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온 미녀 스파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미국에서 추방된 후 7개월 동안 빨강머리 스파이 안나 채프먼은 러시아에서 가장 뜨는 문화적 아이콘이 됐다. 그녀는 남성지에서 반라의 옷차림으로 권총을 들고 선정적인 포즈를 취했다. 몸에 달라붙는 군복을 입고 차렷 자세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으로부터 메달도 받았다. 새해맞이 전국 TV 프로그램에서 촌극을 하고 ‘세계의 미스터리’를 다룬 독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TV에 수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지난주엔 자신의 이름을 상표로 등록했다. 앞으로 비누에서부터 주얼리, 시계, 의류, 신발, 보드카와 맥주에 이르기까지 채프먼 브랜드의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리라는 뜻이다.
채프먼의 개인적인 스타일은 부스스하게 일어선 머리, 노출된 브래지어 끈, 공단 이브닝 드레스 등 눈뜨고 봐주기 어려울 만큼 볼품이 없을지 모른다. TV에 비친 모습도 그리 매혹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녀의 성공비결은 그녀가 러시아인의 꽤 많은 고정관념에 부합돼 그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아마 사람들이 그녀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그녀는 위험하고 섹시한 미녀의 이미지를 구현한다. 그녀는 실재하는 러시아판 여성 제임스 본드”라고 그녀의 섹시한 사진들을 게재한 맥심(러시아판) 잡지의 일리야 베주글리 편집장이 말했다. “게다가 많은 러시아인은 그녀가 미국인에게 한 방 먹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에겐 그런 성공담이 많지 않다.”
그러나 모두가 채프먼의 탐욕스러운 자기선전 공세를 달가워하진 않는다. “그녀가 남성지 커버에 등장했을 때 골수 공산당원들은 충격을 받고 혐오감을 나타냈다”고 그녀를 십대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베주글리가 말했다. 그러나 그녀를 ‘콜걸’이나 ‘푸틴 정권의 노리개’로 부른 모스크바 라디오 에코 방송의 전화 참여자들과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이라도 채프먼 브랜드를 파는 그녀의 천재적인 재능만큼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녀의 진짜 획기적인 홍보 전략은 요컨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을 섹시하게 만든 점이다. 러시아 타블로이드 신문들은 그녀를 ‘에이전트 90-60-90(신체 치수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인치로 환산하면 35-24-35)’이라고 부르면서 스파이 활약상을 미화한다. 첩보원 출신이 많은 크렘린은 일찍이 채프먼을 활용한 홍보에 뛰어들어 요즘 러시아 정부 행사에 그녀는 약방의 감초 격인 존재다. 채프먼은 친크렘린 청년단체 청년수비대의 집회에 참석했다(푸틴의 구상으로 결성된 이 단체는 지난해 언론인과 야당 인사들을 괴롭히는 데 앞장섰다). 그녀에게 러시아 의회 두마의 의석을 주는 방안도 거론됐다. 메드베데프의 역점사업인 모스크바 외곽 스콜코보에 들어서는 ‘혁신도시’ 사업에도 그녀를 끌어들였다. 스콜코보 책임자가 몇몇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100만 달러 연구 보조금을 청년수비대와 함께 신청하라고 그녀에게 제안했다. 한마디로 그녀는 러시아 정권의 얼굴마담이 된 셈이다. “안나 채프먼의 브랜드 인기가 높아질수록 러시아의 이미지가 더 좋아진다”고 세르게이 마르코프 두마 부의장이 말했다.
채프먼의 세계지배 전략의 다음 단계는 미국기업 제다사가 개발한 1.99달러짜리 독점 아이폰 앱(응용프로그램)이다. ‘안나 채프먼과 포커를’이라는 이 게임은 ‘텍사스 홀드 뎀(Texas Hold ‘Em)’이나 ‘파이브 카드 드로(five-card draw)’ 방식으로 그 러시아 스파이와 게임을 한다(바람을 불어넣는 안나 채프먼 섹스 인형도 또 다른 미국 회사가 만들었지만 무허가 제품이다).
생존하는 러시아인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사람(푸틴과 채프먼)이 모두 스파이 출신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누가 러시아의 진정한 지배자인지, 그리고 KGB가 한 세대도 안 되는 기간에 그들의 이미지에서 수백만 명의 피를 씻어내는 데 얼마나 성공했는지 말해준다. 달리 더 관대하게 표현하자면 베주글리 맥심 편집장의 말마따나 “안나 채프먼의 이야기는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인생역전의 대표적인 사례다.” 러시아인은 바로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OWEN MATTHEWS AND ANNA NEMTS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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