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종금사, 금호종금의 대활약
▎김종대 금호종금 사장이 2007년 취임 직후부터 준비한 미국 뉴욕 57부두 개발 프로젝트가 3년 만에 결실을 봤다. 규모는 작지만 내실을 강조하는 김 사장은 종금사의 장점을 살려 미래 동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부의 파인스트리트 70번지. 하늘로 솟아 있는 66층 빌딩은 높이 290m, 13만2231㎡(약 4만 평) 규모로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2009년 7월 금호종합금융(금호종금) 컨소시엄이 사들여 1년 만에 150여억원의 평가이익을 확보하게 된 AIG 빌딩이다. 금호종금 컨소시엄은 우리PE(프라이빗에쿼티), 한인 부동산개발그룹인 영우앤어소시에이츠로 구성된 컨소시엄이다.
금호종금은 AIG 빌딩 매각 소식을 전한 지 일주일이 지난 7월 25일 역시 뉴욕 맨해튼에 있는 허드슨 강변 57부두의 독점 개발사업권을 따냈다고 발표했다. 뉴욕 시정부, 뉴욕 주정부가 소유주인 57부두는 6만6116㎡(약 2만 평) 규모로 금호종금 컨소시엄은 49년 동안 이곳을 개발할 주관사 권리를 가진다. 시장은 국내 대형 금융회사도 하지 못한 뉴욕 심장부의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 계약을 성사시킨 중소형 종금사를 주목했다. 맨해튼에 당당히 입성한 금호종금은 마지막 남은 종합금융사(종금사)다. 모두 떠난 종금사 터를 홀로 지키는 금호종금의 경쟁력을 들여다봤다.
서울 을지로 본사에서 만난 김종대(54) 사장은 자신감이 넘쳤지만 한편으로는 세간의 관심을 의식한 듯 “운이 많이 따랐다”며 웃었다. 그는 잠시 지난해 9월 AIG 본사 건물에서 연 ‘집들이’를 떠올렸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재건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업자 래리 실버스타인은 이날 행사에 참석해 “한국 기업이 맨해튼의 랜드마크인 AIG를 인수한 것은 굉장한 일”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계약을 성사하기까지 어려움도 있었다. 김 사장은 “무엇보다 해외 시장에서 한국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이 난관이었다”고 말했다. AIG는 한국에서 온 소규모 금융회사의 자금 조달 능력을 의심했다. 계약금을 치를 때는 신용등급이 AA 등급 이상인 은행에서 지급보증서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외국 신용평가기관 평가 기준으로 AA 등급 이상인 국내 은행은 없었다. 김 사장은 “국제금융 업무를 하며 오랫동안 거래해온 외국계 은행이 없었다면 현찰을 손에 들고도 계약을 포기해야 했을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AIG 빌딩 인수 주선을 성공적으로 마치자 현지 사업자들의 선입견도 사라졌고 57부두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김 사장은 처음에 계약 성사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만큼 뉴욕 맨해튼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왜 뉴욕이었을까. 김 사장은 맨해튼이 ‘가 본 곳’ ‘딱 한 곳’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30여 년 전 대신증권 신입사원일 때 월스트리트에 처음 발을 들였다. ‘언젠가 이곳의 일원이 되자’는 결심을 이룬 것이다. 금호종금이 애초에 공을 들인 사업은 AIG 빌딩 인수가 아닌 57부두 개발 프로젝트였다. 2년여 동안 부두 개발권 계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AIG 빌딩 매각에 대한 정보를 얻어 입찰에 뛰어든 지 두 달 만에 소유권을 얻었다.
‘연이어 해외 부동산 개발 사업 계약을 성사한 경쟁력이 뭐냐’고 묻자 김 사장은 “다른 금융회사는 금융위기와 맞물려 해외 투자 손실을 입었지만 금호종금은 부실 자산이 없었기 때문에 과감히 역발상 투자를 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또 김 사장은 거래 상대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윈-윈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금호종금이 AIG를 살 때 매입가가 특히 화제였다. 이 빌딩은 2009년 맨해튼에서 가장 싼값에 팔린 건물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금융위기 전 시세는 8억 달러, 매입 당시 감정가도 4억 달러가 넘었다. 이런 빌딩을 금호종금이 1억5000만 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유럽·중국·일본·중동 등에서 온 17개국 30여 개 경쟁 컨소시엄 가운데 입찰가는 여섯째로 싸게 써냈지만 계약금을 높이고, AIG가 사무실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계약 조건을 조정해 인수권을 따냈다.
AIG 빌딩 인수에 현지 부동산 거물 극찬AIG 빌딩은 66층 본관과 19층 별관으로 이뤄진다. 금호종금은 본관을 사무실, 호텔, 레지던스 등으로 리모델링하고 별관은 매각했다. 이번에 도이체방크에 판다고 알려진 건물이 19층 별관이다. 본관 개발을 쉽게 하려고 별관 1~3층은 5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한다. 세계적 갑부가 본관 상부층을 개발해 달라고 인테리어 모형을 보내왔을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별관 매매 계약은 현재 진행 중이다.
