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상 ‘코스닥’ 입성하다
고철상 ‘코스닥’ 입성하다
철스크랩 업체 자원 강진수 회장·서재석 사장 인터뷰철스크랩 업체 ‘자원’ 국내 최초 상장 … 광산 광업권 획득 추진 “시너지 기대”
해상수송시스템 구축 … 우회상장 한계 털고 후방산업 단점 극복해야
철스크랩(폐철)을 수집·선별하는 업(業). 첨단산업도, 제조업도 아닌데 묘하게 뜬다. 고개를 갸웃하는 이가 많을지 모르겠다. 철스크랩, 결국 쓰레기 아닌가.
그렇지 않다. 철스크랩은 명실상부한 자원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철강 중 40%는 철스크랩으로 만들어진다.
코스닥에 입성한 고철상도 나왔다.
철스크랩 업체 자원(資源)이다. 고철상이 상장된 건 국내 최초, 아시아에선 두 번째다. 세계에선 13번째다. 고철상이라는 편견을 딛고 일궈낸 알찬 열매다.
자원의 강진수(52) 회장, 서재석(46) 사장을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강남 대치동 본사에서 경기도 안산공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이뤄졌다. 하이웨이 인터뷰인 셈. 상장IC를 통해 성장고속도로에 성공적으로 올라탄 자원의 현재 상황과 꼭 닮은 인터뷰를 공개한다. 아울러 철스크랩 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1976년 대전에서 열린 한 주강업체 준공식. 까까머리 고등학생이 현장에 참석했다. 법무사였던 부친이 거액을 들여 투자한 정일주강의 첫 공식행사. 농장 주인이 꿈이었던 이 학생에겐 매력 없고 심심하고 그저 그런 준공식이었다. 참석자들은 펄펄 끓는 쇳물을 보면서 연방 감탄사를 날렸다. 하지만 그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그곳에 열매가 알차게 영근 과수(果樹)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로지 용광로의 굉음과 분진만 가득했으니, 농장 주인을 꿈꾸는 그가 흥미를 가졌겠는가.
이 학생이 먼 미래에 ‘철’을 천직으로 삼아 ‘고철상 혁신의 선구자’가 될지 부친도, 자신도 몰랐다. 철스크랩 수집·유통업체를 코스닥에 국내 최초로 상장한 ‘자원’ 강진수 회장이 바로 35년 전 까까머리 학생이다.(※철스크랩은 고철(古鐵)을 말한다. 폐철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가우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충격준공식으로부터 7년이 훌쩍 흐른 1983년, 그는 무척이나 무료했던 그곳 정일주강에 입사했다. 부친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영업·마케팅을 담당했지만 마뜩치 않았다. “요즘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처음부터 철을 좋아했느냐고요. 솔직하게 말해야 마음이 편하겠죠? 그렇지 않았어요. 별 흥미도 없었고요.” (강 회장은 감추는 게 익숙하지 않아 보였다. 때론 ‘이건 좀’이라며 머뭇거렸지만 이내 진실을 말했다. 스스로 ‘나는 잘나지도 않았고, 성공하지도 않았다’며 몸을 낮추기 일쑤였다. 그의 경영철학은 신뢰와 겸손이다.)
그의 관심을 사로잡은 건 사실 따로 있었다. “자동차에도, 건물에도, 하물며 작은 가전제품에도 철이 사용되는데, 폐기되면 그 철이 어떻게 될까.” 그에겐 쇳물보다는 철스크랩이 더 매력적이었다. 1986년 12월 철스크랩 업체 정일산기를 세웠다. 어린 나이(27세)에 창업했지만 장사는 좀 됐다. 하지만 천직으로 삼기엔 무언가 부족한 게 있었다. ‘고철상’이라는 이미지가 마음에 걸렸다. 자녀들 때문에 더 그랬다. “큰아이(수현·1980년생)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정일산기를 설립했죠. 쌍둥이(아름·다운·1983년생)도 쑥쑥 크고 있었고요. 이런 걱정이 문뜩 들더라고요. ‘학교에서 아버지 뭐하냐고 물으면 혹시 창피하지 않을까’라는.”
