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People for The Future] 박종오 전남대 로봇연구소장
[2020 People for The Future] 박종오 전남대 로봇연구소장
‘로봇’ 하면 가장 먼저 뭐가 떠오를까. 로보트 태권 브이? 김 박사와 깡통 로봇? 트랜스포머? 아직 로봇의 이미지는 현실보다 영화 속 캐릭터에 가깝다. 일상생활에서 접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상용화된 가정용 로봇은 로봇청소기 정도다. 하지만 산업·의료계에서 로봇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의료용 수술로봇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부위까지 정교하게 매스를 대 인명을 구한다.
로봇의 외형이 꼭 인간을 닮을 필요는 없다. 박종오 전남대 로봇연구소장(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은 지난해 5월 세계 최초로 지름 1㎜, 길이 5㎜인 로봇으로 살아 있는 돼지의 막힌 혈관을 뚫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름은 로봇이지만 손가락으로 집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작다. 바로 마이크로 로봇이다. 이 로봇은 인간의 몸속에 들어가 수술을 하거나 원하는 부분에 약물을 투여한다.
당시 실험 영상을 봤다. 실험은 의학 전문가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마취한 돼지가 네모난 기계의 원통형 구멍에 누워 있다. 이 기계는 3차원 전자기 구동장치로 혈관 안에서 뿜어 나오는 혈류와 혈압을 이기고 마이크로 로봇을 정확하게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 구동장치 앞에는 컴퓨터와 조이스틱이 있고 벽에는 6개의 모니터가 달려 있다.
연구팀은 수술 전에 단층촬영(CT) 영상으로 돼지 혈관의 형상을 알아보고, 마이크로 로봇이 어떤 경로로 움직일지 설정해 놓았다. 연구원이 조이스틱을 움직이자 모니터에 돼지 혈관 속을 움직이는 마이크로 로봇이 나타났다. 로봇이 혈관 속에 들어가자 로봇에 달린 마이크로 드릴이 초당 20~30회 회전하며 막힌 부분을 뚫었다.
상용화해야 진짜 로봇이 실험은 1987년 개봉한 공상과학(SF) 영화 <이너스페이스> 에 나오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주사기로 삽입한 초소형 잠수정을 타고 인간의 혈관 속을 돌아다닌다.
“처음 혈관로봇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어요. 말로만 들었지 실체가 없는 분야였으니까요.”
2월 15일 광주 전남대 로봇연구소에서 만난 박 소장이 혈관로봇용 마이크로 로봇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로봇은 과학에서 출발
하지만 실생활에서 쓰여야 의미가 있다”며 “이제 막 가능성을 보여줬으니 8~10년 후에 제품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을 완성하는 데 2~3년, 임상시험을 하는 데 6~7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기술개발에서 제품생산까지 과정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혈관로봇용 마이크로 로봇은 심혈관질환 치료에 획기적 변화를 일으킬 전망이다. 심혈관질환은 사망 원인 1위 질환으로 여러 혈관 가운데 특히 관상동맥은 치료하기 어렵다. 지름이 2~3㎜ 남짓인 관상동맥은 기름기를 많이 섭취하면 급성심근경색, 관상동맥질환을 유발한다. 현재는 막힌 관상동맥을 떼어내고 다른 부위 혈관을 옮겨 심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혈관로봇을 이용하면 막힌 부분만 뚫어 훨씬 쉽게 치료할 수 있다. 이너스페이스>
박 소장은 “로봇 한 대를 만들려고 힘들게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며 “마이크로 로봇이라는 고부가가치 기술로 여러 종류의 실용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 전남대에 오기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TST)에서 20여 년 동안 근무했다. 이곳에서 1999년부터 마이크로 로봇 연구를 주도해 왔다. 이미 개발 기술을 상용화한 경험도 있다. 2001년에 지름 20㎜의 대장 내시경 로봇을 개발해 2002년에 인트로메딕에 기술을 이전했고, 2005년에는 지름 11㎜의 캡슐형 내시경 로봇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남대 로봇연구소는 혈관로봇뿐 아니라 지름 50㎛(1㎛는 100만 분의 1m)의 박테리오봇을 개발하고 있다. 박테리오봇은 로봇 구조체에 넣은 박테리아를 이용해 움직인다. 미국, 캐나다 등 로봇 선진국에서 박테리아를 이용한 마이크로 로봇 연구가 활발하다.
박 소장은 운동성을 갖는 데 만족하지 않고 치료 약물을 주입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박테리오봇은 건강한 세포를 해치지 않고 암세포 속으로 침투해 치료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마이크로 로봇은 세계 로봇 연구의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일본, 미국, 캐나다, 스위스가 이 분야 선진국이다. 최근 일본 나고야 대학 마이크로나노 메카트로닉스연구소는 손톱만 한 크기의 칩에 로봇을 설계해 칩 하나로 실험실에서처럼 연구할 수 있는 ‘로봇온어칩’ 기술을 개발했다.
심혈관질환·암 치료 로봇 개발오는 3월 7일 박 소장은 이탈리아 마이크로 로봇 워크숍에 참가할 예정이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이는 자리다. 박 소장을 포함해 일본, 캐나다, 프랑스, 미국의 전문가 8명이 초청받았다. 박 소장은 “초기에는 선진국보다 기술이 뒤졌지만 지금은 경쟁할 만하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여러 팀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한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우리나라 로봇 연구의 강점으로 꼽았다. 혈관로봇 역시 X선 검사장비 전문업체 나노포커스레이, 전남대 의대 등과 합작품이다.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우선 혈관로봇과 박테리오봇 기술을 제품화 직전 단계까지 완성할 생각입니다. 그 후에는 생체 모방 기술을 응용한 마이크로 로봇 기술을 개발하고 싶어요. 일반 로봇을 만드는 사람들은 인간, 동물과 더 닮은 로봇을 만드는 데 주력하죠.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도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해 온 생물입니다. 이들의 움직임을 모방해 로봇에 적용할 가치가 있어요.”
최근에 본 영화가 일본 SF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라는 박 소장은 로봇 매니어다. 그의 연구실 책장에는 로봇이 그려진 다양한 모양의 컵이 진열돼 있다. 로봇 박람회나 세미나 때 받은 것을 모아둔 것이라고 한다. 애완견에게는 10년 전 개발한 대장내시경 로봇의 제품명을 따 ‘미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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