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CEO 욕심 낸다고 됩니까?
장수 CEO 욕심 낸다고 됩니까?
“오너와 전문경영인 간의 바람직한 관계는 좋은 시아버지와 똑똑한 며느리 사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똑똑한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도 바른 말을 합니다. 좋은 시아버지는 그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죠.” 박종원(69) 코리안리 사장은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이 같은 바람직한 관계를 이어가려면 경영 철학과 목표가 서로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궁합이 서로 맞아야 합니다. 전문경영인은 오너를 잘 만나고 오너도 전문경영인을 잘 선임해야죠. 상사도 부하직원을 잘 만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운명적인 관계라고 도 할 수 있죠.”
박 사장은 2월 한국경영학회의 ‘올해의 경영자’ 대상을 받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파산 직전에 이른 코리안리에 부임해 공적자금 투입 없이 회사를 회생시킨 성과를 평가받았다. 당시 글로벌 재보험 시장 순위 32위였던 이 회사는 2011년 글로벌 톱 10에 진입했다(매출액에 해당하는 수재보험료 기준).
연 평균 12% 성장은 아시아 시장에서는 2002년 이래 부동의 1위다. 해외 영업 실적 비중은 22%에 달한다. 그는 다섯 번 연임해 15년째 재임 중인 장수 CEO다. 오는 7월 임기가 만료된다. 3월 6일 오후 서울 수송동 코리안리빌딩 박 사장의 접견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괄목할 만한 실적 개선의 비결이 뭔가요?“기업의 정신 곧 기업문화를 쇄신하려 임직원들과 2004년부터 해마다 백두대간 종주에 나섰습니다. 신체 활동은 정신노동자들이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근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돼요. 우리 몸을 정신이 좌우하듯이 기업을 이끄는 것도 바로 기업의 정신입니다. 산을 오르는 동안 함께 고통을 견디다보면 도전정신과 근성이 생기게 마련이죠.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우리나라의 근간인 백두대간을 타면서 백두산의 정기도 받았겠죠. ‘등산경영’은 실적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겁니다.”
기업의 정신이 그토록 중요한가요?
“경영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정신입니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죠. 정신적 무장은 업종을 불문하고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기업 경영의 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옛말 그대로입니다. 기업에 필요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정신입니다.
정신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기업 내부에 고착된 잘못된 관습을 뿌리뽑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관습은 좀처럼 바꾸기 어려워요. 혁신도 결국 정신, 기업문화를 혁신하는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낙관적인 상황에서도 부정적인 요소는 있고 비관적인 상황에 처해도 긍정적인 요소는 있게 마련이죠. 낙관적인 상황에 주목하고 긍정적인 요소를 극대화하면 어떤 상황도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정신 차리는 방법으로 산행 말고 뭐가 있나요?
“다양한 경험을 해 보게 만드는 겁니다. 경험을 많이 할수록 정신력이 강화되죠. 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세상에 쓸모 없는 경험이란 없습니다. 간접 경험도 도움이 되지만 직접 경험이 더 중요합니다. 경험은 최고의 교사예요.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은 우리 몸에 각인이 되죠. 시행착오나 실패는 두려워 할 필요 없습니다.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게 마련인 하나의 단계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박 사장은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해병대에 입대했다. 해병은 대부분 입대와 동시에 베트남에 파병되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동기생의 3분의 2 이상이 베트남으로 떠났고, 상당수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한국전쟁 배경의 이만희 감독의 영화)’.
그가 속한 부대는 결국 파병되지 않았지만 언제든 명령이 떨어지면 전장으로 떠나야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병사들은 거칠었다. 영문도 모르고 고참병에게 일상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그러면서 차츰 야성이 몸에 뱄다. 훗날 그는 코리안리에 부임해 “내가 야전사령관이 되어 우리 회사를 최고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시골 출신으로 큰 고생 모르고 자라 스스로 나약하다고 생각했기에 극한의 경험을 통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보겠다는 욕구가 강했죠. 군 경험은 전역 후 고시 공부를 할 때 상당한 도움이 됐습니다. 군대에서 그 고생을 했는데 밤잠 못 자고 외롭게 공부하는게 무슨 대수냐고 자위하면서 견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사람들에게 군 복무를 권합니다. 조직생활을 통해 협동정신을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죠. 동료들과 부딪치다 보면 모난 곳은 정도 맞고 둥글둥글해집니다.”