그의 외도 아닌 외도는 3년 넘게 계속됐다. 멋져 보이는 사업을 찾는 데 열중했고, 잇따라 일을 벌였다. 실속 없는 창업과 폐업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됐다. 악순환이었다.
인생에는 늘 결정적 순간이 있다. 강 회장도 그랬다. 온갖 일에 손을 댔다가 쓴잔만 마시던 1990년대 초. 그는 유럽 출장길에 올랐다. 스페인에서 그간의 허세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 가족) 성당. 바로 이거였다. 1882년 착공된 이 성당은 아직 공사 중이다. “이 성당을 설계한 가우디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도 설계자처럼 현재보단 미래를 위해 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무릎을 탁 치면서 혼잣말을 했다. “지금은 철스크랩업이 천대 받고 있지만 노력하면 바뀔 거다. 업계를 반석 위에 올리려면 누군가는 기초공사를 해야 한다.” 그의 진짜 고철상 인생이 막을 올리고 있었다.
유럽에서 돌아온 강 회장은 “철스크랩 업체를 반드시 상장시키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사람들은 웃었다. ‘고철상이 상장되면 성을 바꾸겠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강 회장의 동반자 서재석 사장이었다.
서 사장은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다. 별 탈 없이 서울대(국제경제학과 83학번)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엔 학생운동을 했다. 혼탁한 사회가 그의 야성과 정의를 깨웠다. 뒤늦게 대학을 졸업한 그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고 싶다’며 종합상사인 쌍용(현 GS글로벌)에 입사했다. 처음 맡은 일은 대표적 비철금속인 알루미늄의 수입. 낯선 업무였지만 서 사장은 색다른 재미를 느꼈다. “알루미늄이 100% 수입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런던메탈시장에서 거래되는 시세상품이라는 점도 재미있었죠.”
쌍용에 입사한 지 6년 만인 1996년, 그는 사표를 던졌다. 다양한 철·비철금속을 직접 다루고 싶었다. 중국에 태림강업 베이징 사무소를 열었다. 실리콘·망간 등 월 2000t가량을 중국으로 들여왔다. 순조로웠다. 하지만 웬걸. 중국이 실리콘·망간을 반덤핑 품목으로 정하면서 그의 행보에 급제동이 걸렸다.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선택한 게 철스크랩. 이게 그의 터닝포인트가 될지 누가 알았으랴. “철스크랩을 수입하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아시아에서 철스크랩 산업이 가장 발전한 일본에서 주로 수입했죠. 자연스럽게 일본 철스크랩 업체를 방문하게 됐고, 그들의 성숙한 시스템을 배울 수 있게 됐어요.”
중국 반덤핑 정책이 운명 바꿔일본 본토에 입소문이 났다. 철스크랩을 잘하는 코리안 ‘Mr.서’가 있다고. 1998년 매출 1000억원대 철스크랩 업체인 일본 에코네콜에서 영입을 타진했다. 마다할 이유가 딱히 없었다. 서 사장의 일본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본에서 일해보니까 한국에 없는 게 딱 세 개 있더군요. 내비게이션과 대부업체 그리고 철스크랩 업체. 이거다 싶었죠. 일본의 선진 노하우를 체득해 한국의 척박한 철스크랩 업계를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일본에서 선진 철스크랩의 노하우를 습득한 그는 프로페셔널이 됐다. 일본에서도 그를 능가하는 전문가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을 지켰다. 6년 후인 2003년 귀국길에 올랐다. 계획대로 그럴듯한 철스크랩 업체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되레 “좋은 대학 나와서 왜 고철상을 하려 하느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서 사장은 할 수 없이 에코포인트라는 오퍼상을 설립했다. 국내 철스크랩 업체의 물건을 받아 해외에 수출해주는 역할이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강 회장이다. 서로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긴 첫 만남이었다.
