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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트랙터, 아디다스 스님 신발도 ‘척척’

BMW 트랙터, 아디다스 스님 신발도 ‘척척’

중국 하면 짝퉁을 떠올리는 사람이 열에 아홉은 될 것이다. 짝퉁은 법적으로 명백한 지재권 침해행위지만 시장에선 사뭇 다른 광경이 벌어진다.

값을 흥정할 뿐 물건을 탓하는 경우는 드물다. 파는 상인은 어디를 보아도 뿔 달린 도깨비 같지 않고 고객은 국적불문 모두 평범한 소비자로 보인다. 짝퉁이라고 다 같은 짝퉁이 아니다.

서로 다른 격(格)이 있다. 하층, 중층, 상층의 3단 피라미드 구조로 풀어보자. 하층부는 ‘진짜 가짜’ 즉 터무니없는 모조품이다. 거리에서 우리 돈 2만원에 산 롤렉스시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바늘이 떨어져 시계 속을 제멋대로 돌아다닌다. 짝퉁 골프숍에서 산 드라이브는 ‘나이스 샷’을 외치기도 전에 헤드가 공보다 먼저 날아간다.

중층부는 중국을 ‘세계의 공장’‘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의 왕국’이라 부르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100개를 만들어 납품해야 할 공장에서 110개를 만들어 10개는 싼값에 뒷문으로 내다 판다. 이렇게 나온 물건은 ‘가짜 아닌 가짜’가 되는 셈이다.

상층부는 ‘세상에 없는 가짜’다.

세상에 없는 것을 가짜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가능하다. 새로운 디자인의 핸드백을 만들어 구치(GUCCI) 상표를 붙여 판다. 명품 애호가라도 신제품이 나왔다며 깜빡 속고 만다. 해리포터 6편은 한때 원작자보다 중국 사람이 먼저 썼다는 얘기도 있었다. 바닷가 해초를 캐서 만든 가짜 계란을 진짜 계란의 절반 값에 팔았다는 대목에선 생명공학의 개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3단 피라미드는 언제부턴가 다이아몬드 구조로 바뀌었다. 하층부의 진짜 가짜가 줄어들고 중층부가 늘어났다. 가짜 아닌 가짜이니 물건만 잘 고르면 대박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다시 진화하더니 역피라미드 모양이 될 조짐이다. 분명 정상은 아닌데 다른 곳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가짜가 많아진 것이다.

Samsing, Samsong, Anycoll, Anyca처럼 속이 훤히 보이는 이름을 달았지만 진품과 비교해 성능과 기술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제품들이 나왔다. 짝퉁 하이폰(HiPhone)과 마이폰(Myphone)은 일부 기능이 아이폰(iPhone)을 앞선다는 평가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명을 변형시킨 Nokir와 Suny-Ericcson은 원조보다 더 많은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다.

품종도 다양해졌다. 초기만 해도 휴대전화와 카메라, 소형 생활소비재와 경승용차 수준에 그쳤던 짝퉁은 TV연속극, 거리 이름 등 문화적 영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유화(油畵)시장의 물량 60%를 공급하는 광둥성 선전의 다펀춘(大芬村) 화랑가에선 반 고흐 자화상, 모나리자 초상화, 최후의 만찬, 천지창조 같은 세계적 명화를 모사해 수출까지 하고 있다.



진품 뺨치는 신제품 짝퉁도 나와이뿐만 아니다. 중국 인터넷엔 BMW 트랙터, 아디다스 스님 신발, 노키아 영아용 휴대전화 등 듣도 보도 못한 상품도 만들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올 정도다. 외국에서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짝퉁 문제는 저가수출 공세와 함께 중국이 가장 자주 공격 당하는 단골 메뉴가 됐다.

2008년 ‘산자이(山寨)’라는 말이 해외에 알려지면서 상황은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산자이 휴대전화가 전국적인 히트상품이 되자 해외언론이 앞다퉈 보도했다. 산자이의 출처는 중국 고대 장편소설 『수호전(水滸傳)』이다. 108명의 영웅이 양산박(梁山泊)의 산채(山寨·산적 소굴)를 근거지로 정부 권력에 대항하며 힘없고 선량한 백성들을 도왔다는 데서 유래한다.

