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lture - 재기 발랄한 21세기 판 서부극

할리우드의 수다쟁이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돌아온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그의 신작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팬이라면 양팔 들어 환영할 만한 작품이다. 평소 서부극에 대한 깊은 사랑을 숨기지 않았던 그가 서부극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주인공 ‘장고’를 21세기에 부활시킨다.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다운 화려한 입담은 기본,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킬 시원한 ‘총질 액션’ 그리고 새롭게 해석한 ‘서부의 총잡이’ 캐릭터가 스크린 위에 총출동한다.
이번 영화의 테마도 역시나 ‘복수’다. 그의 전작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에서는 히틀러 이하 주요 나치 인사들을 성공적으로 암살하는 통쾌한 복수를 통해 역사를 다루면서 오락 영화의 쾌감을 잃지 않는 독특한 역사 영화를 완성한 바 있다. 독일 나치에 이어 이번엔 미국 남부의 악랄한 백인 지주가 통쾌한 복수의 대상이다.
때는 미국 남북 전쟁이 벌어지기 2년 전. 현상금 사냥꾼 닥터 슐츠(크리스토프 왈츠)는 자신이 쫓는 노예 농장 관리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예 상인에게서 장고(제이미 폭스)를 구출한다. 장고가 알고 있는 백인 관리인을 찾기 위해서다. 장고의 도움으로 현상금을 챙기던 슐츠는 장고의 아내 브룸힐다(케리 워싱턴)가 미국 남부의 거대 농장 캔디 랜드의 소유주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잡혀 있다는 사실을 접한다. 슐츠는 캔디가 흑인 격투 ‘만딩고’를 즐긴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흑인 선수를 사들이겠다는 핑계로 장고와 함께 캔디에게 접근한다.
이 영화는 전작과 비교해 스토리 라인이 직선적이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에피소드 구조를 띠지도 않고 ‘킬 빌’ 시리즈의 구조도 아니며 ‘재키 브라운’(1998)의 시간 트릭 같은 잔재주도 부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전작들에서 그랬듯 고전과 현대를 가로 질러 각종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그의 연출 성격상 관객의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취향의 결이 무성하다.
이 영화의 원전이 된 프랭코 네로 주연의 ‘장고’ 시리즈와 비교하면 백인 장고가 흑인으로, 서부를 남부로 탈바꿈시켜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비틀기를 감행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 영화를 서부극(Western)이 아닌 남부극(Southern)이라고 부른다. 독일 출신의 현상금 사냥꾼 슐츠를 주요 인물로 끼워 넣은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심각함 떨쳐버린 오락 영화옛 ‘장고’ 시리즈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음악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일본 프레스 투어 도중 스파게티 웨스턴 음악을 듣고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의 원안을 떠올렸다. 시작부터 노골적으로 세르지오 코부치 감독의 ‘장고’(1966) 주제곡 ‘Django’를 그대로 가져오며, 엔니오모리코네의 음악 반대편에서 투팍의 힙합 곡을 활용해 관객의 허를 찌르기도 한다. 이처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실제 배경의 역사를 끌어와 특유의 상상력으로 분탕질을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이미 할리우드의 중견 감독이 되었지만, 한 번 악동은 영원한 악동일 뿐이다.
역사 왜곡으로도 비칠 수 있지만 혐의에서 벗어나는 것은 ‘장고: 분노의 추적자’가 기본적으로 미국 노예 제도에 대해 야유와 경멸조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캔디와 더불어 노예 제도를 지지할 뿐 아니라 더욱 악랄하게 노예를 괴롭히는 이로 흑인인 스티븐(사무엘 L. 잭슨)을 설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가장 유명한 ‘장고’ 시리즈의 주인공 프랭코 네로를 카메오로 등장시켜 유희를 이어간다. 장고 시리즈에 오마주를 바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그를 클레오파트라 클럽에서 캔디와 만딩고 대결을 펼치는 흑인 노예의 주인으로 등장시킨다. 대결에서 패배한 후 바에 있던 장고에게 다가가 이름의 철자가 어떻게 되냐고 묻는 인물이 바로 프랭코 네로다. 이처럼 일종의 놀이로 영화를 대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연출 성격상 통쾌하게 한 번 웃자고 만든 작품임을 우리 모두 인지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대하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야심은 소박하다. 장고와 슐츠라는 선인을 한 편에 두고, 그 반대편에 캔디와 스티븐이라는 악한을 놓아 이 대체 역사물의 범위를 이들 선으로 한정한다. 흑인 노예를 해방시켰다거나 미국 남북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로 확장하는 등의 거창한 기제로 끌고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Why So Serious?’ ‘장고: 분노의 추적자’는 오락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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