“당시 철스크랩 가격이 떨어진 상태였어요. 철스크랩 업체들은 그래서 수출을 모색했죠. 강 회장 등 4명의 업자가 수천t을 공급하기로 구두계약을 했어요. 그런데 며칠 후 가격이 오르더니 강 회장을 제외한 3명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죠. 그때 강 회장이 인상적인 행동을 했어요.” 강 회장은 서 사장을 찾아가 나머지 3명의 계약물량까지 공급했다. “한번 약속했으니 내가 책임지겠다”면서. 서 사장은 강 회장을 단번에 신뢰했고, 강 회장은 그의 전문가적 식견을 탐냈다. ‘강-서’ 콤비의 ‘고철상 상장 프로젝트’는 이렇게 씨앗이 싹텄다.
누군가는 “웬 고철상 이야기냐”고 말할지 모르겠다. 고철상은 동네에도 많지 않으냐는 거다. 하지만 이들 고철상은 절대 깎아봐선 안 된다. 고철상이 모으는 철스크랩은 쓰레기가 아니다. 값진 자원이다. 국내 조강생산량(2010·한국철강협회)은 대략 6000만t. 약 60%는 철광석을 이용해 만든 것(선철)이고, 나머지는 철스크랩을 재활용한 거다. 철 2400만t이 철스크랩으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철스크랩의 t당 가격이 평균 450만원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철스크랩 시장의 규모는 10조8000억원(2400만t×450만원). 국내 쌀 시장(6조원)·쇠고기 시장(3조원)보다 크다.
주목할 사실은 철스크랩 시장이 더욱 커질 거라는 점이다. 철의 주원료 철광석은 언젠가 고갈된다. 매장량은 730억t으로 추정된다. 짧으면 100년, 길어도 200년 남았다. 고갈 시점이 다가오면 가격이 급등할 게 뻔하다. 그러면 재생자원이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철스크랩이다.
이유는 더 있다. 철스크랩은 친환경 소재다. 철광석을 활용해 철을 만들 땐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산화철(철과 산소의 화합물)인 철광석을 철로 만들려면 코크스(또는 석탄)를 이용해 산소를 태워야 한다. 이산화탄소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석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h당 991g. 석유(782g)·태양광(57g)·원자력(10g)보다 훨씬 많다. 반면 철스크랩은 석탄이 필요 없다. 그냥 용광로에 넣으면 끝이다. 산소를 태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한다.
철스크랩 선별 능력 키우는 글로벌 기업국내외 제강사들이 전기로 설비를 늘리는 것도 이유다. 러시아·중국·인도는 지난해 5650만t 용량의 전기로 설비를 증설했다. 국내 제강사도 마찬가지다. 동부제철은 지난해 250만t, 동국제강은 150만t 용량의 전기로를 설치했다. 철은 고로와 전기로에서 만들어진다. 고로에 들어가는 주원료는 철광석, 전기로는 철스크랩이다. 전기로 설비가 증가하면 철스크랩의 사용량이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예상대로 철스크랩 사용량은 증가 추세다. WSA(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철스크랩 교역량은 2008년 2억t을 훌쩍 넘어섰다. 2000년(1억2300만t)보다 66% 증가했고, 1990년(7500만t)의 3배가 됐다.
