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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차세대 칩 - 진정한 스마트 워커(Smart Worker) 시대 열린다

세상을 바꾸는 차세대 칩 - 진정한 스마트 워커(Smart Worker) 시대 열린다



스마트폰은 어디서든 무선 인터넷을 잡아낸다. 노트북 PC는 지금까지 이와 달랐다.

‘와이파이존’(Wi-Fi Zone) 안에서만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앞으론 그렇지 않다.

스마트폰만큼 빠르게 무선랜을 찾아내는 ‘노트북용(用)’ 칩이 개발돼서다.

노트북에 가장 적합한 통신망으로 평가받는 ‘와이브로’도 이전보다 탄탄해졌다.

스마트기기의 출현으로 자존심을 구겼던 노트북이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칩의 힘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중소 건설사 CEO 김남식(54)씨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담낭(쓸개) 제거수술을 받았다. 연말이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술을 미뤘다간 건강이 더 나빠질 공산이 컸다. 수술은 1시간 30분 만에 끝났다. 워커홀릭으로 유명한 그는 회복 직후 스마트폰으로 e-메일을 확인했다. 하지만 설계도면, 원청업체에 제출할 보고서 작성이 여의치 않았다. 스마트폰의 터치형 자판은 보고서 만들기에 영 불편했다.

김씨는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노트북을 갖고 오라고 했다. 내일이면 퇴원이었지만 당장 일을 시작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다. 그는 정보보안을 위해 NHN의 클라우드서비스인 ‘N드라이브’에 문서를 저장해 놨다. 때문에 인터넷이 접속되지 않으면 노트북이 있어도 문서작업을 할 수 없다. 김씨가 입원한 병원에서는 무선 인터넷(Wi-Fi)이 잡히질 않았다. 부랴부랴 간호사에게 무선 인터넷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물어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우리 병원에는 무선 인터넷이 설치돼 있지 않습니다. 사용하고 싶으면 돈을 내고 (공유기를) 신청해야 해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 워커(smart worker) 시대라고 호들갑 떨더니 별로 달라진 것도 없구먼.”

바야흐로 스마트 시대다. 전세계 스마트폰 보급률은 29%에 이른다. 일본·북미 등 선진시장 보급률은 50%를 넘어섰다. 국내 스마트폰·태블릿PC 보급률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가구당 스마트폰·태블릿PC의 보급률은 43%를 기록했다. 2010년 5%보다 8배 이상 증가했다.



스마트폰으론 문서 작업에 한계스마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스마트 워커가 늘고 있다. 스마트 워커는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업무를 보는 사람을 가리킨다. 소프트웨어 업체 기스트(GIST)가 2011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 5명 중 3명이 “사무실에 있지 않아도 업무가 가능하다”고 했다. 시장조사기관 IDC의 분석도 비슷하다. IDC는 “2010년 10억명을 돌파한 세계 스마트 워커는 2015년 13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망이 맞다면 2015년 전체 노동자 중 37%가 스마트 워커가 된다. IDC의 스테이시 크룩 책임연구원은 “스마트 워커의 성장세는 한동안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스마트 워커가 얼마나 많은 업무를 스마트 기기로 처리하느냐다. 스마트 워커의 행동을 분석한 기스트에 따르면 그들은 e-메일 확인(36%)·인터넷 서핑(35%)·독서(12%)를 많이 했다. 나머지 7%는 비디오나 동영상을 봤다. “문서를 작업했다”고 답한 스마트 워커는 없었다. 스마트 기기로 처리했다는 업무는 e-메일 확인이 전부였다. 대부분 취미생활이었다. 엄태준 인텔코리아 기업솔루션팀 부장은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스마트 워커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는 노트북의 단점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많다. 노트북이 스마트폰·태블릿PC 보다 무거워서가 아니다. 노트북도 무척 가벼워졌다. 인텔의 울트라북, 애플의 맥북에어의 두께는 20㎜가 채 되지 않고 무게는 1㎏ 가량이다. 문제는 휴대성이 아니라 노트북에서 무선 인터넷이 스마트폰·태블릿PC만큼 구현되지 않아서다. 담낭 제거수술을 받은 김씨의 사례에서 보듯 말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통신기술방식에 있다. 4G(세대) 통신기술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LTE(롱텀 에벌루션)고, 다른 하나는 와이브로(Wibro)다. 4G LTE는 현재 스마트폰·태블릿PC에만 서비스된다. 노트북 PC에 적용되는 LTE는 없다. 노트북처럼 대용량 데이터 서비스를 처리하려면 와이브로가 필요하다. 또한 와이브로를 지원할 수 있는 노트북용 칩이 있어야 한다.