시장은 중소형 종금사가 뉴욕 심장부에서 부동산 사업을 벌인 것이 놀랍다는 반응이었지만 이번 사업을 추진하는 데 종금사 라이선스가 큰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연봉이 대기업의 두 배일 정도로 30여 개 종금사의 위상은 높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하나둘 문을 닫았고 올해 4월 메리츠종금이 메리츠증권과 합병하면서 금호종금은 종합금융협회의 단독 정회원이 됐다.
종금사는 은행의 예금·대출 기능과 주식위탁매매를 제외한 회사채 인수, M&A(인수합병) 같은 증권 업무를 할 수 있다. 업무 영역이 해외 차입·환전 등의 국제금융, 자산운용, 리스 등으로 매우 넓다. 김 사장은 “종금사 라이선스는 기업금융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말했다. 기업을 위한 원스톱 금융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형 은행이나 증권사도 해외 현지법인을 성공시키기란 쉽지 않다. 김 사장은 금호종금이 국제금융을 ‘업(業)’으로 해왔기 때문에 외국에서 순발력 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오랫동안 기업 대출을 해 기업과 관계가 돈독하고 기존 심사 노하우가 있어 의사결정 과정이 효율적인 것도 종금사의 장점이다. 또 규모가 작아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금호종금의 직원은 100명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이 실무를 담당한다. 주로 기업 고객을 상대하기 때문에 회사채 발행 같은 전문 업무도 익숙하다. 김 사장은 지난해 전 직원을 홍콩과 미국으로 보내 교육했다. “만나서 악수하는 것에서부터 해외 사업이 시작된다”는 김 사장은 실무에 능통한 직원과 영어를 잘하는 직원을 짝지어 업무에 투입한다. 그는 “처음부터 출중한 사람만 뽑아 쓰면 좋지만 그게 어렵고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도 능력”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전 조직의 업그레이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금호종금은 예대마진에 의존해 회사를 꾸렸다. 그러다 2007년 김 사장이 취임하면서 회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동양종금증권·한누리투자증권(현 KB증권) 등에서 IB(투자은행) 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IB 인력을 보강하는 등 업무 기반을 다져 부동산 PF, 회사채 발행, 기업 M&A 같은 다양한 IB 사업을 추진했다.
지난 3년 동안 수익원은 다양해지고 실적은 성장세를 보였다. 대출 수익 비중은 줄어들고 유가증권 수익 비중이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 1월 동부제철 회사채 발행을 대표주간했고, 이후 두산엔진 등 두산그룹과 STX그룹의 대표주간사로 채권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처음 ECM(주식자본시장)에 등장한 금호종금은 총 15건의 대표주간사를 맡아 34개 증권사 가운데 14위를 기록했다. BW(신주인수권부사채) 시장에서는 대우·우리투자증권에 이어 주관 순위 3위에 올랐다.
▎금호종금이 지난해 7월 매입한 뉴욕 AIG 빌딩(가운데)
김 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IB가 몰락해 한국 금융기관의 벤치마킹 대상이 사라졌다”며 “기존의 IB 모델과 차별화된 한국형 IB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금융산업의 열세를 인정하고 특정 분야를 전문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지도가 낮은 해외시장에서 M&A나 IPO(기업공개), 파생상품 등 전 분야에 욕심을 내봐야 글로벌 IB와 경쟁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에서 실력을 쌓은 특화된 사업 영역을 파고들어야 세계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IB 업무로 수익구조 다변화금호종금은 IB시장에서 니치마켓을 노린다. 한정된 자본과 인적 자원으로 대형사와 경쟁하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시장에서는 증권사와 증권사를 연결해 큰 규모의 거래를 성사하는 중간 연계 영업 전략을 폈다. 두산·STX 그룹의 회사채 발행도 이런 식으로 진행했다. 김 사장은 “부동산 자산관리에 특화한 코헨앤스티어스나 채권상품에 특화한 자산관리회사 블랙록 등을 참고해 블루오션 전략을 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분간 금융투자회사로 전환하는 대신 현재 모습에서 회사의 역량과 규모를 키워갈 생각이며 업종을 전환한다면 증권사와 합병해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호종금이 규모를 확대하는 문제는 대주주의 손에 달렸다. 금호종금은 2007년 금호그룹과 계열분리해 현재 대주주는 우리PEF(41.44%)다. 우리PEF는 우리금융지주 계열사인 우리PE가 발행한 사모펀드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율은 16.70%다. 우리PE는 언제든 금호종금을 팔 수 있고 아시아나항공은 우선매입권을 가진다. 지난해 12월 금호산업·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결정됐을 때 금호종금 주주들은 금호 사태의 여파가 회사에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금호종금이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회사채 발행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당시 ‘친정 집’에 쌀 퍼다 주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지만 지금은 다 정리했다”고 우려를 일축했다.
현재 1, 2대주주가 인수, 경영권 등의 문제로 불안정한 상황이다. 금호종금 주가는 최근 몇 달 동안 횡보 흐름을 보였다. 꾸준히 자사주를 매입해 온 김 사장은 “저는 손실을 봤지만 앞으로 주가는 걱정하지 않는다”며 “규모가 작아 IR(기업설명회) 활동을 활발히 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예대마진에 의존하던 수익구조를 IB 업무에 초점을 맞추는 등 체질 개선에 주력해 왔다”며 “안정적 수익모델을 갖춰 국내 유일의 종금사로서 미래를 탄탄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올해 목표는 AIG 빌딩 별관 매각과 57부두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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