지금으로선 철스크랩 업체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이들이 철스크랩을 어떻게 모으고, 선별하느냐에 따라 자원이 될 수도,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폐타이어 예를 들어보자. 폐타이어에선 고무뿐 아니라 철도 나온다. 타이어 무게의 20%가량이다. 그런데 양질의 철이 아니다. 고무와 섞여 있어 잘 선별해야 한다. 이게 기술력이다. 서 사장은 “자원은 폐타이어에서 철을 완벽하게 선별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라며 “올 상반기 글로벌 기업을 능가하는 철 선별 기술력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철스크랩 업체는 고가 장비와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 1위 업체 심스메탈의 금속 리사이클링 장비는 230개가 넘는다. 가전제품 리사이클링 장비도 60개에 달한다. 철스크랩 취급량은 1260만t(2009년 기준). 미국 나스닥 시장에서 34억 달러를 웃도는 시가총액을 뽐낸다. 일본 세이난상사(靑南商事)의 철스크랩 선별장치는 30종에 달한다. 바람에 날리고, 물에 띄우고, 센서로 분리하고, 전기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별별’ 수단을 다 써 철스크랩을 선별한다.
강 회장은 국내 철스크랩 업계의 현주소를 꼬집었다. “폐차를 예로 들어볼게요.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 자동차 폐철의 3%만 땅에 묻혀요. 우리나라는 35%가 묻히죠. 폐철의 선별·재활용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日, 리사이클링 위해 자동차 해체 실험안타까운 얘기다. 국내 철스크랩 공급량은 연 2400만t이다. 국내에서 1600만t이 조달되고, 해외에서 800만t가량이 수입된다. 우리의 철스크랩 자급률은 70%가 조금 넘는다. 철광석뿐 아니라 철쓰레기도 수입하는 셈이다. 수입비용은 3조6000억원(800만t×450만원)에 달한다. 산은경제연구소 이민식 연구원은 “철스크랩은 자원전쟁 시대의 자주(自主) 자원”이라며 “다양한 철스크랩 장비를 갖춘 대형 업체가 하루빨리 등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철스크랩 업계의 현주소는 아직 척박하다. 철스크랩 업체 중 공단 또는 산단에 입주한 곳은 극히 드물다.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입주를 불허하기 때문이다. 한국철강협회 철스크랩위원회 오영남 과장은 “폐기물관리법 등 관련 법에서 철스크랩 업체의 입주를 못하게 하는 규정은 없다”며 “지자체가 법 적용 과정에서 이들 업체의 입주를 막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의 철스크랩은 도심형 업종”이라며 “시내에서 철스크랩 업체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동안 말문을 열지 않던 서 사장이 일본 경험담을 꺼냈다. 그가 다녔던 에코네콜은 ‘폐’자가 들어가는 건 모두 취급했다. 폐타이어·폐차·폐기물 등. 헌옷·유리도 선별해 에너지원으로 삼았다. 서 사장이 더 놀랐던 건 일본 지자체의 정책적 지원이었다. “일본 지자체는 특정 기업과 철스크랩 업체를 묶는 방식으로 철스크랩 등 폐기물을 관리한다”고 그는 말했다. “에코네콜은 가전업체 후지쓰와 합작으로 리사이클링 공장을 설립했죠. 가전업체에서 철스크랩이 나오면 곧바로 자원으로 만드는 구조였어요.”
자동차의 사례는 더 눈길을 끈다. “어느 날 닛산 관계자가 찾아왔어요. 왜 왔나 싶었는데 해체 실험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무슨 말인가. 자동차를 해체하는 실험을 한다니. 그는 말을 계속했다. “자동차를 뜯더라니까요. 철스크랩 업체에 와서요. 그냥 뜯는 것도 아니었어요. 어떻게 해체하면 철스크랩을 잘 확보할 수 있는지까지 검토했죠, 정말 놀랐습니다. 일본 철스크랩 업체의 경쟁력은 이런 유기적 시스템에서 나오는 겁니다.”
