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통첩 게임과 을(乙)의 역습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갑을 관계가 세간의 화제다. 포스코 에너지의 라면 상무 사건,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대리점주에 대한 폭언 등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여론이 들끓었다. 예전이라면 그냥 묻혀졌을 법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을의 권리의식 향상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세상이 바뀌었다. 갑의 횡포가 알려지자 을을 지원하는 여론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며 경영진들이 머리 조아려 사죄하는 과정을 보노라면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
남양유업 사건의 경우, 만약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대리점에 판매목표를 부과하고 밀어내기를 강요했다면 공정거래법 제23조에서 금하는 불공정거래행위 유형 중 ‘거래상 지위의 남용’에 해당한다.
그러나 SNS의 시대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법 집행이나 국회의 경제민주화 규제 법안보다도 ‘갑의 부당행위’에 대한 여론과 시장의 반격이 즉각적이고 치명적이다. 따라서 기업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존 갑을 관계에 불공정·불합리한 점이 없는지 점검하고 필요하면 개선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갑을 관계를 점검함에 있어서 경제적 합리성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야 한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사람이 경제적 합리성, 다시 말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손실은 최소화하려 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런 가정은 우리 인간의 실제 모습과 다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공정하지않다고 생각하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를 포기하고 그 대신 상대방에게 손실을 안기려는 성향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여기 갑과 을, 두 사람이 있다. 갑에게 1만원을 주면서 을과 나눠 갖되 그 분배비율은 갑이 정하라 한다. 두 사람은 일체 상의할 수 없고 을은 갑의 제안에 동의 또는 거부만 할 수 있다. 갑의 제안에 을이 동의하면 그대로 1만원을 나눠 가지면 되고, 만약 을이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1원도 가질 수 없다. 이런 규칙 하에서 갑으로서는 을에게 어떤 분배 비율을 제안하는 게 최선인가? 독자 여러분이 갑이라면 얼마를 제안하겠는가?
이 실험에서 경제이론은 갑이 거의 전부를 갖고 을에게는 100원이나 500원의 껌 값만 줘야 정답이다. 갑으로서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분배율을 제안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 교수의 실험에서 사람들은 경제학적 예측과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갑이 80% 이상 갖겠다고 제안한 경우도 적었지만 또 그런 제안에는 을이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둘 다 한 푼도 못 받는 결과를 만든 것이다.
이 게임은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 또는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갑을 게임’으로 부르는 게 이해가 빠를 듯하다. 갑을 게임에서 보듯이 사람들은 효율성 외에 공평성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다. 경제적 합리성만 가지고 갑을 관계를 설정하면 을의 역습과 여론의 반격을 자초할 수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 모두 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각자가 속해 있는 갑을 관계를 점검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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