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MO 종자에 로열티 지급할 판
고려 공민왕 시절인 1363년. 문신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고려로 넘어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붓대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목화 씨 몇 개를 그 속에 숨겨 입국할 요량이었던 것. 걸리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종자 유입 및 반출은 불법이다. 우리의 복식 문화에 신기원을 열어 준 목화 종자는 이렇게 국내에 들어왔다. 종자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종자는 국가와 기업의 재산이다.
세계 각국은 식량 안보와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유전 자원에 대한 주권을 강화하고 있다. 종자를 수입하면 그래서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2002년 국제식물식품보호연맹에 가입함에 따라 품종 보호권이 설정돼 품종에 대한 로열티 지급 의무가 발생했다.
종자의 경제적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요즘은 생물학·생명공학·의약학 등 미래 성장동력 산업과 연계할 수 있어 더욱 그렇다. 파프리카 종자 1g의 가격은 11만7000원이다. 금값 1g(2010년 3월 19일 현재 4만897원)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종자시장도 날로 커진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세계 종자시장 규모는 7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 중 12%가량인 83억 달러는 GMO 종자시장이다. 첨단 생명공학 기법이 발달하면서 이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농우바이오 한지학 생명공학연구소장은 “2015년이면 1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종자시장을 이끄는 주인공은 기업이다. 미국은 종자기업을 중심으로 세계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특히 GMO 분야가 강하다. GMO 종자산업 활성화와 이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 변화가 미국 기업을 세계 GMO 종자산업의 선두주자로 끌어올렸다. 일본은 차별화 전략을 쓴다. 규모가 비교적 큰 회사는 다품목 위주로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작은 기업은 품목별 전문화로 내수를 공략한다.
네덜란드의 종자기업은 탄탄한 유통 인프라로 승부를 건다. 이들 회사의 종자가 유럽 내에서 검정·유통·수송·판매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이틀이다. 그러나 국내 종자기업은 수·규모는 물론 기초체력도 약하다. 한국종자협회에 등록된 종자기업은 50여 개 안팎. 등록되지 않은 기업을 합쳐도 100곳이 안 된다.
이 중 90% 이상은 임직원 수가 20명 이하. 임직원 수가 200명을 넘는 곳은 농우바이오 한 곳뿐이다. 그나마 경쟁력 있었던 종자기업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에 팔렸다.
국내 종자기업 “반GMO 정서 무섭다”1997년 서울종묘와 청원종묘는 각각 노바티스, 사카다에 넘어갔고 흥농종묘, 중앙종묘는 1998년 세미니스에 인수됐다. 씨덱스는 2007년 누넴에 팔렸다. 국내 종자기업을 인수한 이들 다국적 기업 5곳이 올리는 매출은 전체의 40%에 이른다. 이들의 시장 지배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물론 다국적 기업이 국내 종자시장에 진출하면 GMO 종자 개발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종자 유출을 막기 어렵다는 단점도 크다. 국내 종자기업에겐 어려운 점이 또 있다. 반GMO 정서다. 이 때문에 GMO의 시험 재배조차 녹록지 않다. 한 종자기업 관계자는 “국민의 부정적 시각과 불신을 쉽게 떨치기 어렵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GMO 규제도 이들의 발목을 잡기 일쑤다. 2008년 LMO법(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써야 할 돈이 늘었다. GMO 연구개발을 계속하기 위해선 기준에 맞는 연구시설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한 국내 종자기업은 600㎡ 규모의 시설을 신고하기 위해 재건축하는 데 수천만원을 썼다.
한 종자기업 관계자는 “다국적 기업의 GMO 한 개당 개발비가 300억원에 이른다”며 “하지만 국내 기업으로선 투자받기는 어렵고, 써야 할 돈은 많다”고 한탄했다. 국내 종자기업의 GMO 관련 실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 상업화한 GMO도 없다.
개발 중이거나 주목 받는 품목은 적지 않지만 상품성 있는 것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러다간 GMO 종자도 로열티를 주고 수입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국내 종자기업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종자를 찾아 개발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자 유출에 대해 둔감한 것도 사실이다. ‘제2의 미스킴 라일락 사건은 과거 일이 아니다’는 자성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세계적 관상수로 인기가 많은 라일락의 종자는 한국산이다. 1947년 미국인 식품 채집가 미더가 북한산에서 채집한 ‘털게회나무’ 씨앗을 품종 개량해 만든 게 라일락이다. ‘미스킴 라일락’은 그 품종명. 공교롭게도 우리는 이 나무를 로열티를 지급하고 수입한다. 혹자는 종자 유출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대 최양도 교수의 견해는 다르다. 게으름에 대한 죄값을 치르고 있다고 꼬집는다. “가정해 봅시다. 만약 미더가 털게회나무 씨앗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라일락이 탄생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종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육종이든 GMO든 종자산업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종자의 소중함부터 먼저 깨우치라는 일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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