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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내가 독하다고… 영화 보며 우는 여린 남자야

[INTERVIEW] 내가 독하다고… 영화 보며 우는 여린 남자야

해병대 출신, 독종 경영, 직원들과 백두대간 종주, 5연임. 박종원(68) 사장 하면 떠오르는 말들이다. 그는 올해로 코리안리를 15년째 이끌고 있다. 격변의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기록이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코리안리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저는 독한 사람이 아닙니다.”

‘독하게’ 회사를 경영하는 걸로 잘 알려진 박 사장의 첫 마디가 의외였다. 그는 ‘독한 경영’으로 망해가던 회사를 매년 10% 이상 성장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낸 책 이름도 『야성으로 승부하라』였다. 오죽했으면 사내 외에서 ‘독종원’이라고 불렀을까.

그런데 독하지 않다는 걸 넘어 한발 더 나갔다. 자신이 ‘소심하다’는 것이다. 코리안리 사장 15년과 그 이전의 인생 궤적 어디를 봐도 소심하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박 사장도 마음이 여려진 건 아닐까. 한 자리에 오래 있거나 나이를 먹으면 여유와 나른함이 몸에 배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사장의 얘기는 그게 아니었다. 그는 터프한 것과 소심한 것을 분명히 구분해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도 내가 소심하다고 하면 웃어. ‘당신은 해병대 나와서 일도 독하게 하고, 생긴 것도 터프하게 생겼는데’라고 하지. 그런데 그건 겉모습이야. 하드웨어가 그런 거지.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그렇지 않아요.”



사장님께서 스스로 소심하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데 어떤 뜻입니까.“마음이 여리다는 거지.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나도 아프고, 누군가가 형편이 어렵다고 하면 나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감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소심한 거 같아요. 난 연애할 때도 헤어진 후 다른 사람 만나고, 또 헤어지는 걸 보면 신기해. 나는 그런 적이 없거든. 오로지 일편단심이야. 처음 만난 여자랑 결혼했는데 그게 지금 집사람이지. 다른 여자랑 연애 한번 못해봤어.”

그의 감성을 나타내는 일화가 있다. 바로 ‘장미 폭탄주’. 박 사장은 한 때 장미 폭탄주로 유명했다. 폭탄주를 줄 때 장미꽃과 함께 줬다.

“내가 가기 전에 항상 장미가 준비돼 있었죠. 장미 폭탄주를 마시면서 각자 ‘폭탄사’를 한 마디씩 하게 했어. 자기가 어떻게 살았고, 하고 싶은 말이 뭐고. 일종의 1분 발언대지. 그렇게 하면 서로 정이 더 깊어지고 자리가 풍성해져.그런데 그건 10 년도 더 된 얘기에요. 폭탄주도 5년 전부터 끊었지. 건강을 위해 술을 아예 끊었어요.”

그는 영화나 공연을 보면서도 종종 운다고 했다. 최근에는 영화 ‘댄싱퀸’을 보면서 울었다. 퇴근 후 직원들과 간 영화관에서였다.

“황정민하고 엄정화 대화가 너무 멋있는 거야. 황정민은 시장을 하고 싶어 하죠. 그런데 엄정화 꿈은 시장 부인이 아니야. 댄싱퀸이지. 그런데 부인 꿈을 인정해주더라고. 그걸 보니까 가슴이 찡했죠.”

박 사장은 퇴근 후 직원들과 함께 자주 영화를 본다. 시간이 되는 직원 10~15명이 모여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는 식이다. 저녁 메뉴는 주로 젊은이가 좋아하는 파스타. 박 사장은 ‘미션 임파서블3’와 ‘도가니’도 직원들과 함께 봤다.

틈틈이 직원들과 점심과 저녁 식사도 함께 한다. 그래서인지 직원들 이름은 물론 개인적인 소소한 것들도 꿰고 있다. 어떤 직원이 목동에 사는지, 잠실에 사는지, 아들이 하나인지 딸이 둘인지, 연애 중인지 등등. 지나가다 마주친 직원에게 “장가간지 3년이나 됐는데 왜 아기 소식이 없냐”고 묻기도 한다.

그의 집무실 책상 오른편에는 A3크기의 코팅된 종이가 6장 놓여 있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도별로 신입사원 사진과 이름, 인적 사항이 인쇄돼 있다. 틈날 때마다 새로 들어온 직원들의 이름을 익히기 위해서다.



사장실 문 열어놓는다고 소통 아니다

그는 5년 전부터 진돗개 세 마리를 키운다. 이름은 진돌이, 똘순이, 진순이. 박 사장은 개들을 자식처럼 대한다. 동물을 좋아해서 ‘TV동물농장’을 즐겨본다. 그는 이 프로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을 이야기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떠돌이 개를 집에 데려왔어요. 그런데 밥을 줘도 먹지를 않고 으르렁거리는 거야.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거지. 개의 눈높이에 사람이 맞춰서 자세를 낮추니 개가 마음을 여는 거야. 사람을 대할 때도 똑 같은 거라는 걸 느꼈어요. 그 사람의 눈높이에서 하는 것이 소통이라는 거지요. 소통하려면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서 함께 이야기해야 해요. 대리급 직원들과 밥을 먹는다고 칩시다. 대리의 업무를 생각하고 그들의 애로사항을 같이 고민해줘야지. 업무 외에도 보편적인 대리들의 관심사, 예를 들어 ‘나는 가수다’ 같은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어야지요. 그렇지 않고 그냥 ‘나 오늘 직원들과 밥 먹었소’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야. 간혹 ‘당신네 회사는 소통이 잘 됩니까’라고 물으면 ‘우리 회사 사장실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라고 하는데, 가장 한심한 대답이에요. 열어놨다고 누가 옵니까. 오지 않으면 소용 없어요. 사장실 문을 열어놓을 게 아니라 직원들 곁으로 찾아가라는 거지.”

