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수 김덕중으로 기억되고 싶다'
▎ 김덕중 1934년생 경기고, 미국 위스콘신주립대·미주리대(경제학 박사) 위스콘신주립대 조교수 서강대 경상대학장 아주대 총장 교육부 장관 ㈜대우 대표이사 현재 한국선진화포럼 이사, 고등기술연구원 이사장
『개발시대의 경제학자』. 인곡(仁谷) 김덕중(77)의 희수 기념 회고록 제목이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DJ(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 장관, ㈜대우 대표이사 등 경제학자·교육자·기업가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다채로운 이력에서 굳이 경제학자를 강조한 이유는 뭘까? 그는 “한국경제가 1970~80년대 눈부신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경제학자로 작은 보탬이 됐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개발시대에서 경제학자로 지낸 건 큰 복”이라고도 했다. 능력과 경험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만든 번역서가 경제학 교과서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당시 그는 『거시경제이론』을 썼다.
“개발시대 경제학자는 큰 복 받아”세계 60여 개국을 다니며 셀 수 없이 많은 강연과 강의를 했다(스탠퍼드대에서는 무려 15년 동안 특강을 했다. 학생과 학교의 평가가 좋아 교육부 장관을 맡지 않았다면 지금껏 특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 히스 영국 총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를 비롯한 당대 세계 지도자들과 토론했고, 한국경제의 발전상도 알렸다. 그는 “경제학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생산적인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1934년 태어난 그는 경기고에 다닐 때 한국전쟁이 나자 피란지 대구에서 공군에 입대했다. 전쟁이 끝난 후 경기고를 졸업하고 잠시 작은 회사에 다니다가 1958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61년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과를 마쳤지만 1964년 다시 유학 길에 올라 미주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해 귀국해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그러다 1976년부터 2년 정도 서강대를 휴직하고 동생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도와 ㈜대우의 대표이사로 일했다. 1990년대에도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1995년 아주대 총장에 취임해 학생을 교육의 중심에 놓는 대학 개혁을 주도했고, 1999년 교육부 장관에 올라 BK21 사업을 마무리했다.
강의 들은 양희은·박근혜 기억에 남아-회고록이 벌써 나왔을 법한데….
“오래전부터 제자나 가족이 왜 회고록을 쓰지 않느냐고 성화였죠. 그런데 나에게 좋은 얘기만 쓰거나 남에게 폐가 되는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망설였어요. 내가 남기고 싶은 얘기나 경험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1인당 국민소득 60달러에서 2만 달러로 성장한 급변기여서 그 사이의 역경과 극복 과정을 써 봐야 요즘 젊은이들이 공감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했고. 그러다 내가 이렇게 생산적으로 살 수 있었던 건 모두 한국경제의 발전 덕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나에게 주어진 그 모든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죠.”
▎김덕중의 회고록은 개발시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경제학자·기업인·교육자로 우리 사회를 폭넓게 경험한 그의 특이한 이력은 그 자체로 재미있거니와 치열했던 지난 시대의 열기도 느끼게 한다.
그와 더불어 개발시대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던 남덕우·김만제·이승윤씨 등이 현실정치에 참여했지만 그는 학교를 떠나지 않았다. 교수는 누가 뭐래도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천직이었다. 동생인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돕느라 2년쯤 대우에 몸담았고, 교육부 장관으로 관가에 들락거렸지만 교수로 연구하고 강의하는 게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했다(33년 동안 서강대에 몸담은 그는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는 처음 정년퇴직하는 기록을 남겼고 지금도 서강대 명예교수로 있다).
당시 서강대 학생은 어떤 전공이든 졸업하기 전에 경제학 관련 과목을 적어도 하나는 들어야 했다. 학교 측은 경제에 대한 지식 없이 사회에 나갈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런 식으로 만든 강의를 김덕중씨가 많이 맡았다. 그는 경제와 사회라는 제목으로 기본적 경제학 개념을 가르쳤다. 그는 경제학과 학생이 아닌 사람 가운데 가수로 양희은씨와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한 박근혜씨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양희은씨는 강의 시작 5분 후쯤 맨 마지막에 들어오곤 했지. 밤늦게까지 노래를 부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늦는다고 하더군. 사정은 이해하겠지만 강의는 절대 빼먹지 말라고 야단 쳤어. 박근혜씨는 글씨를 아주 깨끗하게 쓰고 답안지도 깔끔하게 써냈지. 대통령 딸이라 경호원들이 늘 붙어 다녀 궁금한 게 있으면 연구실로 오지 못하고 강의실 밖에서 질문하곤 했지.”
-평생 바쁘게 살아왔는데 요즘은 어떤 일을 많이 합니까?
“남덕우 전 총리가 이사장인 한국선진화포럼에 이사로 있어요. 특별히 하는 일은 없고. 노인네들이 나라 걱정하는 거지. 글로벌 경제환경이 급변하고 남북관계 불확실성도 커졌잖아요. 특히 이념 대립이 심하니 보수적 입장에서 방향을 잡으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모색하고 있죠. 사이버 공간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식으로 말이야.”
-G20 정상회의가 곧 열리는데 감회가 남다르겠습니다.
“세계 정치 지형에서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랐다는 방증이죠. 여기까지 오는 데 나도 힘을 보탰다는 생각이 들어 기쁘기도 하고.”
-지금부터가 더욱 중요하겠죠.
“경험상 당장 되지 않는 일이지만 옳다고 믿고 꾸준히 노력하면 나중에 대부분 이뤄지더군요. 절대로 기적은 없지만 뭐든 전력을 다해 능력과 경험을 쌓으면 그게 밑거름이 됩니다. 특히 지도자는 더욱 그런 믿음과 노력이 있어야죠.”
-동생인 김우중 전 회장을 자주 만납니까?
“사촌인 아이들끼리는 자주 만나요. 근데 나와 동생은 아주 가끔 봅니다. 자기 일로 바쁘기도 하고. 그나마 올 초 베트남 하노이의 골프장에서 일주일 동안 라운드를 했어요. 오랜만에 꽤 오래 같이 지냈죠. 동생의 건강은 괜찮은 편입니다. 얼마 전 대우세계경영연구회에도 나왔죠(김우중 전 회장은 10월 19일 옛 대우그룹 임직원들이 만든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창립 1주년 모임에 참석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3월 서울 밀레니엄힐튼 호텔에서 열린 대우그룹 출범 43주년 기념 행사를 끝으로 공식 행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동생은 크게 두 가지 일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개척할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어요(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2020년까지 20만 명 규모의 글로벌 영 리더 육성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내년 100명을 시작으로 대졸 미취업자의 해외 연수 등을 돕는다). 동생 개인적으로는 베트남 등에서 조그만 사업도 준비하고 있어요.”
남승률 기자 nam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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