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자식이 정말 상팔자일까?
어릴 때 우리 이웃(슬로언 씨 부부라고 해두자)은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식이 없는 부부였다. 자식을 못 낳아서가 아니라 슬로언 씨 말로는 그냥 낳지 않은 것이다. 우리 집을 포함해 다른 부모들은 해괴한 일로, 심지어 슬픈 일로 여겼다. 슬로언 씨 부부가 혹여 운 없는 일을 당하기라도 하면(어느 만성절엔 누군가 그들 집에 계란을 던졌고, 산사태로 그 집 풀장이 길 아래쪽으로 밀려난 적도 있다) 다들 자식을 갖지 않기로 한 결정이 그런 운명을 낳았다고 수군거렸다.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 집엔 자식이 없잖아.” 나는 슬로언 씨 집에 놀러 갈 때마다 깔끔한 집 안을 둘러보며 광기나 불행, 또는 후회의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결코 보질 못했다. 적어도 내 눈엔 슬로언 씨 부부가 자식은 없어도 행복하게만 보였다. 어쩌면 우리 부모보다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 집의 사탕접시가 늘 차 있었다는 사실에 감화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가지 연구 결과를 보면 슬로언 씨 부부가 실제로도 주위의 대부분 전통 가족보다는 행복하게 살았을 가능성이 있다. 2006년 출간된 ‘행복 만나기(Stumbling on Happiness)’에서 하버드대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는 몇 가지 연구 결과를 토대로 결혼의 만족도가 첫 아이를 낳은 뒤 급격히 떨어지고 막내가 집을 떠난 뒤에야 다시 높아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부모가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느니 차라리 장을 보거나 잠을 잘 때 더 행복하다고 확인했다. 작가 아서 C 브룩스는 2008년 저서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에서 다른 자료를 인용해 자식 없는 부부보다 자식 있는 부부의 행복도가 7%포인트 작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감정 상태에 관한 가장 최근의 포괄적 연구를 보면, 자식을 가리키는 “복덩어리”라는 용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 모른다. “부모는 자식 없는 부부에 비해 정서적 행복의 수준이 떨어지고 긍정적 감정의 횟수가 적으며 부정적 감정의 횟수가 많다”고 플로리다 주립 대학의 사회학 교수 로빈 사이먼이 말했다. 사이먼은 근래 양육에 관한 연구를 몇 차례 수행했는데 결정적인 연구를 2005년 발표했다. 전국가정가구조사(NSFH)가 미국인 1만3000명에게서 얻은 자료를 분석한 내용이다. “결혼을 한 부부든, 홀몸으로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든, 양부모든, 혹은 자식을 출가시킨 노부부든 모든 부모가 자식이 없는 부부보다 정서적인 행복의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상반되는 결과다. 우리는 자식이 행복과 건강한 인생의 열쇠라는 문화적 믿음을 갖고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이먼은 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뒤 비난조의 메일을 무수히 받았다(그중 하나를 보면 “사이먼 교수는 자녀를 증오하는 게 틀림없다”고 돼 있다). 놀랄 일은 아니다. 그녀의 연구 결과는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하며 자란 믿음의 뿌리를 흔들어놨기 때문이다. 뉴스위크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0%는 가정에 자녀가 늘어나면 행복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자식의 증가가 부모의 행복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 사람은 여섯 명 중 한 명(16%)에 불과했다. 하지만 세상에 어떤 부모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 실제로는 자신의 인생을 덜 즐겁게 만들었다고 선선히 인정하겠는가? 부모들이 잠이 모자란다고,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다고, 뚱한 10대 자녀들을 다루기가 힘들다고 대놓고 신세타령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자녀를 키우기가 힘들어서 기분이 울적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자녀와 자녀 양육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고 시인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벌 받을 소리”라고 젠 싱어가 말했다. 뉴저지주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 싱어는 인기 있는 육아 블로그 MammaSaid.net를 운영한다. “아기 엄마는 모두 행복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상태로 나오는 베이비로션 광고에서, 자녀를 데리고 놀러 갔다는 이유로 어린이처럼 굴어야 하는 디즈니월드의 광고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부모 노릇이란 것이 행복한 순간의 연속인 양 꾸몄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실망한다.” 미국의 부모들이 과연 옛날에도 그처럼 환멸을 느꼈을까? 실제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산업화 시대 이전의 미국에서 부모는 분명 자식을 사랑했다. 그러나 자식도 밥값을 했다. 농장에서 일하거나 가사를 돌보는 식이었다. 자녀는 필수품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보다 정서적인 이유에서 자식을 갖지만 갈수록 복잡해지는 일과 사회환경 때문에 만족을 찾기가 훨씬 더 어려워졌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의 새러 매클래너핸과 줄리아 애덤스는 약 20년 전 중대한 연구를 했다. 거기에서 1950년대보다 70년대 사람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훨씬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그 같은 변화의 일부 이유를 취업 패턴의 대대적 변화에서 찾았다. 요즘은 과반수의 미국인 부모가 집 밖에서 일하고 대가족의 지원을 덜 받는다. 교육·건강보험 제도도 전보다 나빠졌다. 따라서 자녀 기르기가 더욱 복잡해졌을 뿐만 아니라 돈도 더 많이 들게 됐다. 미 농무부는 자녀 하나를 낳아 17세가 될 때까지 키우는 데 13만4370~23만7520달러가 든다고 추산했다. 학교나 대학 수업료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부모 얼굴에 그늘이 질 만도 하다. 사회적 병폐는 차치하고라도, 어쩌면 우리가 부모 노릇에 지나치게 많은 기대를 하는지도 모른다. 전국결혼프로젝트의 2006년 ‘결혼 현황’ 보고서는 부모들의 결혼 만족도가 무자식 부부보다 크게 떨어지는 이유는 이전 세대에 비해 독신 시절과 자녀 없이 지내는 시절이 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5년 전의 평균 결혼연령은 여성이 20세, 남성은 23세였다. 요즘은 남녀 공히 4~5년 늦게 결혼한다. 결혼 후 자식을 키우는 일이 마치 직장에서의 성공(“월급이 인상됐어!”)이나 즐거운 사회생활(“와, 이 술 맛 끝내준다!”)처럼 결혼 전의 행복했던 경험과 비교된다는 뜻이다. 말 안 듣는 자녀를 학교에 등·하교시키거나 아끼는 스웨터에 아기가 토한 흔적을 묻힌 채 황급히 출근하는 일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자식이 없는 부부들은 이 모든 연구 결과에서 분명 보람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반드시 나쁘지만은 않다. 부모들은 여전히 무자식 부부에 비해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더 크게 느낀다고 말한다. 양육에는 계량화가 불가능한 또 다른 보람이 있다. 예컨대 나는 어떤 사람을 우리 아들만큼 깊이 있게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슬로언 씨 부부가 우리 부모에 비해 무의미한 인생을 살았다거나 혹은 우리 부모가 슬로언 씨 부부보다 7%포인트 덜 행복하게 살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사탕접시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일지 모르겠다. 반이 비었다고 보느냐, 반이나 찼다고 보느냐의 차이 말이다. 적어도 부모 입장에서 난 계속 그렇게 생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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