국내 철스크랩 업계의 성장을 방해한 건 또 있다. 편견이다. 강 회장은 “아무리 노력해도 고철상이라는 편견이 사라지질 않았다”고 했다. 혹자는 “노력이나 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업체의 노력과 편견을 없애는 일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다시 강 회장의 스토리다. 유럽에서 성당을 보고 충격을 받은 강 회장은 정일산기의 개혁을 추진했다. 철스크랩을 자동으로 파쇄하는 장비를 자체 개발했고, 경유 대신 전기로 작동하는 포클레인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로 철스크랩을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 선별하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하지만 고철상이라는 이미지는 쉬 개선되지 않았다.
강 회장이 2003년 또 다른 철스크랩 업체 ‘자원(당시 가람)’을 설립한 이유다. 그는 온 힘을 쏟았다. “규모가 큰 기업을 만들어 고철상 이미지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다지면서 말이다. 구체적 상장 플랜도 이때 세웠다. 서 사장은 2006년 자원에 합류했다. 두 사람이 첫 인연을 맺은 지 3년 만의 의기투합이었다. 강 회장의 적극적 구애가 한몫했다. “프로가 필요했어요. 상장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설픈 업자와는 일을 해선 안 됐죠. 서 사장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게 꼭 세 번이에요. 어찌나 빼든지(웃음).”
강 회장의 삼고초려는 빛을 발했다. ‘강-서’ 쌍두마차가 이끌기 시작한 자원은 놀라운 변신을 시작했다. 글로벌 철스크랩 업체가 그런 것처럼 해상수송시스템을 갖췄다. 인천·평택·군산·목포의 항구에 야드(철스크랩을 쌓을 수 있는 공간)를 구축했다. 철스크랩을 선박으로 나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거다. 해상시스템 구축은 의미가 크다. 수송시간이 단축되고, 수출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원의 지난해 철스크랩 공급량은 25만t. 이 중 30%는 해상수송한다. 국내에서 뱃길을 이용하는 업체는 자원뿐이다.
“리스크 관리하면서 공격경영 펼칠 것”각종 철스크랩 장비도 대거 도입했다. 충남 안산공장엔 1000마력 규모의 폐차 슈레더(절단기)를 설치했고, 가전제품 및 캔 슈레더도 도입했다. 필리핀 기업엔 60만 달러를 들여 슈레더를 공급했다. 해외진출을 위한 포석을 깐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노력은 알찬 열매 두 개를 맺었다. 자원의 실적은 2008년 755억원에서 2010년 1300억원(추정)으로 72% 늘었다. 자본금은 같은 기간 10억원에서 87억원으로 8.7배가 됐고, 자산은 300억원을 훌쩍 넘었다. 둘째 열매는 두 사람이 그토록 바랐던 일이다. 지난해 10월 상장에 성공한 것이다. 자원은 마담포라 브랜드로 한때 유명세를 떨쳤던 의류업체 아이니츠를 M & A (인수합병)해 코스닥에 우회상장하는 데 성공했다. 서 사장은 “하루빨리 코스닥에 입성하기 위해 우회상장이라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비록 우회상장이지만 의미는 작지 않다. 국내 철스크랩 업체 최초의 상장이다. 아시아에선 홍콩 차이나메탈리사이클링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에선 13번째 상장이다. 강 회장은 “영광스럽지만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렇다. 자원은 문턱을 갓 넘었을 뿐이다. 풀어야 할 과제는 아직 많다. 무엇보다 우회상장 기업이라는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함량미달 기업이 우회 경로를 통해 코스닥에 입성한 게 아니냐’는 오해를 살 수 있다. 자원으로선 실적과 경영 성적표로 진가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 서 사장은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과제는 후방산업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철스크랩은 철강경기에 민감하다. 철강경기가 나쁘면 철스크랩 산업도 힘을 잃는다. 자동차가 덜 생산되면 자동차 폐기물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 강 회장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후방산업의 약점을 해소할 계획”이라며 말을 이었다. “현재 국내 광산의 광업권 획득을 추진하고 있어요. 일부는 거의 성사됐고요. 철스크랩을 중심으로 시너지 효과를 꾀할 수 있는 각종 사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강 회장, 서 사장 그리고 기자는 고속도로를 함께 달렸다. “안성공장과 평택항을 가보자”는 기자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 있는 자원 본사에서 경기도 안산공장으로 가는 길은 꽤 복잡했다. 고속도로를 세 번 갈아타고 나서야 국도로 진입했다. 만약 출구를 잘못 찾았다면 더 험난한 여정이 됐을 게다. 자원의 현주소가 오버랩됐다. 신출내기 상장기업 자원은 출구를 잘못 찾을 수도, 방향을 잃을 수도, 때론 과속할 수도, 때론 바퀴가 터지는 위기상황을 만날 수도 있다. 강 회장은 “언제 어디서 덜컹거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며 “리스크를 잘 관리하면서 공격경영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자원의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다. 자칫 삐끗하기라도 한다면? ‘고철상은 고철상일 뿐’이라는 핀잔이 쏟아질 거다. 고행의 몫은 자원에 있다. 이젠 단순 고철상이 아니라 철스크랩 업계의 상징이지 않은가.
