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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RS의 명암] 헷갈리는 회계장부 투자자는 괴롭다

[IFRS의 명암] 헷갈리는 회계장부 투자자는 괴롭다


새로운 회계기준인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첫해 대혼란 바뀐 제도 숙지하고 주석 꼼꼼히 뜯어봐야
현대카드가 지난해 말 개최한 실적발표회에 투자자가 몰려 성황을 이뤘다.



올해부터 모든 상장기업과 상장 예정 기업은 IFRS(국제회계기준)에 따라 재무제표를 작성해야 한다. 저축은행·할부금융사를 제외한 비상장 금융회사도 마찬가지다. 기업, 애널리스트, 투자자 모두 준비는 했다지만

새 기준이 낯설다. 기업의 실적을 분석하고 예측해야 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머리를 싸매고 있다. 기존 회계보고서에도 익숙하지 않은 개인투자자들의 고통은 더하다. 회계기준이 바뀌는 과도기에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풀지 분석했다. <편집자>
새로운 회계기준인 IFRS를 적용한 상장사가 한창 1분기 실적을 발표하고 있다. 5월 30일까지 1791개 상장사가 일제히 새 기준으로 작성한 1분기 보고서를 내놓는다. 실적 시즌이지만 증권가의 풍경이 예년과 다르다.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이란 뜻의 ‘어닝 서프라이즈’란 표현이 드물다.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다. 자동차·석유화학·금융 등의 분야에서 꽤 많은 기업이 역대 최고 또는 최고치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다. 반대로 예상치를 밑도는 실적이란 뜻의 ‘어닝 쇼크’란 말도 찾아보기 어렵다. 왜 그럴까.

회계기준이 달라져서다. 개인투자자는 말할 것도 없고 증권사 애널리스트조차 기업의 1분기 실적과 직전 분기, 지난해 같은 기간 실적을 비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 기준으로 만든 실적이 예전보다 얼마나 좋아졌는지, 경쟁자보다 얼마나 뛰어난 건지 쉽게 비교하기 어려워서다.

기존 회계기준에 따르면 A라는 기업은 자신의 실적만 분석해 재무제표를 만들면 된다. 그걸 ‘개별 재무제표’라고 한다. 지금은 다르다. 새 회계기준인 IFRS에 따르면 자산이 2조원이 넘는 상장사는 의무적으로 분기·반기·연간 재무제표를 모두 연결 기준으로 작성해야 한다. 여기서 연결이란 A라는 기업과 관련된 자회사 등의 실적까지 포함해서 만든다는 뜻이다. 이를 ‘연결 재무제표’라고 부른다. 다만 새 기준 시행 첫해라 기업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산이 2조원 미만인 상장사는 내년까지 연간 재무제표만 연결 기준으로 작성하면 된다. 분기와 반기에는 연결이 아닌 ‘별도 재무제표’만 내놓으면 된다.

재무제표를 만드는 기업, 이를 분석하는 투자자와 애널리스트 모두 혼란에 빠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과도기라 기존 기준에 따른 개별 분기보고서, 새 기준에 따른 별도 분기보고서와 연결 분기보고서가 존재한다. 특히 자산 2조원 미만의 상장사 실적은 더욱 헷갈린다. 이번 1분기 보고서는 새 기준에 따라 만들었지만 이것과 비교해야 하는 지난해 1분기 보고서는 기존 기준으로 만든 걸 그대로 올려놓았다(한국거래소는 잠정 실적을 발표할 때는 회계기준이 달라도 공시를 할 수 있게 허용했다). 자본주의의 인프라인 회계는 무엇보다 비교가능성·객관성·신뢰성이 생명이다. 삼일회계법인 출신으로 기업은행의 사모펀드 부서에서 일하는 서동범 팀장은 “현재 비교가능성이 실종된 상태라 기업의 실적이 좋아졌는지 아닌지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4월 29일 새 회계기준으로 별도 재무제표를 발표한 현대중공업을 보자(연결 재무제표를 발표해야 하는데 별도 재무제표를 먼저 내놓았다). 새 회계기준으로 만든 현대중공업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9030억원이다. 지난해 1분기 순이익은 9262억원이었다. 지난해보다 순이익이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 순이익은 자회사 실적이 반영된 수치였다. 지난해 순이익에서 자회사 순이익 2700억원가량을 뺀 7453억원이 새 회계기준에 따른 실적이다. 새로운 기준으로 지난해와 올해 1분기를 비교하니 실적이 좋아졌음이 나타난다.

