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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계의 ‘짐승녀’

팝계의 ‘짐승녀’

▎MTV 비디오뮤직 시상식에 케샤는 쓰레기봉투 재질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MTV 비디오뮤직 시상식에 케샤는 쓰레기봉투 재질의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지난 9월 12일 오전, 2010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2010) 시상식이 몇 시간밖에 남지 않았지만 케샤(Ke$ha)는 아직 발톱 손질도 받지 않았다. 레드카펫을 걸을 때 입을 의상도 정하지 못했다. 올해 가장 히트한 댄스곡을 선보였고 VMA 세 부문(최우수 신인상 포함)에서 후보로 오른 이 23세의 팝가수는 옷에 인조보석을 박는 기구를 들고 씨름했다.

이제 그녀의 낡은 군용 부츠와 빛 바랜 할리 데이빗슨 T 셔츠가 인조보석으로 가득 박혔다. 움직일 때마다 그 보석들은 반대편 벽에 오색영롱한 작은 무지개 빛을 던졌다. “사실 오늘 발톱 손질을 받으려 했다”고 케샤는 헐렁한 운동복 바지의 허리끈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수많은 제2, 제3의 비욘세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래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쪽 부츠를 벗어서 갈라지고 이 빠진 싸구려 네일 폴리시가 칠해진 발톱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래도 발가락이 보이지 않는 신발을 신어야겠군.”

바로 그런 불손함, 그리고 그녀의 테크노팝 덕분에 케샤는 팝애호가들이 열광하든가 아니면 혐오하는 가수가 됐다. 내슈빌 출신의 선동가인 케샤는 데뷔 앨범 ‘Animal’이 10개월 전 발표된 후 단일곡과 휴대전화 신호음에서 약 2000만 건을 팔았다. 신인 디지털 앨범 판매기록도 경신했다. 하지만 케샤 자신과 그녀의 성공을 두고 블로그계와 미디어는 극심한 혹평을 쏟아냈다. 다음달 그녀의 신곡과 재포장 곡의 CD가 출시되면 유명 가십 블로거 페레즈 힐튼이 그녀를 향해 다시 포문을 열 게 분명하다. 하지만 케샤를 두고 왜 그토록 팝애호가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까? 케샤는 언행이 산만하고, 근로계층 출신이며, 댄스도 안무가 없는 듯 무척 어설프다. 그런 특성이 보는 시각에 따라 매력이 되거나 반감을 부른다.

리하나 같이 극도로 세련된 가수에 신물이 난 사람들에겐 케샤가 구세주다. 케샤는 “잭 다니엘(위스키) 한 병으로” 양치를 한다거나 “사타구니가 꽉 끼는 로커 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들, 그리고 “부잣집 도련님의 파티”에 초대장 없이 불쑥 쳐들어가는 일을 찬양하는 랩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케샤(Kesha)라는 이름에서 s를 달러 표시인 $로 바꾼 의도는 매우 역설적이다. 버스 차비가 없어서 소파 쿠션 아래를 뒤지던 시절 그렇게 바꿨다고 말했다. 케샤는 팝문화의 거친 구석에서 영감을 찾는다. 장식용으로 금박을 씌운 치아, 낡아빠진 카우보이 부츠가 그 증거다. 하지만 그녀의 노래는 제작진(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곡을 쓴 닥터 루크 등) 덕분에 나이트클럽에서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이스라엘 군인들도 케샤를 좋아한다. 요르단강 서안의 헤브론 거리를 순찰하는 군인들이 케샤의 히트곡 ‘Tik Tok’에 맞춰 춤추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유튜브에 올랐다. 그 뒤 그 이스라엘 군인들은 근무 중 댄스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공익광고를 내야 하는 징계를 받았다.

호리호리하고 어설픈 이 팝스타는 비판적인 블로거들로부터 “저질 레이디 가가” “완전 쓰레기” 등 혹독한 공격을 받았다. 롤링스톤지는 케샤의 댄스곡을 “엽기적이고 불쾌하며 말도 안 되게 눈길을 끌려는 수작”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케샤는 사랑받든 미움받든 간에 레이디 가가를 비롯한 몇몇 여성 아티스트와 함께 음악산업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지난해 4대 베스트셀러 앨범 중 셋이 여성 가수의 작품이고, 올해 라디오와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청취된 가수가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다. 이처럼 음악산업의 판을 바꿔 놓는 데 케샤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런 부류 중에서도 케샤는 튄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케샤는 오빠에게 물려받은 듯한 운동복에다 헝클어진 금발, 주근깨 투성이 맨얼굴로 나타났다. “팝음악계의 대다수 여성은 아주 섹시하지만 난 그럴 엄두도 못 낸다”고 케샤가 말했다. “모든 게 너무도 세련되고 크고 완벽하고 철저히 연출된다. 그런 게 너무 싫다. 내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가사가 공감을 준다.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하는 이야기를 수백만 명의 청취자 앞에서 그냥 한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케샤(본명: 케샤 로즈 시버트)는 내슈빌에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 피비 아래서 두 오빠와 자랐다. 피비는 돌리 파튼, 조니 캐시의 송라이터였다. 어머니는 거기서 나오는 인세로 살림을 꾸리면서 사정이 어려울 땐 정부가 제공하는 푸드스탬프(일종의 식량배급표)에 기댔다. 케샤는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지만 스스로 낙오자라고 생각했다. “5학년 때 엄마 친구가 와서 내 머리를 곧게 펴주고 립스틱을 발라줬다. 인기인과 처음 만난 자리였다. ‘이렇게 해야 그들과 같아지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그런 건 필요 없어.’ 다음날 난 다시 집에서 만든 자주색 벨벳 바지를 입고 곱슬 생머리로 돌아갔다.”

