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국내 조선사는 요즘 - 배 대신 해양 플랜트 사업에 총력
[Business] 국내 조선사는 요즘 - 배 대신 해양 플랜트 사업에 총력
“배(조선)는 이제 한국 조선업의 주력 품목이 아니다. 올해 배 만드는 일에서 손을 뗐다.” 한 대형 조선사 임원의 말이다. 현재 조선소에서 만들고 있는 배는 과거 수년 전 수주한 물량을 소화하는 것일 뿐이란 설명이다. 새로 물량을 받으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는다.
비조선 부문으로 사업 다각화세계 최고의 실적으로 한국 경제를 이끈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업계 빅3가 조선사업에서 다른 사업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들 3사는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조선업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풍력발전과 해양플랜트 등 비조선 부문 진출에 나섰다. 그러면서 조선사업은 대거 축소하고 있다. KDB대우증권에 따르면 2012년 빅3 조선사의 비조선 부문 수주실적은 전체 매출액의 절반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비조선 부문 실적이 조선 부문 실적을 넘어선 것은 2009년 이후 몇 차례 있었다. 빅3 조선사의 비조선 부문 비중은 2009년에 무려 82%에 달했다. 금융위기로 조선업 수주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이후 기존 수주량을 소화하면서 지난해까지 비조선 부문 비중은 조금씩 줄었지만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비조선 부문의 비중이 커졌다.
올해부터는 명실상부하게 비조선 부문이 조선을 이끌 전망이다. 세계적으로 조선업이 다시 활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 빅3가 비조선 부문에 영업력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비조선 부문 수주량이 더욱 늘면 이들의 체질이 완전히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비조선 부문의 핵심은 조선업 불황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해양플랜트 사업이다. 세계적인 환경규제 강화로 선박을 이용한 해양 풍력발전, 해양 원자력 발전 등 부유식 해양플랜트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유가에 따라 천연가스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규모 해양자원개발 프로젝트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해양플랜트와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가 이들 프로젝트의 핵심 영업 접점이다. 이는 대형 조선사의 사업구조 다각화를 위한 신사업 추진 전략과 맞아떨어진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중국 글로벌 연구개발센터와 자원개발 전문회사인 현대자원개발 설립을 시작으로 유럽과 중국의 풍력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비조선 사업을 더욱 키워 ‘종합 중공업 회사’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은 드릴십(선박형태의 이동성을 가진 시추선)을 제외한 해양플랜트 사업에서만 44억8000만 달러를 수주했다. 업계 1위인 점을 감안하면 해양플랜트 사업 수주량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해양플랜트 영업목표를 16% 중가한 52억 달러 수준으로 잡고 있다. 조선 부문 투자비중은 해마다 줄어 이미 확보한 건조물량만 만들고 있다. 대신증권의 전재천 연구원은 “현대중공업의 올해 사업계획을 보면 조선 부문은 15% 줄고 해양플랜트는 364% 증가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중공업은 빅3 중 가장 먼저 해양플랜트에 뛰어든 이력을 앞세워 신규 사업으로 ‘해양가스플랜트’에 주력할 예정이다. 1월에 일본계 호주 자원개발업체 등과 건조계약을 체결하는 등 올해 전체 수주액의 70%를 해양플랜트로 따낼 전망이다. 조선업 관련 투자계획은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올 초 비조선 부문 연구인력을 중심으로 승진인사를 냈다. 조선 부문 연구인력은 승진에서 상대적으로 밀렸다. 사업의 무게중심을 비조선 부문으로 확실하게 옮기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 중심 사업구조를 탈피한 종합 중공업 그룹’이 올해 대우조선해양의 모토다. KDB대우증권의 이진경 연구원은 “빅3는 조선업 부진에 연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해양플랜트 등 신개념 선박 물량을 독식할 수 있는 높은 기술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면서 “유럽 금융위기로 선박금융시장이 위축돼 2012년 조선업은 더욱 침체될 전망이지만 빅3가 주력하고 있는 해양플랜트 시장은 상대적인 호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중소 조선사는 이중고국내 빅3 조선사가 모두 비조선 부문 사업에 전념하는 건 중국 조선업의 성장 때문이다. 저렴한 임금을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을 가진 중국과 경쟁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과거 중국 조선사는 가격경쟁력은 뛰어나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한국 조선사와 경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한국의 조선 물량을 빼앗기 시작했다. 중국의 임금이 올라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비율보다 기술경쟁력이 상승하는 비율이 높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이에 따라 빅3 조선사는 중소 조선사로 물량을 넘기거나, 조선 부문 핵심기술만 남기고 선박 조립을 중국 조선사에 맡기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떨어진 선가도 조선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요인이다. 벌크용 범용선박, 컨테이너선, 초대형유조선(VLCC) 등 고가의 선박 가격이 최근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선가 회복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선진국 경기 악화로 발주물량이 크게 줄어 조선사간 경쟁이 과열돼 선가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또 건조에 필요한 철광석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조선업의 채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분기별 영업이익률을 보면, 1분기 15.6%에서 2분기 11.2%, 3분기 9.1%, 4분기 6.0%로 이익률이 계속 줄었다. 삼성중공업도 마찬가지다. 1분기 10.8%이던 영업이익률이 10.3%(2분기), 6.3%(3분기), 5.5%(4분기)로 줄었다. 영업이익률 하락의 주요인으로 지목되는 조선 사업에 기대고 있다가는 이익 규모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영업이익률 감소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 부문의 고가 수주물량 비중이 줄고 수익성이 하락했기 때문”이라며 “그나마 조선해양 부문 건조물량과 대형 엔진 인도 물량이 늘어 전체 매출액은 늘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2009년 수주 물량이 부족할 때 저가로 받아들인 물량을 지난해 본격 건조하면서 하반기 영업익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체의 전체 선박 수주도 2007년 3200만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에서 2008년 1800만CGT, 2009년 450만CGT로 급감하는 추세다.
조선 부문에 계속 집중해야 하는 중소 조선사 사정은 더 나빠지고 있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 없는 벌크선과 탱커선 등에 주력하다 보니 같은 종류를 만들고 있는 중국 조선사와 경쟁이 치열하다. STX조선해양은 지난해 매출 목표 130억 달러의 40%만 겨우 채웠다. 한국투자증권 박민 연구원은 “해양플랜트 수주 실적이 전무한 것이 원인”이라며 “해운시장 부진과 유럽발 금융위기에 따른 선박금융 축소를 고려하면 중소 조선사의 수주 둔화가 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상주 이코노미스트 기자 sa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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