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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한국 금융시장] 증시 ‘외인 모래성’ , 대외 악재 터지면 ‘우르르’

[불안한 한국 금융시장] 증시 ‘외인 모래성’ , 대외 악재 터지면 ‘우르르’

김석동 금융위원장(왼쪽)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8월 10일 과천 기획재정부 청사에서 열린 미국 신용등급 강등에 따른 ‘금융시장 위기관리 대책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8월 5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AAA’에서 ‘AA+’로 강등된 이후 국제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2일부터 11일까지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 다우존스산업지수는 -6.09%,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8.76%,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3.4%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유로 국가들의 주가지수는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금융시장은 더욱 많이 흔들렸다. 코스피지수는 같은 기간 15.46% 떨어졌다. 세계 주요국 가운데 러시아(22.95%)에 이어 최대폭이다. 한국과 산업 구조가 비슷한 대만은 11%밖에 떨어지지 않아 한국보다는 충격이 작았다.



“외국인, 증시에 대한 신뢰이면서 부담”한국은 글로벌 경제가 휘청댈 때마다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증시는 공황 상태에 빠지기 일쑤였다. 왜 그럴까. 외국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국내 증시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33%로 대만(32.3%)과 더불어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크다. 미국(13.6%), 일본(26.7%) 등 선진국은 30% 미만이다.

외국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굵직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에서 발을 먼저 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9월 30일부터 10월 28일까지 국내 증시에서 5조599억원어치를 팔아 치웠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진 5월 3일부터 6월 12일까지 6조7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이머징마켓 수준을 넘어 선진 증시로 평가 받는 우리나라가 위기 때마다 홍역을 치르는 건 단기에 치고 빠지는 외국인 투자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박성욱 연구위원은 “외국인 투자자는 불확실성에 민감해 악재가 터질 경우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먼저 돈을 빼기 때문에 한국 증시는 외국인이 쌓아 놓은 모래성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외 변수 충격을 덜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들이 단기적으로라도 충격을 흡수하는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위원회 김석동 위원장은 “외국인 투자가 많다는 건 우리 시장에 대한 신뢰의 표시면서도 부담”이라며 “기관투자가들이 이 자리(외국인 투자 비중)를 일정 부분 메워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수가 급락하기 시작한 8월 2일부터 8거래일 동안 2조1500억원 가까이 사들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일 매수다. 7월 한 달간 매수한 금액이 7000억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공격적으로 사들였다. 같은 기간 기관투자가들도 2조4029억원어치를 샀다. 이들과 개인의 적극 매수에 힘입어 급락세는 겨우 멈췄다.

금융계에서는 한국 증시가 외국인투자자에 좌지우지되지 않을 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자유시장의 기본 철학을 버리지 않으면서 시장의 안정성을 꾀해야 한다. 금융계는 학자금펀드·장기투자펀드를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해 달라고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 요청해 놓은 상태다. 펀드 불입액에 대해 일정한 한도로 소득공제를 해주면 투자자를 유인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혜택으로 내국인 주식 투자 비중이 커지면 외국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투기자본의 급격한 유입과 유출을 막고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려면 외화유동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갈 때를 대비해 증거금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증시의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선진시장 편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 증시가 이머징지수가 아닌 MSCI지수에 편입되면 핫머니 대신 안정적인 외국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다. 외국 대형 펀드들은 주로 MSCI 지수에 편입된 선진국에 투자한다.

서울 외환시장은 이번 위기에 비교적 무풍지대였다. 국내외 증시가 폭락하면 대개 안전자산 선호심리 강화로 달러 수요가 늘어난다.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게 되고 결국 외환시장이 요동친다. 8월 2일 1053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8월 11일 1081원까지 올랐다. 40일 만에 1080원대로 치솟았다. 그러나 200포인트 넘게 폭락한 코스피지수와 비교하면 외환시장은 나름 선방했다는 평가다. 8월 11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 미만 하락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3.64% 하락한 코스피지수와 대조를 이뤘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금융위기 당시에는 하루 평균 20원 넘는 폭락 기조가 유지됐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 파장은 감지되지 않았다”며 “3년 전보다는 외환시장이 탄탄해졌다”고 말했다. 3년 전 금융위기 때는 1080원에서 1200원까지 치솟았다.



외채 4000억 달러 넘으면 한국경제 뇌관그러나 전문가들은 ‘마냥 안심해서는 안 될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총 외채 저항선을 4000억 달러로 설정한 상황에서 6월 말 현재 총 외채가 3963억 달러에 이르러 마지노선까지 불과 37억 달러밖에 남지 않았다. 총 외채 4000억 달러 때 연 4% 금리면 160억 달러를 이자로 내야 한다. 경상수지 흑자 폭이 줄거나 적자로 돌아서면 우리 경제가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우리나라 6월 경상수지 흑자는 29억8700만 달러였다.

정부는 외환위기까지 거론하는 건 기우라고 강조한다. 7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110억 달러로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9월 말 2397억 달러보다 700억 달러 넘게 많다. 1년 미만 단기외채도 1896억 달러에서 2011년 3월 1467억 달러로 줄었다. 외채 구조도 좋아졌다. 총 외채 대비 단기외채 비중은 51.9%에서 38.4%로 줄었다.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도 같은 기간 79.1%에서 49.1%로 크게 감소했다.

우리나라가 외국에 빌려준 돈이 빌린 돈보다 많은 순채권국이라는 점도 긍정적이다. 3월 말 현재 한국의 대외채권은 4660억 달러로 총 외채보다 841억 달러 많다. 그런데도 시장은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GDP 대비 외환보유액은 아시아 평균(65%)의 절반 수준인 36%에 불과하다”며 “이 비중을 좀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증시 폭락과 환율 급등에 따라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결국 최악의 위기 상황인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이 넘는 상황에서 금융회사들이 돈줄을 죄면 가계 부문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럴 경우 기업도 덩달아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현재 2008년 위기 때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의 정책 대응 능력이 약화됐기 때문에 긴 시간에 걸쳐 실물 부문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박성욱 연구위원은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금융회사가 국내외 변동성을 대비한 안전장치를 어느 정도 마련했다”면서도 “선진국의 크고 작은 충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 충격을 견딜 만한 기초 체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성희 기자 bob28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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