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이는 ‘선거 비즈니스’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선거철만 같아라
들썩이는 ‘선거 비즈니스’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선거철만 같아라
지난해 말 문병호 민주통합당 인천시당 위원장은 19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총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반값 선거운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가능할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문 위원장이 도전하는 인천 부평갑의 선거비용 제한액은 2억200만원이다. 문 위원장 측 설명은 이렇다. 일단 유세차량을 사용하지 않는다. 1~2.5t 차량에 조명·무대설비를 탑재한 선거유세차량은 공식 선거운동기간 14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데 임대료가 2000만원 정도다. 문 위원장 측은 유세차량용 홍보 영상물도 제작하지 않는다. 이 비용은 대략 1500만원 안팎이다. 선거 로고송도 만들지 않고, 유권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율동팀도 활용하지 않을 계획이다. 이를 모두 포함하면 5000만원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전화홍보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전화홍보용 시스템을 설치하고 인력을 운용하려면 선거기간 중 대략 2000만~2500만원 정도가 든다. 또한 선거 공보물은 갱지로 인쇄할 예정이다. 여기서 1000만원 정도를 줄일 수 있다. 정치·홍보 컨설팅은 받지 않고, 선거 유세는 어깨에 메는 휴대용 스피커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대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휴대전화를 통한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문 위원장 측은 “모바일용 애니메이션과 동영상을 제작하는 업체와 접촉해 250만원 정도에 영상물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현수막이나 어깨띠 등은 지역 업체를 활용해 가능한 싸게 제작할 방침이다. 예비후보 땐 1000만원, 공천을 받아 본선에 출마하면 1500만원 정도를 예상한다고 했다. 자체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2000만원 정도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식으로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대략 1억원 정도다.
이런 시도는 돈 안 드는 선거문화를 위해선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를 마냥 달가워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선거 특수를 기대하는 업종이다. ‘반값 선거운동’은 정치권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문 위원장이 줄이겠다고 한 항목과 관련된 업종 대부분은 4월 총선과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특수(特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총선을 70여 일 앞둔 관련 시장은 이미 후끈 달아올랐다.
총선 공식 선거비용 2200억원선관위에 따르면,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자가 쓸 수 있는 선거비용 제한액은 1인당 평균 1억9200만원이다. 18대 총선 때보다 600만원 늘었다. 각 당이 비례대표 선거에 쓸 수 있는 비용은 51억4100만원이다. 선거비용은 지역구마다 차이가 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각 선거구 인원수에 200원을 곱하고, 선거구의 읍·면·동수에 200만원을 곱한 후 1억원을 더한다. 이번 총선에서 선거비용 제한액이 가장 많은 곳은 강원도 원주시로 2억4100만원이다. 가장 적은 곳은 경기도 안산시 다원구을(1억5800만원)이다.
선거구 조정에 따라 변동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전체 지역구는 243곳이다. 18대 총선 때 이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는 1175명이었다. 올해도 이 정도 인원을 예상하면 공식 선거비용은 약 2200억원 정도다. 당내 경선 비용, 선거사무실 임차료와 사무소 운영비는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에 선관위는 올해 총선과 대선 관리 비용으로 4729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정치권에서는 총선과 대선의 공식 선거비용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선거 때 공식 비용의 2~3배 돈이 풀리는 점을 감안하면 양대 선거로 올해만 4조~6조원의 돈이 풀릴 수도 있다.
‘선거 특수’가 기대되는 업종은 인쇄·제지, 선거유세차량 임대, 방송장비 임대, 정치컨설팅, 홍보대행, 여론조사 리서치, 사무실·컨벤션 임대, 온라인 광고, 미디어, 행사대행, 선거용품 제작, 동영상 제작, SNS·전화홍보 등 IT, 음원 제작, 인력채용 업계 등이다.
전통적으로 선거 때마다 특수를 보는 인쇄·제지업계는 이미 영업 전쟁에 돌입했다. 제지업계에서는 이번 총선 때 투표용지, 포스터 등 벽보, 개인홍보물, 명함 등 1만t 정도의 특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HMC투자증권에 따르면, 2007년 17대 대선과 2008년 18대 총선 때 국내 제지업체 매출 성장률은 각각 전년 대비 6.8%, 20%를 기록했다. 특히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한 해에 치르는 올해는 제지업계가 대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시장에서는 한솔제지, 무림페이퍼, 한국제지 등의 주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인쇄업계도 특수는 기대하지만 분위기는 다소 침울하다. 예전 같으면, 예비후보 등록자들이 공천을 받기 전에 홍보물을 경쟁적으로 발송하는 데 올해는 이런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예비후보자는 선거구 세대수의 100분 10 범위 안에서 1종의 홍보물을 발송할 수 있다. 충무로에 있는 N인쇄업체 관계자는 “영업을 나가보면 SNS나 전자우편 같은 곳에 관심을 더 갖더라”며 “공식선거운동 기간이 돼야 반짝 경기를 체감할 수 있겠지만, 모바일 선거운동으로 예전 같은 특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가 인터넷, 전자우편, SNS 등을 통한 선거운동을 허용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반짝 특수 역시 서울이나 일산 등 대형 인쇄업체에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에 위치한 한 중소 인쇄업체 사장은 “포스터 디자인과 인쇄를 서울 대형 업체에 맡기는 후보들이 많다”며 “유력 후보자들을 접촉하고 있는데, 지역 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구경북인쇄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지난 18대 총선 때 대구 지역에 출마한 43명 후보 중 16명만 지역 업체에 선거 인쇄물을 맡긴 것으로 조사됐다.
