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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뉴타운 갈등 현장을 가다] “뉴타운이고 뭐고 다 그만두면 좋겠소”

[르포 / 뉴타운 갈등 현장을 가다] “뉴타운이고 뭐고 다 그만두면 좋겠소”

부천시 뉴타운 지역의 한 공사 현장.

8월 3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내 부흥시장. 이곳은 소시민의 애환을 담은 양귀자씨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오랜만에 태양이 뜨겁던 이날 긴 장마로 손님이 끊겼던 재래시장은 모처럼 활기가 돌았지만 그렇다고 북적대는 느낌은 아니었다. 곳곳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뉴타운이 결정되면서 떠난 상가들이다. 시장 주변에 위치한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에는 뉴타운 지정을 축하하는 오래된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좁고 낡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뉴타운을 반대하는 ‘원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사무실이 보였다. 일반 단독주택 창고를 개조한 듯 보이는 이곳은 추진위 사무실과 불과 30m 거리였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 30m는 참 먼 거리였다.

원미동은 2008년 뉴타운 시행이 결정됐다. 부흥시장을 중심으로 춘의1D구역부터 소사10B구역까지 모두 10개 구역이 지정됐다. 2개 구역은 재개발조합이 설립됐다. 한 곳은 조합설립 총회를 마친 상태다. 3개 구역은 부천시로부터 조합설립 전 단계인 재개발추진위원회 인가를 받았다. 나머지는 추진위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부흥시장을 중심으로 한 뉴타운 원미지구는 개발을 둘러싸고 지역 주민 간 갈등과 반목이 심각한 지경이다. 뉴타운 개발을 반대하는 모임이 속속 생겨나고 반대 모임끼리 연대 움직임도 보인다. 반대 시위는 연일 이어지고 분위기도 점차 격해지고 있다. 뉴타운을 찬성하는 쪽에서는 추진위끼리 연합 조직을 구성해 반대 모임들과 전쟁을 선포했다. 이들 모두 오랜 세월 한 지역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던 이웃이었다.



동네 전체가 ‘붉으락푸르락’부천시 원미동에서 25년을 살아온 정병옥씨는 현재 부흥시장에서 국수 장사를 하고 있다. 5년 동안 시장에서 국수를 팔아 세 딸을 공부시켰다. 막내딸이 최근 임용고시에 합격해 기뻐해야 할 정씨는 오히려 시름이 늘었다. 자신의 터전이 뉴타운 지구로 선정된 후 4년, 정씨는 “지옥 같았다”는 말로 그간의 마음고생을 표현했다. 그는 “처음엔 동네가 발전하고 돈도 번다고 해 마을 전체가 들떠 있었는데 요즘은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 없이 싸움만 한다”고 말했다.

정씨 가게가 위치한 원미4B구역도 뉴타운의 재앙을 피해갈 수 없었다. 현재 추진위 설립 인가를 목전에 뒀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 지역은 2008년 당시 3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가칭 추진위원회도 3개였다. 하지만 세 곳이 한 곳으로 통합되면서 분쟁이 벌어졌다. 100m 남짓한 골목에서 형, 동생 하며 지내던 사람들은 서로 ‘가짜’라며 싸웠다. 결국 한 곳의 추진위 위원장은 비리 문제로 물러났고 두 추진위의 장이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아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정씨는 “나 역시 한때는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며 “지금은 거의 활동하지 않고 있고 탈퇴를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추진위에서 활동하던 친한 동생과 사이가 멀어졌다”며 “추진위가 합치는 과정에서 어느 쪽으로든 결정이 나면 서로 도와 잘해 보자고 했는데 그 친구가 결국에는 점점 변해 가더라”고 말했다.

동네를 발전시켜 보자고 나섰던 다른 사람들도 점차 의욕을 잃고 활동을 중단했다. 일부는 반대하는 모임(비상대책위원회)에 가담해 활동하고 있다. 현재 4B구역 추진위원장은 부천시 시의원이다. 한 주민은 “위원장인 김영숙 의원이 더 훌륭한 적임자가 나타나면 위원장 자리를 양보하겠다고 했고, 시의원이 된 후에는 자리를 넘기겠다고 했는데 여전히 직을 유지하고 있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반면 김 의원은 개발에 반대하는 ‘원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대해 ‘또 다른 흑막의 목적을 가지고 주민들을 음해하려는 단체’라는 내용의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 모임은 김 의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최고서를 보냈고 답변이 없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다.

