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협상은 없다! 오로지 싸울 뿐”

“협상은 없다! 오로지 싸울 뿐”

물라 사비르 앞에서는 평화회담의 ‘평’자도 꺼내지 말 일이다. 탈레반의 고위 사령관인 이 몸집 큰 아프간인은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지대의 한 포목점에서 그는 뉴스위크 기자에게 “정책 변화나 권력 분점이나 장관직이나 바라는 정치 공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 이슬람 법을 회복하려고 성전을 치른다.” 협상 거부는 탈레반의 최고 지도자인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가 직접 내린 지시라고 사비르(이름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가 말했다. “오마르의 말투가 처음부터 워낙 강경해 누구도 감히 그 문제를 입에 올리지 못한다.”

문제는 사비르가 몇 해째 물라 오마르를 보지 못했고, 그를 봤다는 사람을 알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무슬림 휴일에 물라 오마르의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려지는 글만이 이 애꾸눈 사령관이 아직 살아 있다는 유일한 증거다. 사비르는 어쨌든 자신을 비롯한 수천 명의 탈레반 전사는 권력을 되찾는 날까지 계속 싸우겠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모두들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작 그 소망을 현실로 바꿀 열쇠를 쥐고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딴전을 피운다. 탈레반과 함께 저항운동을 하는 잔혹한 굴부딘 헤크마티야르는 협상에 찬성한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도 그렇다.

사우디 국왕 압둘라는 라마단 기간에 아프간과 파키스탄 관리들, 전직 탈레반 대원들을 메카로 불러 그들의 의사를 타진했다. 지난주에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부족 원로들과 정치인들이 이슬라마바드에서 이틀간 회담을 열었다. 물라 오마르의 전사들은 전세가 유리한 이상 싸움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지난 5월 이래 아프간에서 연합군의 사망자 수는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숨진 미군 사망자 수를 넘어섰다. 2004년 궤멸되다시피 한 아프간 저항세력이 확실하게 되살아났다. 게이츠 국방장관이 원칙적으로 협상을 지지한다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평화회담을 서두르는 것도 아니다. 큰 움직임은 차기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 미3뤄질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지상의 상황도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군사적으로 약해 보이는 시점에서 회담에 임하면 불완전한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2005~2007년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로버트 뉴먼이 말했다. 이라크 병력증파 작전의 설계자인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장군이 새로 맡은 미군 중부군 사령관 입장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길 기대할 뿐이다.

이라크 사태의 반전은 알카에다 이라크 조직의 잔혹상에 신물이 난 안바르 지방 부족 원로들이 세력을 규합해 저항세력에 대항하면서 이뤄졌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은 정신병적인 외부 세력의 지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 탈레반 사령관들은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오사마 빈 라덴 휘하에서 성전을 펼치는 전사들이 아프간에서 더 이상 주요 세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숨어서 우리와 함께 싸우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고 물라 사비르가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거점이 없다. 그들이 미국을 공격하기 전에도 그랬듯이 우리 땅을 쓰도록 허용하지 않겠다.” 탈레반으로서는 9·11 사태와 그에 따른 미군의 침공이 분하기만 하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것은 알카에다 탓이다”고 사비르가 푸념했다.

“우리는 이슬람 국가를 잃었지만 알카에다는 잃은 게 없다.” 어쨌든 탈레반의 어느 단위와 대화하든 알카에다와 완전한 절연이 전제돼야 한다. 일단 그 조건이 갖춰지면 페트라우스가 그들의 내부 분열을 이용하는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 전사들의 일부는 파슈툰 민족주의자이고 나머지는 엄격한 이슬람주의자다.

그 외 단순한 폭력배들도 있다. “그곳에서 근무했던 시절에 들은 정보를 토대로 평가하자면 대체로 그들이 저항하는 까닭은 첫째가 경제사정이고 이념은 그 다음”이라고 전쟁 첫해에 아프간에서 미 해병대 장교로 복무했던 너세니얼 픽이 말했다. 현재 신미국안보센터(CNAS)에서 일하는 그는 올여름 연구 목적으로 그곳으로 돌아갔다.

