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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재래 화폐는 형장의 아큐(阿Q) 신세?

Management - 재래 화폐는 형장의 아큐(阿Q) 신세?

루쉰 『아Q정전』의 체제 변혁은 요즘 가상화폐 ‘비트코인’ 등장에 비견돼



루쉰의 『아Q정전(阿Q正傳)』은 이름도, 출신도 모르는 날품팔이꾼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를 큐웨이(Quei)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냥 Q라 표기했다.

‘아(阿)’는 친근감을 주기 위해 사람의 성이나 이름 앞에 붙는 접두어다. ‘아Q’는 우리나라로 치면 김씨나 박씨, 이씨쯤 된다. ‘정전’은 그의 살아온 삶을 기록한 것이다.

루쉰은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이 작품을 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청일전쟁 패배와 의화단 사건으로 서구 열강에 휩싸여 망해가는 중국을 한탄한 루쉰은 중국인들을 계몽시키려고 붓을 들었다.

루쉰은 1921년 12월부터 1922년 2월까지 주간지 ‘신보부간’에 ‘파인’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발표했다. 아Q는 무지몽매하면서 자존심만 세고, 여전히 자신이 최고라는 망상에 빠진 중국 인민을 표현했다. 자존심은 세지만 막상 싸움을 하면 지고, 골이 나면 괜히 약자를 괴롭히던 20세기초 청나라의 모습을 그렸다. 강자 앞에는 저항을 포기하고 알아서 무릎을 꿇기도 한다.

대적할 수 없는 지역 유지인 조씨·전씨·백씨 등은 영국·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이, 만만해 보이나 붙으면 싸움을 당해낼 수 없었던 날품팔이 소(小)D나 노숙자 왕털보는 일본이 떠오른다. 지나가다가 괜히 골탕 먹이고픈 여승이나 미장지역의 여성은 조선과 대입된다.

마을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아Q에게 기회가 왔다.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미장 사람들이 혁명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자 “모반이다! 모반이다!”이라고 외친다. 자신이 혁명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그의 호칭은 ‘아Q’에서 ‘아Q씨’ ‘아Q형’으로 바뀐다. 하지만 실제로는 혁명에 참여한 건 아니었다. 조씨의 아들은 혁명에 참여하려는 아Q를 내쫓는다. 혁명은 지식인들의 것이었다.

혁명을 틈타 조씨가 약탈을 당한다. 혁명군은 아Q를 유력한 용의자로 봤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아Q. 영문도 모르고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약탈에 참여한 것을 인정한다는의미다. 무명으로 된 흰 등거리를 입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형장으로 끌려가고 있음을 안다. 마을 사람들은 책임을 그에게 돌린다.

이 작품은 신해혁명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1911년 일어난 신해혁명은 2000년 만에 중국의 봉건왕조가 막을 내리고 공화국이 들어선 사건이다.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세워졌다. 공화국이 탄생한 것은 아시아에서 중국이 처음이었다.



아Q는 무지하면서 자만심만 센 중국 인민 비유아편전쟁·청일전쟁에서 잇따라 패한 청나라에는 외국인 혐오가 절정에 달했다. 중국인들은 의화권이라는 비밀단체의 의화권법에 매료됐다. 100일 간 권법을 익히면 물과 불에 다치지 않고 총알·대포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이 일으킨 난이 의화단 사건이다. 1900년의 일이다. 청은 서구 열강과 일본 등 외국 군대를 불러들였다. 이들은 의화단을 무찌른 뒤 자국민 피해 등을 이유로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했다. 청나라가 1911년 철도를 국유화하고, 이를 담보로 서양에서 돈을 빌려 재정난을 타개하려 하자 전국에서 반대운동이 벌어진다. 쓰촨에서 발생한 군인들의 무장봉기는 전국으로 확대돼 한달 만에 거의 모든 성이 호응한다. 1912년 1월 1일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하는 난징정부가 수립됐다. 중화민국의 시작이었다.

