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lm - 흑인노예 영화의 족쇄를 풀다
좋은 친구라면 서로 못할 이야기가 없다.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와 프로듀서/감독 레지날드 허들린은 피부색이 다르지만 곧잘 미국의 과거 흑인노예 매매를 두고 오랜 시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1997년 범죄영화 ‘재키 브라운’을 찍으며 만났다. 그들은 노예제도가 미국에 끼친 영향을 다룬 좋은 영화가 없다는 사실을 몹시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노예제도의 잘 알려지지 않은 면을 다루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물론 진지하면서도 오락성을 갖춘 영화를 말한다. 타란티노는 허들린과 나눈 한 대화가 계속 머리속에서 맴돌자 곧바로 대본 작업에 들어갔다. 6개월 뒤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가 탄생했다.
남북전쟁 발발 2년 전 미국 남부를 무대로 한 ‘장고’는 노예제도의 잔혹성을 거장답게 그리는 동시에 오직 타란티노만이 가능한 기이한 유머를 융합한 영화다. 타란티노 감독은 스파게티 웨스턴(이탈리아식 서부 영화)을 너무도 좋아해 종종 논란을 빚었다. 이번에도 복수와 사랑을 향한 한 남자의 열정을 다룬 이야기에 그런 요소를 듬뿍 넣었다. 독일인 현상금 사냥꾼의 도움으로 노예에서 해방된 장고(제이미 폭스)는 현상수배자들의 추적을 도운 뒤 노예로 팔려간 아내(케리 워싱턴)를 찾아 나선다.
“그토록 많은 서부 영화가 노예제도를 전혀 다루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늘 놀라웠다”고 타란티노가 말했다. 그는 추수감사절 직후 LA의 토드-AO 스튜디오에서 이 영화를 상영시간 3시간 이내로 편집하고 있었다. “너무 추악하고 골치 아픈 이야기라서 할리우드는 노예 이야기를 다루려 하지않았다. 하지만 그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미국 역사의 그 거대한 부분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말도 안된다.”
허들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1990년대 인기 영화 ‘하우스 파티’ ‘부메랑’을 감독한 허들린은 미화되거나 생략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노예를 주제로 한 영화는 정말 싫다. 할리우드가 노예에 관해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느낄 경우는 볼 만한 가치가 없는 영화가 나왔다.” 허들린은 ‘장고’의 수석 프로듀서를 맡았다. “잘 만들어진 노예 영화는 ‘스파르타쿠스’였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흑인노예가 그런 식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할리우드가 뭐라고 하든 난 들을 생각이 없다.”
타란티노(50)와 허들린(52)은 두 살 차이다. 어렸을 때 노예를 다룬 같은 영화를 봤고 어른이 돼서는 그런 영화를 같이 싫어했다. 그들은 ‘만딩고’와 ‘엉클 톰스 캐빈’ 같은 영화를 말하며 정말 황당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목할 만한 시대극 ‘영광의 깃발(Glory)’은 그래도 괜찮은 작품이라고 허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영화에서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 모건 프리먼이 해방된 노예로 북군 병사로 나왔다.
허들린은 “그 작품에서 흑인 등장인물들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의 증조부는 흑인 노예 탈출을 도운 비밀조직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에서 안내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백인들의 관점으로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진짜 이야기는 노예들이었다. 그들이 전체 플롯의 초점이 돼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허들린과 타란티노는 특히 TV 미니시리즈 ‘뿌리(Roots)’를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알렉스 헤일리 책을 바탕으로 만든 이 드라마는 1977년 ‘완벽한’ 노예 이야기를 했다고 격찬 받았다. ‘뿌리’는 역대 미니시리즈 중 시청률 3위에 올랐다. 지금도 미국의 노예제도를 가장 정확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이야기 자체나 연기가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영화”라고 타란티노가 말했다. “처음 나왔을 때는 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봤을 때 당시 모든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었다. 가식이 많았기 때문에 감동이 없었다.”