주민 간 갈등은 이곳만이 아니다. 원미 뉴타운 곳곳이 그렇다. 부천 소사동 ‘소사10B구역’은 말 그대로 벌집을 쑤셔 놓은 분위기다. 최근 뉴타운 사업 유보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부천시는 올 6~7월 동안 우편투표를 통해 이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했다.

유권자 807명 중 60%가 참여한 투표에서 72%가 뉴타운 개발에 반대 표를 던졌다. 부천시는 유효 투표자의 75% 이상이 찬성할 경우 사업을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시의 지침에 따라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 뉴타운이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찬성 측 주민들의 동요가 심해졌다. 특히 지역 내 추진위나 조합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추진위나 조합은 대개 건설사로부터 돈을 빌려 운용한다. 원미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주민들의 사전동의서를 얻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과 선물이 뿌려졌다는 얘기가 있다”며 “지역별로 100억원 이상의 돈이 들어간 곳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귀띔해줬다. 소사 10B구역은 주민 20여 명이 경기도를 상대로 ‘원미 뉴타운지구 변경지정 및 뉴타운 계획 결정처분 취소 청구’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에서는 패소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추진위와 비대위의 싸움은 점점 격해졌다. 장재욱 추진위원회연합회 회장은 “부천시를 통틀어 400명도 안 되는 비대위연합회 사람들이 신빙성 없는 정보를 유포하고 있다”며 “일부 주민의 주장을 마치 부천 전체 시민의 주장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천시에 대한 불만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뉴타운을 추진하던 부천시가 최근 여론이 나빠지니까 팔짱을 끼고 사업은 민간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입장을 취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에서 사업성 개선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며 “부동산 경기가 나쁘고, 시의 지원까지 끊긴 상태에서 무슨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부천시 비대위연합회 류재선 기획국장은 “정비업체를 등에 업은 추진위원회가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응수했다. “뉴타운이 뭔지도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받아낸 사업 동의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7월 21일 프린스호텔에서 진행된 원미6B 지역 조합설립 총회에서는 용역업체 직원이 동원됐다.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건장한 200여 명의 남자가 총회를 저지하려는 시민들을 막고 사업에 동의하는 조합원들만 참석시켰다. 총회에 참석한 시민은 20여 명. 하지만 사전에 서면참석 형식으로 조합원들의 동의를 받아둔 상태였다. 조합 측은 896명 중 480명이 총회에 참석했다고 발표했다. 현재는 부천시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비대위 류재선 기획국장은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시청에서는 이런 사안들을 알면서도 도정법(도시정비법)을 근거로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주민들은 연합회나 비대위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부흥시장 근처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뉴타운 개발이 계속 진행되면 내 집도 뺏기고 거지 신세가 된다고 들었는데 그게 정말이냐”고 물었다. 원미동에 사는 한 70대 할아버지는 “(동의서를) 쓰라고 해서 써주긴 했는데 그게 뭔지 난 잘 모르고 설명해줘도 나 같은 늙은이들은 알아듣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시흥시 대야동 곳곳에는 뉴타운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부천시는 양측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고 있다. 재개발 찬성 측에서는 “민주당 소속인 부천시장이 뉴타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한나라당에 타격을 주기 위해 일부러 사업이 취소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대부분의 시민이 반대하는 사업을 시가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다”며 “뉴타운은 이미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실패를 인정한 사업”이라고 말한다.

