국자들은 2008년 국방예산안 편성에서 대리 출산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폐지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의 뜻은 관철되지 않았다. 대리 출산과 관련된 정부 지출 규모에 관해 구체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이었다. 트라이케어 규정에 따르면 대리모들은 대리 출산으로 받는 돈의 액수를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면 액수만큼 보험 혜택이 줄어든다. 그러나 신고해 봤자 득 될 게 없는 만큼 대부분은 신고를 하지 않는다. 최근 국방부를 떠나 헬스 넷 페더럴 서비시스의 고위직에 취임한 패트리셔 버스 해군대령은 이렇게 말했다. “의회 관계자, 의사, 일반 납세자 등 많은 사람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가 있다. 트라이케어의 보험금으로 개인적 대리 출산 비용을 충당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다고 자랑하는 여성들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미군에서는 대리 출산에 트라이케어를 적용하는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리모 논쟁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생식 기술의 발전 덕분에 거니샤 마이어스(흑인)는 현재 18주째 쌍둥이들을 임신 중이다. 의뢰인은 독일에 거주하는 카린과 라스 부부로 모두 백인이다. 그처럼 불임 문제의 해결책을 미국에서 찾는 외국인 부부가 많다. 그들 나라에서는 대리 출산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캐나다,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호주, 스페인, 두바이를 포함한 많은 나라의 불임 부부가 최근 몇 년간 미국을 찾아왔다. 요즘은 훨씬 더 저렴한 비용(미국의 10분의 1 수준)으로 불임 문제를 해결하려고 인도에 가는 경우도 있다. 대리 출산 분야에서도 인도에 ‘아웃소싱’을 한다는 얘기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대리 출산의 메카’인 미국의 매력은 여전하다. 카린과 라스는 대리모 알선업체에서 마이어스의 프로필을 확인한 뒤 그녀를 선택했다. 마이어스는 대리모 자격 심사 과정에서 가장 곤혹스럽고 해괴한 부분으로 심리검사를 꼽았다. “질문서에는 이런 괴상한 질문들도 있다. ‘살인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할 수만 있다면 산림 경비대원이 되고 싶은가?’ ‘자신이 대다수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알선업체 관계자들이 내게 ‘아기를 낳은 뒤 그 아이에게 집착할 것 같은가’라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점에선 애착을 느낀다. 내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러자 그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어떤 대리모들은 그런 애착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엔 그 말을 믿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그들의 말뜻을 이해한다. 나는 어머니 같은 유대감은 느끼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기를 돌봐주는 유모가 된 느낌이다.” 마이어스가 심리적으로 그렇게 초연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의 대다수 대리모처럼 그녀는 생물학적으로 뱃속의 아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베이비 M’ 사건이 남긴 유산이다. 대리 출산의 양육권 분쟁과 관련해 최근에 주목 받은 것으론 1993년의 ‘존슨 대(對) 캘버트’ 사건을 들 수 있다. 재판 결과는 의뢰인의 승리였고, 대리모는 아기를 키우려던 욕심을 접어야 했다. 보스턴의 대리모 알선업체 서클 서러거시의 사장인 존 웰트먼에 따르면 의뢰인들이 저명한 알선업체를 이용할 경우 “아기를 순조롭게 낳을 확률은 99%고 양육권을 가질 확률은 100%다.” 그러나 약 2년 전까지만 해도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대리모가 양육권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요?”라며 걱정했다고 웰트먼은 소개했다. 그러나 요즘은 의뢰인의 3분의 1이 그런 얘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리모들이 출산 후 아기에 대한 집착을 떨쳐버리기가 더 쉬워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다수 대리모에겐 아직도 그 점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지나 스캔런은 처음으로 쌍둥이를 대리 출산한 뒤의 며칠을 이렇게 회상한다. “집에 돌아오니 온 세상이 조용해진 듯했다. 억장이 무너졌다. 산후우울증이 아니었다. 내 역할이 끝났다는 사실이었다. 임신 기간엔 내가 유명인사가 된 듯했다. 누군가가 늘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그러나 출산 이후엔 내게 전화를 거는 사람조차 없었다. 지금도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다. 