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세에 붓 잡고 66세에 카메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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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8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명사 미술전이 열렸다. 사회 명사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아 불우이웃을 돕는 전시회다.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를 비롯해 정상은 중앙그룹 회장,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과 함께 창립멤버로 매년 전시회에 참가한 이가 있다. 거기다 한국미술협회 심사를 거쳐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정식 화가다.
바로 강웅식 전 아메리칸스탠다드 코리아 회장이다. 욕실 인테리어 업계에선 전설적인 인물이다. 강웅식 전 회장은 외환위기로 대부분의 국내 기업이 어려울 때 업계 만년 꼴찌였던 회사를 2위로 끌어올렸다.
과감히 리엔지니어링 시스템을 도입한 게 적중했다. 리엔지니어링은 기업의 체질과 경영방식을 바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경영혁신 기법이다. 그는 불필요한 업무나 부서를 줄이고, 부서 간 칸막이를 없애 업무 효율성을 높였다.
이후 평균 매출 신장률이 30~40%씩 늘었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23개 해외 법인 중에서 아메리칸스탠다드 코리아는 최우수 법인으로 선정됐다.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강 전 회장은 99년 사장을 거쳐 2005년 회장으로 승진했다.
바쁜 생활 속에서 그가 붓을 든 것은 50세가 되던 해다. 고등학생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던 그는 ‘화가는 배고프다’는 부모의 반대로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갔던 것. 그는 ‘더 이상 시기를 늦췄다가는 평생 배우기 힘들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동네 미술 학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학원마다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발견한 곳이 백화점 문화센터였다. 그는 유화 과정에 등록하고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꾸준히 그림을 배우자 실력이 늘었다. 그림을 배운 지 8년 만인 97년엔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부산에서 심장병 환자를 돌보는 미카엘라 수녀를 위한 전시회였다. 전시회 취지가 좋았던지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다.
그가 전시한 모든 작품이 팔려 무려 6000만 원의 기부금을 모았다. 2월 10일 그림 그리는 CEO에서 화가로 살고 있는 그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자택에서 만났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곳곳에 고풍스러운 고가구와 그가 그린 유화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마치 아담한 전시장에 온 듯하다.
벽마다 그림이 걸린 층계를 올라가자 여러 점의 작품이 쌓여 있는 화실이 나타났다. 이젤 위엔 작업 중인 유화가 놓여 있다. 지난해 가을 다녀온 강원도 미시령 고개가 화폭에 담겨 있었다. 2006년 은퇴 이후 강 전 회장은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에 나섰다. 우선 미술 고급 과정인 누드 크로키를 배우고 있다.
유화는 잘못 그리면 다시 색을 입히면 된다. 반면 크로키는 빠른 시간 안에 정확히 그려내야 하므로 상당한 집중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요즘엔 5분마다 바뀌는 포즈를 재빨리 포착해 그리면서 눈과 손을 훈련하고 있다. 그림에 도움이 된다는 얘길 듣고 사진 공부에 나선 것도 은퇴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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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림과 사진은 실과 바늘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사진기가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로 발명됐잖아요. 멋진 풍경을 화폭에 담고 싶듯이 사진기로 찍는 거죠. 요즘엔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색채 감각이 뛰어난 강 전 회장은 사진 익히는 속도도 빨랐다. 2년 정도 배운 사진은 이미 전문가 수준. 지난해 9월 출판사 반디앤루니스의 후원으로 서울 반디앤루니스 종로점에서 사진 작품전 <사진에 기대어 시를 보다> 를 열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진 연합회 ‘모델포토플러스’ 회원들과 함께 참여했다. 그는 경영 일선에선 물러났지만 이처럼 1년에 두세 차례 그림과 사진 전시회 활동으로 여전히 바쁘고 활기 넘치는 삶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취미는 정신과 몸을 건강하게 해준다고 자랑했다. 문화센터의 사진 수강생이나 동호회원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야외로 사진 촬영을 나간다. 경복궁, 양재천 등 서울 주변부터 과천 경마장, 천리포 수목원, 포천 뷰 식물원, 주왕산 등 사진 담기 좋은 곳이면 어디든지 떠난다고. 그는 “회사 다닐 땐 바빠서 하지 못했던 산천 유람을 마음껏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을 배우면서 몸은 더욱 건강해졌다. 사진기를 들고 매일 2~3시간 걷기 때문이다. “사진기를 갖고 다니면 눈은 피사체를 쫓아가죠. 다리는 눈을 따라 앞으로 나가게 돼 있어요. 그렇게 몇 시간을 걸어 다녀도 다리 아픈 줄 모르겠어요. 신기한 일이죠.” 은퇴 후에도 즐겁게 사는 비결을 묻자, 강 전 회장은 “은퇴에 앞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오로지 가족과 회사를 위해 일만 하다 은퇴를 한 지인들을 보면 할 일 없이 무료한 생활을 보낸다고 덧붙였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게 시간입니다.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죠. 안타깝게도 CEO로 바쁘게 살다 보면 못 느낀다는 거죠.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미래 목표나 계획을 세우는 게 중요하죠.”
무조건 거창한 꿈을 꾸라는 게 아니다. 그동안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았다면 은퇴 후엔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를 개발하라는 얘기다. 특히 그는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 역시 나이 50이 돼서야 붓을 잡았지만 경영을 하면서 그림을 배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회사 일이 바쁠 땐 몇 달이고 문화센터에 나가지 못했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배울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강 전 회장은 배움에 있어 나이는 중요치 않다고 덧붙였다. “다들 나이가 많아서 배우기 어렵다고 하죠. 시작이 어렵지 하고 나면 즐거운 일이 더 많습니다.” 은퇴 후 66세에 사진 공부를 한 그는 요즘처럼 사진 배우길 잘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외손녀 돌 사진을 그가 직접 찍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미 스튜디오까지 빌려놨다. “찍은 사진은 모두 포토샵으로 작업해서 앨범으로 만들어 줄 계획입니다. 주변에서 다들 멋진 할아버지라고 부러워하죠.(하하)” 사진에>
강웅식 회장의 멋진 은퇴 인생 ■ 50세에 붓을 들다-고등학생 때부터 화가가 꿈 ■ 1997년 심장병 어린이 위해 첫 개인 전시회 열다 ■ 2006년 은퇴 후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 ■ 은퇴 후 사진에 심취하다-“그림과 사진은 실과 바늘” ■ 일주일에 한 번씩 야외로 사진 촬영 나가 ■ 은퇴 후에 즐겁게 사는 비결-“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 개발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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