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의 그늘 비춘 ‘무산일기’

한국영화가 그린 남북 분단의 현실은 시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태풍’(2005, 곽경택 감독)이나 ‘의형제’(2010, 장훈)에서는 남북한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물을 그렸다. ‘국경의 남쪽’(2006, 안판석)은 탈북자 청년의 애절한 로맨스를 담았지만, ‘크로싱’(2008, 김태균)은 북한 체제의 인권유린을 폭로했다. 영화 속의 북한은 대부분 이질적인 모습이라 줄거리는 과장됐고 등장인물의 감정선은 거칠었다.
하지만 4월 14일 개봉된 ‘무산일기’는 조금 다른 듯하다. 감독은 남북 분단의 또 다른 희생자인 ‘탈북자’의 삶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남북 간 대치가 첨예했던 시절에는 ‘귀순용사’ 대접을 받던 그들이 지금 남한 사회에서는 또 다른 ‘이방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주민등록번호 끝자리엔 하나같이 ‘125’번이라는 ‘탈북자 낙인’이 찍혀 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으로 직접 출연한 박정범(34) 감독은 탈북자들의 소리 없는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남한 사회에서 이주노동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다.
‘무산일기’는 박정범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2008년 단편 ‘125전승철’을 토대로 이번 영화를 찍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조감독을 맡았던 인연으로 그는 이 감독에게 이 영화의 시나리오 감수를 부탁했다. 함경북도 무산 출신인 전승철은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왔지만 보이지 않는 ‘낙인’ 때문에 어디에도 적을 두지 못하고 남한 사회의 주변부를 떠돈다. 벽보 붙이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쫓겨나고, 봉제공장 취직도 탈북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마음의 안식을 찾으려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도 오히려 상처를 받는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다.
연출이 극도로 절제된 덕분에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연출자는 영화 속 주인공을 계속 벼랑끝으로 몰아간다. 박 감독은 “카메라가 승철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그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비춘다”고 말했다. 그가 하는 말과 표정,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박 감독은 “그 질문의 답은 관객 스스로가 찾게 된다”고 말했다. 개봉 전후로 ‘무산일기’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 받았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 신인감독상을 시작으로 국제비평가협회상, 네덜란드 로테르담영화제 대상 등 9개 상을 수상했다. 박 감독은 “유럽과 북미지역에도 이민자가 많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무산일기’는 극을 이끄는 구성과 이야기 구조가 색다른 영화다. 압축적인 언어로 의미를 전하는 시(詩)문학 장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음향효과도 철저히 배제하고 가만가만 승철의 모습을 뒤따라갈 뿐이다. 박 감독이 연출력을 절제한 이유도 흥미롭다. “승철이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할 때 우는 모습이나 아끼던 개가 죽어 낙담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로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음악을 넣으면 극적 효과가 더 살아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돈을 벌려고 그를 이용한 결과를 낳는다. 이 영화가 가지는 진실을 왜곡하고 싶지 않았다.”
남한 사회에서 의지할 데를 찾지 못한 전승철의 신앙생활은 언뜻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떠올리게 한다. 박 감독은 “종교는 무조건 선해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있다”고 말했다. “종교 옆에 있는 우리의 모습이 실제 그렇다. 우리 모두가 완벽하다면 종교 가 필요없지 않겠는가? 실제 느낌을 살리려 했을 뿐 기독교를 옹호하거나 비판할 의도는 없었다.”
전승철이 일방적으로 좋아하는 여자인 숙영은 독실한 신자이지만 승철을 무시하는 위선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노래방에서 일하는 그녀가 어느 날 승철을 만나게 되자 그에게 경고하듯 이렇게 내뱉는다. “나도 괜찮아지면 노래방 일 그만둘 거예요. 교회에서는 아는 척하지 마세요.” 박 감독은 “숙영의 모습 속에는 남한 사회의 이중성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다소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답답함과 우울함을 동시에 느낀다. 벼랑 끝까지 내몰리면서 점점 변해 가는 승철의 모습을 대책 없이(?)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박 감독은 “불편하지만 우리가 보고 꼭 알아둬야 할 주제를 다뤘다면 그것이 독립영화”라고 말했다.
박정범의 영화는 현실을 수식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박 감독은 본래 채플린의 영화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현대에서 채플린에 가까운 영화감독이 로베르토 베니니다. 그가 찍고 주연을 겸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모두가 웃고 즐기면서도 감동을 느낀다. 하지만 거기에는 꼭 사회적 이슈가 녹아 들었다.” 그는 ‘정말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그런 영화를 꼭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차기작 ‘산다’를 준비 중이다. ‘무산일기’에 출연했던 배우 진용욱, 강은진씨도 합류한다. 박 감독은 “아무런 배경이 없어도 배우가 있으면 화면이 흘러간다. 어떤 영화를 찍더라도 내 영화에서는 배우가 최고의 미장센이다”고 말한다.
‘무산일기’는 개봉 한 달 만에 1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독립영화계에선 관객 1만 명을 상업영화 10만 명에 맞먹는 기록으로 간주한다. 더구나 5월 들어 국제영화제의 수상 소식이 이어지면서 개봉관의 수도 스무 곳을 넘어섰다.

■ 영화에서 그려진 북한 그리고 탈북자
크로싱(2008)

차인표, 신명철 주연
2007년, 함경도 탄광마을에 세 가족 아버지 용수, 어머니 용화 그리고 열한 살 아들 준이가 산다. 어느 날 엄마가 폐결핵이란 사실을 알고 아버지는 중국행을 결심한다.
요덕스토리(2009)
안드레 피딕 감독

댄스타운(2010)
전규환 감독
라미란, 오성태 주연

두만강(2011)
장률 감독
추이젠, 윤란, 이경림 주연
옌볜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 함경도를 사이에 둔 두만강 변의 한 마을. 옌볜에 사는 열두 살 창호는 식량을 구하려고 강을 넘나드는 또래의 북한 소년 정진과 우연히 친구가 된다.

시선 너머 ‘이빨 두 개’(2011)
강이관 감독
박정욱, 서옥별 주연
영화감독 5인의 인권 옴니버스 영화로 강이관 감독의 ‘이빨 두 개’는 탈북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굿바이평양(2011)
양영희 감독
양영희 주연
1995년부터 2008년까지 자그마치 13년간 국경을 넘나들며 북송된 가족의 애환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무엇보다 ‘양영희 감독’ 본인과 그녀의 가족사를 다룬다. 이 슬픈 가족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분단에 이르기까지 힘겨웠던 재일동포의 역사를 관통한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생닭 버무린 손으로 키보드를?... 조회수 1715만 터진 뇌절 요리사 [김지혜의 ★튜브]](https://isp.edailystatic.com/data/isp/image/2026/05/25/isp20260525000055.400.0.png)
![[단독] ‘제2의 곽튜브’ 꿈꾸는 이자반 “전 여자친구와 이별로 유튜브 시작… 반지하서 성공 일기 쓸 것” [IS인터뷰]](https://isp.edailystatic.com/data/isp/image/2026/05/11/isp20260511000046.400.0.jpg)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손흥민·조규성 멀티골... 홍명보호 '스리백·포백 유연 전술' 통했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왓IS] 하지원, 23년 만 ‘홈런’ 무대 화제…“심장 터질 듯 떨려”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배경훈 “수년 내 AI가 AI 만든다”… 미·중급 ‘프론티어 AI’ 독자 개발 선언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코인 거래소에 올해 3조 몰렸다…구주 싹쓸이 나선 ‘대기업’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마일스톤 불확실성 줄였다"...GC녹십자, 큐레보 매각 주목받는 이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