백인 감독은 대개 미국 흑인문화를 상징하는 그런 작품을 비판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타란티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대다수가 거의 모르거나 잊고 싶어하는 그 시대와 주제를 자신은 잘 안다고 확신했다. 또 작업에 허들린을 동참시켜야 영화가 제대로 된다고 판단했다. “촬영에 한창 몰두하고 있을 때 허들린이 ‘자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거야?’라고 물었다. 내가 너무 흥분해서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가 초점을 다시 찾아줬다.”
두 사람 모두 ‘장고’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본보기가 ‘뿌리’의 한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뿌리’의 마지막 장면에서 치킨조지는 자신이 구타당한 식으로 주인을 복수할 기회를 갖는다. 그러나 치킨조지는 ‘더 큰 사람(the bigger man)’이 되기 위해 그를 때리지 않는다.
“헛소리”라고 타란티노와 허들린이 그 장면의 모순을 두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그가 ‘더 큰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타란티노가 말했다. “1970년대 실력자들은 미국 흑인에게 복수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흑인에게 어떤 생각도 부추기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라마의 그런 상황에선 그런 행동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장고’에서 우리는 그 점을 확실히 했다.”
‘장고’에서도 제이미 폭스가 연기하는 주인공이 노예에서 풀려난 뒤 옛 주인을 구타할 기회를 갖는다. 타란티노는 그 기억에 남는 장면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촬영하면서 가장 감정이 고조된 날이었다. 그가 주인의 흰 피부색이 없어질 때까지 두드려 팼기 때문에 모두들 너무 잔인하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건 영화에서 절대 뺄 수 없는 중요한 장면이다.”
폭스는 자신을 고문한 사람에게 복수하려는 일념에 사로잡힌 동시에 수년 전 다른 농장으로 팔려간 아내를 못 잊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한 흑인 남자와 한 흑인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허들린이 말했다. “참혹하고 암담한 당시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사랑에 빠져 아내를 되찾고 싶어한다. 시대극이든 현대물이든 영화에서는 열렬한 사랑에 빠진 흑인을 보기는 힘들다.”
새뮤얼 L 잭슨과 크리스토프 월츠 등 조연들도 뜻밖의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마지막 펀치를 날린다. 그는 젊고 잘 생긴 부유한 농장주 캘빈 캔디를 연기했다. 그는 장고의 아내가 노예로 일하는 캔디랜드 농장 주인으로서 노예들에게 고통을 주며 즐긴다. 디캐프리오로서는 또 다른 변신이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디캐프리오는 그 젊은 악덕 주인의 역할을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타란티노가 말했다. “영화에서 그 농장은 조부가 소유하면서 번창했고 아버지가 이어받아 잘 유지했다. 그러나 디캐프리오가 연기한 인물은 아무런 노력 없이 그런 부와 지위를 누린다. 농장이 어떻게 번창하게 됐는지는 개의치 않고 단지 퇴폐와 탐욕으로 신나게 즐긴다.”
그러나 미국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 중 하나에 강렬하게 초점을 맞춘 영화를 관객이 외면한다면 호화 캐스트도 타란티노의 명성도 ‘장고’를 구제할 수 없다. 노예제도는 흑인과 백인 관객 모두가 피하고 싶어하는 주제다. 그러나 타란티노와 허들린은 ‘장고’의 타이밍이 더없이 좋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을 움직이는 힘의 역학이 바뀌고 있고 사람들이 그 문제를 이야기한다”고 타란티노가 말했다. “역사의 그 시점이 그런 담론의 일부다. 링컨 등 다른 영화들 사이에서 우리가 과거 노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즐겁다. 비난을 받겠지만 내 작품은 늘 그랬다. 비난과 비판이 없다면 타란티노 영화가 아니다(Wouldn’t be a Tarantino film without some flak and criticism).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 점을 잊지 못할 거다. 그게 나의 요점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이승현이 끌고 이승현이 지켰다…2승 의미는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서유리, 칼 빼드나…"정신적으로 병든 사람"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6억 대출 제한’에 주담대 신청 역대급 ‘반토막’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위클리IB]‘수익률 쇼크’면한 韓 LP들…트럼프 과세조항 삭제에 ‘안도’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거품 꺼지는 바이오]①사면초가 바이오벤처, 자금 고갈에 속속 매물로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