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ulture - 커피 찌꺼기의 사소한 아름다움

창의성이 천재의 전유물이라고 여긴 시대가 있었다. 적어도 20~30년 전까지만 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같은 르네상스 화가에겐 특히나 그런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그들은 그림 뿐 아니라 조각·건축·과학 등 다방면에 걸친 연구와 실천으로 남다름을 보여줬다.
현대의 창의성에 관한 연구는 정반대의 견해를 낳았다. 오늘날 그들의 업적이 천재성, 즉 타고난 비범함보다는 집념·끈기처럼 모든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덕목 덕이었다는 관점이 상식이 됐다. 예술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이른바 천재들의 창의성에 나타난 공통점은 투철한 목표 의식과 성공에 대한 열망, 그리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와 같은 평범한 속성이다.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순 있지만, ‘나는 도저히 열심히 할 수 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별한 재능은 타고 나는 것이지만 노력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근자의 창의성 연구에서 고무적인 측면은 바로 이런 점이다. 대부분의 연구에서 창의성은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누구나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이 특별해 보이는 창의성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이 작가들의 활동도 짧은 기간을 두고 평가하긴 어렵다. 오늘 주목을 받으며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라도 몇 년 지나고 나서 다시 보면 금새 빛이 바랜 듯 보이기도 하고, 한눈에 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아도 세월을 두고 보면 진가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진정한 예술의 힘은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누가 오래도록 남을 만한 작가인지에 대한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작가를 계속 만나면서 나름 터득한 좋은 작가 선별법 중 하나는 바로 ‘습관’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개 자신만의 자료 수집 방법이나 작업 진행속도, 작품을 완성하는 규칙 등을 가지고 있다.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은 작업의 아이디어를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고, 작업의 진행 속도는 몰입의 정도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완성을 결정하는 규칙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기대수준을 나타낸다.
중요한 건 이와 같은 일련의 의사 결정 패턴이 반복되는 일상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작가는 자신의 고유한 패턴을 밥 먹고 잠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어간다. 자신만의 창작 습관이 생활 속에서 안착돼 있다면, 그의 행보는 분명히 기대할 만하다.
습관은 관점의 예술에서 중요한 출발점이다. 김성수 작가는 커피를 좋아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번잡한 하루의 일상을 여유롭게 시작할 수 있는 커피 타임을 좋아한다. 매일 아침 필터에 공들여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한다.
그리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행하는 그 의식의 잔여물을 사진에 담았다. 한 장의 커피 필터에 담긴 그의 소망은 매일 한 장씩의 사진으로 남았다. 어느 날은 넓고 깊게 뚫린 동굴처럼, 어느 날은 단단하게 뭉쳐진 열매처럼, 커피 필터에 남겨진 흔적은 같은 듯 다르게 반복되는 그만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 됐다.
나만의 취향 찾아야커피 필터에 남은 흔적의 다양성은 지난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어제가 그제인지 오늘이 어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일상 속에서 아무 의미 없이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시간을 되살린 것이다. 시간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은 모두 시간 앞에서 무능하다. 그렇다고 다가올 시간을 두려워할 수만 없으니, 남은 방법은 하나다. 소소한 일상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복원시키는 것이다.
내일이 불안하다는 것은 오늘에 만족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누구도 하릴없이 시간만 보내게 되어 별 볼일 없는 노인이 되고 종국에는 시간 앞에 무기력한 패배자처럼 인생을 마감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다만 오늘 하루가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쌓이다 보면 내일이 갈수록 더 두려워지는 것이다.
일상을 복원시키는 힘을 기르는 데에 ‘취향’은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나 자신에게 귀 기울이는 일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지,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기는지, 혼자 있을 때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지, 맛에서 행복감을 느끼는지, 소리에 매료되는지, 촉각에 잘 집중하는지….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선택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캠핑이 유행한다고, 뮤지컬이 인기 있다고, 나도 덩달아 꼭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행에 맞서는 나만의 취향을 찾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오늘의 의미는 충만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김성수의 사진 속에 담긴 반복의 미학은 매일 다르게 남겨진 흔적을 서로 비교하고 감상하면서 무심히 흘려버릴 수도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냈다는 점에 있다. 반복은 체계적인 관찰과 발견, 그리고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어쩌다 한번 바라본 커피 필터는 말 그대로 커피를 걸러내고 난 찌꺼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매일 유심히 들여다 본 커피 필터는 단 하루도 같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다채로운 삶의 기록이다.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리하여 모든 나의 시간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김성수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관점의 기술이며, 동시에 우리의 시간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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