케샤는 자라면서 오빠의 비스티 보이즈, 픽시즈 CD를 들었다. 어머니가 지은 멀 해거드와 밥 딜런의 노래도 레코드로 들었다. 블랙 사바스와 밴 헤일런의 ‘공격적’인 노래도 좋아했다. “어머나 세상에! 데이비드 리 로스처럼 시저 킥(옆으로 점프하면서 한쪽 발로 허공을 차는 동작)을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고 케샤는 돌이켰다. “하지만 늘 비스티 보이즈처럼 되고 싶었다. 불손하고 생기발랄한 노래를 하고 싶었다. 부모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아이들은 잘 안다.”

그러다가 2004년 패리스 힐튼이 친구 니콜 리치와 함께 케샤의 집에 나타났다. 어머니 피비가 폭스 TV의 ‘심플라이프(인기 연예인들이 평범한 생활을 체험하는 리얼리티 쇼)’에서 참여 가정을 구하는 광고를 보고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힐튼과 리치는 촬영팀과 케샤의 집에서 1주일을 지냈다. 그러면서 지역 신문의 독신자 광고를 통해 피비의 남자친구를 찾아주려는 우스개극도 벌였다. “패리스 힐튼이 나의 반면교사였다”고 케샤가 말했다. 당시 케샤의 나이 17세였다. “내가 힐튼처럼 부자라고 해도 그처럼 경망스럽게 굴진 않겠다고 결심했다. 차 한 대 가격이 넘는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녀야 멋져 보이는 건 아니다.”

‘심플라이프’가 방영되는 동안 케샤는 직접 만든 노래의 데모판을 음반사와 방송국에 보냈다. 닥터 루크가 케샤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그때 힐튼이 전화를 빼앗아 ‘장난’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도 닥터 루크가 다시 전화를 했다. 그는 케샤를 유명한 래퍼 플로 리다에게 소개했다. 케샤는 그의 히트곡 ‘Right Round’에서 배경 화음을 넣었다. 2010년 1월 케샤는 데뷔곡을 내놓았다. “무일푼이었을 때 만든 노래였다”고 케샤가 말했다. “명품 의상을 못 사입어 재활용가게 굿윌에서 쇼핑을 했다는 사실을 자축하는 노래였다. 하지만 그 옷으로도 우린 멋졌다. 파티에 가면서 캐딜락 대신 버스를 탔다. 하지만 애달픔이 아니라 재미를 노래했다.”

먹고살기조차 힘들었던 파티걸이 이제는 캐딜락을 타고 할리우드의 회원전용 클럽에 갈 수 있게 된 지금 그녀는 무엇을 노래할까? “새 노래도 나의 현실적인 삶을 주제로 한다. 옛 남자친구, 일본 방문 경험, 팝스타가 팬들에게 우상이 되는 이유 등을 노래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팬들과 나는 동지애를 느낀다. 사회 부적응자로서 우연히 서로를 발견했다. 완벽함의 추구에 신물이 났기 때문에 함께 재미 있게 즐기려 한다.”

다시 MTV의 비디오 뮤직 시상식장으로 돌아가 보자. 레이디 가가가 8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녀는 그동안 의상을 열 번이나 갈아 입었다. 아무런 상도 못 탄 케샤는 발가락이 드러나지 않는 구두와 가비지백(검은 쓰레기 봉투 재질로 만든 드레스)으로 행사 내내 버텼다. 거기다가 인조모피 목도리를 걸쳤다. 바이킹 같은 정리되지 않은 긴 금발 수술이 허리까지 내려왔다. 케샤에겐 그날 밤 행사가 성공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자빠지거나 욕설을 내뱉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댄스 커맨더’ 모자만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으리라. 물감 들인 기다란 깃털로 장식된 옛 군인 모자 말이다. 하지만 가비지백 의상과 어울리지 않아서 그만뒀단다. 케샤는 이렇게 말했다. “내 친구는 사막에 큰 농장을 보유했는데 나를 위해 깃털과 도로에서 치여 죽은 동물을 모아 의상을 만들어준다. 그런 의상을 입으면 정말 멋있다. 내가 죽고 난 뒤 내 치아를 목에 걸고 비디오 뮤직상 시상식에 나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정말 영광이겠다.”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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