■철스크랩의 품질은....
뉴 스크랩 , 선철 ''비슷비슷' 철스크랩의 품질은 결코 나쁘지 않다. 철스크랩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생철(뉴 스크랩)과 노폐스크랩(올드 스크랩)이다. 뉴 스크랩은 가전제품, 자동차의 강판을 자르고 남은 자투리 철을 말한다. 철강이 들어간 제품 중 불량품에서 나오는 철도 뉴 스크랩이다. 품질이 당연히 좋다. 철광석을 이용해 만든 철과 큰 차이가 없다. 올드 스크랩은 한 번 사용된 철을 재활용한 것이다. 품질은 약간 떨어진다. 한국은 2007년 5월부터 철스크랩 표준화를 세계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 철스크랩의 등급을 나눠 사용처를 결정해 놓은 것이다. 올드 스크랩은 주로 건설현장에서 볼 수 있는 철근 등 봉형강류에 쓰인다.
■ Who is … 강진수·서재석 강진수 회장은 젠틀맨이다. 아랫사람에게도 말을 잘 놓지 않는다. 고객을 만났을 땐 고객보다 허리를 더 숙인다. 하지만 한번 몰입하면 파이터가 된다. 스스로 “한번 맘 먹으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골프·바둑·낚시 등 잡기에 유독 능한 것도 그래서다. ‘무엇이든 남들보다 잘해야 어린 CEO라는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며 골프를 배울 때도, 바둑을 공부할 때도 열성을 다했다. 그의 골프 실력은 준프로급. 65타까지 쳤다. 1995~2001년 안산시 대표로 아마추어 골프대회에 나간 적도 있다. 강 회장은 슬하에 1남3녀를 뒀다. 첫째 수현(31)씨는 미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졸업했다. 자원의 무한대 모양의 심벌은 수현씨의 작품이다. 둘째, 셋째는 쌍둥이다. 이름은 아름, 다운(28)씨. 아름씨는 하버드 MBA를 거쳐 홍콩JP모건에서 근무하고 있다. 다운씨는 스탠퍼드 MBA를 취득했다. 다운씨는 강 회장처럼 철스크랩 업체에서 경험을 쌓기를 원한다. 글로벌 1위 철스크랩 업체 심스메탈 등에 도전할 계획이다. 막내 산(15)군은 늦둥이 장남이다. 쌍둥이와 늦둥이의 이름을 합치면 ‘아름다운 산’이다.
서재석 사장은 자원의 명실상부한 브레인이다. 일본 철스크랩 업체에서 6년간 근무하면서 선진 노하우와 기술을 체득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철스크랩 전문가 중 한 명으로 손꼽혔다. 셈이 빠르고 상황판단 능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 회장이 “국내 철스크랩 업계의 최고 프로페셔널”이라고 치켜세울 정도다. 강 회장이 가장 믿는 경영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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