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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시대’의 예술과 문화

‘부시 시대’의 예술과 문화

예술가들의 창작 열의에 불을 지피는 것은 고뇌와 불안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적어도 그 점에선 43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예술계에 축복이었을 성싶다. 문화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면 8년이란 세월은 영겁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시대를 돌이킬 때 영화 한 편, 책 한 권 등 지엽적인 창을 통해 본다. 앞으로 수십 년이 흐른 뒤, 역사에서 부시가 통치한 지난 8년의 미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 무엇일까? 뉴스위크의 문화 담당 기자들이 부시 시대의 미국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분야별로 선정했다.



TELEVISION:
'Battlestar Galactica'


‘배틀스타 갤럭티카’


기획된 테러,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보복전쟁,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냉혹한 자살공격…. 미국 공영방송 PBS의 테러단체 알카에다 특집 프로그램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 공상과학 드라마 채널 사이파이에서 방영된 ‘배틀스타 갤럭티카’의 줄거리다. 제목이 어설퍼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이 드라마는 9·11 이후 미국 사회의 두려움과 불확실성, 도덕적 모호함을 지난 8년 동안 나온 어떤 TV 시리즈보다 더 잘 포착했다.

심지어 신보수주의적 공상 드라마 ‘24’보다 나았다. 두 드라마 중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테러와의 전쟁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피해를 좀 더 솔직히 다루면서, 삶의 방식을 보존하기 위해 치르는 전투에서 생기는 까다로운 문제들을 본격적으로 파헤쳤다. 고문의 효과, 개인 권리의 박탈, 위기에 처한 국가에서 애국심이 갖는 의미 등이 그것이다.

또 ‘24’가 감히 제기하지 못한 한 가지 질문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다룬다. 과연 우리 삶의 방식이 보존될 가치가 있는가?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늘 시청자들의 상식에 도전한다. ‘24’가 ‘덤빌 테면 덤벼봐’라는 부시 스타일의 주전론을 전달한 게 아닌 것처럼 이 드라마도 유화론과는 거리가 멀다.

첫 부분에서 인류는 자신들이 만든 로봇 종족인 사일론들에 의해 거의 멸망한다. 유일한 생존자들은 배틀스타 갤럭티카로 불리는 우주선에 머문다. 그들이 살아남은 것은 선장 윌리엄 애다마(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가 전시에 발동한 행동제한 조치를 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다마는 강경파다.

실체가 없는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도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가 옳았다. 인류가 방심한 순간 사일론들이 공격했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생존자들은 적을 막아내는 데 따르는 대가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한다.

미래 세계를 보여주는 배경도 공상과학물에서 상투적으로 표현되는 금속성의 차가움이 아니라 고요하고 우중충한 느낌을 준다. 이런 세팅도 작가들의 메시지를 피부에 와 닿게 해준다. ‘배틀스타 갤럭티카’는 공상과학물이 최고로 간주하는 목표를 이뤄낸다.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를 소름 끼칠 정도로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다.


JOSHUA ALSTON





MUSIC: Green Day's
'American Idiot'


‘아메리칸 이디엇’


그린 데이는 2004년 9월 앨범 ‘American Idiot’을 내놓았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 두 달 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음악팬들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남성 3인조 펑크팝 밴드인 그린 데이가 한물갔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전쟁으로 피폐해 가는 미국 사회의 두려움과 좌절, 냉담함을 음악으로 잘 포착하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이전까지 그린 데이의 간판 앨범은 ‘Dookie’였다.

그중의 히트곡은 TV 시청과 자위행위로 소일하는 게으른 오후에 대한 찬가였다. 무너진 사회 시스템, 사라져 가는 중산층,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노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이나 닐 영 등 좀 더 노련한 베이비붐 세대의 몫이었다. 그 두 음악가는 진지한 저항음악을 발표했지만 이미 뻔히 다 아는 얘기를 반복하는 듯했다.

아이팟 세대와 그들의 아티스트들은 그런 음악에 심취하기보다는 휴대전화 벨소리를 수없이 다운로드하거나 아직도 1999년인 양 파티를 즐기기에 바빴다. ‘American Idiot’이 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간 것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그 노래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만이 아니라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밴드 때문이기도 했다.

