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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낭만엔 잔인함이 있다

달콤한 낭만엔 잔인함이 있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중국 네티즌이 자신의 MSN 아이디에 붉은 하트 표시를 달았다. 황금연휴인 노동절 기간 중 카르푸 불매운동에 돌입하자는 뜻이다. 티베트 자치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지원했다는 의혹으로 시작된 카르푸 불매운동은 인터넷 메신저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급속히 유포됐다. 많은 사람이 이에 동참해 카르푸로 향하던 길을 되돌렸다. 프랑스 기업에 대한 중국인의 분노는 최근 올림픽 성화 봉송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 중국 최대 생수업체인 와하하(娃哈哈)그룹 쭝칭허우(宗慶後) 회장은 3억 위안에 달하는 세금을 탈세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봄 발생한 다농과 와하하 간 분쟁이 채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다. 프랑스 기업이 중국의 비즈니스 ‘강호’에서 고난을 겪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동안 중국기업가가 보도한 기업만도 다농을 비롯해 베올리아 워터, 슈나이더 일렉트릭, SEB그룹 등 네 개 회사에 달한다. 다농은 1990년대 중국시장에 첫 진출한 이래 와하하, 정광허(正廣和), 러바이스(樂百氏) 등 3개 민족 브랜드 기업에 대한 M&A를 비롯해 멍뉴(蒙牛), 광밍(光明)유업, 후이위안(匯源) 등 주요 음료회사의 지분을 대거 매입했다. 다농 측은 이에 대해 최종 목표는 중국 음료시장 석권에 있다고 밝혀 관련 업계의 강한 반발을 초래한 바 있다. 베올리아 워터는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상수도 업체 인수에 나서면서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일반 국민은 장래 수도요금 인상 가능성을 우려하고, 관련 업계에서는 수도사업 잠식과 와해를 걱정했다. SEB그룹은 2007년 4월 중국 최대 압력밥솥 회사인 쑤포얼(蘇泊爾, SUPOR)의 지분 61%를 인수하면서 최대 주주가 됐다. 그러나 이번 인수 건에 대해 아이스다, 솽시 등 6개 동종 업체가 연합전선을 구축하면서 실력행사에 나서자 결국 상무부가 ‘외국투자자의 중국기업 M&A 관련 규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심사하기 위한 반독점 청문회를 개최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다. 1994년 정타이(正泰)그룹 주식 80% 매수를 시도한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반대에 부닥치자 1998년 물량을 낮춰 51% 지분 인수로 한걸음 물러섰다. 결국 이마저 무산되자 슈나이더는 정타이의 오랜 경쟁업체인 더리시(德力西)를 대신 인수했다. 그 후 끊임없이 정타이에 대해 권리침해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다농부터 카르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기업은 중국 사람들에게 무법자와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하면 적포도주와 함께 향수의 부드럽고 감미로운 낭만이 떠오르지만 사실은 과거 나폴레옹처럼 도처에서 침략 전쟁만 일으키는 것 같다는 게 중국인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일부 프랑스 회사는 중국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쓰고 있다. 프랑스항공은 중국∼프랑스 노선에 중국인 스튜어디스를 채용하는 한편, 중국인 승객을 위해 정통 중국식 기내식과 다과를 제공하고 있다. 로레알은 궁리(鞏)와 장쯔이(章子怡)를 광고 모델로 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도 아직까지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포털사이트 시나닷컴(新浪網)은 다농의 와하하 인수 분쟁에 대한 네티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다농과 쭝칭허우 회장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참가한 23만2995명 중 70%가 쭝 회장 손을 들어줬으며, 불과 15%만 다농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지난해 말 상무부 산하 ‘중국 외자’ 잡지가 주최한 ‘가장 중국적인 다국적기업’ 선정 결과를 보면 AstraZeneca, BP, P&G, BASF 등 23개 기업 중 프랑스 회사는 단 한 개도 포함되지 않았다.


무자비한 민족 브랜드 인수 시도
다른 나라 기업보다 유독 프랑스 기업이 중국인의 반감을 사는 이유는 투자업종과 일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은 투자업종이 제조업부터 금융보험업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과거 캐터필러의 중국 기업 인수 및 칼라일의 쉬저우(徐州)기계그룹 인수 과정에서 일부 우려를 야기한 적이 있으나 이러한 사례는 일반 서민 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이내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프랑스 기업은 소매, 식품과 경공업 분야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양쯔강(長江) 삼각주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그만큼 일반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베올리아 워터는 일반 소비재 분야에 속하지는 않지만 상수도 문제가 시민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국민 건강에 관련된다는 점에서 당연히 큰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프랑스 기업 특유의 우월 의식도 주요 이유 중 하나다. 프랑스인들은 종종 다른 민족 문화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중국 기업이 프랑스 기업과의 협상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실제 한 국유기업 사장은 과거 가장 고통스러웠던 비즈니스 협상 상대가 프랑스 기업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프랑스의 한 대형 출판그룹 아태지역 총재와 약 3개월에 걸쳐 밤낮없이 협상을 진행했다고 한다. 특히 그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주로 저녁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걸어 밤늦게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게 한 것이다. 수차례에 걸친 힘든 담판 결과 양측은 결국 계약서 작성에 합의하게 됐다. 그러나 프랑스 기업은 본사의 최종 승인을 받기 직전 연락을 끊어버렸다. 광밍유업 왕자펀(王佳芬) 전 이사장 역시 과거 다농과의 협상 과정에서 시종일관 프랑스인 특유의 거만함과 무례함에 분노를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프랑스 회사와 중국 회사는 특성 면에서 유사함이 많다. 공통적으로 ‘관계(네트워크)’와 혈육의 정을 중시한다. 다만 프랑스인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해 외래 문화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하다는 점과 모국어에 대한 우월감이 강하며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인 요소가 있다. 1997년 광저우(廣州) 푸조자동차의 실패는 많은 경영대학원에서 다국적기업 문화충돌의 전형적인 사례로 강의되고 있다. 당시 푸조 경영층은 반강제적이고 생경한 프랑스식 경영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전통적 관념 및 문화코드와 맞지 않아 중국 종업원의 반감을 샀고, 결국 해산까지 이르게 되었다. 광저우 푸조자동차 프랑스 경영인의 주요 경영 목표는 단기간에 높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반면 중국 측은 합자기업을 통해 지역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한편 적극적인 국산화 전략을 추진했다. 10여 년이라는 시간은 양측 최고 경영층이 기업의 공동 가치 창조와 문화적 충돌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이러한 ‘동상이몽’은 거액의 적자만 안고 깨졌으며 결국 결별하고 말았다. 프랑스 회사는 대부분 중국에서 크든 작든 잘못을 범하고 있다. 특히 민족 브랜드 기업에 대한 무자비한 인수합병은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왕자펀 전 이사장은 “다농이 지분 인수전에 뛰어든 첫날부터 궁극적으로 광밍을 손아귀에 넣을 적대적 인수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타이그룹 난춘후이(南存輝) 회장은 “더리시는 잘못이 없다. 그러나 슈나이더는 계속 경계해야 한다”고 고개를 저었다. 한 설문조사 결과 60% 이상의 응답자가 민족 브랜드 기업에 대한 인수는 중국 경제의 자주성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답했다. 전국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자칭궈(賈慶國) 위원은 “이전에 나는 미국이 세계시장 진출을 확대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에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고 느꼈다. 지금 생각하니 프랑스인의 이상주의는 더 낭만적인 것 같으나 현실주의는 더욱 잔인한 것 같다”고 프랑스 기업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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