새로운 회계기준 체제에서 예전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연결의 정의다. 새 기준에 따르면 A라는 회사가 B라는 회사의 지분을 50% 넘게 가지고 있거나 50% 미만이라도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다면 B를 A의 ‘종속회사’라고 부른다. 종속회사는 같은 회사로 보고 매출·이익을 산출한다. 예전 기준에서는 지분율 30%를 넘고 최대주주인 자회사를 종속회사로 규정했다. 종속회사는 아니지만 지분율 20%가 넘는 자회사는 ‘관계회사’라고 하며 지분법 평가이익만 반영한다.

문제는 연결된 종속회사의 이익을 과도하게 포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지분율 60%인 자회사의 순이익이 100억원이면 모회사는 60억원만 순이익에 반영했다. 지금은 100억원 모두를 더한다. 이런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바뀐 회계기준에서는 ‘지배주주 지분’과 ‘비지배주주 지분’을 나눠 표기하게 했다. 자회사 지분이 60%라면 40%에 해당하는 이익은 비지배주주 지분으로 분류한다. 연결 순이익에서 비지배주주 지분을 빼면 예전과 비슷한 규모의 순이익이 나온다.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 내용이 중요투자자 입장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숫자가 아니라 숫자의 내용을 봐야 한다. 그러나 지배주주 지분과 비지배주주 지분을 나눠 실적을 예측하는 작업이 미진하다. 우리투자증권이 3월 말 삼성전자의 증권사 실적 예측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새 회계기준으로 실적 추정치를 내놓은 21개 증권사 가운데 6개만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지분을 분류했다.

연결 개념과 관련된 또 다른 혼선은 기업이 ‘실질적인 지배력’을 어떻게 정의하고 적용했느냐다. 4월 말 1분기 실적을 발표한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자동차는 연결 매출 18조2334억원, 영업이익 1조8274억원, 순이익 1조8767억원으로 이익률 10%를 달성했다. 연결로 커진 덩치도 눈에 띄었지만 자동차 회사가 두 자릿수 이익률을 기록한 건 극히 이례적이라 관심을 모았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기존 회계기준으로 개별 연매출 36조원, 연결 연매출 120조원을 기록했다. 새 기준으로 올해 연매출은 대략 8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겉으로 보면 지난해보다 나빠졌다. 기아자동차의 연결 실적 포함 여부가 핵심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실적에 지분 33.8%(2010년 말 기준)를 가진 기아자동차의 실적은 제외했다. 지분 31.5%를 들고 있는 현대카드 등 금융계열사는 포함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카드의 경우 현대자동차가 지분을 50% 넘게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관에 이사를 선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 실질적 지배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그런 규정이 없어 실질적인 지배력이 없다.

현대자동차처럼 주력 계열사라도 연결에서 빠진 사례가 더러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카드(지분율 35%)를 제외했다. 지주회사인 LG에서도 LG전자·LG화학 등이 연결 대상에서 빠진다. 현대백화점이 얼마 전 우량 자회사인 현대DSP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한 것도 새 회계기준 때문이란 분석이다.

회계기준의 내용이 바뀌면서 나타난 ‘착시 효과’도 조심해야 하는 대목이다. 은행에서 대손충당금을 쌓는 방식이 달라진 게 대표적이다. 올 1분기 국내 18개 은행의 순이익은 4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기존 기준으로 집계한 지난해 1분기 순이익(3조4000억원)보다 1조원 늘었다. 장사를 잘해서만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이 가운데 새 회계기준 도입에 따른 효과가 1조원 정도 된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도 ‘IFRS 도입 효과’로 봤다. 지난해 실적을 새 회계기준으로 계산하면 올해 실적이 지난해보다 1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차이는 대손충당금 적립에서 비롯됐다. 새 회계기준 아래에선 대손충당금을 경험손실률을 기준으로 쌓는다. 일반적으로 은행 고객은 제2 금융권 등의 고객보다 신용도가 높아 경험손실률이 낮아 충당금 적립 부담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런 덕에 은행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신한·하나·KB·우리금융의 1분기 실적이 좋았다. 기존 회계기준에서는 금융감독원이 정한 기준으로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건설업은 이 같은 착시 효과의 피해 업종으로 분류된다. 건설업은 선분양 관행에 따라 그동안 공사 진행률을 고려해 수익을 단계적으로 반영해 왔다. 앞으로는 완공 시점에 한꺼번에 수익을 반영해야 한다. 시공사가 지급보증하는 시행사의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이 건설사의 충당 부채로 반영되는 것도 악재다. 이에 따라 건설사의 부채비율이 증가할 전망이다.



