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의 꿈’은 이뤄질까
‘바벨탑의 꿈’은 이뤄질까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무엇일까. 바로 UAE(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다. 올해 1월 개장한 이 빌딩은 162층으로 높이가 무려 828m에 이른다. 서울 근교의 웬만한 산보다 더 높다. 한국에서도 이에 버금가는 초고층 빌딩들이 하늘로 치솟을 채비를 하고 있다. 초고층 빌딩은 국내 건축법상 50층, 100m 이상 건축물을 가리킨다. 이런 초고층 빌딩 건립 계획이 국내에서만 10여 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이미 모습을 드러낸 63빌딩(249m), 타워팰리스(212~263m)에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인 초고층 빌딩 프로젝트로는 랜드마크타워 용산, 서울DMC랜드마크빌딩, 잠실 제2롯데월드 등을 들 수 있다.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이들 빌딩은 2014년 즈음 땅에서 최소 555m 이상 치솟아 하늘과 마주하게 된다. 초고층 빌딩만큼 높지는 않지만 전체 면적이 그에 뒤지지 않는 복합건물도 한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프로젝트로 관심을 모은다. 현재 세워지고 있는 대표적 복합건물로는 파크원, 서울국제금융센터, 센터원 등이 있다.
뉴욕 타임스가 이미 2년 전 “전 세계적으로 인구가 급증하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초고층 빌딩이 도시 개발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보도할 정도로 도시 계획에서 초고층 빌딩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일리노이공대의 초고층도시주거협의회는 2020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20개 가운데 15개가 중동과 아시아에 세워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초고층 빌딩은 기능 면에서뿐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적 위치를 상징하는 중요한 랜드마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돈이 있는 자본가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 만한 투자처다.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투자자인 삼성물산이 지급 보증을 거부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대표적인 사례다. 이곳에는 높이 620m의 랜드마크타워(가칭: 드림타워)가 2014년에 완공될 계획이었다. 용산 국제업무지구는 코레일, SH공사,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을 대행하는 KB자산운용, 미래에셋맵스(국민연금 51% 대주주), KT&G 등 공공기관 자금이 전체 출자지분의 46.3%를 차지한다. 이에 용산역세권개발은 스스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며 용적률을 높여 사업성을 향상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용산역세권개발은 “2016년 말까지 모든 단지를 준공하겠다”며 의지를 보이는 상황이다.
또 다른 랜드마크 프로젝트인 상암동 서울DMC랜드마크 빌딩 역시 토지 대금을 납부하지 못해 사면초가에 빠졌다. 다행히 지난 9월 900억원 증자를 확정해 다시 사업이 정상화됐다. 시행사인 서울라이트는 “부동산 침체에도 발 빠른 대처로 사업을 재개했다”며 “2014년까지 국내 대표 언론사들이 DMC 지역에 사옥을 준공하면 세계 최대의 디지털 미디어 시티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서울라이트 관계자는 2015년 말 여의도보다 더 많은 대기업 직원이 근무하는 오피스 지역을 조성해 제2의 여의도가 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620m의 서울DMC랜드마크 빌딩은 2015년에 완공될 계획이다.
초고층 빌딩보다 복합건물이 사업성 높아롯데그룹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잠실 제2롯데월드는 2010년 6월 22일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해 9월 9일 건축허가신청서를 송파구에 제출했다. 현재 건축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1987년 부지를 사들여 20년 넘게 사업을 추진한 끝에 힘겹게 얻은 성과다. 지하 6층~지상 123층,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는 계획대로 2015년에 완공되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빌딩으로 우뚝 서게 된다. 롯데그룹은 ‘롯데수퍼타워’라 불리는 제2롯데월드 빌딩에 첨단기술을 도입해 친환경 복합빌딩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주로 사무실 용도로 쓰이는 초고층 빌딩과 달리 복합건물은 사무실, 호텔, 상업시설, 레지던스 등 다양한 용도로 건물을 이용한다. 단계적으로 완공하고 개장할 수 있어 사업성에서 초고층 빌딩 사업보다 유리하다. 여의도에 자리 잡은 서울국제금융센터는 현재 사업 자금 조달을 모두 마치고 입점 계약을 하고 있다. 개발을 맡은 AIG코리아부동산개발은 “딜로이트, ING리얼스테이트자산운용 등이 장기임대 계약을 이미 완료했다”고 밝혔다. 높이는 279m로 2011~201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완공할 계획이다. 이 빌딩은 프리미엄 업무용 타워 3개 동, 5성급 호텔, 3개 층의 최고급 쇼핑몰, 멀티플렉스 영화관, 고급 식당가 및 풍부한 신개념 옥외공간을 망라하는 복합상업시설로 이뤄진다. AIG코리아부동산개발 관계자는 “서울국제금융센터는 입주 기업의 직원들에게 새로운 업무 환경뿐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까지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여의도에 들어설 예정인 복합건물 파크원은 72층 332m 규모로 오피스 타워, 호텔, 쇼핑몰, 휴식공간, 녹지공간이 조성될 계획이다. 오피스 타워는 두 동으로 이뤄진다. 오피스 타워 2는 미래에셋이 매입했고 오피스 타워 1은 우선협상자 선정을 놓고 시행사인 스카이랜과 대주단 사이에 이견을 조율하고 있다. 파크원은 특히 친환경적 요소를 강조했다. 건물 내외부에 녹지대를 충분히 확보하고 건물 내부에 자연광이 넉넉하게 들게 했다. 또 효율적 에너지 시스템과 자연친화적 공간 배치를 이용해 친환경 건축물을 짓겠다는 뜻을 밝혔다.