마치 쓸모없는 존재가 된 듯하다.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 않았나 하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전업주부인 스테파니 스콧(28) 역시 대리 출산 이후의 삶이 예상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신 중에는 만사가 자기를 중심으로 즐겁게 진행됐기 때문에 더욱 대비가 됐다. 임신 7개월 반 동안 무척 행복했다. 다만 각종 아기용품을 사고 싶은 충동만큼은 억누르지 못했다. 그래서 유아용품점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초소형 발레화처럼 생긴 앙증맞은 아기 신발과 분홍색의 신생아용 종합선물세트를 쳐다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콧은 이런 충동을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부풀어 오른 자신의 뱃속에 들어있는 아이가 동부 해안 지대에 사는 의뢰인들의 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물학적 충동에 대해선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베이비 저러스 같은 유아용품점들을 번창하게 만드는 바로 그 충동 말이다. 스콧은 “결국 나는 6개월 분량의 유아 옷을 사 들고 분만실로 들어갔다”고 털어놓았다. “옷들은 내가 그 아기의 부모들에게 주는 선물이 된 셈이었다. 아기를 낳은 내가 축하선물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건네줬으니 이상한 상황이 돼 버렸다.” 그러나 이것도 아이와 이별해야 하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의뢰인들은 그 애를 잠시 동안 내 팔에 안겨줬다. 하지만 나는 아기를 쳐다볼 수 없었다. 그래서 눈을 꼭 감은 채 아기의 손가락 10개와 발가락 10개를 하나씩 만져봤다. 그러곤 부모에게 건네줬다. 그 뒤 나는 한 달 내내 울었다. 완전히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스콧이 낳아준 그 여자 아이는 지금 세 살이다. 스콧은 1년에 두 번, 아기의 생일과 성탄절에 아기의 사진을 받는다. 아기에 대한 애착 문제로 알선업체와 사전에 더 많은 상담을 했었다면 그렇게까지 상실감이 커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스콧은 말한다. 그러나 그 알선업체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소규모 회사였다. 대리 출산을 위한 포괄적인 로드맵에는 애착 문제뿐만 아니라 대리모와 의뢰인의 관계 설정 문제도 포함돼야 한다. 후자는 대리 출산 분야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문제다. 대리모와 의뢰인 양측의 목적과 희망 사항은 여러 차례의 대화와 질문서 작성 등을 통해 사전에 명료하게 정리돼야 한다. 출산 후에 양측이 서로에 대해 어떤 관계를 바라는지(예컨대 긴밀한 관계 혹은 소원한 관계 등), 낙태나 선택적인 유산(쌍둥이의 경우) 같은 까다로운 윤리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사전에 합의해야 한다. 또 의뢰인들이 잠재적 대리모에 대해 어떤 요구 사항이 있는지도 명확히 해 둬야 한다. 그런 뒤에 당사자들이 알선업체의 중개 아래 계약하는 게 바람직하다. 독신 남녀들이 중매업체를 통해 관계를 맺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대리모처럼 의뢰인도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독신과 기혼 등 다양한 부류가 있다. 연령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상이한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은 마치 비교문화학 연구에서의 실험과 비슷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은 성공 확률이 높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알선업체인 서러게이트 페어렌팅 센터의 수석 심리학자 힐러리 해너핀은 “과연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 보수적인 군인 아내와 프랑스인 동성애 커플이 긴밀한 유대감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물론 대리모와 의뢰인의 연결이 성공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제니퍼 캔터와 리사 스미스의 관계처럼 돈독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리모 크리스티나 슬레이슨(29)은 지난 1월 멕시코시티의 남성 동성애 커플을 위해 사내아이를 낳아줬다. 그러나 양측은 서로 간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데 공감했다. 세 아이의 어머니로 샌디에이고에서 해군 위생병인 남편 조셉과 살고 있는 슬레이슨은 이렇게 말했다. “서로 연락하며 지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그 이상으로 가까워질 필요성은 못 느꼈다. 우리는 아기를 낳는 문제로 만났을 뿐이라는 점을 서로 명확히 했다.” 그러나 만사가 늘 그렇게 명확하지는 않다.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독신남 조셉은 혼자 힘으로 적절한 대리모를 찾는 과정에서 좌절감을 느꼈다. 