지난해 말까지 이런 칩이 내장된 노트북은 없었다. 휴대용 와이브로 단말기 ‘에그(KT)’가 대체상품이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었다. 에그는 모두 4세대까지 출시됐지만 에그모델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더구나 에그는 휴대용 단말기이기 때문에 따로 들고 다녀야 한다는 불편함도 있었다.



전국 85개 도시서 와이브로 이용 가능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KT·인텔이 2010년 손을 잡았다. 인텔은 칩을 개발하고, KT는 망을 확대하고 삼성전자는 인텔칩이 내장된 노트북을 출시하겠다고 했다. ‘진짜 스마트 워커 시대를 열겠다’는 전략에서였다. PC제조업체·통신사·칩 제조사가 협력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관건은 역시 칩의 개발이었다. 내장형 칩 개발에 성공하지 못하면 노트북 생산은 물론 망 확장이 무의미했다.

인텔은 2년 여의 개발과정을 거쳐 2010년 와이브로 내장형 칩인 ‘커뮤니케이션 칩’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칩은 기존 에그를 노트북 안에 넣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무엇보다 와이파이·와이브로를 모두 지원하는 통합 칩셋이기 때문에 노트북에서 자유롭게 무선 인터넷이 가능하다. 와이브로 칩이기 때문에 움직이면서 인터넷을 할 수도 있다. 와이파이의 단점은 일정한 공간(존)에서만 인터넷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글로벌 국제표준주파수 대역폭을 지원하는 칩까지 내장돼 휴대폰을 로밍하듯 해외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엄태준 부장은 “이번에 상용화하는 데 성공한 커뮤니케이션 칩은 언제 어디서든지 (노트북으로) 일할 수 있는 진짜 스마트 시대를 창조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3일 인텔의 커뮤니케이션 칩이 내장된 ‘와이브로 내장형 노트북’을 선보였다. 슬레이트PC 시리즈7, 초슬림 초경량 노트북 350U, 실용성이 강화된 시리즈3 300E 등 5종에 달한다. 특히 삼성전자는 기존 보급형 위주의 4G 와이브로 노트북 제품과 달리 이번엔 보급형부터 프리미엄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췄다. 남성우 삼성전자 IT솔루션사업부 사장은 “삼성과 인텔의 기술협력 덕분에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4G 와이브로 내장형 노트북이 전국적으로 보편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T는 2010년 10월 이후 와이브로망 확충에 힘을 쏟았다. 현재 전국 85개 도시에서 와이브로를 서비스 받을 수 있다. 주요 고속도로는 물론 제주도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표현명 KT 사장은 “KT는 삼성·인텔과의 전방위적인 협력으로 와이브로 활성화를 주도할 것”이라며 “노트북을 비롯한 다양한 디바이스에 와이브로를 탑재해 고객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말했다. 박희준 연세대(정보산업공학) 교수는 “LTE가 스마트폰 중심으로 서비스가 되고 있어서 PC 사용자는 이용이 어렵다”며 “4G와이브로는 대용량 데이터를 사용하는 PC 사용자가 경제적이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말했다.

스마트 워커들은 와이브로 내장형 노트북의 출시를 환영한다. “변화는 벌써 시작됐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결혼 후 주부로 생활하다 최근 다시 일을 시작한 박정희(35)씨의 직업은 사이처(Cycher)다. 사이처는 사이버(Cyber)와 티처(Teacher)의 합성어로 온라인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을 말한다. 때문에 시간에 맞춰 온라인에 접속해 수업을 해야 한다. 학생과의 약속이자 의무다. 박씨는 “개인약속을 따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빡빡한 생활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특히 노트북에서 무선 인터넷이 잘 구현돼지 않아 밖에 있을 때면 서둘러 귀가하기 바빴다.