어릿광대 같았던 그린 데이가 마침내 진지해진 것이다. 아무도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릴 수가 없었다. ‘American Idiot’은 그린 데이의 리더 빌리 조 암스트롱이 만든 록 오페라 앨범이다. 부시가 통치하는 미국에서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방황하는 10대 소년 ‘Jesus of Suburbia’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에겐 ‘우리를 믿으라’고 하는 이 나라가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가사가 그 심정을 잘 포착했다. 이어지는 곡들에서 이 10대는 몽유병 환자처럼 잠이 든 상태에서 세븐 일레븐 편의점의 주차장에서 이라크의 전장까지 이곳저곳을 헤맨다. 수록곡 ‘Wake Me When September Ends’의 비디오는 반(反)영웅을 내세워 직격탄을 날린다.

미국에선 앞날이 막막하다고 느낀 그는 애인을 속이고 해병대에 자원해 이라크로 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American Idiot’은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21세기 초의 미국에 실망한 모든 사람을 위한 음악이 됐다. 물론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이 앨범은 저항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American Idiot’은 특별히 정교하거나 감명적이지는 않다. 시적 가사를 원한다면 스프링스틴이 낫다. 그러나 이 앨범이 중요한 것은 마침내 누군가가 미국에 대한 실망을 음악으로 표현했으며, 그 누군가가 바로 그린 데이였다는 사실 때문이다.


LORRAINE ALI



ART: Jeff Koons's 'Hanging Heart'


‘매달린 심장’


2007년 11월 팝 아티스트 제프 쿤스의 붉게 반짝이는 ‘매달린 심장(Hanging Heart)’이 경매에서 2700만 달러에 팔렸다. 당시 현존 작가의 작품으론 가장 비싼 가격이었다. 이 조각품은 높이 2.7m, 두께 1.2m의 밸런타인 데이 장식품으로 강철로 된 금색 선물용 리본에 매달려 있다. 가격도 그렇지만 작품 자체도 부시 시대의 미술계를 완벽하게 상징한다. 진부함이 심오함으로 포장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미국 석유 재벌들과의 유착관계를 부인하면서 ‘서민’들을 끌어안겠다고 말한 것처럼 쿤스도 억만장자 수집가들을 위한 ‘아이러니의 화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단순하고 소탈한 사람으로 보통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쿤스는 ‘단순한 향유(Easy Fun)’라는 거대한 회화 작품으로 그런 시도를 한다.

이 작품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처럼 전부 외주로 제작됐다. 80명의 도우미가 6000시간 이상을 투입했다. 그리고 거물 미술품 딜러인 래리 가고시언의 중개로 수백만 달러에 팔렸다. 다시 말해 쿤스는 미술계의 헤지펀드 거물이다. 쿤스의 작품은 41대 조지 H W 부시 대통령 때부터 거대하고 볼품없는 세라믹 입상 ‘마이클 잭슨과 거품들’(1988) 같은 작품들로 고가 미술 시장을 즐겁게 했다.

클린턴 시절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거대한 ‘풍선 개(Balloon Dog)’로 그런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현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야 비로소 ‘문화 만신전(萬神殿)’[회고전, 경매가 신기록 등을 의미한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은 부시의 공식적인 발표가 늘 그랬듯이 친절하면서도 진부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부시가 곤혹스러운 질문을 곧잘 단순 명료한 대답으로 받아 넘겼듯이 쿤스에게도 막강한 힘이 있다. 바로 미술시장의 힘이다.


PETER PLAGENS





BOOKS: 'The Corrections'


‘교정’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 ‘교정’에는 조지 W 부시나 오사마 빈 라덴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2001년 9월 1일 출간된 이 책은 그런데도 향후 7년간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한다. 프랜즌은 실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국민이 밤잠을 설치는 국가를 그려낸다.

이 책의 두 번째 문장은 이렇다. “감으로 느낄 수 있어 뭔가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거야.” 물론 그 무시무시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러나 지금 와서 이 책을 다시 보는 독자들은 ‘9·11 이후의 세계’ 또는 ‘부시 시대’의 특징으로 지칭돼온 골칫거리 중 많은 것이 그 훨씬 전에 이미 예견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성인이 된 자녀 3명을 둔 미국 중서부의 램버트 가족을 이야기한다. 자녀들은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에 다 같이 집에서 모이자고 애원하는 어머니의 청을 매정하게 거절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프랜즌은 2000년대의 첫 10년을 지배하게 되는 주제 중 많은 것을 끄집어낸다. 지구온난화, 경기침체, 의료위기, 마약, 바이러스성 마케팅(사용자가 e-메일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메시지나 이미지를 받고 보내게 하는 마케팅 기법), 동유럽의 불안정, 심지어 유기농식품 운동까지 등장한다.