바뀐 기준에 따른 착시 효과 주의해야똑같은 업종의 기업이 똑같은 사안을 다르게 해석해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일도 생겼다. 에쓰오일은 SK이노베이션과 같은 정유업종이지만 1분기 재고 평가방식으로 총평균법이 아닌 선입선출법을 적용했다. 원유값이 오를 경우 일반적으로 매출 원가는 선입선출법이 총평균법보다 적다. 그만큼 영업이익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기아자동차 회계를 맡은 삼정회계법인 관계자는 “새 회계기준으로 연결·별도 재무제표를 만들면서 기존 회계기준의 개별 재무제표까지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회계사도 낯선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무제표 작성에 평소보다 2배 가까운 시간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애널리스트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평소보다 일의 양이 늘어 몸이 피곤한 것도 문제지만 자료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기존에 나온 실적을 분석하기도 어렵지만 추정 실적을 내기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하소연한다. 한 은행 담당 애널리스트는 “새 회계기준에 따르면 대손충당금이 은행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이를 측정하는 경험손실률을 파악하려면 과거의 경험치를 기반으로 고객 등급을 나누는 작업이 필요한데 은행에서 관련 자료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가 이 정도니 개인투자자는 오죽하랴. 헷갈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주가가 싸다 또는 비싸다를 논할 때 흔히 쓰는 척도인 PER(주가수익비율), PBR(주가순자산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등이 기존 회계기준 때와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은 변하지 않았는데 회계기준이 바뀌어 이런 지표가 달라지면 주가가 싸 보이거나 비싸 보일 수 있다. 기존 개별 재무제표에서는 계열사 이익을 지분율만큼 반영했지만 새 기준에서는 지분율이 50%를 넘거나 실질적인 지배력이 있는 자회사의 순이익을 모두 합산한다. 최종 감사보고서에서는 지배주주 지분 순이익과 비지배주주 지분 순이익으로 나눠 기재되지만 실적 예상치에서는 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뭘 봐야 할까? 일단 감사보고서의 주석을 보는 방법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투자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 각 기업에 새 회계기준 적용으로 재무상태와 경영성과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차이 조정 내역을 공시하도록 했다. 솔로몬투자증권의 이종우 리서치센터장은 “재무제표의 주석을 보면 회계기준 변경에 따른 수치 변동과 그와 관련한 자세한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주석은 기업이 실적을 발표할 때는 알 수 없다. 가결산 재무제표를 내면서 실적을 공시하기 때문이다. 각 분기 결산 후 45일 이내에 나오는 검토보고서를 봐야 한다(4분기에는 감사보고서). 기업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려면 그만큼 기다려야 한다. 증권가에서 “숫자를 믿지 못하겠다면 아예 실적 관련 데이터가 쌓이는 1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미 새 회계기준이 도입된 만큼 새 기준에서 실적이 개선됐느냐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새 회계기준 아래에서 실적이 기존 회계기준 때보다 나아졌다면 기본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그런 실적이 유지된다면 긍정적으로 접근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종우 센터장은 “기존 기준에서 이익이 마이너스였다가 새 기준에서 플러스가 된다든지 아니면 반대의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며 극단적인 사례에 휘둘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보단 “기업 실적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트렌드에 주목하라”고 덧붙였다.

새 회계기준은 이익뿐만 아니라 자산가치와 부채비율에도 기존 기준과 다른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자산가치의 경우 비상장사나 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등을 재평가해서 구한다. 새 기준에서는 취득 원가나 장부가가 아닌 시장 가격인 공정가치로 반영한다. 그래서 우량 비상장사를 보유한 지주회사, 알짜 부동산을 보유한 자산주 등이 부각될 수 있다. 회사 자체의 경쟁력은 대동소이해도 가치는 상대적으로 나아 보일 수 있어서다.

이와 달리 연결로 재무제표를 작성했을 때 부채비율이 급등하는 산업이나 기업은 주의해야 한다. 한국투자증권의 보고서에 따르면 새 회계기준으로 바꾼 후 자산 규모가 2조원이 넘는 87개사의 부채비율이 기존 99%에서 172%로 크게 높아졌다. 특히 화학, 기계, 자동차 등의 부채비율이 많이 높아졌다. 부채비율이 높아지면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신용등급 등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적정 주가수준을 다시 평가하기 전까지 다소 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래서 투자전략의 왕도는 없고 새 기준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구재상 부회장은 “바뀐 제도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애널리스트 리포트도 꼼꼼히 살피는 게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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