주류사회와 주류문화에 저항하는 민중의 풀뿌리 문화쯤으로 해석된다. 세계적인 유명 브랜드에 대항해 모조품과 복제품을 만들고 인민들에게 싼값에 공급하는 이름 없는 중국기업들의 행위가 그 옛날의 산채와 같다고 본 것이다. 사실 산자이가 현대 중국사회에 나타난 건 2003년께다.

광둥성 선전의 작은 공장들이 해외 유명 브랜드의 휴대전화를 복제 생산하면서부터다. 처음엔 외형 디자인을 복제하는 수준이었으나 중국의 기술 급성장과 거대 산업사슬 형성으로 원조상품에는 없는 신기능이 추가되면서 혁신, 재창조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후 산자이는 법적으로 등록되지는 않았으나 유명 브랜드에 비해 기술은 뒤지지 않고 가격은 저렴한 브랜드를 통칭하는 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산자이 휴대전화가 공전의 인기를 끌자 중국 관영 CCTV는 2008년 산자이를 서민의 사회문화적 현상이라는 각도에서 조명했다. 산자이는 2008년 중국 최고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산자이에 대한 평가는 중국 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는 것이 현실이다. 위조, 표절 요소가 뚜렷해 지적재산권 규정에 위배되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이 반대하는 의견이다.

찬성론자들은 과거의 일반적인 가짜 내지는 짝퉁과는 구별되는 요소가 있고 거대기업의 독점적 시장에 저항하는 서민의 권리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찬반 여부라기보다는 산자이 업계가 이미 새로운 차원의 거대 산업사슬을 형성해 결코 무시 못할 경쟁력을 갖추었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산자이 휴대전화다. 그 탄생 배경과 구조를 뜯어보자. 과거 중국 휴대전화 단말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두 겹의 벽을 넘어야 했다. 2억 위안의 자금과 높은 기술수준에 대한 심사통과가 필수였다.

그러나 대만의 휴대전화 칩 설계회사인 MTK가 카메라, MP3, 터치패드 등을 하나의 칩에 집적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내놓으면서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은 일시에 모든 하이테크 업종 가운데 시장진입이 가장 쉬운 업종이 돼버렸다. 누구라도 MTK의 칩에 케이스만 붙이면 염가에 휴대전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합종연횡으로 거대 산업사슬을 만들다

▎맥주캔부터 명화까지 산자이에는 한계가 없다.

▎맥주캔부터 명화까지 산자이에는 한계가 없다.

이렇게 되자 중국 내 휴대전화 업체는 칩 구매담당, 가공공장 물색담당, 판매 및 수금담당 등 단 3명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수많은 중소, 영세업체가 휴대전화 제조에 뛰어들었고 선전에만 줄잡아 3000개가 넘는 산자이 휴대전화 업체가 있다.

거대 산업사슬의 상류에 MTK가 있고 중류에 수백 개의 솔루션 개발회사가 있으며 하류에 수천 개의 조립업체가 자리 잡게 됐다. 이어 생겨난 수만 개의 협력사는 규모는 작지만 부품소재, 디자인, 물류 등을 분담한다. 이 같은 구조는 산업사슬 내 정보교류를 용이하게 하고 시장변화에 대한 반응속도를 빠르게 하며 모방 기술도 높여주었다.

합종연횡의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산자이 휴대전화는 지금까지 최소 2억 대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시장에서 자국 정품 브랜드와 외국 브랜드를 위협하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로 수출도 된다. 중국 최초의 개방도시지만 2000년대 초반 이후 정체성 상실과 신성장 동력 부족에 허덕여온 선전시 경제에 활기를 되찾아줄 정도라고 한다.

선전시는 물론 중앙정부가 산자이의 불법성을 인지하면서도 좀처럼 단속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KOTRA가 중국 모조품의 피해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 최근 개최한 중국 모조품 전시회에는 우리나라 20개사의 제품을 모방한 중국 모조품 320점이 전시됐다.

1개사에 평균 16점의 모조품이 나온 것이다. 중국 내수시장 개척에 나서는 우리 기업들이 중국 현지 KOTRA 비즈니스센터(KBC)에 설치된 지재권 보호센터를 적극 활용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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