사소하지만 딱 맞아떨어지는 예는 이렇다. 딸인 드니즈는 요리사인데 “브루클린의 스미스 스트리트 식당들을 탐구한다.” 실제로 2008년 7월 9일자 뉴욕 타임스는 스미스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하는 “브루클린의 식당 전성기”에 관한 기사를 실었다. 물론 오프라 윈프리가 이 책을 자신의 북클럽 도서로 선정했을 때 벌어진 소동을 거론하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이야기할 수 없다.

프랜즌은 자신의 책이 오프라가 그때까지 선정한 ‘지나치게 감상적인’ 내용의 도서 대열에 끼게 됐다며 전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에겐 엘리트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었고 오프라는 그를 자기 TV쇼에 초청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이런 논쟁도 지금은 예언적으로 느껴진다. 현재 반지성주의가 미국의 국가 담론을 지배하게 됐기 때문이다.

부시가 걸핏하면 지성적인 이야기를 “공상적인 말”이라며 거부감을 표한 것이 그 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엘리트주의’는 반미국적이라는 의미를 띠었다. 오죽했으면 오바마(오프라도, 프랜즌도 그를 지지했다)가 유세 때 자신과 아내 미셸은 “엘리트주의적이고 아는 체하는 지성인 부류”가 아니라고 변명을 했을까?

사실 ‘교정’은 엘리트주의적인 작품이 아니다. 훈훈한 사회적 소설을 서사시적으로 방대하게 그렸다. 그 후 수많은 소설가가 그런 작품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미국 사회는 9·11 문제로 기능장애를 일으켰다. 무시할 수 없으면서도 너무 커서 정면으로 다루기가 불가능한 문제다. 앞으로 또 누군가가 그 테러 공격을 2001년 여름 미국인들의 집단심리 속에서 이미 끓고 있던 불안감과 잘 혼합해 소설로 써낼 것이다.

그때까지는 ‘교정’이 우리 문화가 7년 전의 사건들 ‘이전’과 ‘이후’로 깔끔하게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고쳐줄 수 있는 좋은 교정책이 될 것이다.


JENNIE YABROFF



MOVIES: 'Black Hawk Down'


‘블랙 호크 다운’


마크 보우든이 1999년 쓴 책을 영화로 옮긴 ‘블랙 호크 다운’은 미 육군 특수부대가 1993년 소말리아의 한 군벌을 체포하기 위해 투입됐다가 실패한 사건을 그렸다. 미군 18명이 사망했고, 헬기 조종사 두 명의 절단된 시신이 차량에 매달려 모가디슈 길거리에서 끌려 다니기도 했다. 곧이어 클린턴 행정부는 소말리아 구호작전을 중단하고 철군했다.

리들리 스콧이 감독한 이 영화는 9·11 후 석 달 만에 나왔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감행할지를 두고 논쟁에 휘말렸을 때다.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그리고 완성도 면에서 성공했다. 1억 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렸고, 스콧 감독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됐다. ‘블랙 호크 다운’은 겉보기엔 반전 영화인 듯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전쟁을 지지하는 영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수치스러운 패배를 묘사했지만 그 군인들은 전우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영웅들이었다. 잔혹한 살육 장면도 있지만 용기, 극기, 명예도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애국심을 자극한다. 이 영화는 미국인들이 9·11에 대한 복수로 전면전을 치르겠다는 열의에 불을 댕기는 효과도 있었던 듯하다.

미국인들은 전쟁의 고통을 쉽게 잊어버리는 듯하다. 마치 여자들이 아기를 낳고 나면 산고를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미국에서 일어난 전쟁 중 가장 참혹했던 남북전쟁 후 약 30년이 지난 1890년대에 미국은 다시 전쟁을 부르짖었다. 미국과 쿠바의 종주국인 스페인이 쿠바를 둘러싸고 1898년에 벌인 미서(美西)전쟁이다.

