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와인 산지’인 동시에 ‘세계 최고 와인 산지’로 통하는 보르도 지방으로 와인 여행을 떠난다. 아름다운 고성 마을과 구불구불한 길마다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에 섰다.메도크와 생테밀리옹,와인 라벨로만 읽던 바로 그곳이다.
프랑스 남서쪽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보르도는 메도크와 생테밀리옹 그리고 보르도시를 포함한다. 보르도 지방은 가론강과 도르도뉴강에 의해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이 두 강은 보르도의 유서 깊은 도시에서 지롱드강과 만나 바다로 흘러간다. 바로 이 강줄기를 따라 보르도 최고의 포도밭들이 자리해 있다. 지롱드강 왼쪽에 위치한 곳이 메도크이고, 지롱드강과 도르도뉴강 오른쪽에 생테밀리옹과 포므롤, 프롱삭 등이 위치한다.
보르도 와인 여행은 메도크에서 시작했다. 햇볕이 잘 들고 무더우며 자갈이 많은 지형의 메도크는 카베르네소비뇽 품종이 자라는데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메도크의 와인 가도는 명성대로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샤토와 포도밭이 여행자를 유혹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마고(Margaux)라 불리는 마을이다.
이 마을 안에 샤토라 불리는 개인 소유의 포도밭이 여럿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마 ‘샤토 마고’일것이다. 샤토 마고는 보르도의 특등급 와인 가운데 유일하게 지역명을 와인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다른 특등급 와인에 비해 품질의 일관성은 떨어지지만, 작황이 좋은 해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상급 와인을 만들어내기로 유명하다. 우아하고 귀족적인 맛과 향으로 ‘와인의 여왕’이라 불리며, 한때 미국인에게 매각될 위기에 처했을 때는 프랑스 정부가 나서 지킨 국보급 와인이기도 하다.
명사 중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샤토마고의 와인을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손녀딸의 이름도 마고 헤밍웨이로 지을 정도였다.싱그러운 연둣빛으로 반짝이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길에 섰다. 길 끝에 사진으로만 보던 샤토 마고의 고풍스러운 자태가 그림처럼 박혀 있다. 가히 살아있는 명화라 할 만하다. 메도크의 와이너리들은 적어도 3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원하는 때에 와이너리 투어가 가능하다. 우리는 주인의 특별한 배려로 샤토 마고의 작업실과 지하 저장고, 오크통을 만드는 제작실까지 두루 구경할수 있었다. 블랙커런트 향이 어떻고, 달콤한 아로마가 어떻고 하는 식의 와인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은 없지만,두 세가지의 와인을 맛보면서 입맛에 맞는 와인을 고르는 시간은 영화처럼 근사하고 낭만적인 시간이었다.
3개월 전 예약 필수메도크 지역에서 들렀던 라 와이너리(La Winery)는 전통적인 와이너리와는 색다른 분위기였다. 유리와 스틸을 이용해 만든 건축이 돋보이는 현대식 와이너리로, 드넓은 부지 안에 소극장과 레스토랑, 와인 바와 숍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에서 참여한 ‘와인 별자리 시스템’은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여섯 단계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통해 자신의 와인 성향이 트렌디한지, 모험적인
지, 감각적인지 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와인 리스트를 가격대별로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추천 와인은 4만 병이 갖춰진 와이너리 내의 숍에서 바로 살 수도 있다. 가격 역시 매우 부담없는 것에서부터 값비싼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보르도 시내에서 차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생테밀리옹은 보르도 와인 여행의 진수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넓은 포도밭과 아름다운 샤토의 모습은 메도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도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한다. 그런 특별함으로 1999년에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와이너리 투어 뿐만 아니라 오래된 도시를 돌아보는 투어도 마련되어 있다.
특히 거대한 돌 하나로 만든 지하교회가 눈길을 끄는데, 원래 이곳은 8세기에 에밀리옹이란 신부가 17년 동안 수도 생활을 하던 작은 동굴이었다. 그가 순교한 뒤 그를 추앙하던 사람들이 거대한 돌을 파서 이 모노리토(Monolitho)라는 지하 교회를 만들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가는 중세인들의 순례지 중 한 곳이 되었다. 산티아고까지 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순례의 길을 마치고 돌아갔으며, 생테밀리옹이란 도시의 이름도 이 성(聖) 에밀리옹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중세의 모습 그대로 남아생테밀리옹 성당의 종탑에 올라가면 도시를 둘러싸고있는 길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이 보인다. 여덟개의 작은 마을로 이루어진 생테밀리옹에는 1000개의 포도원이 들어서 있고, 그 가운데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은 도시가 오래된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생테밀리옹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좀 더 일찍 여무는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이 많이 재배된다. 메를로는 메도크의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부드러워 마시기가 한결 수월하며 보르도에서는 가장 널리 생산되는 품종이기도 하다. 지롱드강의 오른쪽에 위치한 이 지역에는 진흙과 석회암 토양이 많아 같은 보르도 지역이면서도 주로 재배되는 품종이 다르다.
3대에 걸쳐 와이너리를 운영하고 있는 샤토 망고(Chateau Nangot)에서 와인 시음을 하고, 명성 자자한 와이너리도 몇 군데 둘러봤다. 그중 생테밀리옹의 최고등급 와인으로 유명한 샤토 슈발 블랑도 있다. 40헥타르 남짓한 포도원에서 연간 8만병을 생산하는 곳으로,생산량이 적지 않은데도 모든 빈티지가 거의 매진된다.와인 고수라면 눈이 번쩍 뜨일 와인의 명소다.오후에는 생테밀리옹 와인 스쿨에서 보르도 와인 레슨도 받았다. 두 시간 정도 진행되는 이 수업은 와인 맛을 감별하기 전에 냄새를 구별하는 코스가 있었는데,아홉 가지 통에 들어있는 향을 맡은 뒤 생각나는 것을 적었다.
나는 아홉 가지 통에 들어 있는 냄새 중 딸기 향하나만 맞혔다. 의외로 냄새를 구분하는 일이 어렵고 와인 맛을 감별하기 위해서는 향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거의 맡을 일이 없는, 액세서리로 쓰는 호박(먹는것 말고)의 냄새, 젖은 개의 냄새, 블랙 커런트의 향 등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이런 냄새가 와인에서 난다고 말하는 것도 놀랍다. 그러고 보면 평소 주변에 있는 사소한 것들의 냄새 혹은 향들을 더욱 주의 깊게 맡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로지 와인 때문이 아니라, 그 냄새들로 인해 내가 간과했던 삶의 어떤 즐거운 향을 새삼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보르도는 파리에서 초고속 열차인 TGV로 갈 수 있다. TGV로 파리에서 보르도까지 3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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