현재 부천시는 뉴타운 추진위원회와 조합 측에 시의 공공시설 대관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부천 비대위연합회 측에서 “주민들의 소중한 재산을 이익단체에 대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에 추진위원회와 조합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장재욱 추진위연합회 회장은 “설명회를 통해 뉴타운 사업을 정확하게 알리려 해도 마땅한 장소가 없다”며 “시가 주도한 사업인데 이제와 민간 간에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고 발뺌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이에 부천시 뉴타운개발과 관계자는 “시청을 가리켜 서로 상대편이라고 비난하는 통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시에서도 사업성 확보와 민원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주민 찬반투표로 뉴타운 운명 갈릴 듯경기도 시흥시 대야·신천 뉴타운 역시 찬반을 놓고 몸살을 앓고 있다. 2009년 7월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이곳은 뉴타운 지정 해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뉴타운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 5월부터 대야·신천 주민들은 ‘뉴타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했다. 매주 월요일 대야동 근처의 한 성당에 500~800명이 모임을 갖고 있다. 반대 모임 측 주민은 “이미 4800명의 주민이 청원서에 반대 서명을 했다”고 말했다. 시의원 12명 중 10명도 시흥시에 뉴타운 지정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흥시는 반대 모임에 뉴타운과 관련한 모든 진행 상황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한 경기도에 ‘재정비촉진지구의 지정을 해제할 수 있는 요건에 대한 질의’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조사한 후 사업을 취소할 수 있는지를 문의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반대 모임의 이태한(40) 팀장은 “지금까지 계속 말을 바꾸며 시민을 기만한 시흥시를 믿을 수 없다”며 “취소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매주 주민 모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팀장은 “불과 보름 전 시흥시 뉴타운개발과 계장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며칠 후 갑자기 말을 바꿔 모든 사업을 중단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데 다시 며칠 후 동대표가 마을 통장을 모아놓고 현재 뉴타운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반대 모임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고, 9월에 주민투표를 한 후 뉴타운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팀장은 “촉진계획 수립 단계에서는 시장이 지정 해제 권한이 있음에도 일부러 경기도에 질의하며 시간을 벌고 있다”며 “7000여 주민 중 4800명의 반대 서명을 받았는데 굳이 예산을 써 주민 설문조사를 진행하겠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대 모임에 속한 다른 주민은 “경기도지사가 뉴타운 정책이 실패한 사업임을 인정한 이후 시흥시가 구역지정 연장 신청을 했다는 것은 사업 강행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민관 대립’도 심각시흥시는 “어이없다”는 입장이다. 뉴타운개발과 유영기 주무관은 “중대한 사업을 진행하는데 주민 의사를 더욱 정확하게 묻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4800명이 서명했다는데 정작 그 명단을 요구해도 반대 모임 측에서 넘겨주지 않는다”며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있어 중복 서명이나 자료 조작 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시에서는 겉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 뉴타운 개발에 찬성하는 주민도 상당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9월 설문조사를 통해 좀 더 명확한 주민의 뜻을 확인한 후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반대 모임에서는 “매주 수백 명의 주민이 모이는데 시에서는 와서 얘기를 들어 볼 생각도 않는다”고 비난했다. 반면 시 측은 “6월에 시청 직원 10명이 모임에 참석했지만 성난 주민들이 둘러싸고 위협해 더 이상 참가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시 관계자는 “일부 사람은 반대 모임의 위협 때문에 무서워 찬성 의사가 있어도 밝히지 못한다”며 “주민들 사이에 찬성 의사가 있다는 소문이 돌면 순식간에 마녀사냥 당한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반대 모임 측에선 “지금까지 집회 한 번 안 하고 주민설명회 형식의 모임만 가져왔고 그 어느 곳보다 평화적 방법을 유지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다.

마을에는 음모와 루머가 무성했다. 뉴타운에 찬성한다는 주민이 반대 모임 임원의 자동차 타이어를 칼로 찢고 길에서 멱살을 잡으며 위협한 적도 있었다. 일부 주민 사이에서는 “반대 모임 주동자가 정치에 뜻이 있어 주민을 선동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한 구역 동장이 시장과 친분이 있어 뉴타운 진행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급하게 뽑아 올렸다는 근거 없는 풍문도 돌고 있다.

주민들은 지자체를 믿지 못하고 지자체도 주민들이 만족할 만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찬반으로 갈린 주민들은 험악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울·경기 곳곳에서 바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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