이듬해 일어난 필리핀 저항세력 진압 전쟁에서는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나온 미군 전사자만큼의 병력이 목숨을 잃었고, 많은 잔혹행위가 자행됐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곧잘 잊어버린다. 1917년 미국의 젊은이들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다시 몰려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미국이 전쟁의 유혹에 얼마나 쉽게 빠져드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가 많다. 베트남전 후로는 한동안 전쟁 영화가 없다가 ‘커밍 홈’(1978)과 ‘플래툰’(1986)처럼 전쟁을 비통하게 그린 영화가 몇 편 나왔다. 그리고 그 후 ‘가장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 1911~1924년 태어난 미국인들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미국의 산업을 재건해냈다)’에 대한 향수를 반영한 영화들이 대거 쏟아졌고, 전우애를 찬양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가 나왔다.

요즘 나오는 이라크전 영화가 대개 어둡고 음울하며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할리우드에 좀 더 시간을 줘보자. 머지않아 또다시 전쟁을 찬양하는 영화들이 쏟아질 것이다.


EVAN THOMAS





MOVIES: Cohen's 'Borat'


‘보랏’


부시 시대의 결정적인 사건들에 대한 영화는 많았다. 9·11을 소재로 한 ‘플라이트 93’,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다큐멘터리 ‘제방이 무너졌을 때’ 등. 그 영화들은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고 통렬하게 반영했다. 그러나 나중에 미국인들이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그런 작품 중 하나가 부시 시대의 단면을 정확히 묘사했다고 생각할까?

아니라고 본다. 나는 좀 더 광적이고 기이하게 왜곡된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을 제안하고 싶다. 바로 ‘보랏’이다. 아주 특이할 뿐 아니라 다른 시대엔 나타나리라고 상상하기조차 불가능한 영화다. 왜 하필 ‘보랏’일까? 가장 명백한 이유는 이 가짜 다큐멘터리가 미국인들이 애써 숨기려고 하는 무의식을 드러내서다.

고집불통이고 성차별주의자이며 터무니없이 막무가내인 카자흐스탄인 ‘저널리스트’ 보랏 사그디예브가 미국 체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미국에 도착한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인종차별,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가 쏟아져 나온다. 공인의 언급에서 약간이라도 편견이 나타나면 곧바로 언론이 난리를 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미국의 위선이 그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무한한 자유와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당시엔 많은 미국인이 주류 미디어의 거세된 ‘객관성’보다는 현실에 더 가까운 사회의 실태를 알기 위해 존 스튜어트와 스티븐 콜버트의 코미디에 눈을 돌렸다.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보랏’은 더 저급한(그리고 어쩌면 더 고급스러운) 진실을 찾기 위해 공정성과 고상함을 내팽개친다. 그래서 ‘여자들을 뻑 가게 만드는 것’을 장착한 차가 있느냐는 질문에 눈도 깜짝하지 않는 중고차 판매상, 유대인을 저격하는 데 필요한 글록 권총을 추천하는 총포상, 보랏이 자신의 배설물을 담은 백을 들고 저녁 테이블에 나타났을 때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지만 흑인 매춘부를 불러들이자 집 밖으로 내쫓는 남부의 백인 여성 등을 만나게 된다.

물론 ‘보랏’이 익살스럽게 폭로한 추악한 진실은 부시 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편견과 무지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삶을 만인이 보는 카메라 앞에서 실현하는 데 집착하는 문화에서 진정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부시 이전의 시대에는 보랏이 만나는 사람들이 카메라를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페이스북, 유튜브, 리얼리티쇼가 문화를 압도하는 시대엔 카메라가 모두를 다 불러낸다.

어떤 다른 영화가 미국인들의 추악한 면에 대한 집착을 이처럼단적으로 포착했는가? 또 미국의 문화가 사생활을 기꺼이 내다 버리고 싶어 하는 바로 이 순간에 그 문화를 적확하게 포착한 다른 영화가 있는가? ‘보랏’을 근래 들어 가장 웃기는 영화라고 좋아하든, 미국인들의 문화의식을 천박하게 만든다고 혐오하든, 이 영화는 미국의 21세기 첫 10년을 돌아보는 미래의 인류학자들에게 보물창고가 될 것이다.