그는 ‘K-팝스타’ ‘개그콘서트’ ‘순정녀’ 등 젊은층에 인기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나이 70을 눈 앞에 둔 CEO로선 예상 밖이다.

“예능 프로에서 내 나름의 경영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하죠. 좀 전에 이야기 했듯이 동물농장에서 소통의 원리를 찾기도 했고요. 개그콘서트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맨날 “안돼~”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잖아. 그러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에요. 부활의 김태원이 고생을 많이 했잖아. 아들이 발달장애가 있어서 부인은 아들이랑 필리핀에서 살고, 본인도 암에 걸려서 고생하고. 그런데 그 사람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꿈을 꾸십시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언젠가는 그 꿈이 이루어진다.’ 나는 그 사람을 다시 봤어.”



예외 없는 원칙 경영이 독한 경영

박 사장은 자신이 감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독한 이미지가 그를 뒤덮고 있는 것일까. 박 사장이 지금까지 해 온 구조조정 등을 보면 ‘독한 경영’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예외 없는 원칙 경영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적당히 하는 경영이 아닌. 그게 독한 경영 아니겠어요? 그런데 종종 보면 원칙 경영, 투명 경영을 한다고 하면서 예외가 너무 많은 거야. 원칙대로 투명하게 인사를 한다면서 예외를 만들지.”



15년 째 경영을 하시면서 예외가 한 번도 없었습니까.“정말 없어요. 내가 처음 코리안리에 와서 구조조정을 할 때 노조위원장을 자르고, 실세의 친구를 자를 때 얼마나 압력이 많았겠습니까. (옆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보이며) 내가 이 자리에서 전화 여러 번 받았어요. 그렇지만 담대하고 강하게. 네가 뭔데? 여기는 엄연히 민간기업인데. 너희들이 보기에 나는 하찮은 사장일 지 모르지만 나도 너네 우습게 볼 거다. 내 책임과 권한 아래에서 내 할 도리를 다 하겠다. 거기다 대고 누가 뭐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제는 압력이 들어오지도 않아요. 다 옛날 얘기지.”



원칙대로 한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물론 힘듭니다. 하지만 나를 내려놓겠다고 결심하면 그 다음은 쉬워요.”



나를 내려놓는다?“결정을 하는데 두려운 이유가 뭘까요. 내가 이렇게 했을 때 다음 일은 어떻게 될까, 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잘리지 않을까, 딴 자리에 가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렇게 나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그걸 내려놓으면 두려움이 없어지죠. 그만 두고 나가면 그만인데, 뭘 더 어쩌겠나 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요.”



맞을 짓 안 했는데 맞을 수 없다

2000년대 초 코리안리는 불공정거래 시비가 붙었다. 헬기에 대한 재보험을 받아준 것이 화근이었다. 헬기는 위험성이 높아서 외국 회사에서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무보험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코리안리는 국가적 차원에서 헬기의 재보험을 받았다. 이를 두고 “경쟁을 붙이지 않고 왜 코리안리에서만 헬기 재보험을 취급하냐”고 추궁을 해왔다. 박 사장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직접 가서 조목조목 반박하고 다 엎어버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그 일은 없던 일이 됐다.

“불공정거래 시비가 붙었다가 의견이 받아들여진 것은 그 당시까지 한 번도 없었어요. 물론 매맞을 짓을 했으면 매를 맞는 거죠. 그런데 맞을 짓을 안 했으면 한 대도 맞지 말아야 합니다. 매 맞을 짓을 안 했는데도 살살 때려주십쇼, 이건 아니라는 거지. 이게 바로 원칙입니다.”



너무 원칙대로 하면 적이 많아지지 않을까요.“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조직의 10~15%는 나를 싫어할 겁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에요. 그 사람들을 잘라내도 적은 또 생겨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대신 나와 관련된 주변이 깨끗해야 합니다. 적이 걸고 늘어지지 않도록.”

1998년 박 사장이 경영을 맡을 당시 코리안리의 자본금은 470억원, 당기 손실액이 2800억원이었다. 하지만 2011년 11월 기준 총 자산은 6조 5435억원, 당기 순이익은 1467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5년간 당기순이익은 11.4%씩 늘어 이제는 아시아 1위, 세계 11위의 재보험사가 됐다.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셈이다.

그는 올해 코리안리가 세계 10위권 재보험사가 될 거라고 말했다. 현재 80대 20인 국내 대 해외 비중을 2030년 50대 50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동유럽·남미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회사가 잘 되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CEO가 잘해도 직원들이 나몰라라 하면 해 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는 공부만 잘 한다고 못 들어와요. 올 A를 받고 토익 만점을 받아도 떨어집니다. 인품을 보기 때문이지. 그런데 그 인품은 강한 육체에서 나와요. 나는 지덕체(智德體)가 아니라 체덕지라고 말해. 체가 먼저야. 내가 말하는 ‘체’는 육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 건강을 뜻하는 거지. 나 혼자 잘하겠다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CEO가 되면 그 회사는 망하는 거야. 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전체 조직을 망가트리니까. 얼마 전 죽은 카다피도 그런 사람 아니겠어요.”

내년까지 임기를 남겨둔 그에게 마지막으로 ‘6연임에 도전할 거냐’고 물었다. “그게 뭐 내 맘대로 하나. 나는 한 번도 연임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 없어요. 남은 임기 동안 항상 최선을 다 하는 거지. ‘내가 오너다’라는 생각으로. 적당한 때, 적당한 후배가 있으면 인수인계하고 물러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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