혁명이란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기존 질서체제에 대한 불만이 쌓이다 어느 날 한번에 폭발한다. 기존 경제질서에 대한 불만은 체제 변혁을 부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이 계속되는 최근에는 화폐혁명이 추진되고 있다. ‘비트코인(Bitcoin)’이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월 3일 탄생했다. 기존 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금융회사의 통제를 받지 않고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다.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향후 100년 간 발행될 화폐량이 미리 정해져 있다. 비트코인은 황제 체제에서 대통령 체제로 바뀌는 것만큼이나 큰 변혁이다.

경제시스템이 한계에 부닥칠 때마다 화폐개혁이 단행됐다. 1세대 화폐는 금속이었다. 16세기 유럽인들은 금과 은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를 국가의 부강 정도로 봤다. 상업을 통해 금과 은을 확보하는 전쟁이 시작됐다. 상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는 이렇게 꽃 피웠다. 스페인·포르투갈·네덜란드 등은 식민지 개척을 통해 막대한 금과 은을 본국으로 유입시켰다.

18세기 금은 주화에서 종이 화폐로 돈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금은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돈은 금은의 소유량에 비례해 찍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금본위제 혹은 은본위제다. 금과 은을 같이 쓰면 복본위제다. 금본위제는 19세기 후반부터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식 도입했다.

금은 양이 부족했다. 경제 규모에 비해 적게 유통되는 화폐는 경제를 위축시켰다. 하지만 금보다 훨씬 풍부한 은이 있었다. 은본위제를 추가적으로 채택하느냐 마느냐 정도가 논의 대상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8년 세계 경제의 중심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전쟁 여파에다 미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유럽의 수많은 금은 이미 미국에 건네졌다. 이들은 브리튼우즈 협상에서 ‘1온스=35미국 달러’로 하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미국의 힘은 오래가지 못했다.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더 이상 미국 달러화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는 금태환 중지를 선언했다. 금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베트남전쟁 참전 등으로 막대한 전비를 쓴 미국은 발행화폐에 비해 바꿔줄 금이 부족했다. 그러자 미국은 미국의 신용을 내세웠다. 미국 정부가 보증할 테니 돈을 쓰라는 얘기다. 정치를 기반으로 한 화폐의 출현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는 이 시스템이 잘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다. 통화주의자들도 나왔다. 통화량을 늘리면 수요가 늘어나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줄이면 억제된다고 했다. 밀턴 프리드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각국 중앙은행은 완벽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 넘쳐나던 돈은 결국 거품을 불렀다. 금융위기가 닥쳤고 한방에 수 조원의 부가 실종됐다.

다시 각국은 중앙은행을 통해 돈 뿌리기에 나섰다. 매번 정부에 의해 휘둘리는 화폐권력에 반감이 생겼다. 화폐발행권을 일반에게 돌려주자는 시도가 은밀하게 진행됐다. 그게 비트코인이다. 권력이 황제 한 사람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 억명의 국민에게서 나오도록 하자는 신해혁명과 구상이 닮았다.



‘화폐 발행권을 대중에 돌려주자’는 비트코인비트코인은 개발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 존재하는 사람인지 확실하지 않다.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나 주인·국경이 없다. 익명성이 보장된다. 컴퓨터를 이용해 어려운 수학문제를 풀면 새로운 비트코인이 생성된다.

2010년 5월 18일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으로 거래가 성사됐다. 일명 ‘플로리다 피자 사건’이다.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 사는 닉네임 ‘laszlo’가 비트코인 포럼 게시판에 ‘라지 사이즈 피자 두 판을 보내주면 1만 비트코인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을 올렸다. 유럽의 한 이용자가 ‘laszlo’ 집 근처 피자 배달서비스를 통해 피자를 배달해줬고, 그는 그 대가로 1만 비트코인을 받았다. 당시 1만 비트코인은 41달러 정도였지만 두 달 후 600달러로 치솟았다.

비트코인이 현재 화폐의 자리를 꿰찰 수 있을까. 형장으로 끌려가는 아Q는 기존 화폐의 폐지를, 그를 보고 수근 대는 민중들은 새 제도 출현을 의심을 눈초리로 지켜보는 경제 주체를, 혁명으로 세상을 뒤엎은 혁명주의자들은 비트코인 개발자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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