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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기계의 노예 될 수도

똑똑한 기계의 노예 될 수도



이미 전자화 시대의 포로가 된 것은 아닐까. 지하철을 타거나 커피숍을 가거나 거리를 걸을 때조차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무수한 사람을 본다. 이런 모습이 문득 낯설지만 어느새 나 자신도 거기에 스며들어있다.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 흐름에 동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동차는 어떤가.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은 과거 2만개라고 이야기되었으나 최근에는 3만개를 말하기도 한다. 부품 가짓수가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그중 전자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대략적인 수치로 30~40%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본다. 자동차 가격에서 전장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대 1%에서 2004년에는 약 20%로 증가했으며 2015년에는 40%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고급차일수록 비중이 더욱 크다). 그리고 하이브리드카와 전기차 보급이 늘어날수록 이 수치는 더욱 커질 것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장산업 규모는 2020년 2610억 유로(약 365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자동차 전장은 이제 거대한 산업의 일부가 됐다. 어떤 산업이 성장한계점에 다다르거나 그럴 조짐을 보이게 되면 주변을 기웃거리게 마련이다. 세계 최대의 가전박람회 CES에 아우디, BMW, 벤츠, 포드,현대 등 자동차 메이커가 참여하는 것이나 삼성, LG, 소니 등 가전업계들이 자동차회사와 제휴와 연대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 이런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등 IT기업이 자동차분야에 뛰어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다양해진 편의성 ‘생각하는 운전’ 방해자동차에 전자장비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갈수록 엄격해지는 배기가스 규제에 맞추어 전자제어 엔진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다름 아닌 ECU(Engine Control Unit)의 출현이다. 이름 그대로 연료분사를 전자제어했던 ECU는 추후 트랜스미션이나 파워트레인, 나아가 각종 편의장비를 전자제어하는 모든 컴퓨터장치를 통칭하는 이름이 됐다. 전자제어 기술은 자동차의 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가령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엔진의 발전은 이산화탄소량을 줄이고 연비를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ECU는 오늘날 자동차를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부품이 됐고, 고급차일수록 ECU를 많이 쓴다. 한 대의 차에 들어가는 ECU만 해도 수십 개로 최근에는 ECU를 통합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스마트키를 몸에 지니고 차에 다가서면 저절로 문이 열린다. 시트에 앉아 손가락으로 버튼을 살짝 누르면 시동이 걸린다. 역시 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주차 브레이크를 해제하고 오토매틱 기어를 주행 모드 D에 놓으면 출발준비가 완료된다. 다만 운전자는 아직 스스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한다(이마저도 궁극에는 자동주행시스템이 해결해 줄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깜빡 차선을 벗어나면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린다. 추월할 때 사각지대나 후방에 다른 차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 정체된 도로에서 브레이크를 밟아 멈추면 저절로 시동이 꺼지고 출발하면 다시 시동이 걸린다.

앞 차창에는 현재 달리고 있는 주행속도와 과속카메라 등 주변정보,가야할 방향을 화살표로 알려주고 있다. 주행 중 앞차와의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시켜주며 일정한 속도 이하에서는 앞차와 부딪칠 뻔해도 절대 닿지 않는다. 주차장에서는 위치만 잡아주면 차가 스르르 저 혼자 왔다갔다하며 반듯하게 주차해준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자동차에 적용되고 있는 전자제어 기능들이다. 이보다 훨씬 많은 기능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만 간추려본 것이다. 와이어리스(wireless) 기술은 장치를 연결하는 선이 없어도 전자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센서만 있으면 된다. 그러다 보니 인테리어를 설계하는 입장에서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공간활용 측면에서 다양성도 확대되었다. 에어백을 비롯해 다양한 사고회피기술이 선보이면서 안전성도 높아졌다.자동차 전자화의 장점은 이와 더불어 운전자의 편의성 향상에 있다. 웬만한 것은 모두 간단히 버튼이나 스위치로 조작하므로 힘을 쓰거나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몸을 조금씩 움직이면서 무언가 조작하는 재미란 것도 있지 않을까.가령 주차할 때 핸드 브레이크를 휙 잡아당겨 올리면 ‘끼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이 자동차라는 기계를 확실히 잠궜다는 기분이 들게 해준다. 버튼식 주차 브레이크는 왠지 심심하다. 지나친 전자화는 우리에게 이런 소소한 재미를 앗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비게이션은 낯선 길을 찾아갈 때 매우 유용하지만 때로 복잡한 갈림길에선 엉뚱한 길로 빠지게 해 애를 먹기도 한다. 일본의 유명한 자동차 평론가 도쿠다이지씨는 내비게이션이 처음 등장할 무렵 “생각하는 운전을 방해한다”고 말했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전자장비에 모든 것을 의존하는 순간 운전자는 생각하는 힘을 잃고 만다.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저장하게 되면서부터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차 안에서조차 일하게 될 것DMB의 경우는 좀 심각하다. 얼마전 운전 중 DMB를 시청하던 트럭운전자가 끔찍한 사고를 내 전국을 술렁이게 했다. 그리고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급발진 문제 역시 전자장비의 오류 때문이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자동차 전자화가 가속화하면서 운전자가 직접 손볼 수 있는 부분이 없어졌다는 점도 문제다. 예전 기계식 자동차는 운전자가 어느 정도 지식이 있으면 직접 정비하는 것이 가능했다. 자동차와 운전자의 거리감이 멀어진다는 것은 점점 자동차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어진다는 얘기가 아닐까.

최근 자동차업계와 전자업계 공동의 관심사는 차에 인터넷을 연결하고 그것으로 부가적인 기능을 선보이는 데 있다. 차내 와이파이 핫스팟 기능은 이미 포드와 현대자동차 등에서 상용화 작업을 진행중이다. 스마트폰으로 시동을 걸거나 원격으로 도어를 여닫는 것도현실이 됐다. 스마트폰의 생태계를 차내에 연결해 연동시킬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개발도 진행 중이다.

BMW는 최근 운전 중 문자나 이메일이 왔을 때 차를 세우지 않고 답장을 보낼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찾았다고 밝혔다. ‘받아쓰기 기능’이라는 것으로 음성으로 목적지를 말하면 자동으로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 방식도 포함된다.BMW는 이를 ‘모바일 오피스의 업그레이드’라고 표현했다.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이러한 신기술들은 놀랍기도 하고 기술 발전이 과연 어느 수준까지 진행될지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신기술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좋지만 결국 자동차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고급차의 영역이므로 나와 상관없다고 하면 오산이다. 부품회사를 비롯한 영리한 기업들은 고급장비의 대중화 논리를 앞세워 소형차까지 파고들것이다.

그런데 자동차 안에서 굳이 인터넷을 연결하고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지 않아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차 안에서라도 혼자 오롯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큰소리로 라디오 음악을 따라 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 것일까. 바로 자동주행시스템이 그것을 일부분 해결해줄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만큼 운전하는 재미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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