코리안리의 인재상은 뭔가요
“체(體)·덕(德)·지(智)를 갖춘 사람입니다. 15세기에 설립된 영국의 명문 이튼 칼리지의 교훈이 바로 체·덕·지죠. 여기서 체란 신체의 건강과 더불어 정신의 건강도 아우르는개념입니다. 우리 회사는 입사원서를 손글씨로 써 회사로 찾아와 접수해야 합니다. 원서 접수, 서류전형, 청계산행·달리기·축구 등으로 이뤄진 야외 면접 땐 회사 선배들이 참여합니다. 이른바 스펙은 서류전형 단계에서만 보죠.”
CEO로서 장수한 비결이 뭔가요?
“CEO는 몸담은 회사와 운명을 같이해야 합니다. 수사(修辭)가 아니라 정말 그런 각오로 목숨 걸고 원칙 경영, 투명 경영을 하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겁니다. 다음에 앉을 자리, 연임을 생각하다 보면 원칙과 투명성에 대한 소신이 약해지게 마련이죠. 이런 욕심을 내려놓고 여기서 경력을 마치겠다, 보상을 못 받아도 좋다는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장수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장수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C EO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가운데 사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너는 하늘, 구성원은 땅에 비유할 수 있죠. 이 셋이 조화를 이뤄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 CEO도 장수하는 겁니다. 실적이야 당연히 좋아야죠. CEO의 자질로는 반듯한 인성, 위기관리와 문제 해결 능력, 미래 예측 능력을 꼽습니다.”
그는 공무원 출신이다. 행정고시 14회로 재정경제부 공보관(이사관)으로 있다가 1998년 여름 코리안리의 전신인 대한재보험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스스로 원해 왔지만 회사가 그토록 어려운 줄은 몰랐다. 정부도 몰랐다. 보증채권이 많았지만 회사가 발표하지 않고 쉬쉬했기 때문이었다. 취임 일주일 전에야 회사가 문 닫게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극적인 반전 없이는 영업정지를 당해 퇴출될 수밖에 없었다.
3월 결산법인이라 주어진 시간은 단 8개월이었다. 취임사에서 그는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고 전진할 건지 이대로 서서 최후를 맞을 건지 선택할 때”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했다. 수익을 단기간에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많이 어렵다 보니 노조와도 큰 마찰이 없었다.
그는 “망할 회사에 노조가 왜 필요하냐”고 다그쳤다. 임원 포함해 차·과장급 이상의 50%를 내보냈다. 전 임직원의 30%가량 됐다. 노조위원장도 나갔고 정권 실세의 소싯적 친구도 포함됐다. 노조위원장을 내보내려 하자 노사정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아픈 사람을 살리려면 환부를 도려내야 하듯 부실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효율적인 조직으로 변화돼야 합니다. 중요한 건 원칙의 고수와 투명성 확보예요. 원칙이 안지켜지면 신뢰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노사정 위원장에게 ‘실적과 평판을 기준으로 대상자를 결정했다. 노조위원장이 안 나가면 다른 사람이 대신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돌아보면 가장 가슴 아팠던 일입니다. 당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가장들이었죠.”
2000년 그는 ‘비전 2020’을 만들었다. 벼랑 끝까지 갔던 회사가 짠 20년 장기 계획. 기업으로서도 초유의 일로 2010년 세계 10위 달성, 2020년 5위권에 진입한다는 골자였다. 다들 코웃음 쳤다. 소식을 듣고서 국방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자기들은 10년 계획을 만들려고 하는데 20년짜리 계획을 세우는 회사라기에 왔다고 했다. 톱5는 현재 진행형인 코리안리의 2020년 비전이다.
“부임할 때 회사를 살릴 수 있다고 확신했듯이, 제가 만일 그때까지 여기 있다면 톱5 할 수 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죠. 두려워하지도, 조급해 하지도 않으면서 신중하게 추진하면 할 수 있습니다.”
CEO 승계 문제는 어떻게 돼 가나요? 대주주 원혁희 회장의 3남인 원종규 전무가 대표이사를 맡는 겁니까?
“15년 동안 기반을 닦아 체제가 확립됐습니다. 전 직원의 근 3분의 2가 제가 와서 뽑은 사람들이죠.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이라 코리안리는 계속 발전해 나갈 겁니다. 누가 회사를 맡을지는 아직 모릅니다. 아직 시간이 남았고, 회장이 판단할 문제죠. 회사가 기업정신을 이어가고 연착륙하도록 하기 위해 제가 공동 경영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퇴임 이후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을 하시나요?
“40년 쉬지 않고 일했는데 좀 쉬어야죠.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이 사회에 봉사할 길이 있는지 남은 인생에 대해 설계해 보려고요.”
멘토가 있습니까?
“멘토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를 존경합니다. 두 분 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은 분들이죠. 미국 백악관 정책차관보를 지냈고 췌장암으로 지난해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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