DAVID ANSEN



TELEVISION: 'American Idol'


‘아메리칸 아이돌’


우선 제목부터 보자. 영국에선 원래 제목이 ‘팝 아이돌’이었다. 그러나 2002년 이 프로그램이 미국으로 옮겨지면서 미국인들의 어쭙잖은 애국주의가 발동했던 것 같다. 한때 프랑스인들을 싫어해 미국인들이 감자튀김을 ‘프렌치 프라이드’가 아니라 ‘프리덤 프라이즈(freedom fries)’로 부른 것과 비슷한 연유로 ‘아메리칸 아이돌’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 애국적인 이름 붙이기는 곧바로 부시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부시 시대의 전형적인 TV쇼인 것은 그의 임기 중 가장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인기를 끄는 지역 때문이기도 하다. 그 프로그램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쇼는 기본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

그래서 거의 매회 남부 출신이 우승했다. 시청자들이 진짜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게 투표를 할까? 사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남부의 시청자들이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투표를 한다는 점이다. 출연자들이 위협적이지 않고 신앙심이 깊으며 성적 매력이 없는 아이들로 눈이 반짝이기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는 것이다.

내로라하는 비평가들이 이 프로를 평범하고 별 볼일 없는 오락프로라고 폄하할 때마다 그들은 옳든 그르든 간에 이 쇼를 옹호하고 나선다. 물론 옹호해서는 안 되는 때도 있다. 동아리 신고식처럼 심사위원들이 출연자들을 골탕 먹일 때가 그렇다. 또 시청자들의 전화투표가 조작됐다는 논란이 나올 때가 그렇다.

그리고 ‘아메리칸 아이돌’만큼 노골적으로 상품을 광고하는 프로그램도 없다. 포드, 코카콜라, AT&T…. 이 프로그램은 부시 대통령만큼이나 대기업들과 관계가 좋다. 그리고 부시처럼 이 프로그램은 쇠하지 않는 일관성을 미덕으로 내세운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TV에서 가장 예측이 가능한 쇼다.

사이먼 카웰은 늘 사악한 심사위원이다[심사위원석에서 그만이 외국인(영국)인 것도 우연이 아닌 것일까?]. 프로농구팀 LA 레이커스의 치어리더 출신인 폴라 압둘 심사위원은 늘 치어리더다.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이 대단하다는 환상을 늘 주창한다. 어떤 경우엔 이런 일관성이 프로그램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특히 지금처럼 전쟁으로 피폐한 시대에 ‘아메리칸 아이돌’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그 프로그램이 미국인들에게 두툼하고 포근한 담요처럼 느껴진다는 점일지 모른다. 여러 해 동안 부시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이 만든 수렁에 빠진 미국을 허구적으로 그려낸 드라마 ‘24’가 방영되기 직전에 이 프로가 방송된 것이 과연 우연일까?

미군 증파가 이라크전에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년 1월 미국에선 ‘아메리칸 아이돌’의 증파가 있고 그러면 모든 곳에 문제가 없어진다. 적어도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MARC PEYSER



THEATER: 'Far Away'


‘파 어웨이’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특별히 잘 수행했다거나 역대 수반보다 더 고상하게 수행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단히 환상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거의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이 거의 매달 현실적으로 나타났다. 성숙한 민주주의보다는 바나나 공화국(바나나 수출로 유지되는 중남미의 소국들)에 더 잘 어울리는 선거, 치명적인 무기로 둔갑한 여객기(폭발하는 운동화와 탄저병균이 든 우편물도 마찬가지다), 홍수로 잠긴 도시 등.

이런 현상을 표현하려는 수많은 극작가의 진지한 시도가 있었지만 영국 극작가 캐릴 처칠만큼 이런 격변의 삶을 잘 그려낸 작가는 없다. 2001년 초 처칠은 ‘파 어웨이’를 썼다. 어둡고 흐트러지고 기이한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세 장으로 이뤄진 악몽이다. 그 연극이 현실에서 벗어날수록 우리 시대가 더욱 정확히 드러난다.

줄거리는 지난 8년처럼 믿기지 않게 평온하게 시작된다. 조운이라는 여자아이가 숙모에게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한다. 조운은 비명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 헛간에 묶여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숙모 하퍼는 삼촌이 그 묶여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한다고 조운을 안심시키려 하지만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삼촌은 한 남자를 몽둥이로 때렸어요. 쇠몽둥이였어요.” 조운이 말한다. “아이 한 명도 때렸어요.” 그 잔혹한 사건이 설명되기도 전에 처칠은 몇 년 뒤로 넘어간다. 젊은 여성이 된 조운은 모자 만드는 가게에서 일한다. 그곳에서 만드는 크고 화려한 모자들은 수염이 텁수룩한 죄수들에게 씌워진다.