특히 첫 번째로 만난 대리모가 겁을 먹고 물러났을 땐 더욱 실망했다. 또 타마라와 조 보브 부부도 자신들의 세 쌍둥이를 임신한 대리모가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태아들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도 통하지 않았다. “그 대리모는 과거에 엄청나게 큰 쌍둥이를 자연분만으로 낳은 적이 있는데, 그중 한 아이는 발이 먼저 나오는 역산(逆産)이었다. 그녀는 그런 일이 자신에게 발생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 협조하려고 하지 않았다.” 타마라는 걱정으로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부부는 출산 후에도 대리모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 계획이었지만 그녀가 의사들의 말을 듣지 않으니 참으로 난감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만사가 제대로 진행되는 체해야 했다. 아기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대리모가 주도권을 쥐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타마라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세 쌍둥이는 31주째에 제왕절개 수술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대부분의 대리모는 알선업체의 요구에 따라 상조회에 가입한다. 그런 대화 모임에선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희한한 요구사항이 단골 화젯거리다. 한 대리모는 군인인 남편이 아시아로 파견됐을 경우 그가 일시 귀국한다 해도 섹스를 하지 말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가 아시아에서 외도를 했다면 성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네브래스카주의 대리모 제니퍼 핸슨도 의뢰인들로부터 몇 가지 요구 사항을 들었다. “독립성이 강한 중서부 출신의 여성”인 핸슨이 보기엔 이상한 요구였다. 한 가지는 주유소에서 핸슨이 직접 주유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의뢰인들은 주유 동작이 유산을 야기할 수도 있는 것으로 믿었다”고 핸슨은 말했다. “내가 사용하는 세척제를 모두 천연 제품으로 바꾸라는 요구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클로록스(세제 등 가정용품 생산업체) 제품에 익숙한 사람이다. 천연제품을 어디에서 구입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의뢰인들이 천연제품을 구입해 소포로 보내왔다.” 조지타운대 철학 교수인 마거릿 리틀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리모는 임신 기간 중 자신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대리 출산 계약에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을 모른다. 물론 대리모는 출산 후 아이를 반드시 넘겨줘야 한다. 그러나 낙태를 하는(혹은 하지 않는) 문제, 또는 특정 음식이나 특정 행위를 강요 받을 수 없다. 의뢰인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보수 지불을 보류하는 것뿐이다. 리틀 교수는 “대리 출산은 자신의 신체 사용권을 돈 받고 파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윤리 문제를 야기한다”면서 “역사적으로 보면 대리모들이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몇몇 알선업체의 보고서에 따르면 대리모 중에는 출산한 지 몇 주 뒤에도 자신의 모유를 짜서 외뢰인들에게 보내는 자상한 사람들도 있다. 모유를 먹지 못할 경우 신생아의 면역체계가 약해질까 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대리모 제니퍼 캔터는 3주 전 조너선과 이선 쌍둥이를 분만한 뒤 집에서 요양 중이다. 그녀는 의뢰인 가족과의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다. 이제 두 가족의 삶은 불가분의 관계다. 의뢰인인 리사와 케리 부부는 고향인 조지아주로 돌아가기 전에 쌍둥이를 데리고 캔터의 집을 찾아갔다. 리사는 그 쌍둥이들을 “삶의 진정한 의미… 절대적으로 완벽한 존재”라고 표현한다. 리사와 케리는 다음엔 딸들을 낳고 싶어 한다. 또 캔터처럼 좋은 대리모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캔터는 대리 출산의 보람을 만끽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대리모가 될 계획은 없다. 이제는 정상적인 자세로 앉아 복부가 눌릴까 봐 걱정하지 않고 달리아를 꼭 껴안을 수 있게 된 것만도 기쁘다. 다른 사람을 위해 아기를 낳아주고 싶다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도 행복했다. 3주 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상상했던 바로 그런 경험이었다.”
With JENEEN INTERLANDI and DANIEL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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