선거유세차량 임대업체와 선거 영상물·로고송 업체는 밀려드는 문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선거유세차량 임대업을 하는 J사 관계자는 “조명 무대설비와 LED 전광판을 탑재한 1.5t 차량 임대료는 15일에 1800만에서 2200만원까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차량 기사 임금과 식대, 유류비를 모두 포함한 가격이다. 그는 “선거 캠프에서 문의가 부쩍 늘고 있다”며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가급적 후보자가 원하는 가격에 맞춰주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업종인 S사 관계자는 “유세차량은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만 쓸 수 있고 주문을 받아 개조해야 하기 때문에 공급량이 한정돼 있다”며 “예비후보가 임대 계약을 했는데, 공천을 못 받으면 20% 정도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천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유세차량 임대비는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이 업체는 LED 전광판 없이 스피커만 달린 1t 차량은 하루 20만원(기사 포함)에 임대해 준다.
유세차량·로고송·영상물 제작 업계 활황선거용 로고송·영상물 제작 업계에도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 특히 선거문화로 자리잡은 로고송은 갈수록 제작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현직 국회의원의 한 비서관은 “지난해 히트했던 아이돌그룹 노래를 개사하려고 작곡가에게 문의했더니 자작권료로 3000만원을 부르더라”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저작권이 있는 가요를 로고송으로 만들려면 제작비 30만~50만원,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내는 복제사용료 50만원이 든다. 여기에 저작권자와 개별 접촉해 내야 하는 저작인격료는 50만~300만원 정도다. 1000만~3000만원 하는 곡도 있다. 로고송을 활용한 유세용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데는 곡당 150만원 정도가 든다. 보통 총선 후보들은 선거기간 동안 로고송을 2~3곡 활용하기 때문에 총선 기간 중에만 2500곡 안팎의 로고송이 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후보가 등장하는 영상물 제작비는 150만~3000만원 정도로 천차만별이다. 본선 후보자가 지방 선관위에 제출해야 하는 포스터는 통상 70만~100만원의 제작비가 든다.
IT(정보기술) 업계도 선거 특수가 예상된다. 특히 SNS 선거운동이 허용되면서, 스마트폰 홍보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업체에 관련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벤처기업인 S사 관계자는 “아이폰, 안드로이드용 애플리케이션(앱) 제작을 문의하는 후보가 많다”며 “스마트폰용 홈페이지 제작은 물론, SNS 연동, 설문조사 등이 가능한 앱을 제작하는 데 대략 500만원 정도가 든다”고 밝혔다. J사 관계자는 “요즘에는 예비후보 진영에 기본적으로 SNS 담당팀이 신설된다”며 “완벽한 수준의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데 기간은 보름 정도, 비용은 1500만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명함에 QR(Quick Response) 코드를 내장하는 후보들도 늘고 있다. 스마트폰을 명함에 갖다 대면 후보의 프로필과 각종 정보를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홍보·광고 대행사에 SNS 홍보 전략을 문의하는 전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전화홍보솔루션 업계도 반짝 특수가 기대된다. 공식선거운동 기간에는 전화를 이용해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후보자를 홍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일반전화가 아닌, 인터넷전화를 이용한 전화홍보 솔루션이 많이 출시됐다. 홍보는 물론, 유권자의 성향과 투표의향을 데이터화해서 관리할 수 있다. 전화홍보시스템 전문업체인 S사에 따르면, 전화홍보솔루션과 서버, 전화단말기 10대를 임대하는 데 350만원 정도가 든다. 이를 10명의 선거운동원이 운용하려면 한 후보 당 20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S사 관계자는 “전화홍보 비용은 선거비용으로 보존해주기 때문에 대부분 후보자들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정치컨설팅과 리서치 회사들도 치열한 영업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처음 들어보는 컨설팅 회사 등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선거전략 수립, 홍보, 언론 보도, 출마지역 판세 분석 등 종합적인 선거컨설팅을 하는 곳은 여의도에만 20여 곳에 이른다. E사 관계자는 “옵션에 따라 컨설팅 비용 차이가 많지만 대부분 국회의원 후보들이 컨설팅 받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정치컨설팅 회사들은 대부분 컨설팅 비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하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종합 컨설팅에는 1억~2억원, 기본 옵션에는 2000만원 안팎이 통상적인 가격으로 알려져 있다. E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착수금만 받고 선거비용을 국가에서 보전 받을 수 있는 득표율이 15%를 넘으면 나머지를 정산 받는 업체도 등장했다”고 말했다.
변호사업계는 선거 후 특수 기대리서치 회사들도 호황을 기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거 총선 때는 대구·경북, 부산, 호남지역, 서울 강남 3구 등 특정당이 우세한 지역은 자체 여론조사 문의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올해는 이들 지역에서도 여론조사 비용 문의가 늘고 있다는 게 리서치 업계의 얘기다.
그만큼 각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판세를 불확실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합지역의 경우 후보 캠프에서는 다섯 차례 정도 자체 여론조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비용은 KT 전화번호부 등재방식은 1000명 기준으로 300만원 안팎이다. 최근 많이 쓰이는 RDD(Random Digit Dialing, 임의전화 걸기) 방식은 1000만원 정도가 든다. 한 후보가 선거 기간 중 한 차례만 RDD 방식으로 여론조사를 한다고 가정해도 관련 업계에 100억~120억원이 풀리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총선 특수의 최대 수혜자는 변호사업계가 될 것이라는 웃지 못할 말도 나온다. 지난 18대 총선 때 검찰은 총선사범 1965명을 입건해 1262명을 기소했다. 이 중 66명은 구속됐다.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당선자는 34명이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또는 100만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에 수임료는 변호사가 부르는 게 값이다. 수임료 외에 착수금만 3000만~500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김태윤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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