“전사들의 8%가 시간제다. 군대가 수집한 자료에 그렇게 나와 있다. 그 시간제 전사와는 대부분 ‘화해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다시 말해 저항세력을 떠나도록 설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우디 회담에는 탈레반의 일부 간부도 관심을 보였다. “이제 탈레반은 전투 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안다”고 파키스탄에서 활약하는 탈레반의 고위 정치요원 자비불라가 말했다.

“회담을 고려해볼 수도 있겠다.”(그러나 탈레반의 한 대변인은 물라 오마르가 메카에 대표단을 보냈다거나 혹은 요구사항을 보냈다는 보도를 강하게 부인했다.)

탈레반은 원래 기본적으로 지역 민병대와 부족 민병대의 느슨한 연합체다. 각자의 구역에서 독자적 사령관들이 막대한 자치권을 누린다. 와해된 물라 오마르 정권의 중세적 칙령을 계속 강행하는 사령관도 있고, 음악과 여성의 코란 강습이나 심지어 텔레비전 시청을 허용하는 사령관도 있다.

강경파가 다스리는 헬만드 지방에선 이발사들이 수염 다듬는 일을 할 수 있다. 하부조직에서는 불신감이 팽배해진다. 전장을 벗어나면 탈레반 전사들도 물라 오마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대놓고 묻기도 한다. 혹자는 그가 친척이자 2인자인 물라 바라다르에 의해 가택연금, 또는 그 이상의 구속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가 스스로 물러났거나 다른 사람 손에 제거됐을지도 모른다”고 물라 오마르의 보좌관을 지낸 사람이 익명을 요구하며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그가 어디에 있다거나 무엇을 했는지 확실한 증거를 가진 사람을 보지 못했다.” 물라 오마르라면 성전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민간인 학살과 포로 참수를 두고 뭐라 할까? 그 보좌관이 물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옛 상관은 부하들이 못된 짓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항상 속상해 하는 단순하고 품위 있는 시골 성직자였다고 말했다. 탈레반 대원들은 바라다르의 경쟁자들이 늘 나쁜 일을 당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은 2006년 미군의 칸다하르 공습으로 사망했다. 2007년 초에는 파키스탄군이 또 한 사람을 체포했다.

그에 이어 악명 높은 물라 다둘라 아크훈드가 미군 특공대의 기습공격으로 숨졌다. 그의 아우 물라 만수르 다둘라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지만 바라다르에게 해직 당했다. 만수르가 순순히 물러나지 않자 파키스탄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려던 그를 체포했다. 희생자 넷이 모두 카카르족이다.

포팔자이족인 바라다르가 탈레반 지도부에서 카카르족을 모조리 제거하려고 파키스탄군과 미군에 정보를 흘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바라다르의 논평을 듣고자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래도 탈레반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을 본능적으로 증오한다는 점에서 결속력이 있다.

탈레반 사령관들은 미군과 대화는 혹시 가능할지 몰라도 카르자이와는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아프간 사람들(탈레반 소속이든 아니든)이 미국 정부의 전투부대 증파계획을 크게 반긴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프간의 내 친구들 중 공식 루트가 아닌 사석에서 병력 증파를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카불에 주둔한 고위 서구 외교관이 익명을 요구하며 말했다.

“외국 군대는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민간인의 죽음을 부르고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미군 지상부대가 엉뚱한 집을 공습목표로 정할 때마다 저항세력의 지지도는 올라간다. “이건 과학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우리의 공습으로 한 사람이 사망할 때마다 적이 적어도 세 명은 새로 생기는 것 같다”고 국경 양쪽에서 활동하는 한 연합군 장교가 이름을 밝히지 않으며 말했다.