모자를 쓴 죄수들은 처형장으로 향하면서 패션 심사위원단 앞을 행진한다. 마지막 장에서 처칠은 공상과학적인 세계로 들어간다. 조운과 하퍼가 주변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전쟁에서 누군가가 서로 편을 바꾸는 문제를 얘기한다. “고양이들이 프랑스쪽으로 넘어갔어”라고 하퍼가 말한다. “볼리비아인들은 대세를 따라가네요”라고 조운이 응수한다.

2002년 이 연극이 뉴욕 무대에 올려지자 마지막 장은 9·11 이후 시대에 미국인들이 시달리는 편집증을 약간 비틀었지만 사실적으로 반영했다. 그로부터 6년 뒤 처칠의 예언이 정확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나머지 장면들도 마찬가지로 시의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 조운이 목격한 야간의 구타, 숙모의 어설픈 변명은 물고문과 ‘고통스러운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고문을 예견했다.

모자 쓴 사형수들의 행진은 지금 미군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포로들을 갖고 놀다가 때론 숨지게 한 방식을 신랄하게 꼬집은 듯하다. 그러나 처칠 작품의 진정한 울림은 예측이 맞아 들어갔다는 사실보다 더 깊은 데서 나온다. 조운의 이야기는 인간 삶의 가치를 잊기가 얼마나 쉬운지, 우리가 얼마나 빨리 비인간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상기시킨다.

마지막 장에서 조운은 숙모 집으로 가는 도중에 “고양이 두 마리와 5세 미만의 아이 한 명”을 죽였다고 말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두 군데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국제협약을 여기저기서 무시했고, 세계적으로 반미 감정을 촉발했다는 것이 반드시 패션쇼 처형이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터무니없이왜곡된 현실 앞에 어리둥절했던 미국인들이 앞으로는 그보다 더 기이한 현실을 맞게 될 듯하다.


JEREMY McCARTER





BOOKS:
Rick Warren's 'The Purpose-Driven Life'


‘목적이 이끄는 삶’


지난 2000년 조지 W 부시는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 도처의 대형 교회에서 조용히 자리 잡기 시작한 ‘격의 없는’ 기독교를 미국인들에게 전파했다. 그것은 그가 어린 시절 접했던 엄격한 미국 성공회 신앙도, 좌익이 추구했던 보편적 신앙도 아니었다. 부시의 신앙은 기독교 개종 경험, 다시 말해 알코올 중독 치료 프로그램에 그 뿌리를 두었다.

그것은 성경 공부를 위한 한 사교 클럽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이 자신의 타락했던 체험을 기탄없이 이야기하는 모임이었다. 지금보다 젊은 부시가 백악관으로 가져온 기독교는 격식 없고 개인적인 신앙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수양과 비슷했다. 부시의 중년 시절 기독교 신앙을 캘리포니아주 새들백 교회의 목사인 릭 워런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보다 더 잘 반영한 책은 없다.

그 책은 세계적인 유행을 일으켰다. 2002년 이후 그 책은 전 세계에서 3000만 부 이상 팔렸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하드커버 논픽션이었다. 일견 그 책은 창조적 구직방법을 담은 책 ‘당신의 파라슈트는 어떤 색깔입니까?(What color is your parachute?)’의 21세기판처럼 보인다. 구성도 자기계발서 형식이다.

각 장이 숙고해야 할 요점과 뒷정리하는 질문들로 구성된 하나의 ‘단원’이다. 명쾌하고 읽기 쉬운 문체로 눈길을 끄는 슬로건과 감탄부호가 많다. 그러나 메시지는 한결같이 그리스도 중심이다. 주님에게 삶을 바치면 주님이 삶의 의미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 책이 인기를 끈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런 단순함에서 기쁨을 발견한다는 점을 웅변한다.

워런 자신의 정치관은 처음에는 2004년 부시의 재선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는 보수파 복음주의자들의 정치관을 반영했다. 그러나 부시의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워런은 다른 것들로 눈을 돌렸다. 다르푸르 사태, 에이즈, 문맹 퇴치, 아동 질병 등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워런은 좀 더 미묘한 역할을 맡았다.

대통령 후보들을 초청해 종교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캘리포니아주의 동성결혼에 반대했다. 손쉬운 해결책이 없는 거대한 글로벌 문제로 초점을 돌리는 것이 그 자신의 ‘목적’이었던 듯하다.


ISA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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