하지만 와이브로 내장형 노트북을 구입한 후 상황이 달라졌다. 공원은 물론 고속도로에서도 인터넷이 접속되기 때문에 개인생활을 누릴 수 있는 여유를 찾았다. 박씨는 “와이브로 내장형 노트북이 출시된 이후 길을 걷다가도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결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노트북 활용하는 사이처족(族) “만족”외근이 잦은 중소기업 영업사원 이병진(28)씨는 자타공인 얼리어답터다. 스마트폰·태블릿PC로 e-메일을 확인하고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그러나 이씨는 정작 외부에서 급한 업무를 처리할 때면 노트북을 이용했다. 스마트폰·태블릿PC로는 e-메일을 간단히 확인할 수 있지만 중요한 문서작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트북의 문제는 인터넷 연결이 여의치 않다는 거였다. 이동할 때마다 와이파이존을 찾아다녀야 했다. 스마트폰의 테더링(휴대전화 단말기를 무선공유기처럼 만드는 기능)을 이용하면 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연결이 되지 않아 화가 치밀 때가 잦았다. 이씨는 그래서 ‘문서작성 등 급한 업무를 볼 때는 차라리 PC방을 찾는 게 편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의 생각은 올 초 와이브로 내장형 노트북을 구입한 후 180도 달라졌다. 그는 “이제 메뚜기처럼 무선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 전전할 필요가 없어져 좋다”며 “진짜 스마트 워커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와이브로 내장형 노트북이 출시되자 ‘노트북 시대는 이제 끝났다’‘와이브로는 대한민국 IT정책의 실패작이다’는 비판이 수그러들고 있다. 손톱만한 칩 하나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 칩과 IT환경의 상관관계

윈도우95 없었다면 펜티엄도 없어


1995년 펜티엄 칩을 탑재한 고성능 PC가 등장했다. 연산능력·반응속도는 기존 제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뛰어났다. 펜티엄 PC는 2000년대 중반 노트북이 인기를 끌 때까지 PC업계를 주름잡았다. 그렇다고 이 성과를 반드시 칩 덕분이라고 보긴 어렵다. 펜티엄 PC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발판은 또 있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S)가 1995년 개발·출시한 ‘윈도우95’였다. 윈도우95가 출시되기 전까지 PC의 핵심 운영체제는 텍스트 기반의 ‘도스(Dos)’였다. 낮은 사양의 PC라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텍스트가 아닌 그래픽 기반의 환경을 채택한 윈도우95는 달랐다. 높은 사양의 PC가 없으면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따랐다. 고성능 칩 펜티엄이 없었다면 윈도우95도 없었지만 윈도우95 덕분에 펜티엄은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벤처 모니터 제조사 BRC의 김창준 대표는 “칩 성능이 제아무리 뛰어나도 주변 환경이나 기술과 맞물리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며 “칩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칩 역시 IT환경과 기술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휴대전화시장이 크게 변했다. 스마트폰 가입자는 2000만명을 넘어섰다. IT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에 장착된 고성능 칩이 피처폰 중심의 휴대전화 트렌드를 바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원동력도 있다. 스마트폰 가입자의 가파른 성장세 이면에는 차세대 이동통신망 ‘4G LTE(롱텀 에벌류션)’가 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국내 이통3사는 올해 1300만명을 4G LTE 가입자로 유치할 계획이다.

LTE가 인기를 끌면서 4G LTE폰의 종류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까지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4G LTE폰은 2종에 불과했지만 올 1월 8종으로 늘어났다. 태블릿PC까지 포함하면 단말기 종류는 10종에 이른다. IT업계 관계자는 “어떤 칩이 들어갔든 스마트폰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LTE 같은 통신망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특히 최근 온라인 비디오 콘텐트가 크게 늘어나 그 어느 때보다 망의 증설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트북도 무선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칩을 통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인텔이 2010년 상용화에 성공한 ‘커뮤니케이션 칩’이 핵심 무기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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