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세 나라는 동양을 대표한다. 이 3개국은 된장을 먹고 머리 색이 검고 그리고 황색인종이라는 공통점 외에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들어가는 욕조를 이용한다는 점 역시 묘하게 일치한다. 찜질방이란 고온의 실내에서 쉬는 것을 낙(樂)으로 삼는 나라는 어쩌면 우리뿐일지 모른다. 섭씨 41도의 열탕에 몸을 담그면 전신의 통증이 사라지며 기분이 좋아진다. 성병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대중온탕 대신 오염된 물과 접촉할 필요가 없는 사우나가 보급됐다. 뜨거운 공기로는 전염이 안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런 극성스러운 목욕문화는 다른 이유로도 금지됐다. 서구에서 한때 호황을 누리던 대중탕이 사라진 역사는 이러하다. 유럽에서 온천 발달은 로마 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탕치(湯治)는 이탈리아가 먼저 시작했으며, 그것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독일이었다. 이런 변화는 자연스럽게 온천 탕치의 유행을 몰고 왔다. 독일 남부지방, 가스타인, 비스바덴 등이 그 당시 유명했던 온천지대였다. 그러나 아무래도 산간벽지고 마차를 빌려서 멀리 떠나는 여행이므로 유복한 사람밖에는 이용할 수 없었다. 공중목욕탕이나 탕녀(湯女)가 있는 목욕실이 서민용이라면, 온천은 돈 많은 부르주아의 오락장이었다. 당시에는 피부병이나 골절 치료에 유효하다는 진정한 의미의 탕치였으나, 목욕실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여자들에게도 온천은 목욕하는 곳이라기보다 휴식처로 변해 버렸고, 온천장의 젊고 핸섬한 남성 종업원에게 은근히 추파를 던지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바덴의 어느 온천장에서는 노천온천의 탕조 주변에 온천 목욕객의 벗은 몸을 구경할 수 있는 갤러리를 설치, 귀부인이나 고급 창녀들의 미끈한 몸매를 구경시키고 요금을 받는 특이한 영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의 에로틱한 욕조 풍경을 그린 ‘목욕하는 여자’라는 유화를 보면 욕통 위에 판자를 걸쳐놓고, 거기에 술과 산해진미 안주를 듬뿍 차려놓은 뒤 벌거벗은 상태로 주연(酒宴)을 여는 모습이 보인다. 넓은 욕실에는 마사지용 침대가 놓여있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얇은 망사로 된 가운을 걸친, 몸을 닦아주는 탕녀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춘을 목적으로 하는 근자의 증기탕 서비스걸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창녀가 아닌 일반 여성들도 섹스를 하고 싶을 때는 목욕탕 매니저에게 남자 파트너를 부탁해 목적을 달성했다는 당시 기록이 남아있다. 여러 가지 문헌을 찾아보면 16세기 때 욕탕은 완전히 남녀 혼욕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당시의 목욕문화에 대해 상세히 기록한 『동서목욕문화』란 책에 따르면 ‘이러한 남녀의 풍기문란한 행동에 경악한 정부가 1550년 욕조에 있는 남녀는 필히 속옷을 걸쳐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발동했지만 이 규칙에 동조하는 이용자가 없었다고 되어 있다. 1년의 절반 넘게 섭씨 10도 이하의 추운 북유럽에서 뜨거운 물에 언 몸을 녹이는 목욕은 최고의 편안한 휴식이었고 거기에다 미녀가 동반된 혼욕은 천국생활에 버금가는 도원경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16세기 유럽을 휩쓸고 간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자 유럽 사회에 팽배한 대인접촉기피증은 관권으로도 다스릴 수 없었던 음란의 산지(産地), 목욕탕 문을 자연스럽게 닫게 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일본인들이 자주 상륙하는 샌프란시스코에 마사지 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매춘 목욕탕이 등장하면서 로마시대의 향락적 목욕문화가 다시 일었고, 그 연장선에서 일본과 우리나라에 증기탕이 들어왔다. 목욕과 여자, 일석이조의 쾌락은 그것이 천국을 방불케 한다는 점에서 인간이 잊어버리기엔 너무 강렬한 유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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