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siness - 농민 제값 받고, 소비자 싸게 사고
Business - 농민 제값 받고, 소비자 싸게 사고
밤 10시.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배추와 감자, 고추 등이 입하장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바코드를 찍으면 과일과 채소들이 분배장 개별 라인으로 운반된다. 박스에 실려온 고추 중 일부는 10~12개씩 작은 비닐에 담겨 새로 포장되고, 감자는 2층 전처리센터로 이동한다. 감자는 이곳에서 씻고, 껍질을 깎아 채를 썬 뒤 서울의 한 급식업체에 공급된다.
입고된 모든 농산물 시료는 3층 식품안전센터로 옮겨진다. 새 단장을 마치고, 엄격한 검사까지 통과해야만 출하장 앞에 대기 중인 트럭에 몸을 실을 수 있다. 다음날 새벽, 입고된 지 채 몇 시간 안 돼 채소와 과일들은 다시 전국 각지로 흩어진다.
경기 안성시 미양면에 있는 농협 안성농식품물류센터(이하 안성물류센터)의 분주한 밤이다. 6월 13일 완공돼 8월부터 정식 운영에 들어간 안성물류센터의 주 업무는 농산물의 집배송·상품화·저장 등이다. 과도한 유통 비용을 줄여 생산자에게 제값을 주고, 소비자에게는 농산물을 싸게 공급하자는 취지로 농협중앙회가 만든 곳이다.
농협a마켓 상품 가격 중앙회가 직접 결정농축산물의 유통비용률(최종가격 대비 유통비용 비중)은 평균 40~50% 정도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 중에서 많게는 절반 가량이 유통 비용으로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농축산물은 보통 가격에 비해 부피나 중량이 크고, 부패하기 쉬운 특성이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거리도 멀다. 운송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농축산물의 유통 비용은 과하다.
경로 간 경쟁 부족이나 복잡한 단계 등 유통 과정에서 새나가는 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직거래 비중은 아직 4% 정도에 머문다. 산지와 소비자를 직접 연계하는 안성물류센터에 거는 기대가 큰 이유다. 안성물류센터는 생산자에게 직접 농산물을 구입해 대형마트, 급식소, 군부대, 중소 수퍼마켓 등을 통해 개별 소비지로 전달하는 중간 역할을 담당한다. 수수료도 4% 정도로 11%인 대형마트나 4~7%인 도매시장보다 저렴하다. 안성물류센터와 같은 권역별 도매물류센터를 2016년까지 전국에 4개 더 짓는다는 게 농협의 계획이다.
안성물류센터가 생산자와 농협을 연결한다면 조만간 문 여는 국민행복장터 ‘농협a마켓(www.nhamarket.com/co.kr)’은 소비자와 농협을 이어준다. 농협중앙회는 산지 직거래를 통해 생산자는 제값을 받고, 소비자는 더 싸게 살 수 있도록 설계한 농산물 전문사이트 농협a마켓을 내년 1월 개설키로 했다. ‘a’는 농산물(Agricultural products)에서 따왔다. 농협a마켓을 통해 농산물의 복잡한 유통단계를 과감히 축소하고, 중간 마진을 줄여 최저 가격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인데 ‘농산물은 역시 농협’이라는 브랜드 신뢰도 증진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농협a마켓은 현재 운영 중인 ‘농협e쇼핑몰’을 전면 개편해 구축할 계획이다. 직거래와 대행 판매가 섞인 종합 쇼핑몰 형태인 농협e쇼핑몰과 달리 농협a마켓은 농식품만을, 그중에서도 직거래 상품만 취급할 계획이다. 희망자가 자유롭게 입점해 가격을 자유롭게 결정하던 것도 생산자와 지역농협에 한정해 농협중앙회가 직접 판매 가격을 조정키로 했다.
농산물도매분사가 지역농협에서 농산물을 구입한 뒤 지역농협에 저장, 보관해놓고, 온라인 사업분사가 배송비 등을 고려해 적정가격을 산출해 상품을 등록한다. 소비자가 농협a마켓에서 이 상품을 보고, 주문하면 지역농협에서 바로 포장해 발송하는 방식이다.
12월 10일 지역농협 임원 600여 명을 초청해 사업설명회를 가진 자리에서 이상욱 농협중앙회 농업경제대표이사는 “농식품 전문 사이트 국민행복장터 농협a마켓 운영을 통해 복잡한 농산물 유통단계를 획기적으로 축소하겠다”며 “농산물 출하 확대를 통한 농업인 소득제고 및 농산물 판매가격 인하 등으로 소비자 물가안정에 기여하는 한편 ‘생산자-소비자-기업’이 상생하는 농산물 기업 상생마케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기업 후원 받아 과일·채소 싸게 공급농협중앙회는 참여하는 우수 지역농협 등에 무이자 자금지원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 사업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행복꾸러미, 알뜰바구니, 기업 상생마케팅 등 다양한 세부 사업을 통해 농협a마켓을 내실 있게 키워갈 방침이다.
지역농협이 단위별 패키지 꾸러미를 개발해 학교 급식업체에 공급하는 행복꾸러미 사업과 지역농협이 안성물류센터 등에서 소포장된 상품을 낱개로 진열한 뒤 소비자의 주문을 받아 바구니를 구성해 공급하는 알뜰바구니 사업 등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올 11월 시작한 기업 상생마케팅 역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제철을 맞은 귤과 김장용 가을 배추 등의 포장 상자에 NH생명·CJ제일제당·안토니 등 후원 기업체들의 명칭을 부착하는 대신 해당 농산물 값의 일부를 기업이 부담하는 프로그램이다. 계열사인 NH농협생명이 3억원을 후원해 처음 시작했는데 이 돈으로 농협중앙회는 11월 12일부터 17일까지 5㎏ 감귤 1박스를 3000원이 인하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했다. 애초 10만 상자만 팔기로 했지만 뜨거운 호응에 물량을 늘려 18만 상자 가량 판매했다.
중견 제화업체 안토니는 5000만원을 후원해 배추 3+1 행사를 열었고, LH공사는 2억원을 후원해 지역농협으로부터 김장배추 11만5000포기를 구입한 뒤 전국 영구임대단지(126개소)에 무상으로 기부했다. 덕분에 생산 과잉에 따라 큰 폭의 가격 하락이 우려됐던 김장용 가을 배추는 소비 심리가 살아나면서 산지 폐기 등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KT&G·CJ제일제당·삼립식품 등도 연이어 마케팅에 참여했다. 농협중앙회는 내년부터 사업 규모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농협중앙회는 농협a마켓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온라인 사업 분사를 신설하고, 외부에서 쇼핑몰 전문인력을 대거 채용할 방침이다. 올해까지 기존 온라인 쇼핑몰의 농협a마켓 전환을 완료하고, 내년에는 시스템 및 서버 용량을 대폭 확충해 독립 쇼핑몰을 새로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올해 750억원에 머물고 있는 온라인 농식품 사업 매출을 내년까지 2000억원으로 끌어올리고, 2017년 1조원을 달성한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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