중구 을지로 청계천변에 세워진 센터원은 2010년 10월 완공해 임차인을 모집하고 있다. 센터원 시행사인 글로스타 관계자는 “사전 임대율이 60~70%고 60개 층 가운데 9개 층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개 층을 맥킨지코리아가 사전 예약했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오피스 빌딩 수요가 지난해와 비교해 살아나고 있지만 내년에 대량의 오피스 빌딩 공급이 기다리고 있어 임대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금 조달이나 시장의 변화 같은 외부 요소 외에 자구책으로 사업을 활성화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임대 마케팅이다. 부동산컨설팅회사 세빌즈코리아의 홍지은 리서치앤컨설팅 팀장은 “내년까지 임대시장이 좋지 않을 것”이라며 “사전 마케팅을 벌이는 등 임차인의 니즈를 파악한 다양한 임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터뷰 윌리엄 프리만 AIG코리아부동산개발 대표
국내 대표적 랜드마크 프로젝트인 서울국제금융센터 사업을 총괄하는 윌리엄 프리만(사진) AIG코리아부동산개발 대표에게 복합건물 건설에 대해 물었다. 그는 다국적 기업에서 20년 넘게 부동산 업무를 맡아왔다.
- 서울국제금융센터 프로젝트는 언제 착수해 얼마나 진행됐나?
“2000년대 초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동북아시아 금융허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복합금융센터 개발 계획을 수립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현 대통령이 사업을 추진했고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초대회장이었던 모리스 그린버그 당시 AIG그룹 회장이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다. 2005년에 서울시와 프로젝트 임대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딜로이트, ING자산운용, 다이와증권, H&M, CGV, 영풍문고 등이 선 임대계약을 마쳤다.
- 이번 사업의 목표와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서울은 아시아에서 가장 활력 넘치는 도시 중 하나다. 아시아 시장에 매력을 느낀 다국적 기업들은 국제 수준에 맞는 넓은 사무 공간을 원한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다양한 비즈니스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구체적 예상 이익은 말하기 어렵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복합 랜드마크 프로젝트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2007년 하반기부터 선 임대 마케팅을 추진했고, 그 결과 첫 번째 오피스 타워인 One IFC 타워의 60%에 달하는 임대 계약을 마무리했다. 앞으로 사무실이 과다 공급될 수 있다는 점이 고려해야 할 변수다.”
- IFC 서울 외에 국외에서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가 있나?
“홍콩 AIA 센트럴 빌딩, 덴마크의 갤러리K, 멕시코의 빌라 플로리다 산업 단지, 미국 애틀랜타의 애틀랜타 스테이션 등이 있다.”
- 국외와 비교해 한국의 랜드마크 개발 사업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주요 도시에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미 상당한 수준이다. 하지만 수요 공급을 고려할 때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이 우려된다. 금융 허브가 갖춰야 할 요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인프라와 제도다. 서울국제금융센터는 서울시의 대표적 금융 허브 인프라 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다. 외국인이 꼭 와보고 싶은 금융 허브를 만들려면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가 뒷받침돼야 한다. 싱가포르는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해외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공략한다. 한국 역시 부산과 여의도를 금융 중심지로 지정하고 제도를 정비하고 있지만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인프라와 제도의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진정한 금융 허브가 탄생할 것이다.”
- 성공 사례로 꼽을 만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홍콩 IFC 빌딩, 도쿄 미드타운, 런던 캐너리워프, 뉴욕 콜럼버스 서클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업종의 임차인을 성공적으로 구성하고 상권과 지역에 맞는 브랜드를 유치해 부동산 가치를 높였다. 지역 주민과 임차인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바꿨다는 공통점이 있다.”
- 랜드마크 개발 사업이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자금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여의도처럼 상업적 성공이 보장되는 대규모 부지를 선정하는 노하우도 있어야 한다. 또 시공사의 시공 능력, 최고 수준의 환경 친화적 건축 기술도 갖춰야 한다.”
- 외국 자본이 한국 부동산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10년 동안 해외 자본의 한국 투자 환경은 많이 개선됐다. 한국 부동산 시장이 개방된 1998년에는 오피스 건물이 저평가돼 있었다. 이를 투자의 기회로 보고 해외 자산운용사와 국부펀드들이 한국 시장에 투자했고 이후 한국 부동산 기관 투자가 급속히 성장했다. 2008년에는 오히려 국내 기관 투자자가 해외 부동산을 싸게 매입하는 사례도 생겼다. 초기에 들어온 해외 펀드들이 단기에 큰 차익을 본 것 때문에 지금까지 문제시되는 것 같다. 이는 부동산 시장 개방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 같은 것이다. 현재는 한국 자본의 힘이 세고 성숙해 과거처럼 해외 자본이 쉽게 이득을 얻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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