“한 사람을 죽이면 그의 동생이나 사촌이 복수를 하겠다고 나선다.” 탈레반이 고의적으로 아프간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사용한다고 말하는 미군 병사가 많다. 그래도 미군은 3500명을 추가로 파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 국방부 기획 담당자들은 최다 2만 명이 더 있어야 탈레반의 붕괴가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병력을 어디서 조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탈레반의 국경선 은신처가 주요 관심 대상이다. “우리의 취약점은 파키스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그곳에 사는 자비불라가 말했다. “파키스탄은 우리를 공격해 해산시킬 능력이 있다.” 페트라우스는 이번 주 이슬라마바드에 들를 예정이다.

파키스탄의 한 고위관리는 익명을 요구하면서 페트라우스 장군이 이미 탈레반 섬멸 합동작전의 기본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망치와 모루’ 작전이라고 그 관리가 말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저항세력을 두들기고 파키스탄군은 못을 뽑는 모루 노릇을 하면서 국경선에서 퇴로를 차단한다는 구상이다.

파키스탄 관리들은 자국 군대가 그 역할을 맡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차기 미국 대통령은 힘든 장기전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선거 직전 뉴스위크는 두 후보에게 아프가니스탄에 관한 견해를 물었다. 존 매케인의 외교정책 수석 보좌관 랜디 쇼이너만이 e-메일로 답을 보내왔다.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장군이 지적했다시피 이라크 전쟁의 중대한 교훈 하나는 적을 제거하는 방식으로는 저항을 타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저항세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편을 바꾸는 쪽이 낫겠다는 계산을 할 때 저항이 무너진다. 간단히 말해 저항세력의 하부조직이 사면초가에 빠져 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먼저 무너질 공산이 크다.”

한편 버락 오바마는 이라크 모델이 얼마나 유효할지 회의를 표명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비슷한 유형의 기회가 있을지 탐구할 가치가 있다는 페트라우스 장군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그 역시 e-메일로 답했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매우 다른 나라다. (이라크) 알안바르의 부족들로부터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의 부족들에 ‘각성운동 전략’을 단순하게 수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온건파와 과격분자들을 분리하려는 계획은 아프간인들 스스로의 노력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에 과연 그런 일을 해낼 사람이 있느냐는 의문에는 답이 없다. 물라 사비르 같은 전사를 회담장에 끌어들이려면 힘든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전쟁이 언제까지 가든 개의치 않는 눈치다. “우리에겐 승리나 패배의 시간표가 없다”고 그가 말했다. “우리의 의무는 계속 싸우는 것이다.” 그런 각오를 물리치고 이기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페트라우스가 즐겨 하는 말이 있다. “힘들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With JOHN BARRY, DAN EPHRON, MARK HOSENBALL, JEFFREY BARTHOLET, SUZANNE SMALLEY and RICHARD WOLFFE in Washington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공동 사냥한 게임 아이템 ‘먹튀’ 소용없다…”게임사가 압수해도 정당” 판결 나와

287억 바나나 '꿀꺽'한 코인 사업가..."훨씬 맛있네"

3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소송 이어져…캐나다 언론사 오픈AI 상대로 소송

4'땡큐, 스트레이 키즈' 56% 급등 JYP...1년 전 '박진영' 발언 재소환

5더 혹독해질 생존 전쟁에서 살길 찾아야

6기름값 언제 떨어지나…다음 주 휘발유 상승폭 더 커질 듯

7‘트럼프 보편관세’ 시행되면 현대차·기아 총영업이익 19% 감소

8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놓친 것

9‘NEW 이마트’ 대박 났지만...빠른 확장 쉽지 않은 이유

실시간 뉴스

1공동 사냥한 게임 아이템 ‘먹튀’ 소용없다…”게임사가 압수해도 정당” 판결 나와

287억 바나나 '꿀꺽'한 코인 사업가..."훨씬 맛있네"

3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소송 이어져…캐나다 언론사 오픈AI 상대로 소송

4'땡큐, 스트레이 키즈' 56% 급등 JYP...1년 전 '박진영' 발언 재소환

5더 혹독해질 생존 전쟁에서 살길 찾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