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영화 속으로 ‘The tree of life’
Culture 영화 속으로 ‘The tree of life’
어머니는 말했다. “두 가지 길이 있다. 세속의 삶을 사는 자연의 길과 모욕을 견디며 절제해야 하는 은총의 길. 너는 어느 길로 갈지 선택해야 한다.”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는 이 모호한 대사로 시작한다.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을 통해 이 레토릭을 하나씩 풀어간다. 영화가 흐르는 동안 관객은 어머니의 이 첫마디를 머릿속에서 곱씹게 된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감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그래, 인생이 그런 거였어’라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 대작 영화가 주는 신비로운 체험이다.
전체 스토리는 놀랄 만큼 단순하다. 미국 텍사스의 보수적 백인 가정에서 태어난 잭, 그리고 두 남동생은 천사같이 자애로운 어머니와 폭군처럼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함께 산다. 순종적이던 잭은 폭력적인 아버지를 극복하며 성장한다. 중년에 출세한 건축가가 된 잭은 둘째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접한다. 잭은 황망하게 동생들과 함께했던 유년시절을 회고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한 가정사는 지구의 역사로 이어지며 배경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광활한 우주로까지 확장된다. 거장 테런스 맬릭(Terrence Malick) 감독은 장장 5년에 걸쳐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 한 사람의 인생이 전 우주의 생명과 연관될 만큼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필름 위에 그려냈다.
영화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잭의 부모 오브라이언 부부가 19세 된 둘째 아들의 부고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어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괴로움을 토로한다. 감독은 절망적인 이 순간을 조용히 뒤따른다. 절규하는 부모의 모습을 마치 팬터마임처럼 처리한다. 울부짖는 소리를 모두 줄여버리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만 배경에 남긴다. 관객마저 답답해지는 영상이 수 분 동안 이어진 뒤, 어머니가 정적을 깨며 애처롭게 탄식한다. “오, 신이여! 왜인가요?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 우리는 당신에게 무엇인가요?” 은총의 길을 걷던 어머니는 이날 신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둘째 부분은 드라마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마치 영화 속 영화를 보여주듯, 자연 다큐멘터리 같은 장면이 이어진다. 적외선으로 촬영된 초신성의 폭발장면 이후 초기 지구의 모습, 그리고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과정과 공룡의 사냥 장면이 약 15분여 이어진다.
생명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상은 시공간을 과감하게 뛰어넘는다. 이미지로 구성된 기록들은 감정적인 시퀀스로 연결돼 관객을 압도한다. 이 자연 다큐멘터리는 주인공 잭의 성장을 우주 생명과의 관계성 내에서 이해해야 함을 의미한다. 한 인간의 역사도 작은 우주의 역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감독은 신이란 곧 자연의 산물이라며 오열하는 어머니를 달래는 듯하다.
셋째는 아버지를 극복해 가는 세 아들의 성장기록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가족에게 모욕감을 주며 군림한다. 가족은 모욕을 견디며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며 살아간다. 가족 안에서 아버지는 신이며, 가정은 은총의 삶이다.
서사를 끌어가는 핵심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당하고 살지 않으려면 언제나 공격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성공한 사람은 더 나쁜 짓을 잘 했기 때문이고, 누군가가 뒤통수를 때리기 전에 먼저 달려가 주먹으로 턱을 날리라고 강요한다. 가족 모든 구성원은 아버지를 신처럼 모셔야 하며 조금의 반항도 용서받을 수 없다.
소년은 이런 아버지를 극복하면서 성장한다. 결국 저항을 넘어 분노를 분출하며 속에 있는 힘을 끌어 모아 아버지에게 한마디 날린다. “엄마는 당신보다 날 더 사랑해!” 잭은 은총의 삶을 버린다.
넷째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성인이 된 잭의 이야기다. 영화는 유년 시절의 추억에서 빠져나와 도심의 현대적인 건축물을 비춘다. 영화는 특별한 스토리를 전달하지 않는다. 다만 도시의 이미지를 툭툭 던져주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잭의 고요하지만 분주한 생활을 그린다.
수많은 종교적 상징이 난무하면서 영화는 난해한 언어를 남발한다. 그러나 영화 제목에서 암시하듯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사랑의 존재, 생명의 인연, 사랑의 인연을 엮는 ‘생명의 나무’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과거가 현재와 이어지고 추억이 현재의 생각과 겹쳐지는 등 독일표현주의 영화 같은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행복해지는 길은 사랑뿐이다”라는 말로 영화를 맺는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마치 훌륭한 자연 다큐멘터리를 감상한 듯한 시각예술 작품이다. 대사나 액션보다 직감적인 면을 강조하는 영상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을 선사한다. 환상적인 이미지와 묘하게 어울리는 말러, 브람스, 스메타나, 바흐의 음악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모든 음악은 라이브 악기만으로 완성됐고 교향곡은 자연 음향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영화 분위기를 연출한다.
맬릭 감독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텍사스 출신이다. 하버드와 옥스퍼드를 나와 MIT 철학교수로 재직하다 미국영화연구소 영화학 코스를 통해 연출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 40년간 단 4편의 장편영화만으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평단은 그에게 영화를 통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다는 평가를 주고 있다. 1979년 대공황기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천국의 나날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그는 이번 ‘트리 오브 라이프’로 칸을 다시 찾아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출연배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존하는 최고의 배우 브래드 피트와 숀 펜이 함께 출연하는 것 자체가 이슈다.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를 제작하는 5년 동안 다른 영화 출연을 자제하는 등 정성을 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권위적인 아버지 연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리얼하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지배욕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을 표정에 고스란히 담았다. 숀 펜은 아버지에게서 상처를 입은 잭의 성인 시절을 연기한다. 일그러진 정서를 참고 숨기는 그의 모습은 축 처진 뒷모습만으로도 공감을 자아낸다. 어머니 역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은 마치 속세를 떠난 수녀와 같은 청초한 이미지로 우아함과 인자함을 고루 갖췄다.
장장 137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이 영화는 대단히 느리게 전개된다. 마치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역작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처럼 지루하게 시퀀스를 끌어가면서도 충격적인 사건을 담담하고 조용히 전달한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 우주, 존재 등을 다룬 철학적인 레토릭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관객에게도 사색을 위한 여유를 줘야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드라마 없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은 한동안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에 큰 파동을 전하는 교향곡과 함께 우주가 그려주는 대서사시를 목격하고 있노라면 머릿속은 대단히 분주해진다.
과연 인간은 자연 앞에 무엇인가, 거대한 신의 조화 속에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볼품없는가 등의 답 없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도록 만든다. 답은 스스로 찾는 것, 감독은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줄 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공동 사냥한 게임 아이템 ‘먹튀’ 소용없다…”게임사가 압수해도 정당” 판결 나와
287억 바나나 '꿀꺽'한 코인 사업가..."훨씬 맛있네"
3AI 학습 데이터의 저작권 소송 이어져…캐나다 언론사 오픈AI 상대로 소송
4'땡큐, 스트레이 키즈' 56% 급등 JYP...1년 전 '박진영' 발언 재소환
5더 혹독해질 생존 전쟁에서 살길 찾아야
6기름값 언제 떨어지나…다음 주 휘발유 상승폭 더 커질 듯
7‘트럼프 보편관세’ 시행되면 현대차·기아 총영업이익 19% 감소
8나이키와 아디다스가 놓친 것
9‘NEW 이마트’ 대박 났지만...빠른 확장 쉽지 않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